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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의 발소리는 위층에서2화

빈집의 발소리는 위층에서

빈집의 발소리는 위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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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없는 세대

주리는 민석에게 주소를 보여 줬다. 이름 없는 세대는 그의 가족이 떠난 집이었다.

“우리 집은 10년 전에 이사했어.” 민석은 사진을 덮었다. “18년 전 기록은 착오겠지.”

“네 어머니가 세입자 모임 기록을 정리했어. 여기 서명이 남아 있어.”

민석은 어머니의 서명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름 없는 세대를 신고한 적은 기억나지 않았다. 주리는 이주 장부를 보존하기 위해 주민센터에 제출하려 했지만, 재개발 조합은 원본 자료를 거부했다. 장부의 종이는 물에 젖어 가장자리 글씨가 번져 있었다. 민석은 사진으로 페이지를 찍어 두겠다고 했다. 플래시를 켜지 않고 한 장씩 촬영했다.

현상된 사진마다 천장 위의 방이 달라졌다. 첫 사진에는 빈 책상이 있었고, 다음에는 아이가 창가에 앉아 있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세 번째 사진에서는 아이의 발이 민석의 머리 위에 닿아 있었다. 민석은 인화지를 뒤집어 날짜를 확인했다. 세 장의 촬영 시각은 각각 몇 분 차이였다. 즉, 방은 과거의 장면이 아니라 현재 변화하고 있었다.

주리는 민석에게 어릴 적 살던 집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민석은 방 두 개와 좁은 부엌을 기억했다. 위층은 없었다. 그의 어머니는 한동안 이 집을 비우지 말라고 했고, 그 뒤 가족은 갑자기 이사를 갔다. 민석은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는 그저 어머니가 재개발 보상금을 기다렸다고 생각했다.

노상철은 두 사람을 현장에서 내보내기 위해 안전띠를 쳤다.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주리를 막다가 어깨를 부딪쳤다. 주리는 넘어지며 장부를 떨어뜨렸다. 종이 몇 장이 빗물 웅덩이에 닿았다. 상철은 장부를 주워 돌려줬다. 그는 철거 일정이 하루 앞당겨진 이유는 기둥 균열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빈집에서 발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을 작업자들이 먼저 냈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

“건물 위층은 없어.” 상철이 말했다. “위층이 있었다면 내가 도면을 봤겠지.”

“도면이 실제 구조와 다를 수도 있어요.” 주리가 답했다.

“그럼 더 위험해. 그래서 들어오면 안 돼.”

민석은 상철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사진을 보여 줬다. 상철은 인화지를 받아 들고, 위층 방의 창문을 보자 손을 놓쳤다. 사진은 바닥에 떨어졌다. 그는 그 방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과거 철거 현장에서 같은 층을 발견했지만, 안전 책임자가 들어가지 말라고 막았다. 그날 안에 남은 사람의 이름은 작업 기록에서 삭제됐다.

“누가 지웠습니까?” 주리가 물었다.

상철은 답하지 않았다. 그는 철거 일정이 새벽으로 바뀐 이유가 자신이 만든 균열 보고서 때문이라고 했다.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위층 흔적을 다시 확인하면 작업 중단 명령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현장 노동자들의 일당과 계약이 끊길까 봐 검사를 미뤘다.

민석은 다시 혼자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카메라를 두고, 손전등과 줄자만 가져갔다. 문을 닫지 않은 채 방의 너비를 쟀다. 수치는 도면과 일치했다. 천장 위에는 공간이 없었다. 그러나 손전등이 벽면을 훑을 때 노란 벽지 한 조각이 드러났다. 그는 손을 대지 않았다. 천장 위에서 발소리가 세 번 났다. 이번에는 그 중 하나가 반 박자 늦게 따라왔다.

민석은 옥상으로 올라가 기둥의 균열을 확인했다. 균열은 아래에서 위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천장 한가운데에서 시작돼 벽으로 번져 있었다. 주리는 이주 장부의 오래된 주소와 사진 속 방의 구조를 맞춰 봤다. 이름 없는 세대는 민석 가족의 집이 아니라, 그 집 위에 존재하지 않는 층을 말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 가족은 그 층에 살았던 거야?” 민석이 물었다.

“네 어머니가 그 방을 알고 있었을 수 있어.”

그는 어머니에게 묻지 못한다. 대신 집 벽에서 오래된 액자를 발견했다. 액자 뒤에는 어린 민석이 낯선 아이와 서 있는 사진이 있었다. 아이는 천장 위의 사진 속 모습과 같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 사진 뒷면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윤아, 민석보다 한 층 위.’

상철은 철거 차량을 세우려 무전했다. 작업팀은 이미 현장에 들어오고 있었다. 건물 안에서 발소리가 빠르게 뛰었다. 민석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사진 속 아이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민석이 아직 오지 않은 현관을 향해 달렸다.

주리는 주민들을 모아 사진을 벽에 붙였다. 사진 속 위층은 한 장마다 구조가 달랐다. 어떤 사진에는 작은 부엌이, 다른 사진에는 좁은 복도가 있었다. 주민들은 각자 한 번씩 본 적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한 노인은 그곳에서 아내와 함께 살았다고 기억했다. 다른 주민은 같은 집에서 아이를 키웠다고 했다. 누구의 기억인지 두고 논쟁이 일었다.

“한 층에 여러 가족이 살 수는 없어요.” 상철이 말했다.

“도면에 없다고 없었던 건 아니죠.” 주리가 맞섰다.

상철은 현장 안전을 이유로 촬영물을 철거팀에 제출하라고 했다. 사진이 퍼지면 주민이 몰려들어 사고가 날 수 있었다. 민석은 원본을 넘기지 않고 복사본만 주겠다고 했다. 상철은 그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사진을 잡고 실랑이를 벌였다. 인화지가 찢어지자 가운데 있던 아이의 얼굴이 반으로 갈렸다.

주리는 찢어진 사진을 주워 접착 테이프로 붙였다. 아이의 얼굴은 남지 않았지만, 방 안쪽에 또 하나의 문이 찍혀 있었다. 민석은 그 문을 전에 본 적이 없었다. 사진의 구도는 집 안쪽 벽을 통과해 위층으로 이어졌다. 사진은 단순한 과거를 보여 주지 않고, 지금 누군가 지나간 길을 기록하는 듯했다.

윤아의 어머니는 그 문이 딸의 방 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마지막 밤에 문을 열었지만, 방 안에 딸이 없었다. 이튿날 가족은 이주 통보를 받고 떠났다. 어머니는 딸이 앞서 이사했을 거라는 서류에 서명하도록 압박을 받았다. 그녀는 그 뒤로 자기 기억을 의심하며 살았다.

민석은 현장에 남은 벽지를 확인하기 위해 상철의 허락을 요청했다. 상철은 안전모와 호흡 보호구를 주고, 자신이 함께 들어가겠다고 했다. 주리는 따라가려 했지만, 두 사람은 주민들이 안전띠 바깥에 머물러 달라고 부탁했다. 상철이 처음으로 현장을 열어 둔 선택이었다.

벽지 아래에는 사람 키 높이의 옛 문틀이 있었다. 문은 벽돌로 막혀 있었고, 안쪽에 작은 손톱 자국이 여러 개 남았다. 민석은 그 자국을 사진으로 찍었다. 상철은 문을 뜯지 않고 안전 검사부터 하자고 했다. 그는 손전등을 안쪽 틈으로 비췄다. 빈 공간의 끝에는 아이의 운동화 한 짝이 놓여 있었다.

상철은 작업을 멈추고 구조대를 불렀다. 기다리는 동안 벽 안에서 발소리가 움직였다. 상철은 이제 들린다고 말했다. 소리는 그의 바로 위에서 나다가, 한 걸음씩 벽 속으로 멀어졌다. 상철은 손을 벽에 대지 않았다. 그는 과거에도 발소리를 들었지만, 균열과 배관 소리라고 생각해 보고서를 닫았다고 고백했다.

구조대는 벽 뒤가 빈 공간이 아니라, 오래된 배관 샤프트라고 판정했다. 내부에서 사람의 체온이나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다. 운동화는 18년 전 물건이 맞았지만, 누가 넣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민석은 굳이 벽을 허물지 않기로 했다. 실종자를 찾기 위해 또 다른 공간을 무너뜨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리는 이주 장부에서 윤아의 이름 옆에 ‘확인 대기’를 적었다. 이름을 지우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때 건물 외벽에서 금속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철거팀이 상철의 중지 명령을 받지 못하고 굴착기를 움직이고 있었다.

주리는 주민들에게 이름 없는 세대의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했다. 한 사람은 그 방에서 겨울마다 연탄을 피웠다고 했고, 다른 사람은 같은 자리에 욕조가 있었다고 기억했다. 세대의 크기와 위치는 모두 달랐지만, 아이가 창문에 손바닥을 대던 장면은 여러 사람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민석은 그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지 않았다. 그는 목소리를 녹음해도 되는지 먼저 물었고, 동의한 주민만 인터뷰했다. 그들의 기억은 증거가 아니지만, 기록의 빈칸을 설명하는 단서였다.

상철은 안전띠를 넓히고 주민들이 건물 가까이 오지 않도록 했다. 그는 처음으로 철거팀에게 장비를 세우라고 명령했다. 굴착기 운전자는 임금 손실을 걱정했지만, 상철은 자신의 서명으로 책임지겠다고 했다.

민석은 찢어진 사진을 복원하기 위해 현상소에 맡기지 않았다. 대신 스캔 파일을 여러 장으로 복사해, 주리와 윤아의 어머니에게 하나씩 전달했다. 원본 한 장에만 기대면 또 누군가 잃어버릴 수 있었다. 주리는 사진 뒤에 주소와 촬영 날짜를 적되, 아이 얼굴은 흐리게 처리하자고 했다. 윤아의 어머니는 얼굴을 지우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녀는 사진 속 아이가 자기 딸일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합의하지 못했다. 민석은 공개용 사본과 가족용 사본을 따로 만들었다. 누구의 기억도 한 번의 사진에 맞춰 강요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현장 안전 무전이 울렸다. 굴착기가 건물 외벽에 접근했고, 상철은 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장비는 움직이고 있었다.

상철은 자신의 안전모를 주리에게 건넸다. 주민들이 장부를 회수하러 건물 가까이 다가오면 위험하니, 그가 먼저 현장을 확인하겠다는 뜻이었다. 주리는 장부를 놓지 않았지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둘은 각자의 책임을 다르게 이해했다.

주리는 그에게 오늘의 기록을 넘기지 않고, 다음 날 주민 회의에서 함께 확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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