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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마지막 역참1화

고려 마지막 역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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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다리를 끊으라는 말

말은 문 앞에서 쓰러지지 않았다. 윤복녀가 재빨리 고삐를 잡고 안장부터 풀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말과 함께 쓰러졌다. 이해준은 그 사람의 어깨를 받았다. 젖은 갑옷 밑에서 피 냄새가 났다.

“말 먼저!”

복녀가 외쳤다. 그 말을 따라온 아이가 먹이 자루를 들고 나왔다. 해준은 사람을 기둥에 기대 놓았다. 갑옷을 벗기자 몸 한쪽에 화살이 스친 상처가 보였다. 아직 피가 배어 나왔다.

“누구한테 쫓겼소?”

해준이 물었다.

사내는 답하지 않고 품을 짚었다. 해준은 그의 손이 잡은 봉투를 받았다. 봉투는 젖었지만 인장은 잘 남아 있었다. 개경에서 온 것이라고 했다. 해준은 인장의 모양보다 말의 입가를 먼저 보았다. 거품이 말라 굳어 있었다. 중간에 갈아탈 말을 못 구한 모양이었다.

“세 역을 그냥 지나왔습니다.”

사내가 말했다.

“문 닫았던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해준은 봉투를 품에 넣고 물을 가져왔다. 사내는 잔을 들지 못했다. 손가락에 힘이 없었다. 물이 턱 아래로 흘렀다. 해준은 천을 받쳐 조금씩 마시게 했다.

마당에서는 복녀가 말의 몸을 닦고 있었다. 그녀는 해준에게 오늘 저 말은 더 못 간다고 손짓했다. 사내는 그 손짓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오늘 안에 남쪽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당신도 못 간다.”

해준이 말했다.

“명은 갈 수 있다. 당신 말고 다른 사람이 들고 가면 된다.”

그는 명을 끊지 않는 것이 자기 일이라고 배웠다. 말을 갈고 사람을 갈아도 봉투는 다음 역에 가야 했다. 사람의 얼굴이 바뀌어도 인장의 모양은 바뀌지 않았다.

사내가 겨우 이름을 말했다. 조위진이었다.

해준은 그를 빈 방에 눕히고 마당으로 나왔다. 북쪽 담 위에서 임초령이 등불을 고치고 있었다. 아직 해가 높았다. 그런데도 등불에 불을 넣어 보았다 빼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봉화대와 두현역 사이의 약속이었다. 밤에 길을 열어 두라는 뜻을 전할 때 쓰는 등불이었다.

“아버지는?”

해준이 물었다.

“안 내려왔어요.”

“봉화는?”

“어젯밤부터 안 보였어요.”

초령은 너무 빨리 답했다. 해준은 더 묻지 않았다. 그녀의 왼손 새끼손가락이 등불 고리에 걸렸다가 빠졌다. 어릴 때 말에서 떨어져 굽은 손가락이었다. 힘을 주면 늘 그 손가락부터 움직였다.

“위에서 사람이 오는 것도 못 봤나?”

“나무에 가렸어요.”

그녀는 이번에도 빨리 말했다. 해준은 등불을 잡아 주었다. 초령이 매듭을 고친 뒤 아래로 내려왔다. 산 위에서 아버지와 함께 내려올 때는 문이 열리기 전에 웃음소리가 났는데, 오늘은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해준은 봉투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접수대에는 오전에 온 다른 문서가 있었다. 왕조가 바뀐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을 붙잡아 넘기라는 명이었다. 어느 쪽에 넘기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명을 읽은 역졸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지 물었지만 해준도 답하지 못했다.

새 봉투의 인장은 그 문서와 같았다.

그러나 새 명령은 소문을 다루지 않았다.

두현교를 해가 지기 전에 없애고, 남은 말은 남쪽 군진으로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역참 사람은 다리를 끊은 다음 물러나라고 했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적의 길을 차단한다는 이유였다.

해준은 종이를 내려놓고 창밖을 봤다. 두현교는 두현역이 생기기 전부터 있던 나무 다리였다. 해마다 물이 불면 고치고 사람이 다치면 기다렸다. 이번에는 물이 아니라 문서가 그것을 끊으라고 했다.

복녀가 말먹이를 들고 들어왔다.

“몇 필 보내래?”

“있는 만큼.”

“아픈 놈까지?”

“문서에는 가리지 않았다.”

복녀는 먹이통을 바닥에 놓았다.

“종이에는 다리가 네 개 있나 보다. 쉬지 말고 가게 하니.”

해준은 웃지 못했다. 두현역에는 당장 쓸 수 있는 말이 다섯 필 있었다. 문서에는 말 열두 필을 보낸다고 적혀 있었다. 이전 장부의 숫자가 그대로 남았다. 죽은 말과 빌려 간 말을 지워 달라고 여러 번 청했는데, 다리 끊으라는 명이 고쳐진 숫자보다 먼저 왔다.

문 밖에서 초령이 그를 불렀다.

“북쪽 길에 사람 있어요.”

해준이 담 위에 올랐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보였다. 나무 사이에서 수레가 하나 나오고, 그 뒤에 또 사람이 나왔다. 행렬이 아주 느렸다. 다리를 건너려면 적어도 한참을 더 걸어야 했다.

적군의 행렬은 아니었다.

아이를 업은 여자, 부러진 창으로 몸을 받치는 노인, 수레에 누운 사람이 보였다. 먼 데서도 갑옷이 아닌 옷을 입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어떤 군을 따라왔는지는 가까이 봐야 했다. 그래도 지금 다리를 끊으면 저 사람들은 강을 건너지 못했다.

“물이 저녁이면 불어요.”

초령이 말했다.

“마른길은?”

“어제 잠겼어요.”

그녀는 담 위에서 손을 뻗어 오래된 우회로를 가리켰다. 길의 이름을 믿고 들어가면 물속에서 멎었다. 해준은 군령의 날짜를 다시 봤다. 오늘이었다. 봉투가 오는 동안 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종이에는 없었다.

“다리를 끊지 않으면?”

초령이 물었다.

해준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군령을 늦춘 관리가 어떻게 되는지는 여러 번 보았다. 역참에서 사라진 사람이 모두 말과 함께 다음 역으로 간 것은 아니었다.

“명령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 물어봐야지.”

그는 방으로 돌아갔다. 위진은 잠들지 못하고 천장을 보고 있었다. 해준이 다리 너머의 사람들을 말하자 그는 눈을 감았다.

“북쪽 길에는 아무도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있다.”

“없도록 했다고 들었습니다.”

위진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상처가 다시 벌어져 붕대가 젖었다. 해준은 그의 어깨를 누르고 말을 계속했다.

“그 사람들이 적군이라고 들었나?”

“북쪽에서 내려오는 건 전부 막으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막으라는 말과 다리를 끊으라는 말은 다르다.”

위진은 입을 다물었다. 해준은 그가 거짓말을 하는지, 잘못 전해 들은 말을 지키는지 알 수 없었다. 적어도 문서를 펼치기 전에는 직접 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초령이 문에 기대 섰다.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해준은 그녀가 아버지 때문에 온 줄 알았다. 그런데 초령은 군령을 가리켰다.

“해가 지기 전이면 지금부터 끊어야 해요. 다리 밑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하고, 마지막 밧줄은 강 건너에서 풀어야 하니까.”

“안다.”

“아버지가 그 밧줄을 묶었어요.”

그 말이 방 안에 한동안 남았다. 아버지가 묶은 것을 끊으라는 명령이었다. 초령은 누가 틀렸는지 물으려 하지 않았다.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지 묻고 있었다.

해준은 접수대에서 새 봉투의 가장자리를 잘랐다. 늘 하던 표시였다. 날짜와 전달자 이름을 적었다. 다만 접수 완료 자리에 선을 긋지 않았다. 받아 놓고 아직 보내지 않는 명이 처음 생겼다.

“피난민부터 건너게 한다.”

그가 말했다.

위진이 고개를 들었다.

“해 지기 전에 못 끝나면……”

“늦어진 이유는 내 이름으로 쓴다.”

복녀가 밖에서 말을 들었다. 그녀는 역졸 둘에게 수레를 가져오게 했다. 걸어올 수 있는 사람은 걸어오고 걷지 못하는 사람부터 옮기면 조금 빨라졌다. 말은 다른 역까지 가지 않아도 다리를 몇 번 오갈 수 있었다.

해준은 다리 위로 나갔다. 강은 그가 아침에 본 것보다 높아졌다. 나무판 가운데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는 판을 발로 눌러 보고 못을 다시 박게 했다. 피난민이 건너다 거기서 넘어지면 뒤의 행렬도 멈췄다.

가장 먼저 온 아이는 울지 않았다. 너무 오래 걸어 울 기운이 없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물을 달라고 했다. 해준은 역참의 통을 가져왔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난 다음에야 여자가 말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걸어야 해요?”

해준은 역참의 문을 가리켰다.

“저기까지는 쉬어도 됩니다.”

“내일은요?”

그는 내일을 약속하지 못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도 내일을 듣지 못하고 여기까지 온 눈이었다. 해준은 아이를 수레에 태웠다. 뒤에 누워 있던 임산부가 손을 뻗어 아이가 떨어지지 않게 잡아 주었다.

다리 저편에서 역졸이 외쳤다. 또 다른 말이 나타났다. 말을 탄 사내가 작은 깃발을 들고 행렬 앞을 막았다. 피난민은 자기들 가운데서 그가 나왔다고 했다. 길을 안내하던 사람이었다.

“여기가 우리가 갈 길이 맞소?”

해준이 큰 소리로 물었다.

사내는 답하지 않고 강가 아래로 빠졌다. 초령이 그의 뒤를 좇으려 했지만 해준이 막았다. 다리 위에서 내려가는 길이 너무 미끄러웠다. 그들이 사람을 놓쳤을 때 깃발만 물 위로 떨어졌다.

초령이 긴 막대로 그것을 건졌다. 피난민이 길잡이 표식이라고 부른 깃발이었다. 한쪽에는 두현역을 향한 방향이 그려져 있었다.

반대쪽에는 같은 행렬이 적군의 선발대라고 적혀 있었다.

해준은 깃발을 접지 않았다. 처음 온 여자가 그것을 보고 입을 막았다. 누군가 다리로 보내 놓고, 누군가 다리를 끊으라고 했다. 명령을 지키는 사람과 길을 따르는 사람 모두 제 일을 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었다.

그 가운데 강이 있었다.

초령이 갑자기 산 위를 봤다. 봉화대에서 불빛이 한 번 나타났다 사라졌다. 아버지가 쓰던 신호가 아니었다. 그녀는 해준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언제부터 달랐지?”

해준이 물었다.

초령은 굽은 손가락을 꽉 쥐었다.

“어젯밤이 아니라, 어제 낮부터요.”

해준은 화를 내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는 다리의 못을 박던 역졸에게 망치를 넘기고 초령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럼 아버지는 하루 먼저 사라졌다. 위로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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