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역참의 말 없는 역관

2화: 긁힌 외교 궤짝
외교 궤짝을 여는 일에는 손이 넷 필요했다. 야몬은 왼쪽 고리를 잡았고 세르는 봉랍 아래 끈을 당겼으며 쿠란은 궤짝의 밑받침을 들어 줬다. 마지막 손은 강우진의 것이 아니었다. 마부 렌이 마모된 경첩을 받쳤다. 궤짝을 실제로 나른 사람만이 무게가 쏠리는 방향을 알았다.
우진은 상에서 조금 물러나 있었다. 세 사신이 그에게 명단을 병사에게 먼저 주지 말라고 요청했지만, 지휘관에게 무엇을 숨겼다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임백헌이 들어오기 전에 궤짝을 열지 말자고 했다. 누군가의 이름을 함께 보는 자리와 이름을 압수하는 자리를 구별해야 했다.
임백헌은 장갑을 낀 채 들어왔다. 바깥에서 창고 문이 얼어붙어 직접 풀고 오는 길이었다. 그는 궤짝의 봉인을 보자 예물함이라 들었다고 말했다. 우진은 그 안에 사람의 명단이 있다고 사신들이 밝혔다는 말을 옮겼다.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지휘관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우진은 그 말도 그대로 옮겼다. 상대에게 불리한 말을 부드럽게 바꾸면 편하겠지만, 나중에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대화가 더 크게 틀어졌다. 야몬은 처음부터 명단을 공개하면 여섯 사람이 붙잡힐까 두려웠다고 답했다. 임백헌은 불편한 침묵 뒤에 궤짝을 열라고 했다.
뚜껑 아래에는 비단 두 필과 은으로 만든 술잔이 있었다. 공식 예물이었다. 렌이 밑받침을 들어 올리자 얇은 판 하나가 나타났다. 판 가장자리의 새 긁힘은 창으로 연 것이 아니라 마차의 철제 고정쇠에 부딪힌 흔적이었다. 누군가 궤짝을 다른 수레로 옮긴 적이 있었다.
우진은 그 추정을 렌에게 확인했다. 렌은 다리에서 바퀴가 부러져 갈아 실었다고 답했다. 해월이 궤짝의 밑면을 보고 고정쇠 모양이 자기 역참 수레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 국경 교역용 작은 수레에 실렸던 흔적이었다.
안쪽에는 여섯 이름과 나이, 마지막으로 살던 마을이 적혔다. 그 아래 칸 셋은 비어 있었다. 우진은 사신들의 언어로 적힌 이름을 즉시 자기 언어로 바꾸지 않았다. 이름을 번역하듯 소리만 옮기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는 명단을 방 밖으로 내보내지 말고 당사자가 확인하게 하자고 했다.
임백헌은 군량을 계산하려면 인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원은 여섯입니다. 그 수는 바로 적겠습니다. 이름은 각각 확인하고요.”
우진은 치료실로 가서 사람들에게 이름을 적은 명단이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중 여인 한 명이 자신은 이름을 지워 달라고 했다. 전쟁 중 남편의 마을로 옮겨 갔고, 본래 마을로 돌려보내면 받아 줄 사람이 없었다. 이름을 적으면 돌아갈 곳이 정해지는 줄 알았던 것이다.
“이 종이로 어디에 보내는지 결정합니까?”
우진이 렌에게 물었다. 렌은 사신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라고 했다. 우진은 그 말을 피하지 않았다. 여인이 옆에 앉은 채 직접 대답을 듣도록 사신 셋을 치료실로 불렀다. 좁은 방에 들어오니 세 사람도 궤짝과 예물 뒤에 숨을 수 없었다.
세르는 명단의 마을이 본국의 관할이라고 했으나 돌아오면 받아 주겠다는 약속은 아니라고 했다. 야몬은 강을 건너는 통행을 보증할 수 있지만 그 뒤의 정착은 별도라고 했다. 쿠란은 말을 빌려 준 것이며 어디까지 갈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우진은 세 답을 빠뜨리지 않고 옮겼다. 여인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이름은 종이에 있으나, 도착한 뒤를 책임지는 사람은 없었다. 임백헌은 그 설명을 듣고 사신들의 낱말 회피를 이해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데려오는 것 아니었나?”
이번에는 지휘관이 귀환이라는 말을 먼저 썼다. 세르는 숨을 들이마시고 답을 늦췄다. 야몬은 앞에서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쿠란은 눈을 감았다. 우진은 그들의 호흡을 보고 이유를 추측하지 않고 직접 물었다.
“세 나라의 합의문에서 이 단어는 무슨 의무를 뜻합니까?”
야몬이 종이를 요청했다. 그는 귀환어의 글자와 그 아래 조약 문구를 적었다. 본국의 백성이 돌아올 때는 거주와 보호를 보증한다는 표현이었다. 세 사신은 그 보증을 승인할 권한 없이 사람들을 데려왔다. 임백헌에게 귀환이라는 말을 하면 자신의 서명을 요구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 이분들은 떠날 수는 있고 도착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까?”
우진이 묻자 세르가 얼굴을 붉혔다. 그는 죽는 사람들을 길에서 놓아둘 수 없었다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데려온 쪽이 낫다고 말했지만, 치료실에 앉은 여인은 그 답에 고개를 돌렸다.
“저는 데려와 달라 했습니다. 돌려보내 달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우진은 그 말을 세 언어로 옮겼다. 다른 사신의 얼굴을 보느라 여인의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그녀의 말이 끝난 뒤 쿠란이 여섯 사람의 이름을 각자 다시 확인하자고 말했다. 빈 셋의 칸은 아직 다른 길에서 올 사람들의 자리라고 했다. 그 사람들에게도 어디로 갈지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임백헌은 오늘 밤의 치료와 식사를 허가했다. 대신 내일 이후의 체류는 관청에 보고해야 했다. 우진은 사신 셋이 그 보고에 어떤 사실을 확인해 줄 수 있는지 물었다. 야몬은 여섯 사람이 군사가 아니며 무기를 지니지 않았다고 서명할 수 있다고 했다. 세르는 마을이 공격받아 이동했다는 사실을 적겠다고 했다. 쿠란은 말과 수레를 제공한 경위를 남기겠다고 했다.
우진은 세 약속을 각각 적었다. 귀환어를 억지로 넣지 않았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일부터 남겨야 다음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명단은 당사자의 선택과 다르게 본국의 소속을 확정하지 않는다고 아래에 적었다. 여인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어 달라 했다.
그때 창밖에서 말 울음이 났다. 렌이 달려 나갔다. 헛간에 있던 늙은 말 하나가 서지 못했다. 해월은 배에 댄 짚을 바꾸고 다리를 문질렀다. 사신들은 치료실에서 서로의 서명을 기다렸지만 말을 살리는 손은 부족했다. 우진은 서명을 끝내는 순서와 말을 돌보는 순서를 나눠야 했다.
“지금 말에게 가겠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은 제 통역으로 합의됐다고 쓰지 마십시오.”
그는 임백헌에게 말하고 헛간으로 갔다. 말을 일으킬 때 함부로 머리를 잡아당기면 다리가 더 상할 수 있었다. 해월이 줄 위치를 지시했고 우진과 렌이 양쪽에서 몸을 받쳤다. 말은 한 번 버둥거리다가 겨우 섰다. 따뜻한 숨이 우진의 손등에 닿았다.
“이 말로 내일 다리를 넘겠다는 약속은 하지 마.”
해월이 말했다. 우진은 렌을 봤다. 마부는 고개를 숙였다. 사람이 길에 남지 않게 하려면 역참의 말이 더 필요했다. 그러나 군사 전달에 쓸 말을 빼면 역참의 보고가 늦어졌다. 협상은 종이에 끝나지 않았다.
우진은 사신들에게 새 사실을 전달했다. 오늘 쉬면 내일 떠날 수 있다는 예상은 틀렸다. 말 두 마리 중 하나는 며칠 더 쉬어야 했다. 쿠란은 자기 수행원의 말을 내놓겠다고 했지만 해월은 그 말도 발굽이 갈라졌다고 말했다. 동정으로 말의 몸을 고칠 수는 없었다.
임백헌은 역참의 군용 말 두 마리 중 한 마리만 쓰겠다고 했다. 나머지는 상급 관청에 보고를 보내야 했다. 우진은 사람이 아니라 빈 예물 궤짝을 먼저 옮기면 그 한 마리로 다리의 수송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피난민을 보내는 날짜는 확인 뒤 정하자고 했다.
렌은 빈 궤짝을 보냈다가 도착지가 받지 않으면 사람은 이 역참에 남는다고 말했다.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숨긴 채 수송한다고 약속하고 싶지 않았다. 임백헌이 궤짝 대신 짧은 문의서를 보내겠다고 정리했다. 받을 수 있는 사람 수와 임시 체류 장소를 먼저 묻는 서신이었다.
문서가 준비되는 동안 렌은 우진의 손등에 난 오래된 흉터를 봤다. 눈길에서 줄을 잡다 생긴 화상이었다. 그는 우진에게 가족이 있었는지 물었다. 우진은 아버지와 누이, 셋이 피난하던 때의 일을 짧게 말했다. 누이는 다른 수송대에 태웠고 자신은 아버지를 부축하다 길이 갈라졌다.
“누이 이름이 무엇이오?”
“강우서.”
렌이 눈을 들었다. 그 반응을 보고 우진의 가슴이 먼저 뛰었다. 그는 대답을 재촉하지 않으려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상대의 놀람이 같은 사람을 뜻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짐표를 꿰매는 여인인가?”
렌이 물었다. 우진은 누이가 바느질을 잘했다고 답했다. 렌은 자신의 고삐 주머니에서 천으로 만든 작은 표를 꺼냈다. 글자를 못 읽는 사람도 구분하도록 가장자리를 세 번 접어 꿰맨 표였다. 누이는 어릴 때 우진의 옷과 자기 옷을 구분할 때 그렇게 했다.
우진은 표를 빼앗지 않았다. 그 여인을 언제 어디서 만났는지 물었다. 렌은 북쪽 다른 수송대에서 봤다고 말했다. 그녀가 여섯 사람에게 짐을 나눠 주며 비슷한 표를 달았다. 이름을 읽지 못해도 자신의 물건을 찾을 수 있게 만든 것이었다.
“같은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겠소?”
우진이 물었다. 렌은 표를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우리 사람들을 길에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부터 받고 싶소.”
우진은 침상 위의 임시 합의문을 봤다. 아직 귀환어는 없었다. 렌의 손에 든 누이의 흔적이 갑자기 협상의 값이 됐다. 그는 지금 그 값을 치르면 누이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의 권한으로 할 수 없는 약속을 한다면 오늘 구한 사람들도 내일 위험해졌다.
“당신이 아는 사람과 내가 찾는 사람이 같은지부터 확인하겠소. 그 대신 누구를 어디로 보내는지는 당사자와 지휘관이 함께 정해야 하오.”
렌은 표를 돌려주지 않았다. 우진은 돌려달라고 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필요한 말은 아직 남아 있었다. 바깥의 눈이 문턱까지 쌓였고, 보고를 가져갈 말 한 마리의 안장에 새 백록표가 달렸다. 이번에는 출발 시각만 적혔다. 도착할 곳을 정하는 칸은 아직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