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 때만 만날 수 있는 사람

1화: 관측소의 새벽
문지안은 센서 화면에 뜬 숫자를 세 번 지웠다. 수위가 한 시간 사이에 42센티미터나 변해 있었다. 기압과 바람은 잔잔했고, 먼바다의 파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숫자가 맞다면 선착장 바닥은 곧 잠겨야 했다. 하지만 창밖의 방파제는 아직 말라 있었다.
“고장인가요?”
후드에 빗물을 털며 들어온 서도윤이 물었다. 지안은 태블릿에서 로그를 열었다.
“고장인지 아닌지 확인 중이에요.”
“수치가 틀렸다고 쓰면 됩니까?”
“아직 아무것도 쓰지 마세요.”
“저도 아직 아무것도 안 썼어요. 다만 제보자가 빨리 답을 원합니다.”
“제보자가 누구죠?”
“말할 수 없습니다.”
지안은 그에게 의자를 권하지 않았다. 관측소는 밤새 장비를 확인하는 작업실이자, 파도 경보를 전달하는 지역 거점이었다. 도윤은 여기서 여섯 걸음 떨어진 문턱에 서 있었다. 그 거리를 지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녀는 센서 기록을 시간순으로 펼쳤다. 어제 오후 4시 20분부터 값이 달라졌다. 그 시각은 방파제 보강 공사가 시작된 때였다. 센서는 바닷물에 잠긴 압력관을 통해 수위를 계산한다. 관이 움직이거나 입구가 막히면 실제보다 큰 파고로 기록될 수 있었다.
“공사 위치가 센서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죠?” 도윤이 물었다.
“기록에는 18미터.”
“기록에는요?”
“현장에 가서 확인해야 해요.”
지안은 방수 점퍼를 입고 태블릿을 밀봉 주머니에 넣었다. 도윤도 녹음기를 들고 따라 나섰다.
“취재는 허락하지 않았어요.”
“기록은 켜지 않겠습니다. 제보가 여기서 나온 건 확인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따라와도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그는 잠깐 멈췄다가 한 발 뒤에 섰다. 그 거리로 함께 방파제를 걸었다. 바닷바람이 센서함의 철문을 흔들었다. 지안은 자물쇠를 열고 안쪽의 노란 케이블을 살폈다. 케이블 피복에 새 흠집이 있었다. 손톱으로 문지르자 소금기 사이에 밝은 구리색이 드러났다.
“누가 건드렸네요.”
“공사 중에 옮겼나?”
“그럴 수 있지만 이걸로 단정하면 안 돼요.”
“그럼 뭘 확인해야 하죠?”
“좌표와 수평, 고정 나사 세 가지요.”
그녀는 센서함에 작은 수평계를 댔다. 기포가 한쪽으로 치우쳤다. 지안은 기록 사진을 찍은 뒤, 케이블 옆을 따라 장비 위치를 확인했다. 설치 기준점이 있던 콘크리트 바닥에 새로 칠한 흰 선이 보였다. 기록에 적힌 위치보다 3미터 안쪽이었다.
“센서가 옮겨졌어요.”
“그게 큰 차이를 만드나요?”
“여긴 방파제 안쪽 흐름이 달라요. 파도가 부딪히면 수압이 다르게 기록될 수 있어요.”
도윤은 메모하려다 펜을 멈췄다.
“이걸 기사로 쓰려면 설명이 더 필요하겠네요.”
“확인되기 전에 기사부터 쓰지 마세요.”
“저도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지안은 그의 말투에서 불만보다 당황을 들었다. 그는 자기 제보가 틀렸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센서함을 다시 열었을 때 안쪽에서 낮은 진동이 울렸다. 지안은 장비를 끄지 않고 로그를 기록했다. 도윤은 바깥의 붉은 안전등이 꺼진 것을 발견하고 손전등을 켰다. 먼 쪽 방파제에 어선 한 척이 돌아오고 있었다. 조류 경보 표시는 아직 고수위로 남아 있었다.
“배에 연락해야 해요.” 지안이 말했다.
“수치가 틀릴 수도 있다면서요?”
“틀렸다고 확인한 게 아니에요. 위험 표시가 켜져 있으면 일단 통제해야죠.”
그녀는 어촌계 무전 채널을 열었다. 목소리가 바람에 끊겨 나갔다. 배의 선장은 항구까지 10분이면 들어간다고 답했다. 지안은 우회 입항로를 안내했다. 좁은 방파제 안쪽 대신 조류가 덜 센 남쪽 계류장으로 돌라고 했다.
“그쪽은 공사 중이에요.” 도윤이 말했다.
“표지판이 옮겨졌나 확인할게요.”
둘은 뛰지 않고 빠르게 걸었다. 미끄러운 바닥에서 뛰면 넘어질 수 있었다. 지안은 손전등으로 수면을 비추며 새로 설치된 부표를 찾았다. 부표는 예상보다 2미터 안쪽에 있었다. 노란 라인이 바람에 풀려 선착장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저걸 잡아야 배가 걸리지 않아요.”
도윤은 손을 뻗으려다 멈췄다. 물에 들어가면 위험했다. 지안은 구명조끼를 입고 난간에 안전줄을 걸었다. 방파제의 쇠고리가 녹슬어 있었다. 도윤은 고리를 다른 위치로 옮겨 다시 확인했다. 지안은 줄을 잡고 낮은 난간 너머로 갈고리를 내렸다. 부표를 끌어당기자 파도가 손등을 때렸다. 차가운 물이 소매 안으로 들어왔다.
“한 번 더 당기면 됩니다.”
“줄이 걸렸어요.”
도윤이 옆에서 보조줄을 당겼다. 부표가 방향을 바꾸며 물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도윤의 발이 젖은 미역에 미끄러졌다. 지안은 줄을 놓지 않은 채 팔꿈치로 그의 몸을 받쳤다. 둘은 난간에 부딪혔지만 바다로 떨어지지 않았다.
“다쳤어요?”
“괜찮습니다. 당신 손은요?”
지안은 손등을 보았다. 피부가 벗겨져 피가 얇게 번져 있었다. 그녀는 장갑을 벗지 않았다.
“이 정도는 괜찮아요.”
“그 말은 믿지 않겠습니다.”
도윤은 구급 주머니를 가져왔다. 지안은 잠시 망설이다 손을 내밀었다. 그는 상처를 닦으며 손을 너무 세게 잡지 않았다. 소독약이 닿자 지안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미안하다고 했고, 그녀는 손을 빼지 않았다.
무전기에서 어선이 안전한 계류장에 도착했다는 응답이 왔다. 지안은 경보를 내리지 않고 ‘센서 위치 오류 가능성 조사 중, 항만 접근 경로 통제 유지’로 공지를 바꿨다. 도윤은 녹음기를 끈 채였다.
“이제 제보자에게 뭐라고 할 거예요?” 지안이 물었다.
“수치가 조작됐다는 말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하겠습니다. 센서가 옮겨졌고, 입항 경로가 바뀌어 누군가 위험할 뻔했다고요.”
“그건 써도 됩니다.”
“당신 이름은 빼겠습니다.”
“제 이름을 빼는 게 아니라, 누구도 허락하지 않은 정보를 싣지 않는 거예요.”
“알겠습니다.”
정호의 배가 계류한 뒤에도 바로 끝나지 않았다. 프로펠러에 감긴 로프를 풀려면 공사 인부가 잠수복을 입고 들어가야 했다. 태식은 썰물까지 기다리자고 했고, 정호는 배 안에서 그물 상자를 세며 손가락으로 수를 다시 셌다.
“그물 한 칸이 찢어졌어요. 여기로 돌리라고 한 건 누굽니까?”
지안은 무전기를 들었다.
“제가 안내했습니다. 대신 정상 경로보다 위험이 낮은 쪽으로 보내려 했습니다. 로프가 떠내려간 건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예상 못 했다면 다음엔 누가 책임져요?”
“경로를 제안한 건 저고, 공사 구역 표식 관리 책임은 현장에 있습니다. 사고 원인을 구분해서 기록하겠습니다. 정호 씨 손해도 확인하겠습니다.”
정호는 그녀를 쳐다봤다. “기록한다고 그물이 돌아와요?”
“아니요. 하지만 누가 무엇을 했는지 남겨야 보상 협의를 할 수 있어요.”
도윤은 녹음기를 꺼내려다가 손을 내렸다. 정호는 그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내 이름 나오면 어촌계에서 다음 출항 못 하게 할 겁니다. 선박 이름도 쓰지 마요.”
“알겠습니다.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기록은 하세요. 대신 나중에 쓰기 전에 다시 물어봐요.”
도윤은 수첩에 조건을 적었다. 정호는 구명조끼를 벗으며 그물 조각을 태식에게 건넸다. 태식은 조각을 받아 업체의 작업 일지에 날짜와 위치를 써 넣었다. 지안은 그가 대충 넘기려던 항목에 ‘표류 로프 접촉’이라고 구체적으로 적었다.
“그걸 쓰면 공사 책임으로 남을 수 있어요.”
“이미 로프가 여기 있었어요. 제 기록으로 남겨야죠.”
정호는 손에 묻은 바닷물을 바지에 닦았다. 그의 어획 상자 중 하나가 넘어져 물고기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지안은 장갑을 끼고 상자를 세웠다. 정호는 처음엔 말리지 않았지만, 한 마리가 배수구 쪽으로 미끄러지자 재빨리 발로 막았다. 세 사람은 젖은 바닥에 엎드려 물고기를 상자에 다시 담았다.
“고맙다는 말은 안 합니다.” 정호가 말했다.
“안 하셔도 돼요.” 지안이 답했다.
“대신 내일 같은 일이 없게 하세요.”
“그러겠습니다.”
정호는 그 약속도 믿지 않는 얼굴로 배에 올랐다. 그는 어획 상자를 세어 손해 수량을 적었다. 지안은 그 숫자를 자기 보고서에 그대로 옮겼다. 경보 때문에 생긴 비용도 안전 판단의 결과였고, 숨기면 다음 경보가 더 늦어질 수 있었다.
관측소로 돌아오는 길, 바다는 점점 낮아졌다. 새벽빛이 센서함에 비친 흠집을 드러냈다. 누군가 장비를 옮긴 흔적은 분명했지만, 왜 그랬는지는 아직 몰랐다. 지안은 방파제의 흰 기준점을 다시 표시했다.
도윤은 방수 수첩에 ‘확인 전 보도 보류’라고 적었다. 그 문장을 쓰는 동안 펜촉이 종이를 뚫을 만큼 눌렸다.
“왜 이 제보를 그렇게 서둘렀어요?” 지안이 물었다.
“제보자는 오늘 안에 관측소 폐쇄 통지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누가요?”
“그건 아직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 저는 당신 말을 믿을 수 없어요.”
“믿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자료를 함께 보죠.”
지안은 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관측소 문을 열었을 때, 프린터에서 종이 한 장이 나와 있었다. 아무도 프린터를 켜지 않았는데도 출력된 페이지였다. 상단에는 ‘관측소 운영 종료 예정일: 30일 후’라고 적혀 있었다.
도윤이 숨을 들이켰다.
“제보가 맞았네요.”
지안은 종이를 들지 않았다. 먼저 화면을 촬영한 뒤 프린터함을 열어 발신 기록을 확인했다. 출력 명령은 어젯밤 내부 계정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방금 전의 바다를 떠올렸다. 숫자 하나가 틀리면 배 한 척이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관측소 자체가 사라질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