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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도서관의 조수 예보1화

달빛 도서관의 조수 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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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아직 쓰이지 않은 사망부

임채원은 책장이 스스로 넘어가는 소리를 듣고 계단을 멈췄다.

해저 도서관의 4번 서가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간조가 끝나고 만조가 시작될 때마다 책은 저절로 내용을 갱신했다. 책장 가장 깊은 곳의 ‘지구 연안 재난 기록’은 지난 만조 이후 봉인된 상태였다. 그런데 오늘은 표지가 열리고, 종이 사이로 바닷물 냄새가 났다.

“이라, 압력 차이를 확인해.”

“외부 수압은 설계 범위 안입니다. 책의 수분 함량은 0.3퍼센트 상승했습니다.”

관리 인공지능 이라는 이상을 기록했지만 원인을 판단하지 않았다. 채원은 조석표를 확인했다. 다음 만조까지 18분. 책이 간조 때 고정될 때까지 내용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짧았다.

채원은 방수 장갑을 끼고 책을 펼쳤다. 페이지에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해양 사고가 적혀 있었다. ‘심해 관측기지 M-7, 잠수정 회수 중 압력실 파손. 연구원 장세나 사망.’ 날짜는 지구 기준 내일이었다. 사망 시각은 달 궤도 기준 만조 직전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 이름은 누가 입력했지?” 항해사 서해온이 물었다.

“아직 작성되지 않은 기록이라고 적혀 있어요.”

해온은 책을 믿지 않았다. 그는 잠수정이 사고를 당하기 전에 세나에게 경보를 보내자고 했다. 채원은 지구와의 통신 지연이 2시간이라고 알려 줬다. 메시지가 도착할 때면 기록의 날짜가 바뀔 수 있었다.

“그럼 우리가 직접 가야 해.”

“도서관은 이동할 수 없어.”

해온은 도서관과 심해 기지를 잇는 수압 통로의 연결 상태를 확인했다. 통로는 자료만 전송하도록 설계돼 있었고, 사람은 통과할 수 없었다. 도서관 궤도선으로 지구에 접근하려면 연료의 절반을 써야 했다. 채원은 사서로서 기록을 보존해야 했고, 해온은 항해사로서 귀환 연료를 지켜야 했다.

둘은 페이지를 다시 읽었다. 세나의 사망 기록 아래에는 작은 문장이 덧붙어 있었다. ‘잠수정은 11분 먼저 회수됐지만, 인명 확인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채원은 이 문장이 사망의 원인인지, 결과인지 알 수 없었다.

해온은 기지의 긴급 호출을 보냈다. 응답은 즉시 오지 않았다. 통신 채널에는 심해 연구원의 호흡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채원은 책의 문장을 그대로 말하지 않고, 잠수정 회수 절차를 다시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상대는 자신을 장세나라고 소개했다.

“회수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어요.” 세나가 말했다. “누가 그 절차를 묻는 거죠?”

“해저 기록관의 임채원입니다. 잠수정 압력실의 수동 잠금 상태를 확인해 주세요.”

“압력실은 정상이에요. 센서도 문제없고요.”

채원은 책에 적힌 사망 시각을 말할 수 없었다. 기록이 맞다면 경고를 구체적으로 알려야 했지만, 기지에서 책을 믿게 할 근거가 없었다. 그녀는 압력실을 한 번 더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세나는 귀찮다는 듯 답했지만, 곧 소리가 끊겼다.

이라가 통신 간섭을 보고했다. 수압 통로의 연결 신호가 약해지고 있었다. 만조가 오면 통로는 닫히고, 다음 연결은 12시간 뒤였다. 해온은 궤도선을 기지 쪽으로 움직이기 위해 계산을 시작했다. 연료를 쓰면 도서관으로 돌아오는 길이 위험해졌다.

“기록을 구하려고 사람을 놓치면 사서는 무슨 일을 하는 거죠?” 해온이 물었다.

채원은 대답하지 못했다. 책이 한 장 더 넘어갔다. 새 페이지에는 사고의 결과가 적혀 있었다. ‘장세나는 살아남았으나 구조 작업자는 사망.’ 그 아래 이름은 번져 있었다.

“한 명을 구하면 다른 사람이 위험해져요.”

“아니요. 아직 아무도 구하지 않았어요.”

채원은 도서관의 조석 기록을 열었다. 책이 페이지를 바꾼 시각과 수압 통로 신호가 약해진 시각은 43초 차이였다. 그 차이가 지구와 도서관 사이의 통신 지연을 설명할 수도 있었다. 그녀는 책의 내용을 삭제하지 않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전 원본을 복제했다.

“해온 씨, 항로를 계산해 주세요. 귀환 연료의 최소치를 알려 주세요.”

해온은 계산을 시작했다. “최소치로 움직이면 한 번만 접근할 수 있어.”

“그 한 번을 세나 씨에게 쓰죠.”

만조 경보가 울렸다. 통로의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채원은 책을 덮지 않았다. 마지막 줄에 새 문장이 나타났다.

‘구조 요청을 받은 사서 임채원, 다음 만조에 실종.’

해온은 항로를 잡기 전 도서관의 연료 잔량과 통신 가능한 시간을 계산했다. 궤도선은 지구 방향으로 한 번 가속하면, 귀환 궤도에 필요한 연료가 14퍼센트 남았다. 최소 귀환 기준은 18퍼센트였다. 그는 계산 결과를 숨기지 않고 채원에게 보여 줬다.

“접근은 할 수 있어도 돌아오는 게 보장되지 않습니다.”

“수압 통로로 자료를 보내는 건요?”

“통로가 만조 때마다 닫혀요. 세나 씨가 위험하면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연결이 끊길 수 있습니다.”

이라가 기지의 대체 통신 주파수를 검색했다. 연결 성공 확률은 낮았고, 지구에서 응답을 받을 때까지 2시간이 걸릴 수 있었다. 채원은 메시지에 사망 기록의 문장을 그대로 넣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잠수정의 수동 잠금 장치와 압력 센서의 교차 확인을 요청했다. 기록을 알려 주면 상대의 행동이 바뀌고, 그 변화가 책에 다시 반영될 수 있었다.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막을 기회를 놓칠 수도 있어요.” 해온이 말했다.

“말하면 기록을 따라 행동하게 만들 수 있어요. 아직 원인을 모르니까요.”

채원은 문장 하나를 지웠다가 다시 썼다. ‘정상 표시등을 믿지 말고 실제 잠금핀을 확인해 주세요.’ 세나가 책을 믿지 않아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발신 전 채원은 메시지 수신 범위를 세나에게만 한정했다. 이라가 전송 버튼을 눌렀다.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채원은 사망부의 종이를 관찰했다. 페이지 가장자리에는 소금 결정이 맺혀 있었다. 간조 때 고정되는 종이에서는 결정이 사라지고, 다음 만조 직전에 다시 나타났다. 책은 물에 젖지 않았는데도 바다의 상태를 따라 변했다. 채원은 페이지 무게와 온도, 수분량을 기록했다.

“이게 기록의 원인일까요?”

“관측값일 수 있어요. 원인이라고 부르려면 더 많은 자료가 필요합니다.”

채원은 해저 도서관에 보관된 과거 침수 지도를 꺼냈다. 지구의 해안선이 후퇴한 뒤, 자료를 달 궤도로 옮기는 사업이 시작됐다. 아카이브 문은 그 자료를 저장하는 시설이었다. 그러나 지금 사망부는 단순한 과거 기록을 넘어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건을 적고 있었다.

그녀는 책에 이름이 나온 세나의 인사 기록을 검색했다. 자료에는 장세나가 심해 생물의 이동 경로를 연구한다고 적혀 있었다. 최근 수신된 관측값은 잠수정의 압력실이 한 번 열린 것으로 기록됐지만, 기지에서는 고장 보고가 없었다.

수호? 해온은 데이터의 시각을 다시 확인했다. 통신 지연 때문에 기록된 시각은 지구 현지 시각보다 2시간 늦었다. 책에 적힌 사망 시각과 사고가 발생할 때의 조석이 맞는지 계산하려면 현재 지구 위치가 필요했다. 이라는 좌표 보정을 했고, 만조 예상 시각은 책에 적힌 시간에서 11분 앞당겨졌다.

“11분 차이면 준비할 시간이 줄어요.”

“하지만 기록을 믿지 않으면 11분은 의미가 없어요.” 해온은 안전 기준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채원은 답장을 기다리며 도킹 장치의 결함을 점검했다. 만조가 오면 외부 통로의 잠금이 수압으로 밀릴 수 있었다. 원격으로도 잠글 수 있지만, 통신이 끊기면 도서관 내부에서 수동으로 돌려야 했다. 그녀는 사서 업무 대신 설비 점검 장갑을 끼고, 손잡이가 끝까지 돌아가는지 확인했다.

통로 안에서 물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이라는 수압 누수를 감지하지 못했다. 채원은 작은 방울을 면봉으로 옮겨 무게를 쟀다. 책에서 난 물인지 통로에서 스며든 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면봉을 봉인하고, 만조 뒤에도 누수가 반복되는지 기록하기로 했다.

해온은 출발을 보류했지만, 항로 계산을 계속했다. “만조 전에 결정해야 해요. 다음 연결은 12시간 뒤입니다.”

채원은 사망부를 덮지 않은 채 답했다. “세나 씨의 선택을 먼저 확인하죠.”

무전기에서 응답이 왔다. 세나는 압력실 수동 잠금핀을 찾았지만, 설비 점검표에는 분해하지 말라는 경고가 있다고 말했다. 채원은 잠금핀을 강제로 빼지 말고, 압력 수치를 두 번째 계기로 교차 확인하라고 요청했다.

세나의 답이 오기 전, 책의 다음 줄이 바뀌었다.
채원은 미래의 사망 기록을 읽은 뒤에도 세나에게 바로 경고하지 않았다. 기록을 알려 주면 그가 그 문장대로 행동할 수 있었고, 그것이 사고를 막을 수도 만들 수도 있었다. 대신 손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치를 점검해 달라고 했다. 그 요청은 책의 내용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실제 위험을 찾는 방법이었다.

해온은 자신의 항로 계산을 채원에게 보여 줬다. 지구에 접근하면 귀환 연료의 안전선 아래로 내려갔다. 그가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동료를 구하려는 마음 때문이었지만, 채원은 그 결정이 자신의 책임만은 아니라고 했다. 세나가 도움을 원할지 먼저 물어보는 것이 순서였다.

“연결되면 그 사람에게 선택지를 설명할게요.”

“기록이 틀렸으면요?”

“그때는 기록을 바꾸면 됩니다.”

채원은 그 말을 하고서야 책을 향한 두려움이 조금 줄었다. 페이지는 미래를 확정하지 않았다. 종이는 지금까지 관측된 조수의 흔적을 남길 뿐이었다. 아직 선택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다른 길이 남아 있을 수 있었다.
해온은 출발을 결정하기 전에 지구 기지의 좌표를 다시 확인했다. 마지막 통신의 지연을 반영하면 세나의 현재 위치는 오차 범위 안에서도 안정적이었다. 채원은 그 좌표와 책의 기록 시각을 겹쳐 보았다. 사망 기록은 아직 바뀌지 않았지만, 조수 그래프는 한 번 꺾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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