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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 때만 만날 수 있는 사람3화

밀물 때만 만날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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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바다가 남긴 시간

공식 통지서가 도착한 뒤, 관측소 안의 시계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지안은 종료일까지 남은 날짜를 칠판에 적지 않았다. 숫자를 보는 순간부터 모든 일이 끝난 것처럼 느껴질까 봐서였다. 대신 운영기관의 결정 사유와 예산표를 내려받았다. 폐쇄 근거는 ‘관측 데이터 신뢰도 저하 및 유지비 대비 활용도 부족’이었다.

“자료가 왜 틀렸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신뢰도 저하라고 썼네요.” 도윤이 말했다.

“센서 이설 기록을 제출하면 재심할 수는 있어요. 다만 그 전에 우리가 확보해야 할 건 정확한 이설 날짜예요.”

그들은 예전 점검 사진을 시간순으로 넘겼다. 사진의 배경에 찍힌 붉은 안전등 모양으로 촬영 위치를 맞췄다. 지안은 벽돌 줄의 각도와 수평계를 대조해 센서가 옮겨진 날을 좁혀 갔다. 도윤은 사진이 올라온 내부 공유폴더의 기록을 확인했다. 마지막 수정자는 외부 공사 계정이었다.

“이 계정은 태식 씨 회사 거예요.”

“계정이 그렇다고 태식 씨가 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어요.”

“맞습니다. 질문을 바꾸죠. 작업 기록을 보게 해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도윤은 먼저 태식에게 전화했다. 그는 공사기록을 제출하겠다고 했지만, 작업자 이름과 연락처는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 노동자들이 온라인에 신상이 퍼지는 일을 걱정하고 있었다. 지안은 작업 위치와 시간만 확인할 수 있으면 된다고 답했다. 도윤은 이름 없는 근무표를 받아 보도 자료와 구분해 보관했다.

기록에는 센서를 옮긴 날이 적혀 있었다. 측정 장비가 고장 나 임시로 안쪽 기준점에 옮겼지만, 원위치 복구를 놓쳤다. 좌표 메모의 ‘ㅈㅇ’은 정임이 아니라 작업자 장재욱의 이니셜이었다. 그는 야간에 일하다가 기록을 종이쪽지에 남겼고, 다음 근무자에게 전달하지 못한 채 현장을 떠났다.

“그 사람을 찾아야 할까요?” 도윤이 물었다.

“장비가 지금은 재설치됐는지 확인하면 돼요. 사람을 공개적으로 지목할 이유는 없습니다.”

“운영기관에는 이름을 알려야 해요?”

“작업 책임 확인에 필요하면 제한된 담당자에게 전달해야죠. 하지만 기사에는 그럴 필요 없어요.”

지안은 현재 센서를 기준점에 다시 맞췄다. 수평계를 대고, 고정 나사를 교체하고, 해수면 기준을 재측정했다. 도윤은 사진 촬영을 돕되 손을 대지 않았다. 지안은 측정값과 이전 값을 따로 저장했다. 원자료의 공백은 메울 수 없었다. 공백을 표시한 채 새 관측을 시작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날 오후 정임이 관측소에 왔다. 손에는 접힌 폐쇄 통지 초안이 있었다. 그녀는 공식 통지가 도착하기 전부터 어촌계에 소문이 퍼지는 걸 막으려 했다.

“관측소가 없어지면 누가 대피 시간을 알려 줘요?”

“휴대전화 경보가 있죠.” 운영기관 담당자와 통화한 지안이 답했다.

정임은 고개를 저었다.

“휴대전화가 안 터지는 포구가 있어요. 어르신들은 알림을 꺼 놓기도 하고. 그걸 알아서 여기에 사람을 세워 둔 거예요.”

“관측소를 계속 운영하려면 예산이 필요합니다.” 지안이 말했다. “기록에 오류가 생긴 이유를 설명하고, 실제 이용을 보여 줘야 해요.”

“어선 이름이나 위치를 공개하지 않고 할 수 있나요?”

“운항 기록은 동의 없이 내보내지 않을게요.”

정임은 도윤을 봤다.

“그 말도 기사에 넣을 건가요?”

“허락하시면, 관측소 운영 계획을 주민들과 같이 만들고 있다는 사실만 쓰겠습니다. 어선 기록은 쓰지 않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도윤은 녹음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정임은 그가 기다리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말을 이었다.

“그래도 자료에는 남겨야겠어요. 이 마을에서 얼마나 쓰는지.”

지안은 주민이 직접 알림을 확인하고 대피 여부를 기록하는 시범표를 제안했다. 정임은 이름 대신 선박별 익명 번호를 쓰고, 기록은 관측소 안에서만 보관하자는 조건을 달았다. 도윤은 기사에 숫자를 인용하려면 어촌계의 별도 동의가 필요하다고 확인했다. 그 합의는 폐쇄를 취소하진 않았지만, 재심 신청에 필요한 자료의 범위를 만들었다.

저녁 무렵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방파제에서 센서 알림이 울렸다. 새 위치에서 측정된 수위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지안은 기압과 바람을 함께 확인했다. 기록 오류가 사라졌다고 해서 바다가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남쪽 만에 있는 소형 어선 한 척이 아직 출항해 있었다.

정임은 무전기를 잡았다. “저 배는 통발을 확인하러 나갔어요. 선장은 손목이 좋지 않아서 혼자 노를 젓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아세요?”

“마지막 교신은 동쪽 암초 근처였어요.”

지안은 경보 기준을 확인하고 운영기관에 연락했다. 담당자는 공식 경보가 아직 발령되지 않았다며 상황을 더 보자고 했다. 하지만 센서의 수위는 빨라지고 있었다. 지안은 현재 관측과 예측이 다르다는 점, 작은 배 한 척이 바다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했다. 도윤은 무전 채널에 끼어들지 않았다. 대신 방파제 지도 위에서 구조선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동쪽 암초 쪽은 파도가 벽을 넘어와요. 구조선을 북쪽 입구로 보내면 돌아가야 하지만 안전합니다.”

“배가 거기까지 버틸까요?” 정임이 물었다.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출항 통제를 먼저 하고, 구조선은 준비시켜야 합니다.”

지안은 구조 요청을 접수했다. 곧 주민들이 창고에서 구명조끼와 손전등을 가져왔다. 아무도 물에 뛰어들지 않았다. 정임은 주민들을 해안선 뒤로 물렸고, 태식은 공사 인부들을 모아 접근로를 비웠다. 도윤은 현장 사진을 찍지 않고 상황판의 시각만 기록했다.

구조선이 북쪽 입구를 돌아 나갔다. 무전이 끊겼다가 다시 연결되었다. 작은 어선은 암초에서 벗어나 바람이 덜한 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선장은 배에 물이 들어왔다고 보고했다. 지안은 구조선에 조류가 약한 쪽으로 접근하라고 안내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지시를 두 번 확인했다.

“현재 파고 1.2미터, 상승 추세. 속도 낮추고 북서쪽에서 접근하세요. 선박 사이 거리를 유지하십시오.”

구조선은 어선을 끌지 않았다. 먼저 펌프와 구명조끼를 전달하고, 선장이 스스로 조종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십오 분 뒤 두 배가 함께 포구 안으로 들어왔다. 선장은 젖은 옷을 갈아입으며 지안에게 말했다.

“경보가 빨랐어요. 어제보다.”

“오늘은 새 기준점으로 측정했습니다.”

“그럼 다음에도 여기서 알려 줘요.”

그 말은 운영기관의 통지서보다 단순했지만, 지안은 받아 적었다. 정임은 그의 이름을 보관 기록에 쓰기 전에 물었다. 그는 허락했다. 도윤은 기사에 넣어도 되는지 다시 확인했고, 선장은 “배 이름만 빼 달라”고 했다.

구조선이 포구로 들어온 뒤에도 지안은 경보를 내리지 않았다. 센서 기록만 정상화되었다고 바다가 안전해진 건 아니었다. 그녀는 구조대원과 선장에게 직접 파고가 낮아졌는지 물었고, 임시 부표가 다시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했다. 현장에 있던 태식은 공사 구역의 로프를 전부 걷어 올리라고 작업자에게 지시했다. 작업자가 피로 때문에 장갑을 벗고 쉬려 하자 태식은 교대 인력을 불렀다. 지안은 쉬지 말라고 몰아세우지 않았다. 대신 출입 통제를 자기가 맡아 다음 교대까지 기다렸다.

정임은 수건을 들고 와 지안의 젖은 손을 감쌌다. “당신도 손이 다쳤어요.”

“어제 손등만 긁혔어요.”

“긁힌 상처도 물에 담그면 곪아요.”

정임은 지안이 거절하기 전에 수건을 쥐여 줬다. 도윤은 옆에서 온수통을 가져왔다. 지안은 고맙다고 말했지만, 도윤의 손이 자기 손목에 닿기 전에 수건을 접어 스스로 감았다. 그는 그 행동을 보고 손을 거뒀다.

“제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부탁하면 도와주세요.”

“네.”

“지금은 옆에서 컵만 잡아 주세요.”

그는 종이컵을 받쳐 들었다. 그녀는 물을 마시고, 다시 통제선 쪽으로 돌아갔다. 도움을 거절하는 것과 사람을 밀어내는 건 달랐다. 도윤은 그 차이를 알아들은 듯했다.

한 시간 뒤 운영기관 담당자가 재심 신청 자료를 보내 달라고 연락했다. 센서 이동 기록과 오늘의 관측은 제출하되, 어선 정보는 마스킹할 수 있다는 답이었다. 지안은 모든 원자료에 시간, 위치, 수정 여부를 붙였다. 도윤은 기사에서 ‘조작 의혹’을 제목에서 뺐다. 제목은 ‘섬 관측소, 센서 이설 오류 바로잡아…폐쇄 재심 요청’이었다.

기사가 올라간 뒤 반응은 엇갈렸다. 어떤 주민은 관측소가 필요하다고 했고, 어떤 주민은 세금만 낭비한다고 말했다. 정임은 댓글을 읽다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다들 자기 바다를 보고 있네요.”

“그래서 같이 봐야죠.” 지안이 답했다.

“당신은 여기 남을 건가요?”

지안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운영기관에서 재심 동안 파견 근무를 연장하겠다는 메일이 왔다. 연장은 확정이 아니었다. 도윤은 그녀의 답을 기다렸다.

“일단 남아서 다음 측정을 하겠습니다.”

“그다음은요?”

“그다음은 그때 정할게요.”

도윤은 그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저녁을 같이 먹자고 물었지만, 기사 취재와 별개로 묻는다고 먼저 덧붙였다. 지안은 내일 오전 관측이 끝난 뒤라면 괜찮다고 했다.

다음 날 센서함을 열자, 지안은 어제 표시해 둔 기준점 옆에 새 흰 선이 그어진 것을 발견했다. 선은 기존 위치가 아니라 바다 쪽으로 3미터 더 나가 있었다. 누군가 밤사이 장비를 다시 움직인 걸까. 고정 나사에는 아직 공구 자국이 없었다.

그녀는 사진을 찍고, 도윤을 불렀다. 기록의 시각은 새벽 3시 12분이었다. 관측소 내부 카메라에는 아무도 찍히지 않았다.

그때 무전기에서 정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안 씨, 선착장에 누가 와 있어요. 당신한테만 보여 주겠대요.”

지안은 화면을 끄지 않았다. 이번엔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먼저 기록을 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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