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빈집의 발소리는 위층에서1화

빈집의 발소리는 위층에서

빈집의 발소리는 위층에서

AD
스폰서 광고

1화: 꼭대기 위의 발자국

장민석은 빈집의 천장에서 발소리를 들었다.

집은 철거를 앞둔 연립주택 1층 끝세대였다. 건물 도면에는 위층이 없었고, 옥상은 두 달 전에 철거됐다. 민석은 현관 앞에서 신발 밑창을 털고 카메라를 점검했다. 그는 혼자 빈집에 들어갈 때 문과 창을 열지 않는 규칙을 지켰다. 재개발 구역에서 누군가 남겨 둔 흔적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방 안의 가구 위치를 기록했다. 작은 식탁 하나, 벽에 기대 놓인 아이 책상, 전기밥솥의 코드. 냉장고는 이미 빠져 있었다. 창문 유리에는 세로로 길게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 민석은 필름을 감고 셔터를 눌렀다. 셔터 소리 뒤에 한 걸음이 들렸다. 천장 위에서, 무거운 구두가 바닥을 걷는 소리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민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소리는 방을 가로질러 작은 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계단이 없었다. 그는 천장에 손을 대지 않고 녹음기를 켰다. 파형에는 셔터와 자신의 숨만 남았다. 발소리는 녹음되지 않았다.

“민석 씨, 아직 안 나왔어요?” 복도 밖에서 이주리가 불렀다.

주리는 세입자 모임의 이주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철거 전 주민들이 남긴 물건을 기록하러 민석을 불렀다. 민석은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주리는 빈집의 구조를 묻지 않았다. 대신 오늘 사진에 누가 찍혔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아무도 없어요.”

“그럼 발소리는요?”

민석은 그녀를 바라봤다. “들렸어요?”

“제가 물은 건 사진에 사람이 찍혔냐는 거예요.”

현상소에서 사진을 찾았을 때, 첫 네 장은 비어 있었다. 다섯 번째 사진에는 천장 위에 방 하나가 찍혀 있었다. 벽지는 노란색이었고, 어린이 책상이 창문 아래 놓여 있었다. 그 방은 도면에 없었다. 사진 한쪽에는 누군가의 신발이 보였다. 민석의 운동화와 같은 색이었다.

주리는 사진을 뒤집었다. 필름 가장자리에는 날짜가 찍혀 있었다. 촬영한 날이 아니라 18년 전 날짜였다. 민석은 실수로 오래된 필름을 넣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름통은 그날 새로 개봉했다. 현상소 직원은 사진이 겹쳐 찍힌 흔적도 없다고 했다.

민석은 다시 빈집으로 갔다. 이번에는 주리가 함께 들어왔다. 혼자 들어갈 때만 발소리가 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집 안은 전날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주리가 방 안으로 들어오자 천장은 조용했다. 민석이 현관 쪽으로 나가 혼자 남자, 위에서 두 걸음이 들렸다. 발소리는 전날보다 가까웠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천장을 찍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목재가 아래로 휘었다. 천장에서 가루가 떨어지고, 책상 위에 작은 발자국이 하나 찍혔다. 신발 자국이 아니라 맨발의 흔적이었다. 민석은 촬영을 멈추고 집 밖으로 나왔다. 주리는 손전등으로 바닥을 확인했다. 집 안에는 물이 없었다.

“이 건물에 몇 가구가 있었는지 기록이 다르네요.” 주리가 말했다.

이주 장부에는 12세대가 적혀 있었지만, 시청 도면은 11세대였다. 18년 전 철거 명부에는 이름 없는 한 세대가 더 있었다. 주리는 그 세대에 살던 사람이 동생의 친구였다고 했다. 그 가족은 갑자기 이사했고, 보상 기록도 남지 않았다.

현장 반장 노상철은 민석의 촬영을 막았다. 천장에 금이 갔으니 건물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그는 철거 전 점검이 끝나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민석은 사진을 보여 주지 않았다. 주리는 주민의 기록이 사라지기 전에 도면을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철은 건축 도면을 다시 확인해 주겠지만, 건물 안은 위험하니 출입을 금지하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민석은 사진을 확대했다. 위층 방의 창문에는 어린아이의 손바닥 자국이 있었다. 사진 속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은 18년 전이 아니라 현재 날짜를 가리켰다. 그 옆에는 민석이 아직 찍지 않은 현관 사진이 한 장 놓여 있었다. 사진 속 문 앞에는 누군가 서 있었다. 얼굴은 민석이었다.

그는 카메라를 닫으려 했다. 렌즈 뚜껑 안쪽에서 세 번의 노크가 들렸다.

다음 날 철거 일정은 오전 6시로 앞당겨졌다. 상철은 안전 문제로 건물을 비우겠다고 알렸다. 주리는 이주 장부에서 이름 없는 세대의 주소를 찾아냈다. 그 주소는 민석의 가족이 살던 집과 같았다.

민석은 현관 밖으로 나와서도 천장을 올려다봤다. 위층은 없는데, 지붕과 벽 사이에 빈 공간이 생겼다. 그는 구역 건축 도면을 휴대전화로 열었다. 단층 건물의 지붕은 콘크리트 판으로 바로 막혀 있었다. 배관 통로도 없었다. 그런데 들린 소리는 맨발이 마루를 끄는 소리에 가까웠다. 주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다.

“혼자 있을 때만 들리는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럼 다음엔 혼자 들어가지 마요.”

“그럼 확인을 못 하잖아요.”

“확인을 위해 위험을 늘릴 필요는 없어요.” 주리는 자기 이름이 적힌 주민 장부를 가슴에 안았다. “사람이 먼저고, 사진은 나중이에요.”

민석은 그 말을 들으면서도 필름을 갈아 끼웠다. 한 프레임이 남아 있었다. 그는 현관에서 카메라를 들고, 문틀의 금을 찍었다. 셔터가 닫히자 바닥에 먼지가 내려앉았다. 천장 바로 위에서 무언가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바람에 흔들린 지붕 소리와 구분하기 어려웠다.

집 밖에는 이사 가방을 들고 있는 중년 여성이 서 있었다. 그녀는 이윤아의 어머니라고 소개하며 이 건물에서 자란 딸이 18년 전 사라졌다고 말했다. 실종 신고는 했지만, 이주 통보를 받았다는 이유로 경찰은 수사를 끝냈다. 여자는 딸이 사라진 날 밤에도 위층 발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집에 위층이 없다고 했고, 가족은 얼마 뒤 이사를 갔다.

“그때 사진이 있어요?” 민석이 물었다.

여자는 한 장을 꺼냈다. 가족사진에는 민석이 어릴 때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의 어머니도 사진 가장자리에 있었다. 윤아의 어머니는 두 가족이 서로 왕래했다고 말했다. 민석은 자신이 그 집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주리는 사진을 받아 날짜와 촬영 위치를 적었다. 민석은 자신이 사진에 찍힌 아이인지 확인하려고 사진 속 손목을 봤다. 그에게는 같은 자리에 흉터가 있었다.

그날 밤 민석은 집에 돌아가 어머니의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필름통과 오래된 열쇠, 세입자 모임 회의록이 들어 있었다. 회의록 한 페이지가 뜯겨 나가 있었다. 남은 자리에 ‘위층 거주자 명부를 구청에 제출하지 말 것’이라는 문장이 희미하게 찍혀 있었다. 민석은 글씨를 알아봤다. 어머니가 쓴 기록이었다.

그는 왜 집을 떠났는지 묻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대신 필름을 현상하기로 했다. 사진 속 방은 더 선명해졌다. 천장 아래에 다른 층이 아니라, 건물 위쪽으로 접힌 복도가 있었다. 그곳에는 주민들이 신발을 벗어 놓았고, 벽에 가족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의 한쪽 끝에는 어머니가 민석의 손을 잡고 있었다.

주리는 다음 날 주민들을 모아 기억을 확인했다. 세 사람은 이름 없는 세대가 단순한 서류 누락이 아니라, 여러 집이 한 층을 공유한 구조였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층수는 서로 달랐다. 누구는 2층, 누구는 옥상 아래라고 했다. 민석은 그 기억을 도면에 적었다. 위층은 건축물이 아니라, 누군가 살았다는 사실 자체일 수 있었다.

현장 반장 상철은 철거 작업을 하루 미뤄 달라는 주민 요청을 받았다. 그는 균열이 더 커지면 작업자와 주민 모두 위험하다고 했다. 민석은 그 위험을 이해했다. 그가 원하는 건 철거를 무조건 막는 것이 아니라, 안에 사람이 남았는지 확인할 시간이었다. 상철은 새벽 작업 전에 안전 점검을 한 번 더 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석은 마지막으로 빈집을 촬영했다. 혼자가 되자, 천장 위에서 다섯 걸음이 들렸다. 발소리는 현관으로 와서 멈췄다. 문틈으로 작은 종이 한 장이 밀려 들어왔다. 거기에는 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윤아.’

윤아의 어머니는 민석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진에 찍히지 않은 채 현관 밖에 서 있었다. “딸을 마지막으로 본 날,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렸어요. 문을 열었는데 방이 비어 있었죠. 남편은 제가 지어낸 일이라고 했어요.”

민석은 카메라를 들지 않고 이야기를 들었다. 여자는 남편과 이혼한 뒤 딸을 찾으려 했지만, 재개발 보상 절차에서 주소가 누락되어 추적이 끊겼다. 그녀는 이사를 다니면서도 빈집의 발소리를 잊지 못했다. 민석은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고 단정하지 않고, 장부에 적힌 주소와 날짜를 받아 적었다.

“이번엔 내 딸 이름을 남겨 주세요.” 여자가 말했다.

주리는 장부의 빈칸에 이윤아를 적었다. 글씨가 마르기 전에 천장에서 네 걸음이 들렸다. 세 사람은 모두 들었다.

현장 반장 상철은 빈집의 출입문을 다시 확인했다. 그는 민석에게 촬영을 계속하려면 안전 서약을 써야 한다고 했다. 민석은 서약을 쓰되, 위험하면 즉시 철수하겠다고 적었다. 주리는 그 문서를 사진으로 남겼다. 건물에 들어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상철은 빈집에 남아 있던 느슨한 전선과 유리 파편을 치웠다. 그는 현장 안전이 이상한 소리보다 먼저라고 강조했다.

민석은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현관 밖으로 나왔다. 혼자 남았을 때 천장 소리가 들렸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세 사람은 다음 촬영 때 주리가 동행하고, 민석은 혼자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규칙을 만들었다. 사진을 찍는 것이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려서는 안 됐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