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등불선

3화: 벨로의 빈 부두
항구의 문 너머로 바람이 불어왔다.
실하는 아홉불호를 멈추게 했다. 구름닻은 얼어붙은 채였고, 엔진은 낮은 출력으로만 버텼다. 배를 항구 안으로 밀어 넣으면 돌아올 연료가 부족할 수 있었다.
“먼저 무인 부표를 보낸다.” 선장이 말했다.
두목은 작은 등불을 단 부표를 줄에 묶었다. 부표가 문 너머로 지나가자 줄이 팽팽해졌다. 신호가 한 번, 두 번 왔다. 물살은 없고 바람은 북쪽에서 불었다. 세 번째 신호는 오지 않았다.
“줄이 끊겼어.” 두목이 말했다.
“얼음에 걸린 걸까요?” 해나가 물었다.
“잘렸어. 갑자기 당겨진 뒤에 끊어졌어.”
실하는 항해도를 접었다. “정찰정 두 명만 보낸다.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악단의 노인이 자원했다. 그는 미르 항구에 가야 하는 승객이었지만, 벨로에 딸이 있었다. 실하는 그의 탑승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신은 항해사가 아니야. 저곳이 안전한지 확인되기 전엔 보내지 않는다.”
노인은 낡은 악보를 내밀었다. “딸이 어린 시절 부르던 항구 노래야. 벨로의 종소리가 이 노래와 같은 음으로 울리면, 아직 그곳에 사람이 있다는 뜻이오.”
해나는 악보를 받아 배의 종과 비교했다. 첫 음은 항구의 문이 열릴 때 들린 낮은 소리와 같았다. 그녀는 정찰정의 항로를 그리면서 바람 방향과 귀환 시간을 표시했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별의 위치와 항구의 표식을 기록해야 해요.”
“위험할 수 있다.” 실하가 말했다.
“그래서 정해 둔 시간 안에 돌아오겠습니다. 바람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바뀌면 즉시 귀환하겠습니다.”
“나는 정찰정에 타겠다.” 실하가 말했다. “두목은 이 배에서 등불과 엔진을 감시해. 해나가 정한 귀환 신호를 놓치지 마.”
두목은 출발 전에 정찰정의 등불을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반사판을 접었다. “문 안쪽의 빛이 배에 연결되면 이 작은 배도 끌려갈 수 있어. 줄이 세 번 당겨지면 즉시 끊어.”
“줄을 끊으면 돌아올 수 없잖아요.” 해나가 말했다.
“정찰정이 빛에 끌려가는 것보다 낫지.”
실하는 비상용 밧줄을 허리에 묶었다. “우리가 돌아오지 않으면 아홉불호는 미르로 가. 승객들을 먼저 내려 줘.”
“그럼 선장님을 두고 가라는 거예요?” 두목이 물었다.
“내가 내린 항해 명령이다. 선원에게도 귀환 판단을 넘길 수 있어야 해.”
해나는 그 말을 기록했다. 선장의 안전을 위해 배 전체를 잃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돌아오지 않을 사람을 정해 두는 것 역시 항해 계획에 들어가야 했다.
그녀는 정찰정의 방향타를 확인하고, 구름닻의 줄이 얼지 않도록 기름칠을 했다. 항구에 들어갈 때 속도를 줄일 수 있게 돛을 절반만 펼쳤다. 해나는 본선에 남아 있는 두목에게 세 가지 신호를 정했다. 한 번은 바람 변화, 두 번은 항구 안에서의 위험, 세 번은 즉시 철수였다. 신호를 바꿀 가능성도 고려해, 빛과 밧줄을 함께 사용하기로 했다.
정찰정은 밧줄을 풀고 문 안으로 들어갔다. 해나는 항해도를 무릎에 놓고 별의 빈자리를 표시했다. 항구의 빛은 지도에 찍히지 않았지만, 나침반의 바늘은 꾸준히 그 방향을 가리켰다.
문을 지나자 하늘이 달라졌다. 구름은 사라지고 넓은 바다처럼 어두운 공간이 펼쳐졌다. 벨로 항구는 유리 지붕과 높은 돛대, 둥근 부두를 갖춘 큰 도시였다. 하지만 부두에는 배가 한 척도 없었다. 집들의 창문은 어두웠고, 종탑은 기울어져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군.” 실하가 말했다.
해나는 부두의 밧줄에 매달린 작은 종을 보았다. 바람도 없는데 종이 흔들렸다. 노인의 악보와 같은 음이 한 번 울렸다.
“누군가 있어요.”
정찰정은 부두 가장자리에 닿았다. 해나는 내려서기 전에 물의 깊이와 돌의 상태를 확인했다. 항구의 바닥은 오래된 소금으로 굳어 있었고, 부두 안쪽으로 갈수록 갈라진 흔적이 넓어졌다. 이곳은 무너지는 중이었다.
선장은 먼저 안전한 계류 지점을 찾았다. 해나는 바람과 별자리의 각도를 기록했다. 항구에 들어서자 아홉 번째 등불의 빛이 약해졌고, 사라졌던 별 하나가 하늘 가장자리에 아주 희미하게 나타났다.
“이 항구가 별빛을 받아서 살고 있는 게 아니에요. 별빛을 돌려보내고 있어요.”
“그러면 등불이 빛을 가져가면 항구가 더 약해질 수 있겠군.”
“맞아요. 등불을 오래 켜 두면 안 됩니다.”
해나는 정찰정의 등불을 한 겹 천으로 가렸다. 항구의 바닥에서 작은 불빛들이 반응했다가 잦아들었다. 유리 지붕 위쪽에는 빛을 받아들이는 반사판이 아니라, 바깥으로 돌려보내는 거울판이 달려 있었다. 판들은 모서리가 닳고 일부는 깨져 있었다.
“항구가 별빛을 되돌리고 있다면 누군가 계속 손봐야 해요.”
실하는 부두의 계류줄을 살폈다. “사람이 없다면 누가 관리하지?”
“별빛만으로 움직이는 장치는 아닙니다. 종과 반사판, 밧줄 모두 사람이 쓰던 거예요.”
해나는 깨진 반사판 아래에서 작은 손자국을 발견했다. 먼지가 덜 쌓인 곳마다 최근에 만진 흔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항구에 살지 않아도 밤에 들어와 장치를 고치고 있는 듯했다.
정찰정의 외부 계기가 한 번 흔들렸다. 본선과 연결된 밧줄이 당겨졌다. 약속한 바람 변화 신호였다. 해나는 항구 안에 들어온 지 십 분도 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했다.
“본선의 구름닻이 위험해졌어요.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그럼 우선 종탑을 확인하고 돌아간다.” 실하가 말했다.
실하는 정찰 시간을 줄였다. 세 사람은 종탑 쪽으로 향했다. 길가의 가게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문손잡이에는 손때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 최근까지 이곳을 드나든 흔적이었다.
종탑 아래에서 작은 종이 다시 울렸다. 내부 문에는 악단의 노인이 그린 그림과 같은 악보가 붙어 있었다. 해나는 그것을 장부에 옮겼다. 문을 열자 안쪽에 선원용 외투가 걸려 있었다.
외투 안주머니에는 항해일지가 들어 있었다. 마지막 기록에는 ‘아홉불호가 도착하면 별을 돌려 달라고 말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날짜는 십 년 전이었다. 이름 칸은 물에 번져 읽을 수 없었다.
“그날 항구에 실종된 선원이 있었나요?” 해나가 물었다.
실하는 외투의 소매에 새겨진 문장을 살폈다. “예전에 우리 배에서 일한 항해사 문장이야. 그는 벨로로 간다고 했지만 돌아오지 않았어.”
해나는 항해일지를 펼쳐 잉크가 남은 부분을 조심스럽게 말렸다. 문장은 두 줄만 읽혔다.
‘별을 옮기면 길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길이 아니라 집을 잃었다.’
해나는 남아 있는 날짜를 따라 항해일지를 정리했다. 항해사는 이 항구에서 별빛을 되돌리는 장치를 고치려 했고, 마지막 기록에는 정박한 등불선의 이름을 남겼다. 그 이름이 아홉불호였다.
“이 배가 오기를 기다렸던 건가요?”
“이름만 같을 수도 있어.” 실하가 말했다. “아홉불호라는 배는 여러 척 있었어.”
“하지만 아홉 번째 등불은 이 배에만 있습니다.”
실하는 일지의 낡은 표지를 뒤집었다. 안쪽에는 현재 배의 선체 문장과 닮은 그림이 있었다. 세월이 오래되어 일부가 지워졌지만, 선미의 등불 모양은 알아볼 수 있었다.
“이 기록이 사실이면 누군가 우리 배를 만들 때부터 이 항구를 알고 있었어.”
해나는 선원 명단을 펼쳤다. 십 년 전 항해사의 이름은 번져 있었지만, 직책은 ‘항해사 수습’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의 해나와 같은 직책이었다.
종탑 바깥에서 낮은 금속음이 울렸다. 실하는 즉시 일지를 덮었다. 항구 입구에 천문 길드의 검은 함선이 나타나 있었다. 돛에는 별을 꿰맨 흰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저들이 왜 여기 있지?”
해나는 숨을 삼켰다. “별자리 빈자리를 만든 쪽일 수 있어요.”
검은 함선은 정찰정과 벨로 항구 사이에 닻을 내렸다. 길드의 천문사가 망원경을 들고 세 사람을 찾았다. 그는 손에 든 수정판으로 아홉 번째 등불의 빛을 측정했다.
“항구에 등록되지 않은 선박이 들어왔다. 등불을 끄고 정박하라.”
실하는 검을 뽑지 않았다. “우린 정찰 중이다. 이 항구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여긴 폐쇄된 하늘구역이다. 별빛은 길드의 소유다.”
“항구 사람들은 어디 있지?” 해나가 물었다.
천문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수정판을 들어 올렸다. 아홉 번째 등불이 반응하며 빛을 빨아들였다. 항구의 종이 짧고 급하게 울렸다.
해나는 종탑 안의 일지를 가슴에 넣었다. “이 빛을 더 가져가면 항구가 무너져요.”
“그걸 증명할 수 있나?”
“이곳의 별은 등불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해요.”
실하는 해나의 말을 듣고 귀환 신호를 준비했다. 그러나 검은 함선이 정찰정의 밧줄을 끊었다. 배가 항구에서 떨어져 나갔다.
천문사는 그제야 미소 지었다. “이제 돌아갈 수 없다. 등불을 넘겨라.”
종탑의 맨 꼭대기에서 누군가가 등불을 세 번 흔들었다.
어두운 창문마다 하나씩 작은 불빛이 켜지기 시작했다.
불빛은 무작위로 켜지지 않았다. 부두에서 먼 집부터 차례로 이어져 종탑을 향했다. 해나는 그 순서를 항해도에 옮겼다. 사람들의 거주지가 아니라, 바람과 별빛을 돌려보내는 장치의 연결처럼 보였다.
한 창문 뒤로 사람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항구에는 주민이 있었다. 그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정찰정을 보고 있었다.
해나는 검은 함선의 천문사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다. “이곳은 비어 있지 않아요.”
실하는 그녀의 판단을 듣고 정찰정의 귀환 줄을 당겼다. 그러나 본선에서 신호가 오지 않았다. 문 너머의 빛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