← 작품으로
피해자 가족 상담실의 빈 의자3화

피해자 가족 상담실의 빈 의자

피해자 가족 상담실의 빈 의자

AD
스폰서 광고

3화: 상담 기록 밖의 질문

임나래는 경찰 형사 김하람이 상담실에 다시 찾아온 날, 문을 닫지 않았다.

그는 공식 문서 없이 내담자들과 관련된 제보 여부를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피해자 가족이 스스로 찾아오지 않으면 오래된 사건의 의문은 그대로 남을 수 있다고 했다. 나래는 그가 원하는 게 상담 기록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상담 내용을 다른 사람과 대조하는 일도 비밀보장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그럼 내가 아무것도 못 물어보는 겁니까?”

“센터가 마련한 공개 제보 안내를 드릴 수 있습니다. 내담자가 직접 원하면 담당 수사관과 만날 수 있도록 연결하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피해자라면, 먼저 찾아가서 돕는 게 맞지 않나요?”

“상담실에서 말한 내용을 토대로 먼저 찾아가면,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건에 끌려 들어갑니다.”

하람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사건 파일에서 두 유족의 문장이 같은 날 같은 장소를 가리키는 걸 확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정보는 상담센터에서 얻은 게 아니었다. 공개된 과거 진술과 새로 접수된 제보에서 나온 내용이었다.

나래는 하람에게 그 구분을 문서로 정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상담센터가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의 공개 제보 요청을 안내문으로 게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람은 경찰서로 돌아가 공식 안내를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날 오후, 서은별이 나래에게 연락했다. 그녀는 형사의 공개 안내문을 보고 경찰서에 다시 갈지 고민했다. 지난번 진술에서 언니의 메시지를 내지 않았지만, 그 메시지가 사건의 시간과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언니의 휴대전화는 이미 경찰이 가져갔어요. 제가 말 안 해도 메시지를 볼 수 있나요?”

“기기 소유와 압수 절차를 확인해야 합니다. 당신이 본 메시지를 기억대로 말할 수는 있지만, 화면을 보여 주는 건 별도 선택이에요.”

은별은 언니가 남긴 메시지를 직접 다시 보고 싶다고 했다. 나래는 수사기관에 메시지를 제출하기 전, 본인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시간과 동행할 사람을 정해 두자고 제안했다. 진호는 동석할 수 있지만 상담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상담실 빈 의자는 그날 창을 향해 있었다. 은별은 의자를 문 쪽으로 돌리지 않았다. “오늘은 밖을 보고 싶어요. 언니가 떠났던 방향이 서쪽이었거든요.”

나래는 그 말의 의미를 캐묻지 않았다. 은별은 언니의 장례가 끝난 뒤 서쪽 도로를 피해서 다녔다. 사건 장소를 지나치지 않으려 했지만, 그 길을 피하면 출근 시간이 두 배가 됐다. 그녀는 이제 우회하지 않고 걸어 보고 싶다고 했다.

“혼자 가기 어렵다면 친구와 함께 가도 돼요. 오늘 당장 하지 않아도 되고요.”

“오늘은 진호 씨랑 경찰서까지 가고, 그 다음은 혼자 걸어 볼게요.”

그녀는 진호에게 동행 범위가 경찰서 출입까지라고 정했다. 수사실 안에는 혼자 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진호는 그 선택을 받아들였다. 나래는 상담 종결 시각을 기록하고, 경찰서에서 다시 만나는 일정은 별도로 잡지 않았다.

윤미숙은 같은 날 저녁 상담을 예약했다. 그는 동생의 마지막 말을 상담기록에 남기지 말아 달라고 다시 확인했다. 나래는 그 요청을 지키고, 미숙이 언니에게 전화한 뒤 느낀 감정을 다뤘다. 언니는 미숙의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 말에 미숙은 상처를 받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모든 걸 혼자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내가 틀려도 동생을 배신하는 건 아니겠죠?”

“기억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과, 동생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건 다른 일이에요.”

미숙은 빈 의자에 놓인 손수건을 자기 손에 쥐었다. 이번에는 문 쪽을 보지 않았다. 그녀는 상담실에서 나가기 전에 다음 주 예약을 취소했다. 당분간 혼자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나래는 취소를 붙잡지 않았다. 상담을 쉬는 것도 미숙의 선택이었다.

다음 날, 경찰은 은별이 자발적으로 제출한 메시지의 사본을 확인했다. 원본 휴대전화는 수사기관이 보관하고 있었고, 은별은 제출 범위와 보존 기간을 상담받은 뒤 동의했다. 하람은 메시지의 발신자와 저장 시각을 확인하고, 사건 당일의 통화 기록과 대조하기로 했다. 그가 센터에 결과를 알려 달라고 했지만, 나래는 수사 내용은 은별이 직접 듣도록 하겠다고 했다.

진호는 은별이 경찰서에서 나오는 걸 함께 기다렸다. 그녀는 작은 종이봉투를 손에 쥐고 있었다. 안에는 언니가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의 출력본이 있었다. “이제 이걸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봉투를 버릴 건가요?” 진호가 물었다.

“아니요. 제 방에 두고, 경찰이 필요하다고 하면 다시 보여 줄래요.”

은별은 출력본을 가방 안쪽에 넣었다. 그녀는 서쪽 도로를 돌아가지 않고 걸어가겠다고 했다. 진호는 동행하지 않았다. 약속한 대로 경찰서까지만 함께했다.

센터에서는 익명 메모를 둘러싼 내부 점검이 시작됐다. 상담실 문 아래에 종이를 밀어 넣을 수 있는 틈은 있었지만, 복도 카메라에는 메모를 가져온 사람이 찍히지 않았다. 센터장과 나래, 진호는 자료 접근 권한을 나누고 발견 메모의 원본 보관 담당자를 정했다. 누구도 상담기록과 메모를 함께 열 수 없게 했다.

점검 회의 도중 센터 직원 한 명이 자신이 메모를 놓았다고 털어놓았다. 상담사는 아니었고, 사건 지원 안내문을 정리하던 행정 보조였다. 그는 한 유족에게서 “내가 말한 걸 상담사가 경찰에 넘겼다”는 오해를 들은 뒤, 그 가족이 더는 말을 꺼내지 못할까 봐 빈 의자를 옮겨 놓았다고 했다.

“메모를 남기면 누군가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래는 그 직원에게 상담 내용을 묻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건 복도에서 들은 항의뿐이었다. 그는 누군가 상담기록을 읽은 게 아니라, 유족이 느낀 불신을 전달하려 했다고 말했다. 메모 문장이 왜 사건의 세 문장과 닮았는지는 그도 알지 못했다.

“첫 메모는 제가 쓰지 않았습니다. 의자를 옮긴 건 제가 맞아요.”

센터장은 메모와 의자 이동을 별개로 기록했다. 행정 보조는 상담실 근처에서 일을 계속할지 고민했다. 나래는 그가 실수를 인정한 것과, 내담자의 불신을 더 키운 결과를 함께 봐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은 내담자에게 직접 사과하고 싶어 했지만, 당사자가 원하지 않을 수 있어 먼저 연락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쓴 안내 메모는 남아 있었다. ‘기억을 빌려 쓰지 마세요.’ 글씨는 첫 메모의 필체와 달랐지만, 그 문장은 상담실에서 직원이 지키고 싶었던 원칙과 닮아 있었다. 나래는 그 연결을 보고서에 단정하지 않고, 내부 검토 의견으로만 남겼다.

경찰에서 온 하람은 사라진 지휘 기록이 센터의 누군가와 연결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래는 센터 직원에게 수사를 위한 질문을 하려면 공식 요청을 보내 달라고 했다. 하람은 익명 메모의 작성자를 센터가 알아냈는지 물었지만, 나래는 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 직원의 자백도 당사자 동의 없이는 수사 자료로 넘기지 않기로 했다.

“그럼 기록 조작을 한 사람을 찾을 단서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센터가 수사기관 대신 조사하면 내담자들은 더는 여기서 말하지 않을 겁니다.”

하람은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떠나기 전 담당 수사관 연락처와 공식 자료 요청 방법을 남겼다. 나래는 센터장과 함께 그 정보를 누구나 볼 수 있는 안내함에 넣었다. 어느 내담자에게만 안내하지 않았다.

행정 보조는 다음 주부터 상담실 앞 복도 근무를 다른 직원과 교대하기로 했다. 그의 역할은 방문자를 응대하는 데 한정하고, 상담 내용이 들리지 않도록 문 사이 방음 패드를 교체하기로 했다. 나래는 조치 결과를 내담자 공지에 짧게 적었다. 공지는 사건이나 메모를 언급하지 않고, 상담 기록의 보관 원칙과 문의 방법만 담았다. 센터장은 직원들에게 공지를 읽고 질문이 있으면 따로 면담을 신청하라고 안내했다.

“이렇게 분리하면 사건 연결이 더 늦어질 수도 있어요.” 진호가 말했다.

“누군가 말하기로 선택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야 해요.” 나래가 답했다.

그날 밤, 나래는 빈 의자를 복도 쪽으로 옮겨 두었다. 다음 예약자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의자는 문을 막지 않았다. 그녀는 의자 아래에서 작은 종이 조각을 발견했다. 앞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뒷면에는 ‘기억을 빌려 쓰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번 글씨는 앞선 메모와 달랐다. 나래는 새 봉투를 꺼내 종이를 넣고, 센터장에게 바로 알렸다. 누군가 상담실의 원칙을 알고 경고한 것인지, 아니면 상담 내용을 엿들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하람은 그날 밤 전화해 오래된 사건의 당시 지휘 기록이 사라졌다고 알렸다. 기록이 사라진 날짜는 상담센터에서 첫 메모가 발견된 날과 같았다. 나래는 상담기록을 열지 않은 채, 경찰에게 외부 공식 자료를 통해 확인해 달라고 말했다.

전화가 끝난 뒤 나래는 빈 의자의 다리를 고정했다. 다음 주 누군가 그 의자를 다시 돌려 놓더라도, 그것이 누구의 말인지 추측하지 않기로 했다. 의자 하나는 자리가 될 수 있지만, 동의 없는 증언은 될 수 없었다.

그녀는 빈 의자 옆에 안내 카드를 하나 더 놓았다. 말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먼저 앉을지 말지는 그 사람의 선택으로 남겨 두었다.

다음 상담 시간표는 의자에서 한 걸음 떨어진 벽에 붙였다.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을 누구도 답으로 삼지 않도록.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