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없는 혼례의 기록관

1화: 가마 안의 빈자리
막차 기사에게 청송리 혼례를 보러 간다고 말했을 때, 김다은은 대답 대신 거울을 받았다.
기사는 운전석 옆에 매달린 작은 손거울을 떼어 건넸다. 플라스틱 테두리가 갈라져 노란 테이프로 감긴 거울이었다.
“마을에서 주는 건 받지 말아요.”
“거울을요?”
“뭘 받든, 자기 얼굴부터 비춰 봐요.”
버스가 떠난 뒤 다은은 손거울을 카메라 가방 바깥 주머니에 꽂았다. 산골 마을의 오래된 의식을 촬영하다 보면 별별 당부를 다 들었다. 한때는 금기라고 메모한 것들을 나중에 안전 수칙으로 고쳐 적기도 했다. 제사 뒤에 뒤돌아보지 말라는 말은 좁고 어두운 계단에서 발을 헛디디지 말라는 뜻인 경우도 있었다.
청송리 정류장에서는 축축한 종이 냄새가 났다. 비는 그친 지 사흘이라고 들었는데 도랑의 물이 돌계단을 넘고 있었다. 처마마다 붉은 천이 걸렸고, 마을 회관 벽에는 혼례 촬영을 허락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허락한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김다은 선생님?”
녹색 우비를 입은 소녀가 회관 옆에서 나왔다. 비닐 소매를 실로 꿰맨 흔적이 손목까지 내려왔다.
“저 해솔이에요. 전화 드렸던 사람.”
“방송부 학생 맞지? 할머니는 어디 계셔?”
“창고요. 선생님은 제가 부른 거예요. 할머니가 부른 줄 아시면 안 돼요.”
소녀는 다은의 카메라 가방부터 보았다.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의 눈이었다. 다은은 촬영이 안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자료원 담당자의 문자를 다시 확인했다. 주민 협의 완료. 빈 혼례 영상 삼십 분. 구술 인터뷰 두 명. 하루 출장으로 끊겨 있는 일정이었다.
“협의가 됐다고 들었는데.”
“사진은 찍으셔도 돼요. 질문은 제가 먼저 할게요.”
해솔이 반 걸음 앞으로 섰다.
“카메라에 나온 사람을 없애는 방법도 아세요?”
다은은 장비 가방의 끈을 고쳐 잡았다. 합성 사진을 부탁하려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소녀는 웃지도, 말을 돌리지도 않았다.
“왜 없애야 하는데?”
“없애면 안 되는지 알고 싶어서요.”
소녀는 그 말을 남기고 창고 쪽으로 걸었다. 우비 아래의 운동화 끈이 진흙을 끌었다. 다은이 따라가려 하자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엄마라고 떠 있었다.
“오늘 외할머니 모시고 병원 가는 거 잊지 않았지?”
“출장이라고 말씀드렸잖아. 오후엔 삼촌이 간대.”
“네가 직접 전화 좀 해. 할머니가 또 옛날 이름 찾으셔.”
다은은 대답을 늦췄다. 외할머니는 요즘 이름이 둘이라고 말했다. 한 이름은 가족이 부르는 이름이고, 다른 이름은 물속에 두고 온 이름이라고 했다. 다은은 그 말을 구술 기록으로 남기자고 했다가 어머니에게 화를 들은 적이 있었다. 가족의 병까지 자료로 만들 거냐고.
“돌아가서 할게.”
전화를 끊고 나자 해솔이 골목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소녀는 다은의 왼손에 매인 은팔찌를 보더니 시선을 내렸다. 세 개의 작은 물고기가 꼬리를 물고 있는 팔찌였다. 외할머니가 대학 졸업식 날 손목에 채워 준 물건이었다.
혼례 창고는 회관보다 낮은 곳에 있었다. 문턱 안쪽에 물이 괴어 있어 다은은 장비를 들고 뛰어넘었다. 벽에는 꽃이 바랜 족두리가 줄지어 걸렸고, 가운데에는 붉은 가마 한 대가 놓였다. 천으로 덮인 가마의 양쪽 발은 물에 잠겨 있었다.
“박연옥 어르신이세요?”
노인은 가마의 커튼을 꿰매고 있었다. 바늘이 천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안쪽에서 같은 박자로 무언가 긁혔다. 다은은 나무에 바늘이 닿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빈 혼례를 기록하러 왔습니다. 해솔이가 연락해 줘서요.”
연옥은 바늘을 멈추지 않았다.
“빈 것을 왜 남겨?”
“어떻게 비워 두는지도 기록이 되니까요.”
“사진에 뭐가 보이더라도, 비었다고 적어.”
해솔이 노인의 손목을 붙들었다. 바늘 끝에 붉은 실이 매달렸다.
“할머니, 그 말을 선생님한테까지 하면 안 되잖아.”
“너는 오늘 집에 있어.”
노인은 소녀를 보지 않고 말했다. 해솔이 손을 놓자 커튼 안쪽의 긁는 소리도 멎었다. 창고는 갑자기 텅 빈 상자처럼 조용해졌다.
다은은 카메라를 꺼내 촬영 전원을 켰다. 화면에는 노인과 가마, 처마 밑에서 들어오는 흐린 빛이 잡혔다. 소녀는 문턱에 앉아 신발에 묻은 진흙을 털었다.
“가마 안부터 찍어도 될까요?”
“거울은 건드리지 말고.”
커튼을 걷자 빈 좌석이 드러났다. 붉은 방석 가운데에 누군가 앉았다 일어난 듯 둥근 자국이 있었다. 등받이 위에는 손바닥만 한 청동거울이 매달려 있었다. 표면이 흐려 다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은은 초점을 맞췄다. 카메라의 얼굴 인식 사각형이 방석 위에 생겼다.
한 개. 곧 두 개.
그녀는 자동 기능을 끄고 수동으로 전환했다. 어두운 곳에서 천의 무늬를 얼굴로 잘못 인식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방석 가까이 렌즈를 옮겼을 때 화면 끝에 작은 손이 보였다.
손목에 물고기 세 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다은은 카메라를 내렸다. 방석은 비어 있었다. 청동거울도, 눌린 자국도 아까와 같았다.
“해솔아, 방금 안쪽에 손 넣었어?”
소녀는 문턱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다은이 화면을 돌려 보여 주려 하자 연옥이 커튼을 닫았다.
“밖에서 찍어. 안에 오래 들여다보면 자리가 생겨.”
다은은 따져 묻지 못했다. 노인의 손등에 박힌 바늘 자국이 너무 많았다. 오래된 상처 가운데 몇 개에서는 아직 피가 맺혔다. 같은 자리를 찌르고 또 찌른 흔적이었다.
“손부터 닦으세요. 지혈할 거 있어요.”
“그것보다 네 손목을 가려.”
다은은 팔찌 위로 소매를 끌어 내렸다. 연옥은 그제야 가마의 방석을 뒤집었다. 밑면에도 같은 자국이 있었다. 안쪽에서 눌린 자리였다.
일몰 직전 회관 앞에는 사내 다섯 명이 모였다. 신랑 역할을 맡은 남자는 쉰 살쯤으로 보였고, 머리에 쓰인 사모가 작아 끈을 턱 밑까지 당기고 있었다. 나머지 넷은 가마를 어깨에 멨다. 혼례라고 하기엔 음악도 웃음도 없었다. 소나무 숲으로 가는 길에만 등불이 차례대로 켜졌다.
다은은 행렬 바깥에서 렌즈를 바꿨다. 해솔이 장비 가방을 대신 들겠다고 했지만 다은은 거절했다. 연옥은 소녀가 따라온 것을 보고도 더는 돌아가라 하지 않았다. 대신 붉은 실 한 가닥을 해솔의 손목에 묶었다.
“길을 벗어나지 마.”
해솔은 실을 잠깐 만졌다가 다은에게 왼손을 내밀었다.
“선생님도 잡아 주세요.”
소녀의 손은 차가웠다. 다은은 카메라를 한 손으로 들고 다른 손으로 해솔의 손가락을 잡았다. 가마가 움직일 때마다 안쪽의 청동거울이 나무에 부딪혔다. 작은 종을 한 번씩 울리는 듯한 소리였다.
숲에 들어서자 땅의 색이 바뀌었다. 마을에서 보던 붉은 흙 대신 검은 진흙이 깔렸다. 해솔은 그곳이 옛 물길이라고 속삭였다. 해마다 한 사람은 여기서 발을 헛디뎌 신발을 두고 간다고 했다.
“그래서 여분을 가져왔어?”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가방 바깥에 묶인 운동화 한 켤레가 흔들렸다. 둘 다 왼발 신발이었다.
다은은 그제야 이상함이 장난이나 관광객을 위한 연출의 수준을 넘었다고 느꼈다. 그녀는 보조 조명을 켰다. 빛이 가마 안에 닿자 커튼 아래로 젖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조명을 내렸을 때에는 천 가장자리만 보였다.
“돌아갈게요.”
다은이 연옥에게 말했다. 노인은 가마 곁에 붙어 걸었다.
“여기서 돌아가면, 사진을 가져가는 거야.”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세요.”
“밖으로 가져가면 그쪽에서 혼례를 해.”
다은은 해솔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소녀도 잡는 힘을 늦추지 않았다. 앞에 서 있던 신랑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사람들의 등불이 한꺼번에 기울었다.
신랑이 가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턱 아래로 당긴 끈이 살을 파고들었는데도 풀지 않았다. 그가 절을 하자 흙 위에 이마 모양의 물자국이 남았다.
“맞이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은이 물었다. 사내는 눈을 들지 않았다. 가마꾼 한 명이 고개를 돌렸고, 해솔은 다은의 손가락을 자기 손바닥 안으로 감췄다.
“여기서는 이름 안 물어요.”
“이름 없이 사람을 어떻게 맞이해?”
소녀가 처음으로 다은을 똑바로 보았다. 겁에 질린 얼굴 위로 잠깐 다른 표정이 지나갔다. 누구도 자신을 대신해 물어 주지 않았던 질문을 이제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다은은 마이크를 꺼 두려던 손을 멈췄다. 빈 혼례라고 쓰기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니었다. 누가 그 말을 먼저 정했는지도 남겨야 했다.
가마 커튼이 안에서 밀렸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다은의 눈에는 빈 방석만 보였다. 그런데 카메라 화면에는 소녀 한 명이 내려서 있었다. 해솔보다 어린, 아홉 살쯤 되는 아이였다. 흰 소복 아래에 젖은 발이 드러났다.
다은은 렌즈 너머로 아이의 얼굴을 봤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길을 잃고 너무 오래 기다린 사람처럼 서 있었다. 왼쪽 눈 아래에 다은과 같은 작은 점이 있었다.
해솔의 손이 떨렸다.
“선생님, 저는 이번엔 안 지울 거예요.”
다은은 소녀의 말을 이해하기 전에 셔터를 눌렀다. 손가락이 제멋대로 움직였는지, 카메라가 먼저 반응했는지 알 수 없었다. 플래시가 터지자 등불이 모두 꺼졌다.
어둠 속에서 젖은 발이 다가왔다.
다은은 카메라를 얼굴에서 떼지 못했다. 화면 속 아이가 그녀를 올려다봤다. 작은 손이 올라와 물고기 팔찌를 두 번 두드렸다. 외할머니가 말 대신 다은을 부를 때 하던 버릇이었다.
아이의 입술이 움직였다.
엄마.
다은은 숨을 멈췄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자기에게 붙여 본 적 없는 말이었다. 뒤에서 해솔이 어깨를 붙잡았지만 눈앞의 작은 얼굴은 지워지지 않았다.
카메라가 다시 한 번 셔터 소리를 냈다.
사진 미리보기 아래, 촬영 정보가 있어야 할 곳에 글씨 한 줄이 생겼다. 다은이 낡은 서류 봉투에 이름을 적을 때 쓰는 필체였다.
내 딸. 올해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