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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 없는 혼례의 기록관2화

신부 없는 혼례의 기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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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이름을 지운 자리

등불이 다시 켜졌을 때 다은은 가마 앞에 혼자 서 있었다.

손 안에 남아 있던 해솔의 손가락 감촉도 사라졌다. 가마꾼들은 숲 입구로 돌아가고 있었고, 신랑의 사모는 진흙 위에 버려져 있었다. 그는 모자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다은이 다가가자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어린애를 태웠어요?”

“빈 가마입니다.”

“제 카메라에는 아이가 나왔어요.”

“그러면 카메라한테 물어봐요.”

사내는 소매로 이마를 훔쳤다. 손등에서 흐른 물이 아니라 피였다. 절을 한 자리의 돌이 이마에 박혔는데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뒤에서 해솔이 다은의 팔꿈치를 붙들었다.

“그 사람도 안 봐요. 여기선 안 보면 되는 걸로 해요.”

소녀는 다른 쪽 손으로 다은의 카메라를 가렸다. 화면 속 가마는 닫혀 있었다. 미리보기를 확대하자 커튼 밑에 두 개의 작은 발이 보였다. 한쪽 발목이 붉은 실에 묶여 있었다. 해솔의 손목에 매인 실과 같은 색이었다.

다은은 촬영을 멈추고 장비 전원을 껐다. 아이가 정말 존재하는지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가마에 손을 넣으려 하자 연옥이 길을 막았다. 노인은 자기 몸으로 커튼을 눌렀다.

“이렇게 막으면 제가 어떻게 믿어요?”

“믿지 않아도 돼. 해 뜰 때까지 내 눈앞에 있어.”

“아이를 어딘가에 가둬 놓고 연출한 거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불러.”

그 대답이 더 무서웠다. 노인은 달아날 생각도 없고 설득할 생각도 없었다. 다은은 전화기를 꺼냈다. 화면에는 신호가 두 칸 떴는데 연결음이 들리지 않았다. 통화 버튼을 눌렀을 뿐인데 전화기 스피커에서 청동거울이 부딪히던 소리가 났다.

해솔이 전화를 끊었다.

“창고로 가요. 바깥에서는 자꾸 가마 쪽으로 연결돼요.”

다은은 아이를 놓고 가는 사람의 기분으로 걸었다. 가마를 든 사내 넷이 뒤를 따랐다. 어깨 위의 나무 막대가 이전보다 깊이 휘어 있었다. 빈 가마가 그렇게 무거울 리 없다는 말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창고에 들어서자 연옥은 바깥에서 문을 잠갔다. 해솔은 곧장 구석의 작은 창을 열었다. 창문 너머에 회관 마당이 보였다. 다은은 저 창으로 나갈 수 있을지 너비부터 재어 보았다.

“할머니가 선생님을 가두려는 건 아니에요.”

“해솔아. 문을 밖에서 잠그는 건 가두는 거야.”

소녀는 대답하지 못했다. 다은은 카메라와 전화기를 작업대 위에 올려놓았다. 기록하는 도구들이 모두 낯선 물건처럼 보였다. 사진을 믿으면 아이가 갇혀 있는 것이고, 눈을 믿으면 아무도 없는 것이었다. 둘 중 어느 쪽도 마음 편한 설명이 아니었다.

사진 두 장을 번갈아 열었다. 첫 사진에는 아이가 가마 앞에 있었다. 두 번째 사진에서는 커튼 사이로 얼굴 반만 내밀고 있었다. 얼굴 아래의 흰 옷이 조금씩 바랜 듯했다. 확대할 때마다 픽셀이 흐려졌다 선명해졌는데, 아이의 눈동자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다은은 대학 시절 편집실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잘못 찍은 사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붙이지 말 것. 장비가 오류를 낼 때에는 원본을 하나씩 지워 가며 문제를 분리할 것.

엄지손가락이 삭제 버튼 위에서 멈췄다.

해솔이 의자를 밀어 다가왔다. 다은은 손을 피하려다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 삭제 확인 창이 생겼다. 아니오를 누른다고 생각했는데, 손끝을 스친 물기가 오른쪽 버튼으로 흘렀다.

사진이 사라졌다.

해솔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다은은 곧바로 남은 사진을 확인했다. 아이는 그대로 있었다. 얼굴 반만 내밀던 두 번째 원본만 없어졌고 첫 번째 사진은 남아 있었다.

“복구할 수 있어. 메모리 카드 건드리지 않으면 돼.”

다은이 말하다가 멈췄다. 왼손의 은팔찌가 낯설었다. 방금까지 외할머니가 졸업식 날 채워 주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 자리에 햇빛 같은 빈칸이 생겼다. 물고기 세 마리를 왜 손목에 매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팔찌는 외할머니 것이었다. 그 사실은 기억났다. 그런데 누구의 손이 자기 손목을 잡았는지, 그때 무슨 말을 들었는지 떠올리려 하자 머릿속에서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다은은 전화기에서 졸업 사진을 찾았다. 화면 속 외할머니는 웃고 있었다. 다은도 웃었다. 보는 눈에 눈물이 맺혔는데, 사진 속 자신이 왜 우는지는 모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손을 대지 마세요.”

해솔이 카드 덮개를 잡은 다은의 손을 떼었다.

“없어지는 건 저 안의 사람만이 아니에요.”

소녀는 우비 안쪽에서 종이 조각을 꺼냈다. 손바닥만 한 흑백 사진이었다. 얼굴이 있어야 할 부분만 둥글게 잘려 있었다. 교복 소매와 이름표의 첫 글자는 남아 있었다.

최.

“작년엔 저였어요.”

해솔은 자신의 교복을 가마에 넣지도, 혼례에 참가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창고를 정리하다 사진을 보고 장난으로 생각해서 얼굴 부분을 잘랐다. 다음 날 가장 친한 친구가 해솔을 학교 앞에서 못 알아봤다.

“우리 반 애야, 라고 말하니까 반은 기억했어요. 번호도 기억했어요. 근데 제 이름은 처음 듣는대요.”

다은은 소녀의 떨리는 손을 보았다. 방송부 학생이 했던 첫 질문이 이제야 제자리로 돌아왔다. 카메라에 나온 사람을 없애는 방법을 묻던 것이 아니었다. 없애도 되는 사람인지, 자기 자신도 그런 사람인지 묻고 있었다.

“친구가 한 명뿐이었어?”

“제 이름을 제일 자주 불러 주던 사람이 그 애였어요.”

다은은 사진 조각을 받아 들었다. 잘린 모서리에는 붉은 실 한 올이 붙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밀어 보니 사진 표면 아래에서 자라고 있었다. 다은은 떼지 않고 소녀에게 돌려주었다.

“이번엔 다른 방식으로 해 보자.”

그 말을 했을 때에는 방법을 몰랐다. 그러나 사진을 지우지 않는 것부터 시작할 수는 있었다. 다은은 삭제된 원본의 빈 번호를 메모하는 대신 카메라의 버튼을 테이프로 덮었다. 손이 미끄러져도 지울 수 없게.

연옥은 창고 뒤쪽 문으로 들어왔다. 작은 가방에 혼례 수건과 낡은 빗을 담아 왔다. 노인은 다은의 손목을 한 번 보고, 외할머니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 팔찌, 네 할머니가 줬지.”

“우리 할머니를 아세요?”

“여기 살았으니까.”

다은은 노인의 앞을 막았다. 연옥이 옆으로 비키려 하자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바닥의 물이 두 사람 발 사이에서 갈라졌다.

“이름을 말해 주세요.”

“지금 부르면 들어.”

“누가 듣는데요?”

노인은 가마를 보았다. 커튼 밑에서 붉은 실이 조금씩 풀려 나왔다. 물 위를 기어오는 실 끝이 해솔의 운동화에 닿았다. 소녀는 뒷걸음질하다 작업대에 부딪혔다.

다은은 연옥이 들고 온 빗을 붙잡았다. 빗 사이에는 머리카락 한 가닥이 끼어 있었다. 노인은 물건을 빼앗긴 아이처럼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건 내 언니 거야.”

“언니는 어디 계세요?”

“없는 사람이지.”

“죽었다는 말과 없다는 말은 달라요.”

연옥은 빗을 놓았다. 처음으로 다은을 보고 대답했다.

“그 말을 해 줄 사람이 여기엔 없었어.”

노인은 작업대 밑 판자를 들어 올렸다. 물에 젖지 않도록 기름종이에 싸 둔 봉투가 나왔다. 혼례 사진 다섯 장. 첫 사진에서 연옥은 어린아이였고, 흰 저고리를 입은 젊은 여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두 번째 사진에서는 잡은 손만 남아 있었다.

다은은 사진을 겹쳐 보았다. 젊은 여자의 빈자리가 연옥 쪽으로 조금씩 옮겨 갔다. 세 번째 사진에는 연옥의 손 위에 낯선 팔찌가 놓여 있었다. 물고기 세 마리가 꼬리를 물었다.

“저 여자가 우리 할머니예요?”

“여기서 도망간 사람.”

연옥은 봉투를 여미려 했지만 다은이 마지막 한 장을 붙들었다. 아무도 서 있지 않은 혼례 사진이었다. 바닥에는 열리지 않은 가마 문과 신부의 신발만 보였다. 사진 뒤에 글씨가 남아 있었다.

신부는 돌아가는 길을 안다.

글씨는 다은의 것이 아니었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획을 끌 때 끝을 안으로 접는 버릇. 외할머니가 이름을 적을 때 하던 습관이 떠올랐다. 팔찌를 받은 장면은 잃었지만 종이 위에 남은 손의 움직임은 알 수 있었다.

다은은 전화를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연결음이 들렸다. 어머니가 받자마자 화를 내려고 했지만 다은은 말을 자르고 외할머니를 바꿔 달라고 했다.

전화 너머에서 침대가 삐걱했다.

“할머니, 청송리에 있어. 할머니가 살던 집이 어디였어?”

한참 대답이 없었다. 다은은 통화가 끊겼는지 확인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 뒤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연옥이는 아직 물 위에 있니?”

노인이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이름을 들은 순간 얼굴이 구겨졌다. 입술이 움직였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다은의 외할머니는 느리게, 분명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또 딸을 데려갔니.”

해솔이 자신의 우비 자락을 움켜쥐었다. 연옥은 고개를 저었으나 전화기 너머에서는 볼 수 없는 몸짓이었다. 다은은 수화기를 자기 입 가까이 가져왔다.

“나는 딸이 없어. 사진에만 아이가 나와.”

“없으니 빼앗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우리도 그랬어.”

외할머니의 숨이 가빠졌다. 다은이 부르자 목소리가 멀어졌다. 마지막 말만 전화기 밖으로 쏟아지듯 들렸다.

“그 아이 신발을 신지 마라.”

통화가 끊겼다.

작업대 위의 사진에서 가마 문이 조금 벌어져 있었다. 아까는 닫혀 있던 문이었다. 다은은 전화기를 놓고 청동거울을 찾았다. 연옥이 말리기 전에 가마의 커튼을 걷었다.

거울에는 자기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안쪽에서 방석과 신발 두 짝이 보였다. 신발은 결혼식용 꽃신이 아니었다. 다은이 오늘 신고 온 검은 운동화였다.

다은은 발을 내려다봤다.

흙 위에 맨발이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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