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왕의 두 번째 처방

1화: 죽은 독왕의 첫 환자
구담은 죽기 직전까지 독의 맛을 기억했다. 혀끝에 닿은 것은 쓴맛이 아니라 오래된 약탕기의 쇠 냄새였다. 자신이 만든 회청독이 폐를 조이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손끝부터 감각을 지웠다. 독문주가 웃는 얼굴로 잔을 내밀었을 때 그는 이미 독의 조합을 알아챘다. 알아챈 것과 살아남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눈을 뜨자 천장이 내려앉고 있었다. 삼초약방의 서까래 틈으로 아침빛이 비쳤다. 구담은 스물두 살의 손을 들여다봤다. 손등의 칼자국은 없었지만 엄지 아래에는 약탕기 화상 흉터가 있었다. 전생에 첫 의원 일을 시작했을 때 얻은 자국이었다.
문밖에서 아이가 울었다. “아버지가 숨을 못 쉬어요!”
구담은 몸을 일으키다 무릎을 꺾었다. 이 몸은 기억보다 약했다. 그때 약방 견습 소아가 젖은 발로 뛰어 들어왔다. 그녀는 열 살쯤 된 사내아이를 업고 있었다. 아이의 입술은 회색으로 질렸고, 손가락이 안쪽으로 오그라들었다.
“우물물을 마신 뒤 이랬어요. 의원님, 살려 주세요.”
‘의원님’이라는 호칭이 이상했다. 지금의 구담은 장부를 외상으로 메우고 약재값도 못 내는 삼류 약방 주인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가슴은 약하게 움직였다. 구담은 질문을 줄였다. 우물물의 색, 마신 양, 쓰러지기 전 먹은 것. 아이의 어머니는 공포에 눌려 대답을 잇지 못했고, 소아가 대신 기억을 더듬었다.
“장날에 산 엿을 먹었고, 우물에서 물을 두 모금 마셨어요. 동생은 한 모금도 안 마셨는데 멀쩡해요.”
구담은 입술을 벌려 숨길을 확인하고 맥을 쟀다. 맥은 빠르고 얕았다. 혀 밑에는 푸른 반점이 아니라 잿빛 침전이 붙어 있었다. 그는 약장으로 달려가려다 무릎이 휘청했다. 몸은 아직 약탕기 물을 나를 힘도 없었다.
“소아, 찬물과 숯을 가져와. 깨끗한 그릇도.”
“해독약은요?”
“지금은 독을 더 넣을 때가 아니야.”
소아는 잠깐 그를 노려봤다. 약방에 해독약이 없다는 걸 들킬까 봐 망설이는 눈이었다. 그녀는 항아리에서 숯을 꺼내고, 깨진 그릇 대신 평평한 놋접시를 골랐다. 구담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몸을 옆으로 눕히게 하고, 자신이 말하는 동안 아이의 입에 억지로 물을 붓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는 이미 물바가지를 들고 있었다. 아이를 살리려는 손이 오히려 숨길을 막을 수 있었다.
“내가 하지 말라는 대로 하면 아이가 죽을 수도 있어요?” 어머니가 물었다.
“그럴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어요. 그래서 아이가 삼킬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할 겁니다.”
구담은 혀 밑 침전물을 젖은 천에 묻혀 놋접시에 놓았다. 숯가루를 아주 조금 뿌리자 잿빛 막이 검게 번졌다. 회청독이었다. 하지만 전생에 알던 것과 똑같다고 단정할 순 없었다. 그는 물에 녹은 독의 강도를 확인하려고 한 방울을 약지에 묻혔다. 소아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맛보면 안 돼요.”
“맛보지 않을 거야.” 구담은 손을 거두었다. “이 몸으로 다시 죽을 생각도 없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온 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소아는 그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바라봤다. 구담은 얼른 소년의 가슴을 살폈다. 그는 아이에게 숯물을 조금씩 먹이고, 어머니가 고개를 돌린 틈에 손끝을 잡아 맥이 바뀌는지 확인했다. 아이의 손가락이 여전히 굽어 있었지만, 숨이 한 번 길게 들어왔다.
“살아나는 거예요?” 어머니가 물었다.
“아직은 몰라요. 지금은 숨이 조금 안정됐습니다. 한 시각 동안 계속 보겠습니다.”
약방 밖에 구경꾼이 몰려들었다. 누군가 구담이 독을 써 아이를 해친 뒤 치료하는 척한다고 외쳤다. 소아는 문을 닫으려 했지만, 어머니가 몸으로 문을 막았다. “소문부터 듣고 내 아이를 두고 나가라고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으나 자리를 지켰다.
아이의 아버지가 도착했을 때 손에는 도끼가 들려 있었다. 그는 구담을 밀치려다 아들의 기침을 듣고 멈췄다. “네가 독왕의 이름을 팔았다는 말이 있다.”
그 별칭에 구담의 속이 뒤집혔다. 전생의 자신을 아는 자는 이 지방에 없어야 했다. 그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도끼를 내려놓으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가 숨을 내쉴 때마다 셋까지 세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도끼를 바닥에 놓고, 떨리는 입술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아이의 호흡이 두 번째로 길어졌다. 구담은 그제야 숯물 한 숟가락을 더 먹였다. 소아가 약탕기에 물을 올리며 물었다. “독왕이라는 이름을 아세요?”
“들어 본 적 있어.”
“거짓말하네요. 방금 얼굴이 굳었어요.”
구담은 답을 피했다. 소아는 어린 환자의 손을 닦으며, 그를 믿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게 더 무거웠다. 신뢰를 얻기 전에 먼저 책임질 시간이 왔다.
해가 중천에 이르자 아이는 물을 찾았다. 어머니가 바가지를 들었지만, 구담은 아이가 삼킬 수 있는지 확인한 다음 숟가락으로 입술을 적셨다. 아이는 한 모금만 마시고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구담에게 고개를 숙였다가, 곧바로 사과를 취소하듯 턱을 세웠다.
“아직 다 나은 게 아니죠?”
“네. 오늘 밤 다시 열이 오를 수도 있어요.”
“그럼 여기 있겠습니다.”
구담은 환자를 약방에 눕혔다. 한 시각마다 맥을 보되, 독이 더 퍼지는 징후가 있으면 마을의 큰 의원에게 함께 가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최선의 의원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전생의 기억이 이 몸의 부족한 힘을 메워 주지는 않았다.
소아는 우물물을 담아 온 작은 병을 건넸다. 병 바닥에 은빛 가루가 붙어 있었다. “다른 의원들은 이걸 보고도 그냥 물이라고 했어요.”
구담은 병을 빛에 비추었다. 표면에 회색 띠가 돌았다. 물 속의 독은 한 군데에서 퍼진 것이 아니었다. 우물 벽에 오래 붙은 약재 찌꺼기가 조금씩 녹아 나온 흔적이었다. 그는 우물로 가서 직접 채취하겠다고 했다.
소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 우물은 독문 약재 창고 옆이에요. 밤에 경비가 돌아요.”
“그걸 어떻게 알지?”
소아는 입을 다물었다. 허리춤에서 약재 거래 장부가 삐져나와 있었다. 독문 상단의 도장이 선명했다. 구담은 전생에 독문에 들어갔다가 그들을 무너뜨리려 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환자를 잃었다. 지금은 그들의 물자를 납품받는 소녀를 마주하고 있었다.
“내일 아침까지 아이를 지켜 줘. 우물은 내가 보러 갈게.”
“혼자 가겠다고요?”
“네가 안내하지 않으면 길을 못 찾을 테니, 네가 결정해.”
소아는 장부를 다시 허리춤에 밀어 넣었다. “아이 열이 다시 오르면 함께 못 가요.”
“그럼 가지 않는다.”
그날 밤 열은 오르지 않았다. 아이는 자다 깨서 아버지의 손가락을 붙들었다. 구담은 약방의 낡은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전생의 마지막 밤에도 환자가 그의 손을 잡았었다. 그는 살리지 못했고, 독문주에게 복수한다는 말로 그 실패를 덮었다.
새벽에 아이의 아버지는 구담에게 약값을 낼 수 없다고 했다. 구담은 이미 빈 약장을 보았지만, 장부에서 값을 지우지는 않았다. 대신 다음 장날까지 약방에서 일하고, 아이가 마신 우물의 상태를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했다. 치료비를 받는 대신 위험을 함께 공개하는 셈이었다.
소아는 그 약속을 듣고 한참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약방 문을 나설 때, 그녀가 우물가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단, 독문 사람들에게 들키면 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구담은 칼 대신 빈 약병과 천을 챙겼다. 약방 문을 잠그며 오래된 간판의 기울어진 글자를 바로잡았다. 독왕의 두 번째 생은 복수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침 햇살에 비친 환자의 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두 번째 처방을 시작하기 전에, 이번 생에서 누구의 숨을 지킬지 선택해야 했다.
그들은 우물가로 가기 전에 아이의 집에 들러 밤새 상태를 확인했다. 어머니는 아이의 이마에 젖은 수건을 갈아 대고 있었고, 아버지는 문턱에 앉아 도끼를 무릎에 올려 두었다. 그가 구담을 보고 물었다. “아이를 살렸다고 해서 내가 네 편이 된 건 아니오.”
“그럴 필요 없습니다.” 구담은 아이의 맥을 살폈다. 열은 조금 올랐지만 숨은 고르게 돌아왔다. “우물에 독이 남았으면 다른 집 아이도 마실 수 있어요. 오늘 확인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아플 겁니다.”
아버지는 한참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도끼날을 손바닥으로 문지르자 손에 굳은살이 도드라졌다. “내가 길을 아오. 예전엔 물길을 파는 일을 했소.”
소아가 놀라 그를 바라봤다. 그는 집 뒤 담장에 난 작은 길로 안내하겠다고 했다. 독문 창고 정문은 피할 수 있지만, 우물 아래쪽 바위굴에는 경비가 자주 온다고 경고했다. 구담은 그가 따라올 필요는 없다고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가 아이 곁에 남을 사람을 이미 정해 두었을 터였다.
“그럼 우리가 채취하는 동안 이 아이를 지켜 주세요.” 구담이 말했다.
아버지는 도끼를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지키지. 네가 못 돌아오면 그때는 네 약방을 뒤지겠소.”
협박처럼 들렸지만, 구담은 그 말 속에서 처음 만난 동맹의 불안을 알아들었다. 소아는 약방의 간판을 고쳐 달고, 안쪽에 작은 쪽지를 붙였다. ‘환자 상태를 확인하기 전까지 문을 닫지 않습니다.’ 구담은 그런 문장이 정말 사람을 살릴 수 있을지 몰랐다. 그래도 오늘 문을 닫지 않을 이유는 생겼다.
길을 나서자 아이가 방 안에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는 돌아서려 했지만 어머니가 아이 손을 잡았다. “다녀와요. 이번엔 숨기는 일 없이.”
그가 발걸음을 떼자 소아가 구담 옆에서 낮게 말했다. “당신은 죽었다가 돌아왔다고 했죠?”
구담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럼 이번에는 누구를 먼저 살릴 건지 기억해 둬요. 당신 혼자 정하지 말고.”
구담은 그 말을 답으로 받았다. 우물에서 독을 확인하려면 해가 뜨기 전에 창고 옆을 지나야 했다. 그는 전생의 복수를 떠올리지 않으려 했지만, 손끝에는 독문주가 건넨 잔의 차가움이 남아 있었다. 살아 돌아온 이유가 복수인지 치료인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