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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슬라임이 만렙을 숨김4화

튜토리얼 슬라임이 만렙을 숨김

튜토리얼 슬라임이 만렙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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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목검은 맛있다

부러진 나무토막

늪지 깊은 곳에서 울려온 진동은 낮고 무거웠다.

현우는 돌 틈에 몸을 바짝 붙인 채 수면 아래를 살폈다. 흙탕물 너머로 보이는 돌문은 반쯤 잠겨 있었고 그 틈새로 서늘한 마력 바람이 흘러나왔다. 튜토리얼 1구역의 따뜻하고 밋밋한 기운과는 결이 달랐다. 최소한 10레벨 이상의 몬스터나 정예 구역에 흐르는 묵직한 공기였다.

‘저쪽은 지금 가면 무조건 즉사다.’

고인물의 직감이 경고를 울렸다.

레벨 1, 공격력 0, 체력 7/10.

화살촉에 스쳤던 외피의 균열은 포션 점액 덕분에 가까스로 벌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여전히 살얼음판 같았다. 웅덩이를 건널 때마다 미세한 마찰열이 느껴졌고 작은 자갈만 스쳐도 따끔한 통증이 핵까지 전해졌다.

현우는 돌문 앞을 벗어나 다시 관리용 배수로 쪽으로 몸을 돌렸다.

수로 유인석 파편을 숨겨 둔 돌 틈을 지나 배수구 철망 쪽으로 다가가자 진흙 둔덕에 걸린 낯익은 잔해들이 보였다. 태식 일행이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부러뜨리고 버린 목검 자루였다. 게다가 상류 물살을 타고 내려와 철망 사이에 얽힌 수련용 목검의 쪼개진 날 조각들도 두어 개 흩어져 있었다.

초보자 수련장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자루씩 내구도가 다해 버려지는 가장 흔한 쓰레기였다.

현우는 질척한 진흙을 타고 목검 자루로 다가갔다.

‘잠깐. 목검도 포식이 되나?’

초급 회복 포션 병의 유리 조각과 약물 찌꺼기 그리고 유인석 파편을 삼켰을 때 시스템은 성분을 감지했다. 목검은 마법 물품이 아니었지만 <아카디아 온라인>의 모든 장비는 시스템의 데이터와 재질 구조를 품고 있었다.

현우의 몸 표면이 부러진 목검의 쪼개진 단면에 닿았다.

파르르, 점액 끝이 떨렸다.

[미확인 고체 물질을 감지했습니다.]

[대상: 파손된 수련용 목검 파편]

[주요 성분: 압축 건조 물푸레나무 섬유질, 초급 장비 경화 도포액]

[섭취 가능한 물리적 재질. 무한 포식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현우의 푸른 눈동자 윤곽이 번뜩였다.

물푸레나무.

현실에서도 고급 야구 방망이나 활, 도끼 자루를 만들 때 쓰는 질기고 탄성 좋은 고급 목재였다. 게다가 게임사 개발진은 초보자용 목검이 몇 번 휘두르다 부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설정상 '경화 도포액'을 먹여 두었다.

지금 현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리적 방어력이었다. 작은 돌멩이에도 찢어지는 물풍선 같은 몸으로는 튜토리얼의 사소한 위험조차 버텨낼 수 없었다.

‘먹는다. 무조건 먹어서 단단해져야 해.’

단단한 것을 삼키는 법

문제는 삼키는 방식이었다.

현우는 현재 직경 30센티미터 남짓한 작은 물방울 슬라임이었다. 눈앞에 놓인 목검 파편은 성인 손목 굵기에 길이만 20센티미터가 넘었다. 날카롭게 부러진 나뭇결이 사방으로 가시처럼 돋아나 있었다.

단순히 몸을 벌려 억지로 집어넣었다가는 나무 가시가 점액 막을 뚫고 찢어버릴 판이었다.

‘무리하게 통째로 삼키면 안 돼. 액체의 성질을 써야 한다.’

현우는 몸을 얇고 넓은 피막 형태로 펼쳤다.

축축하게 젖은 나무토막 표면으로 푸른 점액을 천천히 흘려보냈다. 거친 나뭇결 틈새와 쪼개진 균열마다 미세한 점액 촉수를 밀어 넣었다. 물기를 머금은 나무는 미세하게 불어나며 틈을 벌렸다.

스스스스.

현우는 몸 안에 남아 있던 희미한 포션 정화 성분을 미량 방출했다. 약재의 침투력이 나무토막 겉면에 발려 있던 낡은 왁스층을 녹여 냈다. 기름막이 벗겨지자 굳어 있던 나뭇결이 연해졌다.

현우는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나온 손가락만 한 잔가지 파편부터 몸 안으로 끌어들였다.

따끔!

날카로운 나무 조각이 체내로 들어오는 순간 중심부에 위치한 핵이 격렬하게 반응했다. 낯선 고체 물질이 침범하자 슬라임 본능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며 경련했다.

‘진정해. 뱉지 마라. 녹여서 내 살로 만들어야 해!’

현우는 이를 악물 듯 점액의 밀도를 끌어올렸다. 체내의 유기산을 파편 주위로 집중시켰다.

치이익.

점액 속에서 작은 기포가 솟구쳤다. 날카롭던 나무 가시의 모서리가 둥글게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거친 셀룰로오스 섬유가 가닥가닥 풀리며 현우의 푸른 젤리 속으로 녹아들었다.

[무한 포식이 활성화됩니다.]

[목재 섬유질 분해 중... 진행도: 14%]

[미약한 경화 약재 성분을 해석합니다.]

차가웠던 체내 온도가 미지근하게 달아올랐다.

포션을 삼켰을 때가 상처를 시원하게 꿰매는 느낌이었다면 목검을 녹이는 감각은 끈적끈적한 수지를 반죽하는 듯한 묵직한 포만감이었다.

녹아내린 섬유질은 단순한 노폐물로 사라지지 않았다. 현우의 투명하던 점액질 사이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그물망처럼 얽혀 들어갔다.

현우는 망설이지 않고 옆에 놓인 더 큰 목검 조각을 덮쳤다.

점액을 나뭇결 방향으로 침투시켜 안쪽에서부터 결을 따라 쪼갰다. 툭, 툭 소리와 함께 부서진 나무 조각들이 차례로 푸른 젤리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소화열이 핵을 감쌌다.

[진행도: 38%... 62%... 85%...]

[물푸레나무의 질긴 결합 구조를 습득합니다.]

[초급 경화 도포액의 반발 탄성 공식을 기록합니다.]

흐물거리던 슬라임의 몸체 내부에서 짙은 호박색 빛이 은은하게 감돌았다가 푸른빛 속으로 스며들었다.

고밀도 탄성막

마지막 목검 파편이 완전히 녹아 사라졌을 때 현우의 몸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파손된 수련용 목검 파편 포식 완료.]

[성분 분석 완료: 압축 건조 물푸레나무 섬유 (100%), 초급 경화 도포액 (100%)]

[신체 특성 개방: 표면 탄성막 형성]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7/10 → 10/10]

[물리 타격 저항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귓가에 맑은 시스템 알림이 울렸다.

현우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찰랑거리며 힘없이 흔들리던 물풍선 같은 표면에 은은한 광택이 감돌고 있었다. 화살촉에 긁혀 위태롭던 미세 균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질긴 목재 섬유질과 경화 성분이 점액과 교차 결합하면서 촘촘한 고무막 같은 탄성 외피를 만들어낸 덕분이었다.

체력도 10으로 꽉 찼다.

‘이게 되네.’

현우는 몸에 힘을 주어 보았다.

스윽, 점액을 안쪽으로 바짝 당기자 표면이 탱탱하게 압축되었다. 손가락으로 찌르면 푹 꺼지던 물컹한 상태가 아니라 손으로 쥐어짜도 팽팽하게 튕겨내는 단단한 고탄성 고무공의 질감이었다.

쿵.

현우는 바닥을 향해 몸을 강하게 수축했다가 튕겨냈다.

팟!

가벼운 소리와 함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전에는 기껏해야 10센티미터 남짓 펄쩍 뛰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무려 1미터 가까이 솟아올라 배수로 벽면을 짚었다.

벽에 부딪히는 순간에도 찌그러지며 아파하는 대신 ‘통!’ 하고 경쾌하게 반동을 일으키며 튕겨 나왔다.

‘탄성이 장난이 아닌데?’

낙하 충격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점액 세포 사이사이에 얽힌 섬유 격자가 외부 충격을 분산시키고 표면 장력이 반발력으로 되돌려주는 구조였다.

물론 쇠나 바위처럼 튼튼한 장갑을 두른 것은 아니었다. 날카로운 진검에 베이거나 강한 타격을 받으면 여전히 위험했다. 하지만 이제 초보자들의 빗맞은 목검이나 작은 돌멩이에 살점이 찢겨 나갈 걱정은 덜었다.

공격력은 여전히 0이었지만 생존력은 몇 배나 뛰어올랐다.

현우는 신이 나서 늪지 바닥을 통통 튀어 다녔다.

통, 통, 퐁!

진흙을 밟아도 깊게 빠지지 않고 수면의 표면 장력을 타고 미끄러지듯 튕겨 나갔다. 둔탁하던 움직임에 탄력이 붙자 도주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때였다.

위쪽 관리용 배수로 입구에서 자갈이 굴러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튕겨낸 돌과 핵의 떨림

“야, 저 아래쪽 배수로 끝에 진짜 아무것도 없어?”

“아까 태식 형네 파티가 늪지 벌레한테 쫓겨서 허겁지겁 도망쳐 나왔잖아. 들어가지 마.”

“에이, 그래도 초보 퀘스트 슬라임 젠 위치가 꼬였다던데.”

멀리 위쪽 격벽 너머에서 다른 초보 유저들의 말소리가 웅성거리며 들려왔다.

누군가 위쪽 배수로 덮개를 발로 툭툭 찼는지 낡은 돌 틈새가 삐걱거렸다. 튜토리얼 정원에 슬라임 개체 수가 부족해지자 유저들이 사방의 구석진 배수로까지 뒤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쿠구궁.

위쪽의 낡은 석조 격벽이 흔들리며 주먹만 한 깬돌 하나가 틈새로 빠져 떨어졌다.

모서리가 날카롭게 깨진 무거운 화강암 조각이었다.

낙하 지점은 정확히 현우가 서 있던 배수구 바닥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비명을 지르며 피해야 할 크기와 속도였다. 직격당하면 체력 7은커녕 온몸이 으깨져 즉사할 위력이었다.

하지만 현우는 피하지 않았다.

새로 얻은 신체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어디 한번 버텨 보자.’

현우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 중심부의 핵을 바닥 쪽으로 바짝 낮췄다. 그리고 머리 위쪽 점액 외피를 반구형으로 두껍게 팽창시키며 고밀도 탄성 격자를 집중시켰다.

쾅!

날카로운 깬돌이 현우의 정수리를 직격했다.

콰앙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현우의 몸이 바닥으로 쑥 눌렸다. 고무공이 짓눌리듯 납작해진 점액 표면이 돌의 모서리를 감싸며 운동 에너지를 순식간에 흡수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점액이 용수철처럼 본래 형태로 튕겨 올랐다.

퐁—!

“어?”

날카로운 화강암 깬돌이 반대 방향으로 시원하게 허공을 향해 튕겨 날아갔다. 돌은 배수로 벽을 때리고 늪지 물속으로 첨벙 처박혔다.

현우의 표면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체력 바는 여전히 10/10을 가리키고 있었다.

‘성공이다!’

현우는 속으로 환성을 내질렀다. 초보 유저들의 목검 타격 정도는 가볍게 튕겨낼 수 있는 완충 능력이 증명된 셈이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찌릿.

점액 깊은 곳, 가장 안쪽에 숨겨져 있던 투명한 푸른 구슬에서 서늘한 통증이 번졌다.

현우의 '핵(Core)'이었다.

표면의 탄성막이 물리적 충격을 흡수해 튕겨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 내리누르던 압력의 미세한 여파가 중심핵을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눈앞에 붉은색 경고 알림이 번쩍였다.

[경고: 유일 개체의 중심핵(Core)에 미세 진동이 감지되었습니다.]

[주의: 핵 손상률 0.01% 발생.]

[중심핵이 완전히 파괴될 경우 데이터 복원 및 재구성이 불가능합니다.]

[사망 시 시스템 리스폰 테이블에서 영구 제적됩니다.]

붉은 글자가 시야를 붉게 물들였다.

현우의 몸이 얼어붙었다.

‘핵 손상률... 영구 제적?’

외피를 단단하게 만들어도 중심에 박힌 핵이 깨지면 끝이었다. 일반 몬스터처럼 시간이 지나 리스폰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죽음은 곧 완전한 소멸이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공포가 밀려왔다.

위쪽 배수로에서는 여전히 초보 플레이어들의 발소리와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현우는 조심스럽게 몸을 웅크려 핵을 더 깊숙한 곳으로 감추었다. 목검을 먹어 몸은 탱탱해졌지만 방심하는 순간 핵이 깨져 죽을 수 있다는 냉혹한 현실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단순한 탄성만으로는 부족했다.

핵을 지킬 절대적인 방벽, 혹은 누구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게 만들 압도적인 진화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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