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장의 완벽한 알리바이

2화: 큐시트의 빈 8분
도윤은 세린의 큐시트를 경찰서로 가져갔다.
세린은 사본을 제출하고 원본은 행사장에 보관했다고 말했다. 도윤은 원본을 보고 싶어 했지만, 예식장 관리팀은 경찰 압수 영장이 없다는 이유로 건네지 않았다. 세린은 진행표를 직접 만들었다. 신랑 대기실에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설정한 사람도 자신이었다.
“왜 문 앞에 8분을 비워 놨습니까?”
“신랑 요청이었어요. 13시 42분부터 50분까지 대기실 출입을 막아 달라고 했어요.”
“이유는요?”
“혼자 있고 싶다고 했습니다.”
도윤은 그것이 살인 시간을 가리기 위한 틈일 수 있다고 했다. 세린은 신랑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시간을 비워 준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는 당시 무전 기록을 확인했다. 13시 41분, 꽃 장식 담당자가 대기실 앞을 지나갔고, 13시 46분에는 엘리베이터가 작동했다. 승강기 기록에는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가은은 사진 원본을 다시 살폈다.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얼굴이 빠진 하객의 자리가 달라졌다. 첫 장에서는 왼쪽 끝, 다음 장에서는 신부 뒤편, 세 번째에서는 신랑의 바로 옆이었다. 사진의 나머지 인물과 배경은 같은 위치에 있었다.
“촬영 중에 사람이 이동한 거예요?” 세린이 물었다.
“그랬다면 옷이나 그림자도 달라져야 해요.”
가은은 카메라 시계가 예식장 벽시계보다 6분 빨랐던 것을 발견했다. 사진 촬영 시각이 13시 43분이라고 기록돼도 실제로는 13시 37분일 수 있었다. 그러면 신랑이 살아 있었을 때 사진일 가능성도 생겼다. 그러나 현장 기록의 시계는 서버 시간과 일치했고, 사진 파일의 시계 설정은 전날 밤부터 맞춰 둔 상태였다.
도윤은 사진을 재촬영해 다른 화면에서 확인했다. 그는 빈 얼굴을 보았지만, 그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세린은 좌석표의 박정수 이름을 소리 내 읽지 않으려 했다. 이름을 읽은 사람만 그 사람을 잊는지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세린은 예식장으로 돌아가 대기실의 출입 센서를 확인했다. 경찰 허가를 받고 현장에 들어갔다. 문 손잡이에는 지문이 여러 개 겹쳐 있었지만, 문은 안에서 잠긴 상태였다. 잠금 장치는 전자식이 아니라 오래된 돌림쇠였다. 열쇠 구멍 안쪽에 꽃가루가 들어 있었다.
“꽃가루는 장식팀이 옮겼을 수 있어요.” 도윤이 말했다.
“그런데 대기실 안에는 꽃이 없었습니다.”
세린은 큐시트에 없는 동선을 기억했다. 13시 47분, 신부의 부케가 대기실에서 식장으로 옮겨졌다. 그 과정에서 꽃가루가 문틈에 떨어졌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부케는 정해진 시간에 신부 대기실에서 나왔다. 세린은 스태프에게 이동 경로를 물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복도를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가은은 촬영 중 찍힌 짧은 영상을 열었다. 화면에는 하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이고 있었다. 신랑은 프레임 밖에 있었지만, 음성에는 그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그는 누군가에게 “그 사람을 오늘 지우면 안 돼”라고 말했다.
“그 사람 누구죠?” 도윤이 물었다.
가은은 이어폰을 빼며 고개를 저었다. “영상에는 대답이 없어요.”
세린은 목소리가 들린 순간을 큐시트와 맞췄다. 13시 39분, 대기실 문을 잠그기 전이었다. 신랑은 이미 누군가를 지키려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하객들에게 다시 연락했다. 단체 사진에서 얼굴이 사라진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각자 다른 사람의 자리에 의자를 하나 더 놓았다고 했다. 17번 테이블에는 접시가 하나 더 있었고, 식장에는 그 사람의 축의금 봉투가 남아 있었다.
세린은 축의금 봉투를 만지지 않고 이름을 확인했다. 봉투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안에 든 돈은 정확히 10만 원이었다. 봉투 안쪽에는 신랑의 글씨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혜원에게 진실을 말할 때까지 기다려.’
가은의 조수 최진호는 연락이 끊기기 전 짧은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사진을 세 번 찍으면 안 돼요.” 뒤에는 식장 안내방송과 접시가 깨지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세린은 그 메시지를 반복 재생하려 했지만, 도윤은 원본 파일을 먼저 복사해 저장하라고 했다. 가은은 메시지가 지워질까 봐 무서워 손가락을 떨었다.
“이 사람이 행사 중에 직접 보낸 건가요?” 도윤이 물었다.
“예식 전에요. 어제 저녁에 도착했어요.”
“왜 지금 말합니까?”
가은은 진호가 사진 촬영을 그만두고 싶어 했다고 했다. 신랑은 그를 붙잡았고, 둘은 촬영 장비 창고에서 말다툼했다. 가은은 형제간의 사적인 문제라 생각해 모른 척했다. 그 뒤 진호는 평소처럼 카메라를 들고 식장으로 나왔다.
세린은 큐시트에서 세 번째 단체 사진을 찾았다. 실제로 공식 촬영은 두 번뿐이었다. 그러나 준비 단계에서 리허설 사진을 한 번 더 찍었다. 하객들은 세 장을 모두 기억하지 못했다. 사진을 보면 한 명씩 지워진다는 현상이 촬영 횟수와 관련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가은은 카메라를 세워 검은 배경의 테스트 사진을 찍었다. 프레임 안에는 세린, 도윤, 혜원, 가은 네 사람이 섰다. 사진에는 네 명이 모두 나왔다. 가은은 첫 번째 사진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같은 구도에서 두 번째 사진을 찍었다. 이번에는 도윤의 왼쪽 어깨가 흐려졌다. 그는 즉시 촬영을 중단하라고 했다.
“내가 사라지고 있는 건가요?”
“아직 모릅니다. 사진만 흐려진 건지, 기억도 바뀌는지 확인해야 해요.”
세린은 사진을 보지 않은 채 화면을 끄고, 도윤에게 자신의 이름과 직업을 묻지 않았다. 대신 방금 나눈 대화를 다시 말해 보라고 했다. 도윤은 정확히 기억했다. 그러나 세린이 사진을 보여 주자 그의 시선이 흔들렸다. 그는 세린이 누구인지 물었고, 가은은 그의 기억이 끊기는 순간을 녹음했다.
사진은 진실을 비추는 증거가 아니라, 보는 이의 기억을 흔드는 물건일 수 있었다. 세린은 촬영을 멈추고 첫 파일을 봉인했다. 나머지 파일은 가은의 조수 카메라에만 남아 있었다. 그 장비를 찾지 못하면 비교 자료를 잃게 된다.
도윤은 13시 42분부터 50분까지 식장 복도에 있던 직원들의 출입 카드를 확인했다. 출입 기록에는 신랑 대기실 문이 열리지 않았지만, 꽃 장식팀의 카트는 그 앞을 두 번 지나갔다. 카트에는 천과 리본, 접이식 받침대가 실려 있었다. 대기실 문을 열지 않고도 물건을 안으로 넣을 수 있었는지 확인해야 했다.
세린은 카트의 폭과 문 아래 간격을 재었다. 받침대는 문틈 아래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리본은 문 아래로 충분히 밀어 넣을 수 있었다. 그녀는 신랑의 옷에 난 상처 위치를 떠올렸다. 상처는 좁고 깊었다. 긴 장식 핀이 무기로 쓰였을 수 있었다.
가은은 부케를 들고 있었던 꽃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담당자는 자신은 신부 대기실 앞에 간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원본 영상의 유리 반사에는 그 사람이 보였다. 그는 통화 중 말을 바꿨다. 부케를 옮긴 건 맞지만, 문을 열지는 않았다고 했다.
“누가 열쇠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도윤이 물었다.
“신랑, 세린 씨, 저, 그리고 예식장 보안 직원입니다.”
세린은 자신의 열쇠를 경찰에 제출했다. 보안 직원의 키 기록을 확인하자, 예식 중 4분 동안 마스터 키가 사라졌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 직원은 자신이 화장실에 간 사이 열쇠고리가 카운터에 있었다고 했다.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도윤은 그 시간에 촬영된 복도 CCTV를 확인했다. 영상에는 아무도 대기실 문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그러나 13시 47분에 영상이 11초 동안 끊겼다. 정전은 없었고, 카메라가 수동으로 가려진 흔적도 없었다. 화면이 돌아온 뒤에는 마스터 키가 다시 카운터에 놓여 있었다.
혜원은 그 공백을 보고 남편이 누군가를 안으로 들였을 거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진호일 수 있었다. 세린은 신랑이 남긴 봉투의 문장을 다시 읽었다. ‘혜원에게 진실을 말할 때까지 기다려.’ 그 문장은 살인을 가리키는 말일 수도, 진호를 보호하려는 부탁일 수도 있었다.
가은은 조수의 카메라 가방에서 남은 배터리 하나를 발견했다. 배터리 칸에는 머리카락 한 올과 붉은 잉크가 묻어 있었다. 가은은 진호의 것이 맞다고 했다. 메모리 카드 안에 마지막 촬영본이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세린은 카메라 원본을 열지 않고 조수의 연락처를 찾았다. 진호가 남긴 음성 메시지에는 예식장의 종소리와 비슷한 세 번의 벨이 있었다. 가은은 그 소리가 신부 입장 음악의 시작 신호가 아니라고 했다. 예식장에서는 그날 단 한 번도 세 번의 벨을 쓰지 않았다.
“진호가 다른 장소에서 녹음한 걸 수도 있어요.”
도윤은 메시지의 배경음을 확대해 파형을 확인했다. 음성 뒤로 낮은 진동이 일정하게 반복됐다. 가은은 그 진동이 카메라 셔터의 충전 소리라고 했다. 그라면 진호는 카메라를 켠 채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 메시지 파일의 생성 시각은 예식 하루 전이 아니라, 사건 당일 13시 47분이었다.
세린은 그 시각의 큐를 떠올렸다. 13시 47분에는 하객들이 연회장으로 이동했다. 신랑 대기실은 잠겨 있었고, 사진작가들은 단체 사진 촬영을 준비했다. 가은은 그때 자신이 카메라를 들고 있었지만, 조수는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도윤은 행사장 직원에게 엘리베이터 출입 영상을 요청했다. 영상에서 가은은 13시 46분에 2층으로 올라갔고, 13시 48분에 혼자 내려왔다.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있었다고 기억했지만, 영상에는 가은 외에 아무도 없었다. 도윤은 그녀가 거짓말한다고 단정하지 않고, 영상과 기억이 다른 이유를 기록했다.
가은은 그 순간 자신이 진호의 존재를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제가 혼자였던 게 아니었어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누군가 제 손을 잡고 있었어요.” 그녀는 손바닥을 펴 보였다. 작은 렌즈 덮개의 둥근 자국이 남아 있었다.
세린은 진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지, 안에 남았는지 확인하려 했다. 승강기 중량 센서 기록은 없었다. 도윤은 CCTV가 끊긴 11초 동안 두 사람이 함께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신랑의 죽음과 진호의 실종은 같은 시간표의 빈칸에 묶여 있었다.
가은은 메모리 카드를 봉인한 뒤, 세린에게 카메라를 건넸다. 화면에는 13시 47분에 찍힌 검은 프레임이 한 장 남아 있었다. 촬영 장소는 대기실 안쪽으로 표시돼 있었다. 그 방에 들어간 사람은 없다고 모두 진술했다.
그 순간 가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녀의 사진작가 조수가 어젯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단체 사진에서 지워진 사람이 조수였을 가능성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