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없는 혼례의 기록관

3화: 돌아가는 길
다은이 거울에서 손을 떼자 가마 안의 운동화가 가지런히 돌아섰다.
발이 들어갈 입구가 그녀 쪽으로 벌어졌다. 방석 위에는 작은 꽃신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자기 신발을 가져간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자리를 바꾸려 하고 있었다.
해솔이 다은의 어깨를 잡아 뒤로 당겼다. 발바닥에 차가운 물이 닿았다. 아까까지 문턱에만 괴어 있던 물이 창고 안쪽에서 솟았다. 노인이 쌓아 둔 수건들이 떠올랐고, 물 위에서 족두리의 붉은 끈이 풀렸다.
“저 신발을 신으면 어떻게 돼요?”
다은이 물었다. 연옥은 가마 문을 닫으려 했으나 물에 불은 나무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자리로 가.”
“어떤 자리요?”
“네가 찍은 아이 자리.”
다은은 거울을 다시 봤다. 작은 꽃신은 물에 젖어 있었고, 안쪽 바닥에는 맨발 모양의 검은 자국이 남았다. 아이가 거기서 기다린 시간을 신발이 대신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연옥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아이 대신 내가 가면 끝나는 게 아니죠.”
노인의 입술이 움직였다. 대답이 나오기 전에 해솔이 먼저 고개를 저었다.
“작년엔 저였고 올해는 그 애잖아요. 끝난 적 없어요.”
연옥은 손녀를 보았다. 해솔의 손목에 묶은 실이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실의 다른 끝은 가마 안쪽으로 이어졌다. 보호하려고 묶었다던 것이 소녀를 그 자리에 붙들고 있었다.
“그거 풀어 주세요.”
다은이 말했다. 노인은 실의 매듭을 만졌다. 너무 오래 손에 익은 매듭인지 풀려 하지 않았다. 해솔이 자기 손목을 내밀었다. 다은은 가방에서 작은 가위를 꺼냈다.
“자르는 건 위험해.”
“그럼 풀어요. 할머니가 묶었잖아요.”
해솔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다은은 가위를 내려놓았다. 대신 매듭 밑에 손톱을 넣어 연옥이 실 끝을 뽑을 공간을 만들었다. 노인의 손이 떨렸지만 놓지는 않았다. 마지막 고리가 풀리자 실이 물 위에서 뱀처럼 꿈틀거리다 가마 밑으로 사라졌다.
해솔은 손목을 자기 입 가까이 가져가 숨을 불었다. 빨갛게 패인 자국이 남았다.
“저 여기 나가고 싶어요.”
“알아.”
“알면서 왜 묶었어요?”
연옥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천장에 매달린 등불이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가마의 청동거울에서 작은 발이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두 번. 다은은 팔찌를 두드려 답하려다 손을 멈췄다.
지금 답하는 것이 어떤 약속인지 몰랐다.
그녀는 카메라를 켜고 거울만 화면 가운데 두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렌즈를 뒤로 물려 가마의 붉은 문틀까지 담자 흰 소매가 나타났다. 다은은 반 걸음 더 움직여 방석과 거울, 커튼 밑의 꽃신을 같은 화면에 넣었다.
아이가 보였다.
소녀는 방석에 앉아 꽃신 끈을 푸르고 있었다. 끈은 풀릴 때마다 새 매듭이 생겼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졌는지 아이는 잠깐 손을 무릎에 놓았다. 다은이 카메라 마이크를 켜자 화면 속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내 말 들리니?”
아이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카메라 스피커에서 작게 나왔다.
“엄마가 오면 내가 나갈 수 있대.”
다은은 가마 문에 손을 대었다. 안쪽에서 아이도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눈앞의 나무는 식어 있었지만 카메라 화면에는 작은 손의 열기가 흐릿한 김으로 번졌다.
“누가 그렇게 말했어?”
소녀가 고개를 돌렸다. 가마의 빈 구석에 검은 옷자락이 잠깐 보였다. 다은은 렌즈를 따라 돌리지 않았다. 아이를 놓치면 다시 찾지 못할 것 같았다.
“내가 네 자리에 앉는다고 네가 집으로 가는 건 아니야. 그다음엔 누가 또 기다려야 해.”
아이의 눈썹이 구겨졌다.
“그럼 엄마도 못 나가?”
다은은 그 말에 목이 막혔다. 자기 대신 들어오라는 요구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이는 밖에 있는 엄마도 갇혀 있다고 믿고 있었다. 어른들이 만든 말을 작은 사람이 그대로 떠안고 기다린 것이었다.
“다른 길을 찾을 거야.”
다은은 가방에서 버스 기사가 준 손거울을 꺼냈다. 플라스틱 틀이 깨진 평범한 거울이었다. 자기 얼굴은 제대로 비쳤다. 청동거울을 들여다볼 때 사라졌던 눈과 입이 여기에 있었다.
그녀는 작은 거울을 가마 문 바깥에 놓았다. 카메라 화면 속 아이가 손을 뻗었다. 거울에서는 아이의 손이 나오지 않았다. 반사되는 것은 물에 젖은 다은의 맨발뿐이었다.
“거기서는 여기가 안 보이지?”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가 있는 쪽에 다른 출구가 있을까? 신발 쪽 말고.”
아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방석 옆 커튼을 걷자 창고 밖의 소나무가 나타났다. 이쪽에서 보면 나무가 없는 벽이었다. 다은은 해솔을 불렀다.
“사진 뒤에 돌아가는 길이라고 적혀 있었지. 그 길이 어디야?”
소녀는 문턱으로 뛰어가 작은 창을 더 크게 열었다. 물이 밖으로 빠지지 않았다. 창밖의 마당은 젖지 않았는데, 안쪽에서만 수위가 높아졌다. 해솔은 창틀의 흙을 긁어 아래에 새긴 방향표시를 드러냈다.
“옛 물길은 창고 뒤예요. 지금은 석축으로 막았어요.”
연옥이 그 방향을 보더니 빗을 움켜쥐었다.
“연심 언니는 그리로 갔어.”
가마 안에서 커튼을 찢는 소리가 났다. 다은은 아이의 이름을 부를 뻔했지만 아는 이름이 없었다. 대신 카메라를 가슴 가까이 내리고 화면 속 아이에게 기다리라는 손짓을 했다.
“그 이름을 다시 말해 주세요.”
연옥은 고개를 저었다. 노인의 목소리가 젖은 천처럼 늘어졌다.
“그때 내가 문을 잠갔어. 언니가 나가면 혼례가 우리 집에 따라온다고 해서. 언니가 내 이름을 부르는데도.”
해솔이 연옥의 손에서 빗을 빼앗지 않고 함께 잡았다. 두 사람의 손끝이 좁은 빗 위에서 맞닿았다.
“이번엔 열어 줘요.”
노인은 숨을 여러 번 들이마셨다. 다은은 카메라를 노인 얼굴로 돌리려다 멈췄다. 이 장면을 먼저 기록하면 연옥은 다시 누군가에게 보여 줄 말을 골라야 할 것 같았다. 그녀는 렌즈를 가마 쪽에 둔 채 노인의 목소리만 기다렸다.
“연심아.”
빗이 반으로 갈라졌다. 오래된 나무 안쪽에서 마른 물 냄새가 났다. 연옥은 조각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내가 잠갔어. 네가 죽은 줄 알아서가 아니라, 네가 살아서 나가면 내가 남을까 봐.”
가마 밑에서 떠오른 물이 갑자기 뒤로 흘렀다. 창고 벽의 물자국이 바닥까지 내려왔고, 청동거울 표면에 어른 여자의 손이 나타났다. 손은 연옥의 빗과 비슷한 물건을 쥐고 있었다.
해솔이 뒤쪽 판자를 밀었다. 반쯤 썩은 나무가 무너지며 돌계단이 나왔다. 계단은 두 칸 뒤에서 흙으로 막혀 있었다. 소녀는 우비를 벗어 던지고 손으로 젖은 흙을 파냈다. 연옥도 옆에 무릎을 꿇었다.
다은은 카메라 가방의 끈을 짧게 묶어 목에 걸었다. 화면에서 아이가 보이는 각도를 유지하며 발로 가마의 앞 막대를 들어 올렸다. 한 손으로 막대를 받쳐야 했다. 무거운 나무가 어깨에 닿자 피부가 찢어지는 듯 아팠다.
그녀는 해솔이 파낸 계단 쪽으로 가마를 조금씩 돌렸다.
거울 안의 나무도 같이 움직였다. 아이는 자신 쪽에 생기는 틈을 보고 일어났다. 꽃신을 벗어 방석 위에 놓았다. 한쪽 끈이 발목에 붙어 떨어지지 않자 다은이 화면 밖에서 손가락으로 매듭 푸는 모양을 보여 주었다.
“당기지 말고. 아까 해솔이 손목처럼, 고리부터.”
소녀가 손을 멈추고 다시 시작했다. 끈 하나가 풀렸다. 다른 끈은 검은 옷자락 안으로 이어져 있었다. 다은은 이를 악물고 가마를 더 돌렸다. 어깨 아래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났다. 나무 막대가 금이 갔는지 자기 몸에서 난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해솔이 돌아와 반대쪽을 받쳤다. 연옥은 맨손으로 흙을 걷어 내고 있었다. 노인의 손톱 사이로 피가 번졌지만 이름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연심아, 이번엔 네가 먼저 가.”
두 번째 끈이 끊어졌다. 아이가 창문 턱에 올라섰다. 다은은 가마를 받친 손을 놓을 수 없어 허공을 향해 팔찌만 내밀었다. 소녀가 화면 안에서 물고기 세 마리를 만졌다.
두 번.
“나 기다리지 마.”
아이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나왔다.
“엄마도 밖으로 가.”
다은은 대답하려다 숨만 크게 삼켰다. 아이가 보이지 않는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흰 소매가 마지막으로 흔들렸고, 검은 옷자락은 닫힌 가마 안에 남았다. 거울이 쩍 갈라졌다.
창고의 물이 한꺼번에 빠졌다. 세 사람은 가마 막대를 놓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은의 운동화가 물과 함께 계단 쪽으로 떠내려왔다. 한 짝은 끈이 풀려 있었고 다른 짝의 밑창에는 작은 손바닥 자국이 찍혀 있었다.
멀리서 닭이 울었다.
연옥은 빗 조각을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다. 해솔은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보았다. 회관 마당에 사람들이 모였는데 창고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다은은 바로 카메라를 들이밀지 않았다. 소녀의 젖은 우비를 찾아 노인의 어깨에 덮었다.
해솔은 휴대전화를 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를 듣자 눈물이 다시 났다. 친구는 해솔을 못 알아봤지만, 다은은 기다리겠다는 소녀의 손짓을 보았다. 한 사람을 밖으로 보내는 일이 남은 상처까지 다 지우지는 않았다.
“나 네 옆자리였어. 오늘은 내 이름부터 말할게.”
소녀는 전화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다은은 남은 첫 사진을 열었다. 아이가 서 있던 자리에 작은 손거울만 놓여 있었다. 물고기 팔찌는 자기 손목에 그대로였다. 미래의 아이를 구한 것인지, 아이가 태어나지 않을 미래를 만든 것인지 지금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누구의 자리도 대신 앉지 않겠다는 아이의 선택은 보았다.
사진을 뒤집는 메뉴를 열자 뒷면이 화면에 나타났다. 원래 카메라에 없던 기능이었다. 다은은 이제 놀라지 않고 글씨를 읽었다.
정순은 물길을 건너지 않았다.
정순. 가족이 부르는 외할머니의 이름이었다. 그 아래에 아직 번지지 않은 이름 하나가 더 떠올랐다.
박연화.
연옥이 다은의 팔을 붙들었다. 노인의 시선은 이름 아래의 작은 도장에 머물렀다. 다은의 출장 서류에서 봤던 문화자료원 마크와 똑같은 모양이었다.
“그 도장은 어디서 받았니.”
다은은 대답하지 못했다.
사진 촬영 날짜는 자료원이 문을 열기 삼십 년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