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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마다 바뀌는 지도의 주인2화

밀물마다 바뀌는 지도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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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섬 주민의 서로 다른 증언

“루미 씨는 누구를 기다려요?”

해원이 묻자 루미는 종루 문을 닫았다. 물이 발목을 넘기 시작했다. “질문을 지도처럼 펼치네. 내가 답하지 않으면 계속 선을 그을 거야?”

“대답하지 않아도 돼요. 대신 여기서 더 들어가기 전에 알아야 해요. 물길이 바뀌면 나가는 길도 달라지니까.”

도겸은 바깥에서 수심을 재고 있었다. “해원 씨 말이 맞습니다. 십 분 뒤엔 이 바위턱이 잠길 거예요.”

“십 분이면 충분해.” 루미가 종루의 사다리를 가리켰다. “위에서 마을 쪽 밧줄을 확인하고 내려오면 돼.”

“사다리가 부식됐어.” 도겸이 말했다.

“그럼 네가 올라가지 마.”

루미는 허리춤에 감아 둔 짧은 밧줄을 풀었다. 사다리 첫 칸에 발을 올렸을 때 녹슨 쇠가 휘었다. 해원은 손목의 조개 나침반을 확인했다. 바늘이 종루 안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잠깐, 그쪽이 아니야.”

루미는 두 번째 칸에서 멈췄다. “또 지도야?”

“바늘이 안쪽으로 향해. 위로 가는 길이 아니야.”

“종을 보러 왔는데 아래로 가라고?”

“종추가 물에 닿아야 울린다고 했잖아. 물 아래에 길이 있을지도 몰라.”

루미는 입술을 다물었다. 도겸이 사다리를 붙잡았다. “무리하게 들어가면 안 됩니다. 수중 통로는 확인되지 않았어요.”

“네 기록에 없다는 뜻이겠지.” 루미가 말했다.

그녀는 종루의 바닥으로 내려가 잠긴 돌판을 더듬었다. 해원은 소매를 걷고 함께 물에 손을 넣었다. 돌판 아래에는 쇠고리 하나가 박혀 있었다. 루미가 힘을 주자 판이 들리며 어두운 틈이 열렸다. 바닷물이 빨려 들어가듯 소용돌이쳤다.

“이건 출구가 아니야.” 도겸이 루미의 팔을 잡았다. “물이 역류하면 둘 다 갇힙니다.”

“손 놔.”

“루미 씨.”

“너희가 여기서 돌아가면 오늘도 종은 안 울려. 기다리는 사람은 또 한 주를 혼자 보내겠지.”

루미가 팔을 빼냈다. 그 한마디에 해원은 지도에서 끊겼던 약속선을 떠올렸다. 바위판 밑으로 선이 이어져 있었다. 길은 좁았지만 종루 바깥의 물살을 피해 마을 쪽으로 빠졌다.

“통로가 있어요. 다만 한 사람씩 지나가야 해요.”

도겸은 해원의 손에 든 종이를 확인했다. “이 지도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이미 들어갔어요.”

“지형이 아니라 약속을 보는 거라면서요.”

“사람이 실제로 드나드는 길이면 지도에 그릴 수 있어요. 약속을 이루는지는 그들이 정하고요.”

루미가 먼저 물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해원은 연필과 종이를 방수 주머니에 넣고 뒤를 따랐다. 좁은 통로의 천장에 어깨가 닿았다. 물은 차가웠고, 어둠 속에서 나침반의 빛만 보였다. 반대편 틈으로 빠져나왔을 때 루미는 이미 사다리 아래의 낮은 방에 서 있었다.

벽에는 수십 개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해원은 손전등을 켰다. 종루의 주민들이 돌아오지 못한 가족의 이름을 적은 흔적이었다. 어떤 이름 옆에는 조개가 붙어 있었고, 어떤 곳은 칼로 긁혀 지워져 있었다.

루미는 마지막 이름 앞에서 멈췄다. ‘고아인.’

“아인은 누구죠?” 해원이 물었다.

“내 친구. 섬을 떠난 사람.”

“돌아오기로 약속했어요?”

“아니. 내가 같이 떠나겠다고 했어.”

“그런데 왜 남았어요?”

루미는 벽을 쓸었다. “떠나면 이 섬이 없어질 것 같았어. 아인이 없는 자리에 내가 남아 있어야 종을 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건 약속이 아니라 혼자 정한 벌이야.” 도겸이 말했다.

루미가 돌아섰다. “너는 규정으로 사람을 묶어 놓고 그런 말 할 자격 있어?”

도겸은 수첩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없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명령대로만 움직이지 않으려고요.”

물소리가 커졌다. 틈에서 파도가 솟아 올라 방 안을 쓸었다. 루미가 벽의 손잡이를 당겼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해원은 지도 위의 선을 봤다. 이름 ‘고아인’에서 바깥 출구로 이어진 약속선은 종루 밖으로 향하지 않고, 루미의 손목에서 멈춰 있었다.

“아인 씨가 돌아와야 열리는 게 아니야.” 해원이 말했다. “루미 씨가 떠날 수 있다고 믿어야 길이 열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지도는 길을 보여 줄 뿐이야. 선택은 네가 해.”

루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이 가슴께까지 차올랐다. 도겸이 손잡이를 잡고 함께 당겼다. “루미 씨, 지금 결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숨 쉴 수 있는 곳으로 나가야 해요.”

루미는 벽의 이름을 한 번 더 보았다. “아인이 돌아오면 종을 울린다고 했어. 내가 떠나면 그 약속은 끝나.”

“그 약속을 누가 했는데요?” 해원이 물었다. “아인 씨도 같은 약속을 했어요?”

루미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인은 자기 길을 찾으면 나한테 알려 주겠다고 했어. 돌아오겠다는 말은 안 했어.”
“그 사람은 왜 섬을 떠났어요?” 해원이 물었다.

“도시에서 잠수 자격을 따면 여기에 남은 사람도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자격시험 전에 항만청이 섬의 정박지를 없애겠다고 통보했지. 아인은 내가 같이 가자고 했는데, 나는 마을의 종을 두고 갈 수 없다고 했어.”

“아인은 혼자 갔고.”

“응. 마지막 날에 종루에서 싸웠어. 내가 종을 울리면 돌아오겠다고 말하라고 했거든. 아인은 그런 말로 자기를 묶지 말라고 했어.”

루미는 이름 옆에 붙인 조개를 손톱으로 눌렀다. 조개가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손길이었다. “그날 이후로 종은 한 번도 안 울렸어. 내가 이 섬을 지키면 아인이 언젠가 알아서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지.”

도겸은 물에 젖은 수첩을 펼쳤다. “항만청은 다음 달부터 이 섬의 출현 시간을 예보에서 제외할 겁니다. 공식 기록에 없으면 선박이 오지 않아요.”

“그러니까 너희는 섬이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거야?” 루미가 물었다.

“제가 결정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면 구조 기록도 남지 않을 겁니다. 밀물에 갇힌 배가 있어도 출동 명령이 안 날 수 있어요.”

“그런데도 아까는 나보고 위험하다고만 했지.”

“맞습니다.” 도겸이 시선을 내렸다. “그건 제가 잘못 봤어요. 위험을 피하게 하는 것과 섬을 지도에서 지우는 건 다른 일인데,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루미는 사과를 받았다는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럼 다음엔 실제 물길을 보고 말해. 종이에 적힌 숫자부터 읊지 말고.”

도겸은 수첩을 접었다. “그러겠습니다.”

“그럼 둘이 한 약속은 아직 남아 있네요. 연락할 길을 찾는 것.”

루미는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벽에 새겨진 이름의 끝에 작은 조개를 붙였다. “이건 내가 남기는 표식이야. 기다리는 게 아니라, 길을 찾겠다는 뜻으로.”

그 순간 벽 안쪽에서 쇳소리가 울렸다. 닫혀 있던 문이 조금씩 열렸다. 물살이 바깥으로 빠지며 세 사람을 밀어 냈다. 루미가 맨 먼저 빠져나가 해원의 손을 잡았다. 도겸은 뒤에서 줄을 당겨 둘을 끌어 올렸다. 밧줄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그의 손등이 붉게 벗겨졌다. 루미는 바위에 올라서자마자 해원의 팔을 놓고 종루 쪽으로 되돌아가려 했다.

“밑에 아직 물건이 남았어.”

“사람은?” 해원이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없어. 아인이 남긴 나침반이 있어.”

“물길이 다시 열리면 찾으러 오자. 지금 들어가면 그 물건을 건지다가 네가 이름판에 오를 수 있어.”

루미는 발을 멈췄다. “네가 지도에 내 이름을 봤다고 겁주는 거야?”

“아니. 내가 봤다고 네가 지킬 필요는 없다는 뜻이야.”

잠깐의 침묵 뒤에 루미가 고개를 돌렸다. 도겸은 잘린 밧줄의 남은 끝을 손목에 감아 배의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그의 손은 떨렸지만 매듭은 단단했다.

종루 밖으로 나왔을 때 밀물은 언덕 중간까지 올라와 있었다. 배는 아직 바위턱에 묶여 있었지만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도겸이 밧줄을 잘라 배를 다시 고정하고, 루미는 젖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인에게 연락할 길이 있어?” 해원이 물었다.

“도시에서 선박 수리 일을 한다고 들었어. 이름이 바뀌었는지는 몰라.”

“그럼 찾아볼 수 있겠네.”

“네 지도에 내 약속을 그리지 마.”

“안 그렸어. 네가 조개를 붙이는 걸 그렸지.”

해원은 종이를 펼쳤다. 어두운 선이 루미의 이름에서 바깥 항로로 이어져 있었다. 종루에서 나온 선은 처음의 묘지 표식과 연결됐다. 묘지의 이름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었지만, 그 옆에 어머니가 쓰던 작은 파도 무늬가 나타났다.

도겸도 그것을 보았다. “그 표식은 항만청 공인 지도에서 삭제된 겁니다.”

“누가 삭제했어요?”

“그건 기록을 찾아야 합니다.”

“그럼 이제 기록을 같이 찾는 거네요.”

도겸은 잠시 고민하다 수첩의 첫 장을 찢어 해원에게 건넸다. 거기엔 섬이 나타난 시각과 실제 물높이가 적혀 있었다. “공식 기록과 다릅니다. 누가 수정했는지 확인할 때까지 이 자료는 제 개인 기록입니다.”

루미가 종루를 돌아봤다. 종은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래 문은 열린 채였다. 그녀는 해원에게서 종이 한 장을 빌려 조개 무늬를 옮겨 그렸다.

“아인에게 편지를 보낼 거야. 돌아오라고는 안 쓸 거야.”

“뭐라고 쓸 건데?”

“네 길이 어딘지 알려 달라고.”

해원은 약속선 끝에 작은 항구를 표시했다. 지도는 그 항구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에 한 줄이 비어 있었다.

루미는 편지 겉면에 항만청 주소 대신 다음 밀물의 좌표를 적었다. 아인이 섬을 찾을 수 있도록.

그 빈칸을 채울 사람은 아직 섬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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