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독왕의 두 번째 처방3화

독왕의 두 번째 처방

독왕의 두 번째 처방

AD
스폰서 광고

3화: 환자가 쥔 독병

봉투 위에는 구담이 전생에 쓰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약방 안의 사람들은 아무도 그 이름을 몰라야 했다. 그는 편지를 열지 않고 등불에 비춰 보았다. 겉면의 먹은 젖지 않았지만 종이 끝에는 기름 얼룩이 번져 있었다. 누군가 봉투를 약재 자루 안에 숨겼다가 꺼낸 흔적이었다.

상처 입은 운반꾼은 봉투를 보는 순간 눈을 감았다. “그들이 당신을 알아본 게 아니라, 내 짐에 있던 걸 본 거예요.”

“누가 너를 보냈지?”

“상단의 사람. 이름은 몰라요. 나도 그들을 믿지 않았고요.”

소아는 약방 문을 잠그고 창문 걸쇠를 확인했다. 진아는 아이 곁에 앉아 손에 쥔 칼을 내려놓지 않았다. 구담은 봉투를 열기 전에 운반꾼의 상처를 다시 살폈다. 피는 멎었지만 몸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독이 묻은 병 조각을 만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초연한 의원이라면 먼저 봉투를 격리했을 것이다. 구담은 그 원칙을 떠올리고, 손을 씻은 뒤 젓가락으로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말린 잎 한 장과 짧은 문장이 있었다. ‘이번 생에도 남의 목숨을 네 복수에 쓸 셈인가.’

그 문장을 읽은 순간 손목이 굳었다. 전생에서 그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은 염수뿐이었다. 독문에서 쫓겨난 침술사, 구담이 만든 독으로 누이를 잃은 남자. 그가 살아 있다면 지금은 아직 독문을 떠나기 전일 것이다.

“이 글씨 알아요?” 소아가 물었다.

“모른다.”

“또 거짓말.”

구담은 봉투를 접어 놓았다. 소아는 그의 얼굴에서 답을 읽으려 하지 않고, 환자의 입술 색을 살폈다. 운반꾼은 숨이 짧아져 있었다. 그의 손가락에 푸른 반점이 올라왔다.

구담은 말린 잎을 물에 담그지 않고 냄새만 확인했다. 잎의 가장자리는 검게 타고, 줄기에는 흰 결정이 맺혀 있었다. 열에 데운 회청독의 찌꺼기였다. 운반꾼은 상처에 독이 들어갔다고 말하지 않았다. 구담은 독을 특정하기 전에 맥과 눈동자를 살폈다. 동공이 한쪽만 느리게 좁아졌다.

“염수를 불러야 해.”

“그가 누군데요?” 소아가 물었다.

“독문에서 침을 놓던 의원이야. 이런 중독을 본 적 있어.”

“독문 사람을 부르겠다고요?” 진아가 칼을 들었다.

“그가 오면 당신이 문 앞에 서 있어도 돼요. 하지만 지금 환자를 살릴 방법을 아는 사람은 그뿐입니다.”

진아는 칼자루를 쥐고 문 쪽으로 갔다. 소아가 대신 염수를 찾으러 나섰다. 구담은 약방에 남아 환자의 체온을 유지하고, 손상된 부위를 깨끗한 물로 씻었다. 환자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마다 독이 퍼지지 않도록 움직임을 줄이려 했지만, 억지로 누르진 않았다.

“살고 싶습니까?” 구담이 물었다.

운반꾼은 웃으려다 기침했다. “누구에게도 죽고 싶다고 말한 적은 없어요.”

“그럼 지금은 살겠다고 대답해.”

운반꾼은 그의 손을 잡았다. 손가락이 차가웠다.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독문에 돌아가지는 않겠어요.”

“그 선택은 네가 깨어난 뒤 다시 하자.”

한 시각 뒤 염수가 왔다. 그는 검은 비단으로 오른손을 감싸고 있었다. 입구에 선 진아는 칼을 들었지만, 염수는 무기를 꺼내지 않았다.

“독왕이 다시 태어났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그럼 구담이라고 할까. 네가 내 누이에게 준 독의 이름을 부르면 더 좋겠지.”

구담은 반박하지 못했다. 염수는 운반꾼을 살피고 독을 확인했다. 그는 환자의 몸에 남은 흔적을 보고 약초의 산지와 가공법을 정확히 맞혔다. 그러나 해독침을 놓기 전에 운반꾼에게 자신의 손을 봐도 되는지 물었다. 운반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염수는 세 개의 침을 목과 손목에 놓았다. 마지막 침을 놓으려는 순간 손이 떨렸다. 그는 멈춰 서서 떨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구담이 대신 침을 잡으려 하자 염수는 고개를 저었다.

“내 손은 내가 책임져야 해.”

그는 침을 놓고 환자의 맥을 세 번 확인했다. 첫 번째 맥은 빠르고, 두 번째는 얕았고, 세 번째에는 손끝에 힘이 돌아왔다. 염수는 독이 완전히 빠진 게 아니며 새벽까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구담은 그가 과장하지 않는 것을 처음 보았다.

“네 누이는 어떤 독으로 죽었지?”

“회청독. 네가 만든 첫 배합이었어.”

구담은 그때 염수가 독문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를 물었다. 염수는 자신이 누이를 살리지 못한 죄를 독문에 덮어씌우며 숨어 있었다고 했다. 구담은 그가 원수를 돕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운반꾼은 네 복수와 관계없다.” 염수가 말했다. “그 사람을 살리는 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 하지만 그걸로 네 죄를 갚았다고 생각하지 마.”

구담은 고개를 숙였다. “그럴 생각은 없어.”

소아가 약방 창고의 장부를 가져왔다. 염수는 봉투에 있던 마른 잎을 보고 그것이 독문 내부의 침술사들만 쓰는 연초라고 확인했다. 잎은 독을 만드는 재료가 아니라 독의 진행을 늦춰 희생자가 바로 죽지 않게 하는 약이었다. 누군가 운반꾼을 죽이려 한 게 아니라, 그가 진실을 말할 시간을 벌어 둔 셈이었다.

“그럼 누가 우리에게 이자를 보냈지?” 초연처럼 기록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소아가 봉투 앞면의 얼룩을 가리켰다. 기름 자국은 약방 처마에 쓰는 송진 기름과 달랐다. 염수는 독문 의원들의 침통을 닦는 기름이라고 했다. 그를 포함해 침술사 몇 명만 그 냄새를 썼다.

“네가 보낸 거냐?” 구담이 물었다.

염수는 부인하지 않았다. 그는 전생의 구담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이라기보다, 그가 마지막에 독을 마시게 된 자리를 만든 내부고발자였다. 염수는 이번에는 독문이 회청독의 첫 배합을 다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 했다. 하지만 자신이 나타나면 구담이 먼저 죽이려 들 거라 생각해 편지를 보냈다.

“네 누이의 죽음은 내 책임이야. 그 책임을 네가 대신 짊어질 필요는 없어.”

“책임을 말로 나누려 하지 마.” 염수의 얼굴이 굳었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고, 죽은 사람의 이름을 네가 직접 찾아. 그 뒤에 내가 널 용서할지는 내가 정하겠다.”

구담은 그 대답을 받아들였다. 용서는 치료의 대가가 아니었다. 그는 장부에서 약초 거래 번호를 찾아 염수에게 보여 줬다. 염수는 그 번호가 독문주의 개인 창고가 아니라 폐쇄된 침방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곳에는 구담의 첫 배합 기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운반꾼은 새벽 무렵 열이 내렸다. 그는 아직 눈을 뜨지 못했지만 숨은 길어졌다. 구담은 침을 뺄 시간을 염수에게 확인하고, 환자의 몸을 혼자 건드리지 않았다. 소아는 염창에서 가져온 보리죽을 다시 데웠다. 진아는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한 뒤에야 칼을 내려놓았다.

“장부를 넘기면 약초꾼들이 잡혀갈 수 있어.” 소아가 말했다. “그렇다고 숨기면 우물이 계속 오염되겠지.”

구담은 장부를 펴 놓았다. 그는 거래자 이름을 지우지 않고, 독문이 받은 자루 번호와 마을의 우물 위치를 따로 적었다. 소아가 공개 범위를 정하도록 기다렸다. 소아는 약초꾼들의 동의를 받아 산지와 거래량을 먼저 알리고, 이름은 당사자가 직접 말할 수 있게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하면 독문은 우리를 먼저 찾을 거야.”

“알아요.”

“무서워?”

“네.” 소아는 장부를 닫았다. “그래도 내가 판 약초가 어디로 갔는지는 말해야 해요.”

구담은 그녀가 정한 순서대로 장부를 나누어 보관했다. 진아는 약방에 남아 환자를 지키겠다고 했다. 염수는 해 뜨기 전에 혼자 떠나려 했지만 구담이 막았다.

“폐쇄된 침방으로 가는 길을 알아?”

“알아. 하지만 함께 가면 널 믿는 것처럼 보이겠군.”

“믿으라고 하지 않겠어. 길을 아는 사람으로 같이 가자.”

염수는 짧게 웃었다. “그 말은 받아들이지.”

약방 문을 열자 골목에 낯선 마차가 서 있었다. 바퀴에는 구리못이 박혀 있었고, 문짝에는 독문주의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마차에서 내린 사내는 구담을 오래 바라보다가 작은 병을 내밀었다.

“독왕께서 돌아오셨다니, 옛 처방을 되찾으러 왔습니다.”

구담은 병을 받지 않았다. 그 안에서 자신이 죽기 직전 마셨던 쇠 냄새가 풍겼다. 이번 생의 첫 복수가 문 앞에 와 있었다. 동시에 약방 안에는 숨을 되찾는 환자가 누워 있었다.

그는 문턱을 넘지 말라고 손을 들었다. “처방은 팔지 않는다. 먼저 네가 그걸 누구에게 먹였는지 말해.”

사내의 눈이 염수에게로 옮겨갔다. 염수는 침통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구담은 그 둘 사이에 섰다. 복수할 기회는 눈앞에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병을 열기 전에 치료할 사람의 동의를 먼저 구해야 했다.

사내는 약병을 거두지 않았다. “그 약은 아직 아무도 해치지 않았습니다.”

염수가 침통을 닫았다. “그 말은 약을 만든 자가 아니라 먹인 사람에게 물어야 해.”

사내는 염수를 똑바로 보지 못했다. 그는 독문주가 폐쇄된 침방에서 구담의 첫 배합을 복원 중이라고 털어놓았다. 환자에게 직접 먹인 것은 아니지만, 마을 우물에 시험액을 흘려보냈다. 소아가 팔았던 약초는 그 시험에 쓰였다. 운반꾼은 그 사실을 보고 도망치다 붙잡혔다.

진아가 문 안에서 걸어 나왔다. “그 시험 때문에 아이가 쓰러졌어요.”

사내는 그제야 고개를 숙였다. 그는 약병을 구담에게 맡기고 싶다고 했다. 병 안의 잔량이 우물과 환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여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구담은 병을 받되, 사내를 약방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 소아가 증인이 되어 봉인하고, 진아가 봉인 자국을 확인했다.

“당신 이름도 적겠습니다.” 소아가 말했다.

사내는 망설였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고산, 독문주의 문하생이었다. 구담은 그 이름을 거래 기록 옆에 적었다. 고산은 누구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그의 시험액이 아이를 쓰러뜨렸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염수는 그에게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 고산은 손등에 검은 자국이 번져 있었다. 구담은 자국을 보고 독에 직접 닿았다고 판단했다. 그가 병을 들고 온 것은 자신도 중독되었기 때문일 수 있었다. 고산은 자기 몸을 살려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구담은 치료를 거절하지 않았다.

“살아남는다고 책임이 사라지진 않아.”

“알고 있습니다.”

“그럼 손을 내밀어.”

고산은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구담은 염수에게 침을 맡기고, 자신은 소아와 함께 약재를 골랐다. 약방 안에는 원수와 환자, 증인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구담은 누구를 먼저 살릴지 혼자 정하지 않았다. 그는 진아에게 고산을 치료하는 데 동의하는지 물었다. 진아는 오래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살리고 나서 죄를 물어요.”

그 말이 그날의 처방이 되었다. 바깥에서 마차가 다시 출발했고, 독문주의 표식은 안개 너머로 사라졌다. 구담은 병을 봉인한 뒤 침방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그의 두 번째 생은 또 한 번, 복수보다 먼저 사람의 숨을 셌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