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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토리얼 슬라임이 만렙을 숨김3화

튜토리얼 슬라임이 만렙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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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고인물의 상식

푸른 주머니

낯선 발소리는 세 사람분이었다.

현우는 웅덩이 가장자리에서 몸을 낮췄다. 벽 틈의 가죽 주머니에서는 푸른빛이 새고 있었다. 밝지는 않았지만 어두운 관리용 공간에서는 숨기기 어려운 색이었다.

“여기가 맞아. 배수로 끝에 숨은 몬스터가 나온다는 글을 봤거든.”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글 하나 믿고 여기까지 들어온 거야? 길도 너무 좁은데.”

“그래도 숨은 몬스터면 보상이 다르대. 초반에 잡으면 파티가 편해진다잖아.”

현우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초보자 게시판의 소문은 장식물을 희귀 보상으로 부풀린 이야기거나 고인물이 감춰 둔 사냥터 정보였다. 초보는 구분하지 못했다.

빛구슬이 관리용 공간 안으로 들어왔다. 푸른빛이 물웅덩이를 훑었다. 현우는 가죽 주머니 뒤로 몸을 밀착했다.

“여기 뭐가 있어.”

이번에는 어린 남자의 목소리였다.

“낡은 주머니네. 열어 볼까?”

“잠깐. 이런 곳에 있는 물건은 함정일 수도 있어.”

현우는 주머니를 바라봤다.

함정일 수 있다는 판단은 맞았다. 다만 지금 더 위험한 쪽은 주머니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파티가 주머니를 잡아당기면 벽 틈이 흔들리고 몸을 숨길 공간도 사라질 것이다.

현우는 웅덩이의 물을 가늘게 밀어 주머니 아래로 흘려 보냈다. 젖은 가죽 끈이 돌에 붙어 있었다. 물이 끈과 벽 사이로 스며들자 가죽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는 몸 끝을 실처럼 늘여 끈을 감쌌다. 힘으로 당기지 않고 물방울이 떨어지는 간격에 맞춰 조금씩 흔들었다.

툭.

가죽 주머니가 벽에서 반 뼘 빠졌다.

현우는 주머니를 몸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푸른빛이 잠깐 크게 번졌다.

“빛이 움직였어.”

태식이라는 이름이 머리 위에 떠 있는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목검을 든 전사였다. 뒤에는 작은 지팡이를 든 미나와 짧은 활을 맨 준호가 서 있었다.

현우는 주머니를 웅덩이 아래로 밀었다. 입구가 물에 잠기자 푸른빛이 흐려졌다.

“물 반사 아니야?” 미나가 말했다.

“아니. 뭔가 움직였어.”

태식이 목검을 들었다.

현우는 주머니의 끈 사이로 손톱만 한 푸른 조각을 보았다. 유리도 보석도 아니었다. 깨진 돌 안쪽에 물결 같은 선이 갇혀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희미한 문장이 떠올랐다.

[미확인 마력 물질을 감지했습니다.]

[대상: 수로 유인석 파편]

[섭취 가능한 마력 잔여물. 직접 흡수 시 주변 수계 반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수로 유인석.

튜토리얼 정원 남쪽에는 사용되지 않은 늪지 이벤트 구역이 있었다. 정식 퀘스트 동선에서는 막혀 있었고 고인물들 사이에서는 버그성 지형으로만 알려진 곳이다. 수로 유인석은 그곳의 몬스터를 정해진 물길로 유도하는 관리용 장치였다.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질문은 나중이었다. 지금은 파티의 위치가 중요했다.

태식이 웅덩이 쪽으로 다가왔다.

미끼를 옮기는 법

목검 끝이 물에 닿았다.

현우는 주머니를 버리고 도망칠지 고민했다. 수로 유인석 파편은 매력적인 자원이었다. 여기서 맞아 죽으면 자원도 의미가 없었다.

태식이 목검을 휘둘렀다. 물이 튀며 웅덩이 벽을 때렸다. 현우는 충격을 피해 몸을 넓게 폈다.

[수로 유인석 파편이 주변 수계에 반응합니다.]

관리용 공간 바닥의 물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웅덩이에서 배수구로 이어지는 얇은 물길이 생겼다. 주머니가 그쪽으로 끌려가려 했다.

‘끌려가는 게 아니라 끌고 갈 수 있나?’

현우는 유인석을 완전히 흡수하지 않았다. 주머니의 바닥을 밀어 물길 위에 올렸다. 푸른 조각의 잔향이 물살을 타고 배수구 쪽으로 번졌다.

그때 배수구 안쪽에서 작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물방울만 한 검은 벌레였다. 다리가 너무 많아 시야가 따라가기 힘들었다. 벌레는 유인석의 푸른빛을 향해 달려왔다.

“벌레다!” 준호가 외쳤다.

그가 활을 들었다.

현우는 몸을 던져 주머니를 옆으로 밀었다. 화살은 주머니를 비껴가 벽에 박혔다. 화살촉에 튄 물방울이 현우의 표면을 스쳤다.

[체력: 8/10 → 7/10]

따끔한 감각이 몸 전체로 번졌다. 화살은 제대로 맞지 않았지만 금속 끝이 만든 작은 균열이 벌어지고 있었다.

“슬라임이야!” 미나가 소리쳤다.

태식의 목검이 현우를 향해 돌아왔다.

현우는 물길 아래로 몸을 흘렸다. 주머니는 포기하지 않았다. 유인석 파편이 배수구의 녹슨 덮개에 걸렸다. 현우는 점액을 얇게 펴서 끈을 감고 몸을 수축했다.

태식의 목검이 바로 위를 지나갔다.

쾅!

덮개가 내려앉으며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현우는 주머니를 끌어당겼다. 녹슨 고리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물길 하나가 열렸다.

“도망쳤어!”

“쫓아가. 저쪽은 막다른 곳일 거야.”

현우는 속으로 비웃었다.

막다른 곳이 맞았다. 단지 사람에게만 그랬다.

그는 좁은 틈을 통과해 주머니를 물길 너머로 밀었다. 관리용 공간 뒤쪽에는 바닥이 낮아지는 통로가 있었다. 베타 테스트 때 지도 구석에서 본 지형이다. 세 번째 돌은 밟으면 기울고 네 번째 돌 옆은 얕은 늪지로 이어진다.

고인물의 상식

관리용 공간 뒤의 늪지는 정원보다 색이 어두웠다.

물 위로 낮은 풀들이 떠 있었고 진흙 표면에는 작은 거품이 일정한 간격으로 올라왔다. 튜토리얼 몬스터가 출현하는 장소지만 정식 안내에는 표시되지 않는 곳이었다.

현우는 첫 번째 돌 위로 몸을 올렸다. 단단한 돌이었다.

두 번째 돌은 물에 절반쯤 잠겨 있었다. 그는 몸을 납작하게 펴서 표면 장력을 이용해 건넜다.

뒤에서 태식이 통로로 뛰어들었다.

“거기 있다!”

태식은 가장 가까운 세 번째 돌을 밟았다.

돌이 기울었다.

태식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미나가 그를 잡으려고 다가갔고 준호는 뒤에서 활을 겨눴다. 세 사람의 위치가 한 줄로 겹쳤다.

현우는 네 번째 돌로 가지 않았다. 그 돌 옆에는 늪의 색과 비슷한 얇은 막이 떠 있었다. 발이 닿으면 안쪽으로 빨아들이는 진흙이었다.

정식 퀘스트라면 경고 문구가 떠야 했다. 이곳은 사용되지 않은 지형이라 안내가 없었다.

현우는 몸 끝으로 젖은 풀 한 줄기를 건드렸다. 풀잎에 묻은 물이 늪지 안으로 떨어졌다.

퐁.

거품이 한 번 크게 부풀었다.

준호가 화살을 놓았다. 화살은 현우가 있던 돌을 맞혔다. 현우는 이미 아래로 흘러내린 뒤였다.

화살촉이 돌을 튕기며 진흙 가장자리를 건드렸다.

늪 표면이 출렁였다.

태식이 몸을 일으키려 발을 옮겼다. 그 발이 네 번째 돌 옆의 진흙에 닿았다.

“잠깐!”

미나의 외침은 늦었다.

태식의 장화가 발목까지 빠졌다. 그는 목검을 휘둘러 균형을 잡으려 했다. 검 끝이 미나의 지팡이를 쳤고 작은 불빛이 허공에서 터졌다.

“당기지 마! 더 빠져!”

현우는 물 아래로 몸을 낮췄다.

유인석 파편이 든 가죽 주머니는 그의 뒤에 매달려 있었다. 푸른 조각이 늪의 마력에 닿자 거품이 연달아 터졌다.

진흙 아래에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검은 벌레들이었다. 한 마리씩 모습을 드러낸 벌레는 늪 가장자리의 따뜻한 마력을 따라 기어왔다. 유인석은 벌레를 조종하지 않았다. 가까운 방향을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들 뿐이었다.

태식은 진흙에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쳤다. 그 움직임이 벌레들을 더 자극했다.

“이거 이벤트 몬스터야?” 준호가 소리쳤다.

“내가 어떻게 알아!” 미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현우는 고인물 시절에 보았던 공략 영상을 떠올렸다. 늪지 벌레는 빠른 대상을 쫓지 않는다. 움직임이 크고 진흙을 많이 흔드는 대상부터 문다. 그래서 파티 전원이 뛰면 가장 느린 사람이 표적이 된다.

세 사람은 지금 정확히 그 실수를 하고 있었다.

현우는 몸 일부를 늪지 표면에 내밀었다. 작은 물방울 하나가 흔들렸다. 벌레 몇 마리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즉시 몸을 돌려 반대쪽 돌 아래로 숨어들었다.

벌레의 움직임이 잠깐 갈렸다.

태식이 빠져나오려고 몸을 크게 흔들었다. 벌레 대부분이 다시 그쪽으로 몰렸다.

현우는 그 틈에 다섯 번째 돌로 이동했다. 발판은 작았지만 단단했다. 물 아래에 숨은 얇은 배수구가 손끝에 닿았다.

그는 몸을 가늘게 말아 배수구로 스며들었다.

“슬라임이 저기로 갔어!”

준호가 외쳤다.

그가 무리하게 돌을 밟고 따라오려 했다. 발끝이 미끄러졌다. 미나가 준호의 팔을 잡았고 태식은 아직 진흙에 갇힌 상태였다.

세 사람의 동선이 완전히 엉켰다.

현우는 배수구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도망친 것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대가 자신의 움직임 때문에 길을 잃었다.

그 작은 차이가 통쾌했다.

첫 번째 승리

현우는 배수구 안쪽의 돌에 몸을 붙였다.

바깥에서는 태식이 미나에게 팔을 내밀고 있었다. 미나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양손으로 태식의 손을 잡았다. 준호는 활을 들었지만 어디에 쏴야 할지 몰라 움직이지 못했다.

초보 파티는 몬스터보다 먼저 자기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늪지 함정은 체력을 많이 깎지 않는다. 대신 동료의 도움과 도주 경로를 빼앗는다. 빠져나오려면 공격보다 순서가 중요하다.

태식이 먼저 몸을 낮췄다. 미나가 뒤로 물러나고 준호가 줄을 던졌다. 세 사람은 한 명씩 움직이며 늪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현우는 그들이 철수할 때까지 기다렸다.

유인석 파편을 몸 안으로 조금 끌어당겼다. 푸른 조각이 표면에 닿자 차가운 진동이 번졌다.

[무한 포식이 수로 유인석 파편의 일부를 흡수합니다.]

[분석 진행도: 0.4%]

[주의: 대상의 잔향이 주변 몬스터와 공명합니다.]

현우는 즉시 흡수를 멈췄다.

몸 안에 들어온 푸른빛은 포션과 달랐다. 따뜻하게 상처를 붙이는 힘이 아니라 물길의 방향을 찾아 헤매는 가느다란 전류 같았다. 더 먹으면 강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늪지 전체가 자신을 향해 반응하는 중이었다.

‘역시 공짜는 없네.’

현우는 남은 조각을 돌 틈에 밀어 넣었다. 가죽 주머니도 물이 고이지 않는 곳으로 옮겼다. 파티가 돌아오면 푸른빛을 숨길 수 있도록 진흙을 얇게 덮었다.

멀리서 태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슬라임 놓쳤다. 그래도 잡은 걸로 치자. 여기 더 있으면 위험해.”

“숨은 몬스터는커녕 벌레만 만났네.”

“다음에는 공략 확인하고 오자.”

발소리가 통로 쪽으로 멀어졌다.

현우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체력은 7/10이었다. 균열은 포션 점액 덕분에 더 벌어지지 않았지만 화살촉이 스친 부분에는 얇은 금이 남아 있었다.

강해진 것도 아니었다. 레벨은 1이고 공격력은 여전히 0이었다.

그런데도 살아남았다.

현우는 배수구 아래로 몸을 흘렸다. 늪지 너머에는 낮은 돌문과 튜토리얼 경계 표식이 보였다. 그 너머에서 정원과는 다른 마력 냄새가 흘러나왔다.

[새로운 환경의 경계에 접근했습니다.]

알림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때 관리용 공간 아래쪽에서 낮은 진동이 올라왔다. 숨겨 둔 수로 유인석 파편이 아니라 늪지 깊은 곳에서 난 소리였다.

현우는 돌문과 파편을 번갈아 바라봤다.

오늘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도주로가 추적자를 삼켰다. 다음에는 자신이 그 너머로 들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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