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의 가짜 예언자

2화: 기록에서 사라진 사람
나린은 황후의 손에 든 잔을 바라봤다. 표식이 있는 받침은 증거 봉투에 들어갔고, 깨진 은잔은 집무실 책상에 남아 있었다. 황후는 사람들을 내보낸 뒤에도 그 방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점괘를 바꿔 달라고 한 건 맞다.” 세이린이 말했다. “그러나 그 시녀가 왜 사라졌는지는 모른다.”
“시녀 이름을 공개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어요.”
“그녀의 가족이 위험해질 수 있다.”
“그럼 가족에게 먼저 알리고, 허락을 받으세요.”
황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제온은 시녀의 근무표에서 이름이 지워진 자리를 찾았다. 종이에는 칼로 긁은 자국이 있었고, 잉크가 남아 이름 첫 글자가 ‘라’처럼 보였다. 아샤는 시녀가 라미라고 했지만 공식 명단에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왜 이름이 사라졌죠?” 나린이 물었다.
“궁정 기록은 폐하의 허가 없이 삭제할 수 없습니다.” 제온이 말했다.
“그럼 허가가 있었다는 뜻이군요.”
황후는 기록을 직접 보았다. “내가 승인한 삭제가 아니다.”
나린은 “황후는 삭제를 승인하지 않았다고 진술함”이라고 적었다. 황후는 그 문구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말을 정확히 옮기는구나.”
“정확한 기록과 믿음은 다르니까요.”
제온은 경비대 기록고에서 라미의 근무표를 찾았다. 라미는 황후의 개인 시녀가 되기 전 점술원에서 일했다. 그녀는 마엘의 방을 청소했고, 잔향판을 폐기 장부에 올린 날 근무했다. 근무표에는 라미가 2년 전 사망했다고 적혔지만, 시신을 확인한 기록은 없었다. 병으로 귀향했다는 문장만 남았다.
“사망 기록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가족을 찾아가야 해요.” 나린이 말했다.
황후는 직접 확인하겠다고 했다. 제온은 호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린은 황후의 안전뿐 아니라 가족의 선택도 고려해야 한다며, 먼저 방문 이유를 알리고 허락을 구하자고 했다. 황후는 그 조건에 동의했다.
라미의 가족은 북쪽 강변에서 작은 제과점을 운영했다. 어머니는 황후를 보자 문을 닫으려 했다.
“제 딸을 찾으러 오셨습니까?”
황후는 왕실 인장을 내밀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숙였다. “그 아이의 이름을 기록에서 지운 이유를 확인하러 왔습니다. 제가 모른다고 해서 책임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어머니는 황후를 들이지 않았다. “라미는 병으로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찾는 이유가 뭡니까?”
황후는 나린을 바라봤다. 나린은 정리된 기록을 펼치지 않았다. 그것은 어머니의 선택을 압박할 수 있었다. 대신 먼저 물었다.
“라미가 점술원에서 일한 적이 있나요?”
어머니의 손이 문고리에서 멈췄다. “그 이름을 누가 알려 줬습니까?”
“근무 기록에서 찾았습니다. 다만 공개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러 왔어요.”
어머니는 한참 후 문을 열었다. 라미는 죽지 않았다. 딸은 2년 전 갑자기 사라졌고, 편지 한 장만 보내왔다. 편지에는 자신을 찾지 말고 이름을 기록에서 지워 달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왜 그 부탁을 들어줬죠?” 제온이 물었다.
“왕궁 경비가 문 앞에 왔기 때문입니다. 딸이 도망쳤다고 하면 저희도 끌려갈 거라 생각했어요.”
황후는 어머니의 진술을 막지 않았다. 라미의 이름을 공개하는 데 동의하는지 물었다. 어머니는 딸이 살아 있다는 사실만 공개하고 현재 위치는 숨겨 달라고 했다. 그 조건은 세 사람의 기록에 적혔다.
집을 나오는 길에 황후는 걸음을 늦췄다. “나는 안정이 모두를 지킨다고 믿었다.”
나린은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정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의 침묵 위에 세워졌을 수도 있겠지.”
“그 사실을 공개할지 선택하는 건 폐하입니다.”
“너는 내게 예언을 주지 않는군.”
“저는 예언자가 아니라 점술사예요.”
황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궁으로 돌아온 뒤 나린은 마엘의 폐기 기록과 라미의 근무표를 비교했다. 두 문서의 수정 잉크가 같았다. 서명은 달랐지만, 잉크에 섞인 금속 가루의 비율이 일치했다. 누군가 점술원과 황후 시녀 기록을 함께 고쳤다.
제온은 황후의 개인 서기관 방에서 같은 잉크병을 찾았다. 병은 비어 있었고, 병목에 검은 왕관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서기관은 방에 없었다. 그의 여행 짐도 그대로였다. 누군가 그를 데려갔거나, 스스로 사라졌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날 밤 잔향판에 새 환영이 나타났다. 황후의 손이 아니라 제온의 손이었다. 그는 황후의 인장을 들고 있었고, 불탄 문서를 창밖으로 던지고 있었다.
나린은 그 장면을 보자마자 제온을 불렀다. 그는 환영을 보고 손을 뒤로 감췄다.
“이건 예언인가요?” 그가 물었다.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이 직접 확인해야 할 장면이에요.”
제온은 자신의 기록을 가져와 황후의 인장을 언제 사용했는지 확인했다. 그의 화상 입은 손은 떨렸지만, 그는 그 떨림을 숨기지 않았다. 인수 기록에는 제온이 그날 밤 점술원 기록고에 들어간 흔적이 있었으나, 출입 장부에는 이름이 없었다.
“당신은 왜 기록을 남기지 않았죠?” 나린이 물었다.
제온은 황후를 지키려 점술 기록을 숨겼다고 했다. 하지만 잔향판을 가져간 기억은 없었다. “누군가 내 손을 빌렸을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사람을 찾으려면 지금 사실을 보고해야 해요.”
제온은 황후에게 보고하기로 했다. 그는 감시를 멈추지는 않았지만, 나린의 기록을 독립된 장부로 남기는 데 동의했다. 그녀는 명령과 목격, 추측을 각기 다른 칸에 적었다.
황후가 그 보고를 받은 날 밤, 궁정 기록고에서 화재가 났다. 불은 금방 꺼졌지만, 마엘의 원본 점괘가 사라졌다. 방 한가운데에는 검은 왕관을 그린 종이만 남아 있었다.
나린은 종이를 보자 잔향판의 환영을 떠올렸다. 그 왕관은 미래의 상징이 아니었다. 누군가 기록을 지우고 다시 만들 때마다 남기는 서명이었다.
나린은 불탄 기록고의 입구에서 한참 움직이지 못했다. 잿더미에는 점술사들의 이름이 적힌 종이 조각이 흩어져 있었다. 불길은 원본을 태웠지만, 철제 서랍 안쪽에는 종이의 가장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재를 쓸어내지 않고, 불에 닿지 않은 순서대로 조각을 모았다.
제온은 그녀에게 기다리라고 했다. 바닥이 아직 뜨거워 무너질 수 있었다. 나린은 발을 멈췄지만 눈은 종이 조각에서 떼지 못했다. 맨 위 조각에는 마엘의 이름 첫 글자가 남아 있었다. 그녀는 스승이 점술원에서 사라졌던 날을 기억했다. 마엘은 새벽에 떠났고, 누구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나린은 그때 자신이 질문하지 않은 일을 오래 후회해 왔다.
“저는 그분이 돌아올 줄 알았어요.”
“당신이 기다렸다는 사실이, 그분이 돌아오지 않은 책임은 아닙니다.” 제온이 말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저였어요. 그분은 제게 점괘는 문장보다 손의 떨림을 보라고 했죠. 그런데 저는 그 말도 기록하지 않았어요.”
제온은 그녀의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발밑의 잿가루를 가리켰다. “지금 남길 수 있는 걸 기록합시다.”
나린은 종이 조각의 위치와 탄 정도를 적었다. 그 과정에서 불탄 문서 뒤에 숨겨진 작은 유리판을 찾았다. 판에는 마엘이 나린에게 처음 점술을 가르치던 날의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환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판의 모서리에 새겨진 표식은 검은 왕관이었다.
“마엘은 이 표식을 알고 있었을까요?”
“알았겠죠. 그분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판이니까요.”
“그럼 왜 제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말할 수 없었거나,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나린은 두 가능성을 모두 적었다. 그녀는 더 이상 타인의 침묵을 자신에 대한 거절로 해석하지 않기로 했다. 그 순간 황후가 기록고 입구에 나타났다. 그녀는 불탄 종이들을 보고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원본은 모두 사라졌나?”
“아직 모릅니다. 남은 조각부터 확인해야 해요.”
“네가 원한다면 지금 조사에서 빠질 수 있다.”
나린은 황후를 바라봤다. “제가 빠지면 점술원은 제 이름으로 만들어진 점괘를 계속 쓸 거예요.”
황후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나린은 기록을 이어가겠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그 결정이 황후를 돕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마엘과 사라진 점술사들의 이야기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작은 유리판을 제온에게 건네기 전에 봉투의 투명한 면으로 감쌌다. 판에는 손때가 묻어 있었고, 가장자리 한쪽이 깨져 있었다. 제온은 그 깨진 모서리를 알아봤다. 같은 모양의 파편이 황후의 회의실에서 발견된 검은 왕관 판에 맞을 수 있었다.
“두 판은 원래 하나였을지 모릅니다.”
“그럼 누군가 일부러 둘로 나눴겠네요.”
“혹은 깨뜨린 뒤 각기 다른 기록고에 숨겼겠죠.”
나린은 파편을 조심스럽게 보관했다. 그녀는 마엘의 이름을 보고서에 적고, 가족의 동의가 확인될 때까지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제온은 그 선택에 서명했다. 황후는 입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처음으로 왕실 인장을 꺼내지 않은 채 그들에게 다가왔다.
“내일 의회에 가겠다. 네 기록을 직접 읽겠다.”
“제 기록은 제 허락 없이 복사하지 마세요.”
“알겠다.”
황후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다. 나린은 그녀가 약속을 지킬지 아직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왕실의 말도 검증할 수 있는 문서로 남겼다.
나린은 그날 발견한 잉크 얼룩을 손수건으로 닦지 않았다. 출처를 잃은 얼룩도 조사할 수 있도록 말린 뒤, 채취한 시간과 장소를 적어 봉투에 넣었다. 제온은 그녀의 이름을 적은 칸을 비워 두었다. 그녀는 직접 펜을 들어 자기 이름을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