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도서관의 조수 예보

2화: 잠수정 안의 연구원
해온은 궤도선의 연료 계산을 세 번 다시 했다.
지구 기지까지 접근하면 도서관으로 돌아갈 연료는 기준치 아래로 떨어졌다. 귀환에 필요한 항로가 달라지면 궤도선은 바다에 착수해야 할 수도 있었다. 채원은 그 계산을 보고도 출발을 취소하지 않았다. 세나에게서 받은 두 번째 통신에는 잠수정 압력실 센서가 정상이라고 나왔지만, 수동 잠금 장치가 뻑뻑하다는 말이 포함돼 있었다.
“기록에 나온 고장과 같을까요?”
“같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해온이 답했다.
채원은 세나의 말이 책의 내용을 반박하는지, 확인하는지 판단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고 시각과 수압 통로 연결 종료 시각을 나란히 적었다. 기록이 현실보다 앞서 있다면 아직 바꿀 시간이 있었다. 반대로 책이 관측된 사건을 늦게 적은 것이라면, 이미 사고가 시작됐을 수 있었다.
이라가 궤도선의 접근 경로를 계산했다. 수압 통로를 직접 통과하지 않고, 외부 도킹 링을 이용하면 기지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도킹 링에는 자동으로 잠금되는 기능이 없었다. 사람이 바깥으로 나가 수동 고정해야 했다.
“제가 나갈게요.” 해온이 말했다.
“선체 작업은 제가 더 익숙해요.”
“사서가 우주복을 입고 나가는 건 기록에 없잖아요.”
“책에는 제 실종이 있다고 적혀 있어요. 누가 밖에 나가느냐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해온은 반대했지만 채원은 우주복 점검표를 가져왔다. 그녀는 도서관에서 오래된 수압 통로를 정비하며 잠금 장치에 익숙해졌다. 해온은 그녀의 산소량과 tether 길이를 확인하고, 작업 시간을 9분으로 제한했다. 시간이 지나면 무조건 회수하기로 합의했다.
궤도선이 지구 쪽으로 움직이자 도서관의 책들이 한꺼번에 얇게 떨렸다. 표지의 글자가 바뀌었다. ‘사망부’라고 적힌 책이 ‘구조일지’로 바뀌고, 다른 책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출생 기록이 나타났다. 이라는 변화를 모두 기록했지만 의미를 해석하지 않았다.
도킹 링에 접근한 뒤 해온은 자세 제어를 멈췄다. 채원은 안전줄을 연결하고 외부로 나갔다. 어둠 속에서 지구의 바다가 검게 펼쳐졌다. 도킹 장치의 한쪽 고리가 휘어 있었고, 잠금핀은 반쯤 빠져 있었다. 그녀는 핀을 밀어 넣으려 했지만, 고정 링이 압력 때문에 떨렸다.
“도킹 링의 힘을 줄여요.” 채원이 말했다.
해온은 자세 제어를 조금 바꿨다. 링의 흔들림은 줄었지만, 궤도선은 기지에서 더 멀어졌다. 채원은 한 손으로 고정핀을 밀고, 다른 손으로 안전줄을 잡았다. 핀이 들어가려는 순간 장갑의 손가락이 걸렸다. 그녀는 힘으로 잡아당기지 않고, 공구를 사용해 고리를 넓혔다.
“남은 시간 3분.” 해온이 알렸다.
“핀 하나만 더 고정하면 됩니다.”
“산소량이 20퍼센트 떨어졌어. 돌아와.”
채원은 마지막 잠금쇠를 밀어 넣었다. 도킹 링의 경보가 멈췄다. 그녀는 작업을 끝내고 궤도선에 들어왔다. 우주복 외부에 바닷물 흔적이 묻어 있었다. 수압 통로가 아니라 외부 선체에 물이 닿았다는 건 예상 밖이었다.
그들은 심해 관측기지에 도착했다. 세나는 압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책에 적힌 이름과 자신이 같은 사람인지 확인하려 했다. 채원은 미래 기록을 보여 주지 않고, 수동 잠금 장치의 이상을 점검하자고 제안했다.
세나는 잠수정에 탑승하기를 거부했다. 압력실을 열면 연구 샘플이 바닷물에 노출될 수 있었다. 그녀는 그 샘플이 기지의 유일한 해저 생물 기록이라고 말했다. 해온은 인명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채원은 샘플과 사람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 세나에게 맡겼다.
세나는 수동 잠금 장치에 안전 핀을 끼우는 조건으로 압력실 점검에 동의했다. 세 사람이 잠금판을 열자 센서의 배선 하나가 끊겨 있었다. 표시등은 정상처럼 켜졌지만, 실제 잠금은 풀려 있었다.
그때 기지 외부의 조석 센서가 만조 경보를 울렸다. 책에서 본 사망 시각이 다가왔다. 잠금판 안쪽에서 수압이 올라갔다. 세나가 뒤로 물러나는 순간, 안전 핀이 튕겨 나갔다.
압력실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세나는 압력실 문이 밀려오는 동안에도 샘플 보관함을 닫으려 했다. 기지의 기록물은 고압 수조 안에 있어야 했고, 물이 유입되면 압력 균형이 깨질 수 있었다. 채원은 그에게 샘플을 포기하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보관함의 전원을 끄면 압력실을 닫을 수 있는지 물었다.
“전원을 끄면 냉각이 멈춰요. 샘플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몇 분 동안 버틸 수 있죠?”
“열두 분.”
해온은 압력실 문을 지탱하며 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을 불렀다. 8분, 7분. 세나는 문 안으로 들어가 비상 밸브를 찾았다. 채원은 외부 잠금판의 회로를 확인했다. 표시등이 켜져 있어도 실제 잠금핀은 빠져 있었다. 그녀는 회로를 우회할 수 있었지만, 그 경우 잠금 상태를 기지에서 확인할 수 없게 된다.
“수동으로 걸면 원격 경보가 사라져요.” 채원이 말했다.
“그럼 다음 문제를 놓칠 수도 있겠네요.”
“지금 문이 열리면 기지 전체가 위험해져요.”
해온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 손을 바꿨다. 장갑의 손바닥이 금속에 눌려 찢어졌다. 세나가 안쪽에서 밸브를 돌리자 수압이 낮아졌고, 문이 잠깐 멈췄다. 채원은 그 사이에 고정 핀을 밀어 넣었다.
핀은 끝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는 무리하게 망치질하지 않고, 잠금판의 축이 비뚤어졌는지 확인했다. 기지 바닥이 떨리며 축이 조금 돌아왔다. 그 순간 핀이 맞물렸다. 문이 닫히기 시작했지만, 해온의 팔이 레버 아래에 끼였다.
채원은 그를 끌어당기지 않았다. 먼저 압력 게이지가 안정됐는지 확인했다. 세나가 안쪽에서 밸브를 잠갔고, 해온은 손목을 빼냈다. 피부가 벗겨져 피가 배어 나왔다. 그는 손을 흔들지 않고 팔을 높이 들었다. 압력실이 완전히 닫히고 나서야 통증을 확인했다.
세나는 샘플 보관함을 돌아봤다. 온도는 허용 범위를 벗어나기 직전이었다. 전원을 다시 켜면 기록 일부가 손실될 수 있었다. 그녀는 원본 데이터를 저장한 뒤 냉각을 재가동하기로 했다. 채원은 데이터를 복사하는 동안 시간표를 기록했다. 잠금 장치의 수동 조작 시각과 압력 변화가 일치했다.
“책이 말한 사고와 같았습니까?” 세나가 물었다.
채원은 책의 사망 문장을 보여 주지 않았다. “아직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개입하면서 조건이 바뀌었어요.”
해온은 치료를 받으며 기지의 외부 카메라를 확인했다. 도킹 링 바깥으로 무언가가 지나간 흔적이 있었다. 화면에는 작은 그림자만 찍혔다. 세나는 심해 생물이 아니라 케이블의 흔들림일 수 있다고 했다. 채원은 두 가능성을 모두 기록했다.
그들은 기지의 귀환 연료와 산소 잔량을 확인했다. 궤도선은 귀환 기준보다 연료가 4퍼센트 부족했다. 해온은 기지에서 연료를 보충할 수 있는지 물었지만, 세나는 연료 모듈이 고장 났다고 했다. 만조 전에 출발하지 않으면 도서관과의 통신이 끊길 수 있었다.
“저는 여기 남겠습니다.” 세나가 말했다.
그녀는 연구 샘플을 버릴 수 없었고, 기지의 다른 동료들도 있었다. 채원은 세나가 남으면 미래 기록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었다. 해온은 세나를 강제로 데려갈 수 없다고 했다. 구조는 요청을 받은 사람의 선택을 포함해야 했다.
그때 사망부의 페이지가 기지 프린터로 전송됐다. 책의 문장과 같은 글씨가 출력됐다. 이번에는 세나의 이름이 아니라 해온의 이름이 사망자로 적혀 있었다.
세나는 잠수정 안쪽에 남은 샘플 상자를 바라봤다. 그녀가 연구해 온 심해 생물은 압력 변화에 따라 발광 패턴이 달라졌다. 사고가 나면 샘플만 손실되는 것이 아니라, 몇 년간의 관측 자료도 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압력실 문을 열어 둔 채로는 누구도 안전하지 않았다.
그녀는 샘플 중 일부를 폐기하는 데 동의하고, 핵심 관측 기록만 기지 서버에 복사했다. 이라의 원격 저장 공간은 부족했지만, 채원은 오래된 책 목록을 재정렬해 일부 공간을 확보했다. 오래된 자료를 지우지 않고, 덜 중요한 중복본을 압축했다.
해온은 문이 안정된 뒤 팔의 상처를 치료했다. 그의 손목은 부어 올랐지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었다. 지구 귀환 전에 의료 진단을 받아야 했다. 그는 세나에게 먼저 귀환할지, 기지에 남을지 다시 물었다. 세나는 자신이 남기로 한 선택을 바꾸지 않았다.
“그럼 다음 만조 전에 수동으로 통신을 열어 주세요.”
“열리지 않으면요?”
“기록을 남기고 다음 주기를 기다릴게요.”
그 말은 안전을 보장하지 않았지만, 세나가 위험을 이해하고 결정했다는 뜻이었다. 채원은 그 사실을 책에 대신 적지 않고, 기지의 관측 일지에 기록했다.
잠금판이 닫힌 뒤에도 세나는 잠수정의 내부 압력을 세 번 확인했다. 숫자는 정상 범위였지만, 경고등은 한동안 꺼지지 않았다. 그녀는 센서만 믿지 않고 수동 게이지를 읽었다. 둘의 수치가 일치하자 그제야 헬멧을 벗었다. 안전을 확인하는 순서가 기록 속 사고와 달라졌는지, 채원은 시간을 적어 두었다.
채원은 기록을 읽은 뒤에도 해온을 환자로 대했다. 그는 자신의 사망 문장을 봤지만, 구조를 중단할지 계속할지 스스로 판단하겠다고 했다. 해온은 항해를 맡지 않기로 했고, 그 대신 세나의 기지 기록을 정리했다. 역할이 바뀌어도 그는 구조 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세나는 문장에 이름이 적혔다는 이유로 누구를 희생시키지 않겠다고 말했다. 채원은 책을 믿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기록이 바뀌는지 보려면 다음 만조까지 원본을 보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나는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페이지를 직접 읽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