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등불선

2화: 빛을 싣는 값
“미르로 계속 갑니다.” 실하가 말했다. “등불은 끄지 않는다. 돛을 돌려 항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
선원들이 각자 위치로 움직였다. 해나는 지휘판 위에 항해도를 펼쳤다. 빈 별자리와 배의 현재 위치, 미르 항구까지 남은 거리를 표시했다. 등불이 빛을 끌어오는 속도는 안정되지 않았다. 배가 별자리 빈자리에 가까워질수록 빛의 흐름이 강해지고 있었다.
두목은 연료계와 기관 압력을 번갈아 확인했다. “정상 운항으로 돌아가면 이 등불을 견딜 수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미르에 도착할 때쯤 다른 등불 둘이 꺼질 겁니다.”
“아홉 번째 등불을 분리하면?” 실하가 물었다.
“선체 골조가 빛을 계속 끌어와요. 등불만 떼면 연결이 끊길 거라 장담 못 합니다.”
해나는 승객들을 갑판 아래로 보내지 않았다. 그들에게 결정에 필요한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선장은 모두의 뜻을 물었다.
“벨로 항구로 가면 미르에는 늦게 도착합니다. 승객 중에는 다른 배를 놓칠 사람도 있고, 고향에 돌아가는 약속을 지키려는 분도 있습니다. 항로를 바꿀지는 다 같이 정하겠습니다.”
상인 가족의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는 미르에서 약을 받아야 해요. 일주일을 더 기다리면 아이의 열이 위험해질 수 있어요.”
악단의 노인은 고개를 숙였다. “벨로에 딸이 있지만, 그 아이가 아직 살아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진 않아요.”
해나는 두 길을 항해도 위에 그려 보였다. 미르로 바로 가는 길은 등불의 빛을 계속 끌어당겼다. 벨로로 가는 길은 구름벽을 돌아가야 했지만, 그동안 등불의 흐름을 관측할 수 있었다.
“두 항로 모두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미르로 가면 연료가 줄고 다른 별빛이 더 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벨로로 가면 시간이 늦어지고, 하늘 지도에 없는 구름층을 지나야 해요.”
“그럼 왜 벨로로 가야 하지?” 승객 중 한 사람이 물었다.
“별자리 빈자리에 항구가 있다는 건 확인했어요. 하지만 그곳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먼저 가까이 가서 등불을 끄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다른 별을 잃지 않을 수 있어요.”
실하는 해나의 설명을 들은 뒤 승객들에게 거수로 선택을 물었다. 과반은 미르로 계속 가기를 원했다. 악단의 노인은 아무 표도 들지 않았다.
“내가 결정하겠다.” 실하가 말했다. “미르 항로를 유지하면서 구름벽 가장자리에 접근한다. 등불의 상태를 확인하고, 위험이 커지면 즉시 이탈한다.”
해나는 그 선택을 항해일지에 기록했다. 다수의 뜻이 다른 승객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었다.
실하는 각 승객에게 남은 항해 시간과 대피 경로를 다시 설명하도록 했다. 두목은 약이 든 상자를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고, 악단의 악기와 상인의 짐은 선체 안쪽으로 옮겼다. 갑판 선원들은 구름닻 두 개를 준비해 언제든 던질 수 있도록 줄을 풀어 두었다.
해나는 미르 항구와 벨로 항구 사이의 거리를 다시 계산했다. 직선 거리는 벨로가 가까웠지만, 구름벽을 돌아가려면 배의 고도를 낮춰야 했다. 낮아진 고도에서는 돛이 받을 바람이 약해져 엔진을 더 써야 한다. 그녀는 연료 계산에 승객의 약품 보관 시간을 더했다.
“약은 열이 올라간 뒤 여섯 시간은 버틸 수 있어요.” 상인의 아내가 말했다. “배가 오늘 밤 안에 도착하면 괜찮습니다.”
“우회하면 도착은 내일 아침입니다.”
“그럼 벨로에 들렀다가 다시 미르로 가는 길은 없나요?”
해나는 항해도에 두 번째 경로를 그려 보았다. 벨로에 접근해 등불을 확인한 뒤, 항구의 구름닻을 빌리면 미르행 항로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다만 그 항구가 지도에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도착해도 정박할 곳이 없을 수 있었다.
“확인하지 못한 항구에 구름닻을 맡기는 건 위험합니다.” 실하가 말했다.
“그래서 먼저 외곽에서 빛과 바람을 측정하겠습니다. 정박하지 않고도 항구의 구조를 확인할 수 있어요.”
선장은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계산판을 살폈다. 해나는 시간을 정해, 항구가 보이지 않으면 바로 미르로 향하는 기준도 함께 적었다. 대안 경로에는 반드시 돌아오는 조건이 있어야 했다.
배는 구름벽으로 향했다. 해나는 별빛이 돛에 닿는 각도를 측정하고, 등불의 온도를 기록했다. 아홉 번째 등불은 배 안의 빛을 끌어가는 게 아니라 하늘의 별빛을 줄마다 모으고 있었다. 그 빛은 유리관 안에서 항구의 불빛으로 바뀌었다.
“등불을 이용해 지도에 없는 항구를 비추는 것 같아요.”
“그 항구가 우리를 끌어당기는 건가?” 두목이 물었다.
“정확히는 빛의 경로가 항구 쪽으로 휘고 있어요. 배는 그 경로를 따라가는 중이고요.”
해나는 선체의 구리 고리 위치를 표시했다. 빛이 지나간 곳마다 고리가 따뜻해졌고, 가장 먼저 반응한 고리는 항해사 객실의 문 아래에 있었다. 그녀의 방이었다.
그녀는 짐을 열어 오래된 나침반을 꺼냈다. 나침반 뚜껑 안쪽에는 긁힌 글씨가 있었다. ‘해나의 첫 항해. 엄마가 그린 길을 잊지 마.’ 해나는 글씨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마지막 단어의 획은 항해도 뒷면에 있던 메모와 같았다.
그때 아홉 번째 등불이 빠르게 깜박였다. 빛을 모으던 구리 고리가 뜨거워졌고, 갑판 바닥에서 얇은 금이 번졌다. 배는 한쪽으로 기울었다.
“구름닻이 풀리고 있어!” 선원이 외쳤다.
실하는 항로를 반대로 돌리라고 지시했다. 두목이 엔진을 조절했지만, 나침반은 항구 쪽을 가리켰다.
갑판의 선원들은 비상용 도르래를 걸었다. 배가 기울어지면서 한쪽 돛이 구름을 끌어당겼다. 돛을 통째로 내리면 배가 자유 낙하할 수 있었고, 그대로 두면 골조에 힘이 쏠렸다.
“앞돛의 위쪽 줄을 먼저 풀고, 아래 줄은 남겨요!” 해나가 외쳤다. “바람을 전부 놓치면 배가 떨어집니다.”
두목은 기관실의 압력밸브를 반쯤 열었다. 엔진이 불안하게 떨리며 선체를 받쳤다. 실하는 뒤쪽 구름닻을 던져 배의 회전을 늦추라고 지시했다. 닻은 얼어붙지 않았지만, 줄이 팽팽해지며 갑판 난간이 휘었다.
선원들은 일제히 줄을 잡고 선체가 더 기울지 않도록 버텼다. 해나는 각 등불의 밝기를 관찰했다. 첫 등불은 거의 꺼졌고, 네 번째는 불꽃이 위로 솟았다. 고리의 온도 차이는 등불마다 달랐다. 빛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면 가장 뜨거운 고리를 찾아 연결을 줄일 수 있었다.
“구리 고리의 열이 불규칙해요. 순서대로 어두워지는 게 아닙니다.”
“등불마다 다른 별빛을 받는 거야?” 두목이 물었다.
“아니요. 빛이 배의 어느 부분을 지나가는지가 다를 수 있어요. 선체의 구조 자체가 길이 되어 있어요.”
해나는 자신의 객실에 있던 고리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는 걸 떠올렸다. 그곳은 항해도의 보관함 바로 위였다. 지도가 빛을 모으는 매개라면, 항해도에 새긴 선을 따라 등불의 경로가 고정됐을 수 있었다.
“선장님, 항해도를 여기 가져와야 해요. 지도 선이 빛의 방향을 정할 수도 있습니다.”
“배가 안정된 뒤에.”
실하의 말이 끝나자 천장 쪽에서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해나는 돛의 각도를 바꾸면 배의 방향을 돌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빛이 돛을 타고 항구로 흘러가면 선체에 더 많은 힘이 걸릴 수 있었다. 그녀는 즉시 결정하지 않았다. 먼저 여덟 등불의 연결을 확인했다.
“선장님, 빛을 끊으면 항구도 사라질 수 있어요.”
“그곳에 사람이 있더라도, 지금 배의 승객부터 지켜야 한다.”
선장은 구름닻을 던질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항구까지 가지 않고 배를 구름층에 고정하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닻줄의 끝이 구름에 닿자 줄이 얼어붙었다. 주변의 별빛이 하나 더 꺼졌다.
해나는 나침반을 들었다. 바늘은 항구가 아니라 등불선의 선미를 가리켰다. 배의 아홉 번째 등불이 빛을 끌어온 게 아니라, 배 자체의 기억을 열어 항구를 비추고 있었다.
“선장님, 등불은 끄면 안 돼요. 끊어야 할 건 항로가 아니라 선체와 등불 사이의 연결이에요.”
두목은 고개를 저었다. “그 연결은 주골조를 지나가. 풀면 배가 반으로 갈라질 수도 있어.”
해나는 선체의 구리 고리를 하나씩 표시했다. 항해사 객실의 고리가 가장 먼저 반응한 이유를 아직 몰랐다.
그때 갑판 아래에서 어린 승객이 울었다. 아이는 창밖의 어두운 하늘을 가리켰다.
“엄마, 저기 별이 하나 더 사라졌어.”
해나는 항해도에 별의 위치를 표시했다. 사라진 별은 처음 빈자리의 바로 옆이 아니었다. 둘 사이에는 세 개의 항로가 놓여 있었고, 그중 하나는 사람들이 자주 쓰는 구름항로였다. 별빛을 옮기는 일이 주변의 항로까지 어둡게 만든다는 걸 확인한 셈이었다.
“항로를 돌려도 별이 다시 켜지진 않을 거예요.”
“그럼 무엇을 확인할 수 있지?” 실하가 물었다.
“빛이 어디로 가는지요. 항구가 정말 있다면, 문을 열기 전에 바람과 정박 지점을 먼저 확인해야 해요.”
선장은 승객들에게 구름벽 접근을 알렸다. 배를 안정시키는 동안 누구도 갑판을 이동하지 않도록 했고, 약품 상자를 승무원 구역으로 옮겼다. 해나는 기록판에 접근 시각과 등불 밝기를 적었다. 자신이 본 항구를 믿더라도, 그곳으로 가는 선택은 승객과 선원 모두에게 공개되어야 했다.
검은 틈 안에서 항구의 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 잔잔한 바람이 갑판 위로 불어왔다. 아홉 번째 등불의 빛이 문 안으로 길게 이어졌다. 해나는 기록판에 바람의 온도와 냄새를 적었다. 하늘 항구에서 불어오는 공기에는 젖은 나무와 오래된 빵 냄새가 섞여 있었다.
악단의 노인은 눈을 감았다. “벨로의 냄새야.”
실하는 그 말을 듣고도 항로를 바꾸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문 너머가 안전한 항구인지 확인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