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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 때만 만날 수 있는 사람2화

밀물 때만 만날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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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밀물 제보

관측소 운영 종료 통지는 공식 문서가 아니었다. 지안은 프린터 로그에서 내부 계정으로 출력됐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파일을 열어 보니 문서 끝에 전자결재 번호가 없었다. 제목과 날짜는 진짜처럼 보였지만, 결재선은 비어 있었다.

“가짜 통지일 가능성도 있네요.” 도윤이 말했다.

“가능성이 아니라 결재가 없어요. 공식 문서가 아닙니다.”

“그럼 누가 만들었는지 찾으면 되겠군요.”

“그 전에 관측 기록부터 복구해야 해요.”

지안은 내부 서버에서 센서 위치 변경 전후의 원자료를 내려받았다. 하지만 변경 당일 오후부터 시간표가 한 시간 밀려 있었다. 측정값이 틀린 건 센서 위치뿐만이 아니었다. 공사 장비가 전원을 공유하면서 기록기의 시계가 초기화된 듯했다.

“이 자료로는 물때가 언제 바뀌었는지 확정할 수 없어요.”

“그럼 기사에 못 쓰겠네요.”

“안전 공지에는 쓸 수 있어요. 관측이 불확실하다고 알리고, 배 출항을 보류하도록 요청해야 해요.”

도윤은 녹음기를 켰다가 다시 껐다.

“이 상황을 취재해도 됩니까?”

“저는 장비를 확인할게요. 취재는 정임 어촌계장과 이야기하세요.”

“그분은 질문을 싫어합니다.”

“그럴 수 있죠.”

“당신은 다 그렇게 말하네요.”

“사람이 말하기 싫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는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 이후에는 허락을 구하지 않고 관측소 문밖으로 나갔다. 지안은 혼자 센서함을 열었다. 위치 변경을 기록한 작업일지는 비어 있었다. 장비의 나사 머리는 새것과 낡은 것이 섞여 있었다. 누군가 임시로 옮겼다가 다시 고정한 흔적이었다.

지안은 조석 기준면을 다시 재려면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센서가 잠긴 곳으로 내려가야 해서 구명조끼와 안전줄을 꺼냈다. 바닷물이 낮아질수록 바위 틈에 얇은 거품이 남았다. 그녀는 줄을 허리에 묶고 사다리를 내려갔다.

“혼자 내려가면 안 됩니다.”

도윤이 돌아와 난간에서 말했다. 이번엔 녹음기를 가방에 넣고 양손을 비웠다.

“정임 씨는요?”

“오늘은 만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대신 제보가 본인한테서 나온 건 아니라고 했어요. 제보자 얘기를 물으니, 제가 먼저 질문을 잘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럼 다시 물어보지 마세요.”

“알겠습니다. 줄을 잡겠습니다.”

그가 안전줄을 확인했다. 지안은 바위 아래에서 수평계를 대고 센서 고정판을 살폈다. 바닥에 그어진 흰 선과 장비 위치가 일치하지 않았다. 표시가 3미터 옮겨져 있었다. 기계가 이동한 건 맞지만, 흰 선을 누가 그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진 찍어 주세요. 자와 기준점도 같이요.”

도윤은 손전등을 비추고 사진을 찍었다. 플래시가 반사되어 지안의 눈을 찔렀다.

“빛을 아래로 낮춰 주세요.”

“미안합니다.”

두 번째 촬영은 선명했다. 지안은 센서함 안의 작업일지에 사진 번호를 적었다. 그때 먼바다 쪽에서 경적이 울렸다. 어선 한 척이 항만 쪽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배는 어제 우회했던 선장 임정호의 배였다.

무전에서 정호가 호출했다. “남쪽 계류장으로 들어가면 그물이 걸릴 것 같아. 다른 길은 없나?”

지안은 수면을 살폈다. 조류 방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정상 기록으로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지만, 센서 위치가 바뀐 뒤의 값은 신뢰할 수 없었다. 그녀는 선장에게 정박해 기다리라고 했다.

“얼마나 기다려?”

“10분만요. 현장에서 확인하겠습니다.”

“내가 지금 못 들어가면 잡은 게 상합니다.”

지안은 무전기를 쥔 손에 힘을 줬다. 배가 기다리면 어획물을 잃을 수 있었다. 보내면 얕은 쪽으로 밀려날 위험이 있었다.

“정호 씨, 남쪽 부표까지 천천히 접근하세요. 엔진은 중립으로 두고, 제가 손전등을 두 번 비추면 멈추세요. 한 번이면 왼쪽으로 틀어 주세요.”

“그건 센서 수치에 따른 지시야?”

“아니요. 지금 눈으로 보는 물길과 부표를 기준으로 안내하는 겁니다. 위험하면 바로 돌아가세요.”

그녀는 임시 통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호는 한숨을 쉬었지만, 배를 천천히 움직였다. 도윤은 방파제 위에서 손전등을 들었다. 배가 부표 가까이 왔을 때, 표류하던 로프가 프로펠러 쪽으로 흘러갔다. 지안은 무전으로 엔진을 중립에 두라고 외쳤다. 정호가 즉시 반응했지만 배는 관성으로 밀렸다.

“로프가 걸립니다!”

도윤은 안전선 뒤에서 부표 쪽을 가리켰다. 지안은 물가로 내려가려다가 발을 멈췄다. 어제 손을 다친 데다 파도가 세졌다. 무리해서 내려가면 또 다른 구조 상황이 생길 수 있었다. 대신 그녀는 항만 크레인 기사에게 연락해 부표를 들어 올려 달라고 요청했다. 크레인 기사는 공사 구역이라 무단 조작할 수 없다고 했다.

“현장 책임자 태식 씨 연결해 주세요.”

태식이 통화에 들어오자 지안은 위치와 위험을 설명했다. 태식은 자기 인부를 보내겠다고 했지만 배가 가까이 있었다. 크레인으로 로프를 당기면 선체가 기울 수 있었다.

“인부가 아니라 정호 씨가 엔진을 끄고 닻을 내려야 해요. 먼저 그렇게 알려 주세요.”

도윤은 무전을 중계했다. 정호는 그물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닻을 내렸다. 로프가 프로펠러에 감기기 전에 배가 멈췄다. 태식의 인부들이 장대로 로프를 밀어냈다. 작업이 끝났을 때 정호의 그물 일부는 찢어졌고, 어획물 상자는 바닥에 넘어져 있었다.

“이 손해는 누가 보상해요?” 정호가 무전으로 물었다.

태식은 자기 업체가 공사 중 옮긴 로프라면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아직 원인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그는 그 말을 기록으로 남겼다. 정호는 화를 누르지 않았다.

“내 배가 들어올 길을 막았으면, 먼저 전화라도 했어야지.”

“맞습니다. 그건 제 책임입니다.” 태식이 답했다.

지안은 사고 보고서에 센서 좌표 오류와 표류 로프를 별개 항목으로 적었다. 하나의 원인으로 묶으면 누가 무엇을 책임지는지 흐려질 수 있었다. 도윤은 정호에게 취재 동의를 구했다. 정호는 배 사진만 쓰고 자기 이름은 빼 달라고 했다. 도윤은 그 조건을 메모하고, 녹음 버튼을 켜지 않았다.

배가 입항한 뒤, 지안은 원자료를 다시 계산해 관측소 경보를 수정했다. 센서 이동 전후의 값은 이어 붙이지 않았고, 누락 구간은 회색으로 표시했다. 도윤은 게시할 기사 초안을 지안에게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검토해 달라는 건가요, 허락해 달라는 건가요?”

“사실 확인을 부탁하는 겁니다. 기사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럼 제 이름을 넣지 말고, 센서 위치와 자료 한계를 구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기사에는 조작 의혹 대신 센서 이동으로 생긴 관측 공백과 항만의 임시 통제만 담겼다. 조회 수는 높지 않았다. 대신 어촌계 단체방에 정호가 안전하게 들어왔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정임은 짧게 답했다. ‘기록부터 다시 확인합시다.’

해질 무렵 두 사람은 어촌계 창고로 갔다. 정임은 주민들을 모아 두지 않았다. 그 대신 어획물 경매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빈 작업대에 지도 한 장을 펼쳤다. 손님이 듣지 않도록 창고 문을 반쯤 닫았다.

“이 자료를 기사에 쓰면, 우리 배가 몇 시에 어디 있었는지 사람들이 알게 되나요?”

도윤은 고개를 저었다. “원자료는 공개하지 않습니다. 안전 경보를 만들 때 필요한 구간만 기관에 제출하고, 주민 동의 없이는 배별 이동을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말로만 하면 안 돼요.”

정임은 작업대 서랍에서 사용 동의서를 꺼냈다. 그녀가 직접 만든 서식이었다. 공개 범위, 보관 기간, 연락 담당자 칸이 있었다. 하지만 ‘철회할 수 있는 시점’은 비어 있었다.

지안은 그 빈칸을 짚었다. “자료를 제출한 뒤에도 공개 전이라면 철회할 수 있게 적어요. 기관 제출 뒤 회수가 안 될 수 있는 자료는 그 전에 따로 설명하고요.”

정임은 펜을 도윤에게 건넸다. 그가 문구를 적으려 하자 지안이 멈춰 세웠다.

“정임 씨가 원하시는 말을 직접 쓰셔야 해요.”

정임은 한 글자씩 적었다. “경보와 구조를 위해 자료를 쓰되, 어업 기록을 기사 소재로 쓰지 않는다. 공개 전에 다시 동의를 확인한다.”

“기사에서 사건을 말하려면 사실 확인용 자료가 필요할 수 있어요.” 도윤이 말했다. “그때는 이름을 지우더라도 다시 허락을 구하겠습니다.”

“그걸 빼면 사건이 약해지겠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럼 약한 기사 쓰세요.”

도윤은 웃지 않았다. 그는 그 조건에 서명했고, 취재 기록에도 적용하겠다고 했다. 정임은 지안에게도 같은 서류를 내밀었다. 지안은 관측 자료를 기관에 제출하는 책임자로서 별도 보관과 접근 권한을 적었다. 동의서는 세 사람의 서명으로 끝났다. 누구도 악수하지 않았다. 대신 정임은 지도를 접어 서랍에 넣고, 열쇠를 자기 목에 걸었다.

창고를 나오자 해가 바닷물 위로 길게 비쳤다. 도윤은 녹음기를 꺼내지 않은 채 말했다.

“오늘 한 일도 기사에 쓸 수 없네요.”

“쓸 수 있어요. 동의한 내용 안에서요.”

“당신은 취재를 방해하는 게 아니라 조건을 만드는 거군요.”

“조건 없는 취재가 빠른 건 맞아요. 하지만 빠르다고 정확한 건 아니죠.”

그는 바로 반박하지 않았다. 지안은 그가 질문을 줄이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 침묵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정임의 말을 빼앗지 않았다.

해가 질 무렵, 지안은 센서 이설 전 위치를 찾기 위해 과거 점검 사진을 열었다. 사진의 배경에 선착장 벽과 붉은 안전등이 찍혀 있었다. 그 아래, 벽돌 틈에 종이 한 장이 끼어 있었다. 손으로 적힌 좌표와 날짜가 보였다.

그 날짜는 통지서가 출력된 날보다 사흘 전이었다.

지안은 사진을 확대했다. 좌표 옆에 이니셜 하나가 있었다. ‘ㅈㅇ’.

“정임 계장님 이름일까요?” 도윤이 물었다.

“아직 몰라요.”

“그럼 묻죠.”

“먼저 왜 그 메모가 거기 있는지 알아야 해요.”

“당신은 늘 질문보다 확인이 먼저네요.”

“틀린 질문은 사람을 몰아붙이니까요.”

도윤은 그 말을 되새기듯 조용해졌다. 그때 지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해양관측 운영기관에서 온 공식 통지였다. 관측소 운영 종료일이 30일 후로 확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엔 결재 번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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