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왕의 두 번째 처방

2화: 약초자루의 검은 실
독문 창고로 가는 길은 우물 아래에서 갈라졌다. 구담은 길바닥의 흙을 손끝으로 긁어 보았다. 밤새 이슬이 맺혔는데 바위 쪽 흙만 말라 있었다. 누군가 뜨거운 약재를 옮기며 김을 쐰 흔적이었다. 소아는 자루를 나르는 사람들이 새벽마다 이 길을 쓴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 언제부터 알고 있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먼저 우물의 물을 봐야 했다.
우물은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있었다. 뚜껑은 반쯤 비켜났고, 밧줄이 젖어 있었다. 구담은 물을 길어 놋그릇에 담았다. 표면에는 얇은 회색 막이 떠올랐다. 그는 숯가루를 뿌려 색이 번지는지 확인했다. 어제 아이의 침전물과 닮았지만, 농도는 훨씬 옅었다. 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고 바로 쓰러지진 않는다. 약한 몸이거나 매일 마신 사람에게 쌓였을 것이다.
“우물을 폐쇄해야 해요.” 소아가 말했다.
“마을에 다른 물이 있나?”
“장터 끝에 하나 있어요. 그런데 그곳까지 물을 나르면 늙은 사람들은 못 버텨요.”
구담은 우물 안쪽의 돌을 살폈다. 검은 실 같은 것이 틈에 걸려 있었다. 실을 잡아당기자 마른 약초 조각이 딸려 나왔다. 회청독의 재료로 쓰이는 잎이었다. 전생에는 독문이 이 잎을 다른 약재와 섞어 천천히 혈맥을 마비시켰다. 여기서는 아직 시작 단계였다.
“이 약초는 어디서 났지?”
소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팔았어요.”
구담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거래 장부를 꺼내 독문 상단이 이달 들어 평소보다 세 배 많은 잎을 사 갔다고 설명했다. 돈은 약초꾼들에게 미리 지급됐고, 소아도 그중 일부를 받아 약방 외상값을 갚았다. 그녀는 약초를 말려 독에 쓸 줄 몰랐다고 말했다.
“모를 수 있어. 하지만 이제 알았으니 다음 행동은 네가 정해야 해.”
“장부를 내면 우리 마을 약초꾼들이 다 잡혀가요.”
“숨기면 독을 넣은 자들이 계속 물을 오염시켜.”
소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구담은 그녀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 없었다. 자신도 전생에 독문을 없애겠다며 이름 없는 약초꾼들을 공범으로 몰아붙였다. 그들이 독을 만들었는지, 생계 때문에 재료를 팔았는지 묻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몇몇은 심문을 견디지 못하고 사라졌다.
그때 우물 건너편에서 발소리가 났다. 회색 두건을 쓴 사내가 약재 자루를 들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을 보자 자루를 내려놓고 달아났다. 소아가 뒤쫓으려 했지만 구담이 팔을 잡았다.
“뛰지 마. 저쪽은 발자국이 하나뿐이야.”
“도망가면 놓치잖아요.”
“우릴 이쪽으로 끌고 가려는 걸 수도 있어.”
구담은 자루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았다. 비에 젖은 껍질과 쓴 뿌리 향, 그리고 쇠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독약이 아니라 해독에 쓰는 흰뿌리였다. 그는 사내가 창고 쪽으로 가는 대신 나루로 향한 것을 확인했다. 소아는 자루의 검은 실밥이 우물에서 꺼낸 것과 같다고 했다.
그들은 나루까지 뛰지 않고 자루를 따라 걸었다. 길모퉁이마다 흰 가루가 조금씩 떨어져 있었다. 구담은 그 흔적을 보고 누군가 일부러 추적 경로를 남겼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사내를 놓치면 약초의 출처도 놓친다. 그는 소아에게 나루 위쪽 길을 돌아가라고 하고, 자신은 물가를 따라갔다.
나루에는 배를 대는 사공이 밧줄을 감고 있었다. 사내는 이미 배 안에 올라타 있었다. 사공은 그가 상단의 약초 운반꾼이라고 말했다. “저 사람은 늘 맨 마지막에 자루를 들고 왔소. 오늘은 왜 한 자루만 들고 갔는지 모르겠군.”
“어디로 갑니까?”
“상류의 버려진 염창. 다만 거긴 밤에 가면 안 돼. 며칠 전부터 우물물이 거기로 흘러 들어간다는 소문이 있어.”
구담은 소아에게 독문 창고와 염창 중 어느 쪽을 먼저 볼지 물었다. 그녀는 장부를 만지작거리다 염창으로 가자고 했다. 창고에는 경비가 있지만, 염창에는 약초꾼 가족들이 숨어 지낼 수 있었다. 소아는 상단에 팔았던 사람 중 한 명이 그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상류로 가는 배는 사공이 거절했다. 독문이 나루 이용료를 올린 뒤로 허가증 없는 사람을 태우면 배를 빼앗긴다는 것이었다. 구담은 허가증을 만들겠다며 사공을 설득하지 않았다. 대신 짐칸 아래 물이 새는 곳을 찾아 막아 주고, 약방에서 쓰던 허리띠를 밧줄에 묶어 임시 수리를 도왔다. 한참 뒤 사공은 고개를 돌린 채 말했다.
“물살이 바뀌기 전까지만 태워 주겠소. 돌아올 땐 장담 못 하오.”
염창 근처는 잡초가 허리까지 자라 있었다. 문에는 독문 상단의 인장이 찍힌 천이 매달려 있었지만, 바람에 찢겨 반쪽만 남았다. 안쪽에서 아이가 기침하는 소리가 났다. 소아는 문 앞에서 얼어붙었다. “진아네 목소리예요.”
구담이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여자가 칼을 들고 나왔다. 그녀의 이름은 진아, 소아와 함께 약초를 캐던 친구였다. 진아는 구담을 보자 칼끝을 그의 목에 댔다.
“네 약방이 독문 약재를 받아먹는다며?”
“받았습니다. 내가 몰랐다고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왜 왔어?”
“그 약재가 우물에 들어갔고, 아이 하나가 쓰러졌어요. 원인을 확인하려고요.”
진아는 소아를 보았다. 소아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팔았어. 네가 말하지 않은 사람들 이름은 장부에 적지 않았어. 그래도 네가 피해를 입었다면 내가 갚을게.”
“돈으로 갚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진아의 칼이 흔들렸다. 방 안의 아이가 다시 기침했다. 그녀는 칼을 내리지 않았지만 문을 더 열었다.
아이의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은 마른 갈색이었다. 구담은 손을 씻고 맥을 짚었다. 독이 아니라 여러 날의 영양 부족과 오염된 물이 겹친 증상이었다. 진아는 약재를 팔아 받은 돈으로 약을 사려 했지만, 상단이 창고 문을 잠그는 바람에 약초를 되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녀는 아이를 살릴 약재를 숨기느라 자루에 실을 꿰어 두었다.
구담은 아이의 입에 물을 조금씩 먹이고, 진아가 가지고 있던 흰뿌리를 확인했다. 그 뿌리는 해독에 쓰이지만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먼저 묽은 죽과 따뜻한 물이었다. 소아가 가져온 보리 가루를 물에 풀어 끓였다. 불이 약해 죽이 눌어붙자 소아는 냄비를 들어 올리다 손을 데었다. 진아가 그녀의 손을 감싸려 하자 소아는 처음엔 움찔했다.
“내가 네 돈을 받았어.” 소아가 말했다. “그래서 네가 날 미워해도 돼. 하지만 아이가 먹을 걸 만드는 동안엔 손을 빌려줘.”
진아는 붕대를 꺼내 소아의 손을 감았다. 둘은 말없이 냄비를 저었다. 구담은 그 사이 염창 바닥의 자국을 살폈다. 약초 자루가 한 번 놓였다가 끌린 흔적이 창문 아래까지 이어졌다. 자루에서 빠진 검은 실이 우물의 잔해와 맞았다.
“독문이 약초를 여기서 나눴어.” 구담이 말했다. “그런데 우물까지 누가 옮겼는지 확인해야 해.”
진아는 상단의 마차가 밤마다 수레바퀴 하나를 바꿔 끼웠다고 했다. 오른쪽 바퀴에만 구리못이 박혀 있어 소리가 달랐다. 소아가 역참의 바퀴 소리를 기억해 냈다. 그 마차는 오늘 밤 나루를 지날 예정이었다.
배가 돌아갈 때 물살이 거세졌다. 사공은 염창의 사람들을 모두 태울 수 없다고 했다. 진아는 아이를 안고 먼저 올랐고, 소아는 물가에 남아 구담을 기다렸다. 구담은 장부를 챙기려 했지만 진아는 그 장부가 자신을 독문에 넘길 증거가 될 것이라며 가져가지 말라고 했다.
소아는 장부를 펼쳐 독문 상단의 거래 날짜와 자루 번호만 떼어냈다. 약초꾼 이름은 찢어내지 않고 그녀의 품에 돌려줬다. “사람 이름은 네가 공개할 때 정해. 거래 흔적은 내가 보관할게.”
구담은 소아가 자기보다 먼저 사람과 증거를 나눌 방법을 찾는 걸 지켜봤다. 염창에서 배를 타기 전, 그는 진아에게 아이를 약방으로 데려와도 좋다고 말했다. 진아는 고맙다고 하지 않았다. “네 약방을 믿어서가 아니라, 소아가 옆에 있어서 가는 거야.”
나루에 도착했을 때 해가 저물었다. 멀리서 구리못 박힌 바퀴가 돌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수레가 창고로 향하지 않고 약방 쪽으로 꺾였다. 구담은 그들이 독을 옮기는지, 자신들을 미끼로 쓰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약방 문을 닫지 않기로 했다. 안쪽에는 환자가 누워 있었고, 밖에는 아직 마주해야 할 증인이 있었다.
수레는 약방 앞에서 멈추지 않고 지나쳤다. 그러나 바퀴가 골목 끝을 돌기 직전, 무언가 무거운 것이 길가에 떨어졌다. 구담은 바로 쫓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소아의 숨소리를 세고, 진아가 아이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는 것을 확인했다.
“누군가 떨어졌어요.” 소아가 속삭였다.
“수레를 쫓으면 다시 미끼를 물게 돼.”
“사람이 떨어졌다면요?”
구담은 대답 대신 약방 문에서 들것과 등불을 챙겼다. 그는 소아에게 진아와 아이를 안에 두고 문을 걸어 잠그라고 했다. 소아는 혼자 남지 않겠다고 고집했고, 구담은 진아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진아는 아이를 품에 안고 문을 잠그기로 했다. “소아, 돌아오면 네가 직접 설명해.”
골목 끝에는 젊은 운반꾼이 옆구리를 감싸고 누워 있었다. 검은 실이 감긴 손목이 피로 젖어 있었다. 그는 구담이 다가오자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병이 깨지며 매캐한 냄새가 퍼졌다. 구담은 숨을 참고 천을 얼굴에 대고, 운반꾼의 손에서 병 조각을 밀어냈다.
“그 병을 마시면 안 돼.”
“그럼 날 살려서 독문에 넘길 건가?”
“나는 네가 누군지 모른다. 먼저 피를 멎게 할 거야.”
운반꾼은 그를 믿지 않았지만 옆구리를 누르던 손을 뗐다. 상처는 칼에 찔린 게 아니라 자루의 못에 긁힌 듯 비스듬했다. 구담은 피가 흐르는 방향을 살피며 깨끗한 천을 눌렀다. 운반꾼은 이를 악물었다.
“그 자루를 어디서 받았지?”
“염창에서.”
“왜 약방으로 갔어?”
“상단이 네가 독왕이라더군. 독을 맡기러 간 게 아니야. 독을 가져가라고 했어.”
운반꾼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그는 약재 자루 안쪽에 약방의 문양이 찍힌 종이를 발견했고, 독문이 구담을 범인으로 만들려 한다고 했다. 구담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하지만 상처를 묶으며 병의 깨진 조각을 확인했다. 병 안에는 독이 아니라 진통에 쓰는 기름이 들어 있었다.
“네가 나를 시험했군.”
“나도 살고 싶으니까.”
구담은 약방으로 돌아가 그를 치료할지, 관아에 넘길지 정하지 못했다. 소아가 골목 입구에서 등불을 들고 나타났다. 그녀는 약방의 문을 진아에게 맡겼다. “그가 거짓말해도 의원이 먼저 봐야 해요.”
운반꾼은 자신의 이름을 끝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손목의 검은 실을 풀어 구담에게 건넸다. 그 매듭은 우물에서 나온 것과 달랐다. 누군가 실의 방향을 반대로 꿰어 약재를 묶었다. 그는 이 흔적이 독문 내부에서도 한 분파만 쓰는 방식이라고 했다.
구담은 실을 받지 않았다. “네가 직접 들고 있어. 치료가 끝난 다음 네가 누구에게 말할지 정해.”
운반꾼은 잠시 망설이다 실을 다시 품에 넣었다. 소아는 그를 부축했고, 세 사람은 약방으로 돌아갔다. 문 안에서 아이가 기침했다. 구담은 먼저 아이의 숨을 확인한 뒤 새로운 환자의 상처를 씻었다. 수레를 놓쳤지만, 그들이 찾던 거래 흔적은 살아 있는 사람의 손에 남았다.
밤이 깊어지자 구담은 운반꾼의 맥을 다시 쟀다. 그의 맥은 안정됐지만, 문밖에서 또 다른 발걸음이 멈췄다. 이번에는 수레 소리도 없었다. 문 아래로 흰 봉투가 밀려 들어왔다. 봉투에는 구담의 전생 이름이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