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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마다 바뀌는 지도의 주인1화

밀물마다 바뀌는 지도의 주인

밀물마다 바뀌는 지도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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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지도에 나타난 묘지

섬이 나타난 건 밀물이 빠지기 시작한 지 십칠 분 뒤였다.

먼저 검은 바위가 물 위로 솟았다. 뒤이어 낮은 모래톱이 드러났고, 파도에 잠겼던 흰 풀이 한꺼번에 숨을 쉬듯 펼쳐졌다. 해원은 조개 나침반을 들고 갑판 난간에 몸을 기댔다. 바늘은 북쪽이 아니라 섬의 안쪽을 가리켰다.

“닻 내리지 마.” 뒤에서 루미가 소리쳤다. “그 바위 아래가 비었어.”

갑판원이 밧줄을 놓으려다 손을 멈췄다. 선체 아래에서 둔탁한 울림이 올라왔다. 해원은 나침반을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왼쪽으로 세 자. 바위가 물에 잠기기 전에 작은 여울이 나와.”

“지도에 그런 여울은 없는데요.”

“그래서 내가 그리는 거야.”

“아직 안 그렸잖아요.”

“지금 그릴 거니까.”

해원은 방수 종이를 펼쳤다. 연필을 댄 순간 종이 위에 해안선이 번졌다. 자신이 그린 적 없는 선이었다. 섬의 중앙에 둥근 표식이 찍히고, 그 안에 작은 이름이 떠올랐다.

문해원.

그 아래에는 날짜도 없이 ‘묘지’라고 적혀 있었다.

해원은 손을 멈췄다. 아직 본 적도 없는 섬에 자기 묘지가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지도에 떠오른 표식은 조류처럼 분명했다. 종이를 접어 숨기려는 순간, 선체가 바위에 긁혔다.

“앞쪽 얕아져요!” 갑판원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도겸이 조타실에서 뛰어나왔다. 젖은 수첩을 품에 안고, 다른 손으로 밧줄을 잡았다. “닻을 올려. 해원 씨, 지금 방향을 말해요.”

“좌현으로 세 자. 그 다음 바로 우현으로 틀어야 해요.”

“근거는요?”

“내가 지금 보는 지도.”

“그 지도는 항만청 허가를 받지 않았습니다.”

“배가 바위에 부딪히면 허가증이 우리를 끌어 올려 주나요?”

도겸이 한순간 입을 다물었다. 선원들이 그의 눈치를 봤다. 그는 밧줄을 거칠게 당기며 외쳤다. “좌현 세 자! 지금!”

배가 기울었다. 선체 아래로 검은 바위가 지나가고, 뒤이어 얕은 물길이 나타났다. 해원은 종이 위에서 흔들리는 선을 따라 방향을 다시 불렀다. 여울 끝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디딜 만한 바위턱이 있었다. 배는 파도가 밀어 주는 순간 그곳에 닿았다.

“살았네.” 루미가 숨을 내쉬었다. “이번엔.”

“이번엔?” 도겸이 물었다.

“여긴 늘 지형이 달라져. 그쪽은 종이만 봐서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더욱 무단 접근을 막아야 합니다. 이 섬은 항만청 지도에 등록되지 않았어요.”

“등록 안 됐다고 없는 섬이 되진 않아.”

루미는 밧줄을 어깨에 걸고 먼저 바위턱에 올랐다. 발목까지 물에 잠긴 채 해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해원은 그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지도와 연필을 젖지 않게 가슴에 끌어안고 스스로 올라섰다.

“고집은 잘 살아 있네.” 루미가 말했다.

“고집이 있어야 지도를 그리죠.”

“그럼 오늘은 나부터 그려. 어느 돌을 밟으면 빠지는지.”

“그건 지도에 표시할 수 있어.”

“사람도 표시할 수 있나?”

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섬에 발을 딛자 조개 나침반의 바늘이 반 바퀴 돌았다. 지도에 그려진 약속선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섬 중앙의 묘지 표식에서 해안으로, 해안에서 루미의 발끝으로 이어지는 선이었다.

“너, 뭘 봤어?” 루미가 물었다.

“섬의 길.”

“거짓말.”

“아직은.”

도겸은 상륙한 배를 바위에 묶고 지도 종이를 확인하려 다가왔다. 해원은 종이를 접어 품 안에 넣었다.

“지도 압수 명령이 내려오면 협조해야 합니다.” 그가 말했다.

“명령이 내려왔어요?”

“아직입니다.”

“그럼 지금은 조사관 개인 의견이네요.”

“선박과 주민의 안전이 걸려 있습니다.”

“누구 안전이요? 여기 사는 사람의 안전, 아니면 지도에 적힌 항로의 안전?”

도겸의 눈이 루미에게 향했다. 루미는 물에 잠긴 종루를 바라보고 있었다. 섬 중앙의 언덕 뒤로 낡은 지붕이 조금 드러났다가, 다음 파도에 다시 잠겼다.

“마을은 저기 있어요.” 루미가 말했다. “물이 더 빠지기 전에 가야 해.”

“종루 쪽은 안 됩니다.” 도겸이 수첩을 펼쳤다. “지난달 기록상 이 시간에 수심이 급격히 높아졌어요.”

“그 기록을 누가 썼는데?”

“항만청 측량팀.”

“그 팀은 종루까지 안 왔어. 바깥 바위에서 추정한 수치만 적었지.”

도겸은 반박하지 않았다. 해원은 그의 수첩에서 젖은 종이 냄새와 소금 냄새를 맡았다. 오래된 기록을 들고 다니는 사람의 냄새였다.

세 사람은 바위턱을 따라 움직였다. 루미가 앞장서며 발을 놓을 곳을 알려 줬다. 해원은 땅보다 사람을 보았다. 루미가 물을 건널 때마다 손이 종루 쪽으로 갔다가 돌아왔다. 도겸은 항만청 기록을 펼쳐서 섬의 너비를 재려 했지만, 지도에 없는 굴곡이 매 순간 조금씩 드러났다.

“여기서 멈춰.” 해원이 말했다.

루미가 돌아봤다. “왜?”

“약속선이 끊겼어.”

“그게 무슨 뜻인데?”

해원은 지도를 펼쳤다. 얇은 선이 종이 위를 가로질렀다가 절벽 앞에서 사라졌다. 바위 틈에는 낡은 밧줄과 작은 나무판이 끼어 있었다. 나무판에는 ‘돌아오면 종을 울린다’고 새겨져 있었다.

루미의 얼굴이 굳었다.

“누가 돌아오기로 했어?”

“몰라.”

“그런데 기다리는 거야?”

“그건 내 일이 아니야.”

루미가 말을 끊었다. “지도에 뭐라고 그려졌든 네가 정할 일 아니야.”

해원은 그 말에 연필을 거뒀다. 루미가 손을 뻗어 나무판을 집었지만, 뒷면에 새겨진 글씨를 보고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지워진 이름의 첫 획만 남아 있었다.

도겸이 다가왔다. “이 표식은 항만청 기록에 있습니다. 종루는 해상 경계 시설로 등록돼 있어요.”

“마을 사람들한테는 약속 장소야.” 루미가 말했다.

“그 약속이 누굴 기다리게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넌 늘 알아야 한다고만 말해.”

“모르는 채 위험에 들어가면 사람이 다칩니다.”

“알고도 손 놓고 있으면 더 많이 다쳐.”

루미는 나무판을 품에 넣고 종루 쪽으로 걸었다. 해원은 뒤를 따르려다 지도의 표식을 확인했다. 묘지 선이 처음보다 선명해져 있었다. 묘지에서 바다로 난 길은 하나뿐이었다. 그 끝에 낡은 종루가 있었다.

“해원 씨.” 도겸이 낮게 불렀다. “그 선을 따라가면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럼 돌아올 길도 그려야죠.”

“그건 지도에 있다고 안전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같이 가자는 거예요.”

도겸은 잠시 수첩을 바라보다가, 항만청 명찰을 벗어 주머니에 넣었다. “조사관이 아니라 배에 탄 사람으로 동행하겠습니다.”

“좋아요. 대신 제 지도는 압수하지 마요.”

“약속은 못 합니다.”

“그럼 아직 같이 가는 게 아니네요.”

루미가 언덕 너머에서 소리쳤다. “둘 다 빨리 와! 종이 울렸어!”

세 사람은 언덕을 돌아 종루 아래로 내려갔다. 루미는 바위 틈에 밧줄을 걸고 먼저 몸을 낮췄다. 해원은 발을 디딜 때마다 종이 위의 선을 확인했다. 한 걸음 앞의 길이 지도로 나타나지 않을 때는 루미의 손짓을 기다렸다. 지도보다 사람을 믿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여기서 종소리가 났다고?” 도겸이 물었다.

“이 종은 물이 차오를 때만 울려.” 루미가 종루의 아래쪽을 가리켰다. “종추가 바닷물에 닿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물이 빠지고 있잖아.”

종루는 허리까지 바닷물에 잠겨 있었다. 벽에는 칼로 긁은 자국이 여러 겹이었다. 날짜 대신 조개껍데기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해원은 지도에 그것을 그리려다 멈췄다. 선 아래로 작은 이름 하나가 번져 나왔기 때문이다. ‘루미’였다.

루미가 지도를 보지 않고도 알아챘다. “내 이름 적지 마.”

“내가 쓴 게 아니야.”

“그럼 지워.”

“약속을 지키면 선이 바뀌어. 네가 원하지 않으면 지금은 기록하지 않을게.” 해원은 종이를 접었다. “하지만 이름이 나타난 이유는 알아야 해.”

루미는 종루의 문을 밀었다. 안쪽에서 소금물과 녹슨 쇠 냄새가 확 풍겼다. 바닥에는 사람 한 명이 누울 만한 돌판이 있었고, 그 위에 얕은 홈이 파여 있었다. 묘지라고 부르기엔 이름도 뼈도 없었다. 바다에 오래 떠밀려 온 나무판만 놓여 있었다.

“여기가 묘지야?” 도겸이 물었다.

“아니. 마을 사람들은 저걸 조난자의 이름판으로 써. 돌아오지 못한 사람 이름을 새기고 종을 울려.”

“그런데 이름이 비어 있네요.” 해원이 말했다.

루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물이 종루 바닥을 핥고 지나갔다. 해원은 조개 나침반을 꺼냈다. 바늘이 루미를 향해 흔들렸다가, 돌판의 빈 이름 자리에서 멈췄다.

도겸은 젖은 수첩을 닫았다. “섬이 잠기기 전에 돌아가야 합니다. 여기서 더 있다간 배가 떨어져 나가요.”

“배가 아니라 종루가 먼저 잠길 거야.” 루미는 나무판을 들어 올렸다. “오늘은 이름을 새겨야 해.”

“누구 이름을요?”

“아직 몰라.”

“그럼 무슨 약속을 지키려는 건데요?”

루미는 해원을 똑바로 봤다. “사람이 돌아오면 종을 울리겠다고 약속했어. 누군지 말하면 네 지도에 그 사람 이름이 올라갈 거잖아.”

해원은 종이 위에 자기 이름으로 된 묘지를 떠올렸다. 누군가의 이름을 그리는 순간, 그 사람을 기다리는 일까지 자기 뜻대로 지도화할까 봐 두려웠다. “이름 없이도 길은 그릴 수 있어.”

“그럼 기다림도 그릴 수 있어?”

“그건 아직 몰라.”
바다는 여전히 고요했다. 그런데 섬 안쪽에서 종소리가 한 번 번졌다. 지도 위의 묘지 표식이 반짝였고, 해원의 이름 아래에 두 번째 글자가 떠올랐다.

‘주인.’

그리고 종소리는 물이 빠지기 전까지 세 번 더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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