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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의 발소리는 위층에서3화

빈집의 발소리는 위층에서

빈집의 발소리는 위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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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사진 속에 먼저 온 사람

철거 차량의 굴착기가 건물 외벽을 밀었다.

상철은 작업자를 멈추게 하려 했지만, 무전이 끊겼다. 안전띠 바깥의 현장에는 이미 주민들이 모여 있었다. 주리는 그들에게 이름 없는 세대 기록을 읽어 주었다. 민석은 사진을 들고 건물 안으로 뛰었다. 천장에서 먼지가 쏟아지고, 아이의 발소리가 그의 앞을 가로질렀다. 그는 혼자 들어가면 소리를 듣고, 사진에 없는 층을 볼 수 있었다.

“민석 씨, 안 돼요!” 주리가 외쳤다.

“사진에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은 네가 기억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

민석은 멈추지 않았다. 현관을 통과하자 바닥에 균열이 벌어졌다. 그는 벽을 짚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천장 위의 발소리는 바로 머리 위가 아니라, 옆방에서 났다. 그곳에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없었다. 민석은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다. 플래시가 터지는 순간, 천장이 잠깐 사라지고 노란 벽지의 방이 보였다.

방 안에는 아이가 앉아 있었다. 민석은 윤아라고 불렀다. 아이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천장 너머에서 다른 발소리가 다가왔다. 아이는 침대 밑에서 민석의 오래된 필름 카메라를 꺼냈다. 그 카메라는 민석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과 같은 모델이었다.

“네가 찍은 사진이야?”

“아직 찍지 않은 사진.”

민석은 아이의 얼굴을 보려 했다. 윤아는 돌아서 창문에 손을 대었다. 사진 속 손바닥 자국이 나타났다. “여기서 나가면 너는 우리를 기억하지 못해.”

민석은 어머니가 그 방을 알고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민석에게 사진을 건넸다. 사진에는 붕괴되는 집과, 안전띠 밖에 서 있는 주민들이 찍혀 있었다. 그중에 주리와 상철, 그리고 민석 자신이 있었다. 사진의 날짜는 다음 날이었다.

밖에서 주리가 그를 불렀다. 민석은 천장을 향해 대답하지 않고, 사진을 주머니에 넣었다. 방이 흔들렸다. 아이는 계단 없는 문을 열었다. 문 너머는 위층이 아니라, 복도처럼 길게 이어진 어두운 공간이었다. 민석은 아이를 따라가지 않기로 했다. 그는 사진 속 장면을 바꾸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했다.

그가 집을 빠져나오자 상철이 안전띠를 끊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민석을 끌어내며 어깨를 다쳤다. 굴착기는 멈췄지만 건물의 한쪽 벽이 무너졌다. 주민들은 철거를 막으려 다가왔다. 상철은 안전 책임을 자신이 지겠다고 했고, 현장팀에 후퇴를 명령했다. 일부 작업자는 계약 해지가 두렵다며 따르지 않았다.

주리는 주민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기록에서 빠진 윤아의 가족을 찾으려 했다. 아무도 답하지 않았다. 그때 민석은 사진 속 인물들과 현재의 주민을 비교했다. 사진에는 현재 없는 노인이 서 있었다. 이주 장부의 이름 없는 세대 옆에 적힌 이름은 ‘이윤아’였다. 그녀는 18년 전 철거 현장에서 사라진 아이였다.

상철은 그날 안전 보고서에서 아이가 이미 이주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그 판단이 틀렸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현장 사진을 공개하고, 철거 절차 중단을 요청했다. 주리는 주민 명단을 기자와 협회에 공유했다. 민석은 자기 가족이 과거에 그 방을 숨겨 왔을 가능성을 말했다. 세 사람은 불법 철거 조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저녁이 되자 건물은 절반만 무너진 채 멈췄다. 민석은 현상소에서 다음 날 날짜가 찍힌 사진을 다시 확인했다. 붕괴 장면은 사라졌지만, 천장 위 방은 남아 있었다. 사진 속 윤아는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민석의 어머니가 쓰던 필름통이 들려 있었다.

사진 뒤에는 짧은 문장이 새로 나타났다.

‘네가 올 때까지 위층은 비어 있지 않아.’

민석은 그 말을 읽고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발소리가 집 위에서가 아니라, 그의 발밑에서 들렸다.

굴착기의 팔이 외벽을 밀자 안쪽에서 먼지가 한꺼번에 쏟아졌다. 민석은 사진 속 장면과 현실이 겹치는 것을 보았다. 주민들은 안전띠 뒤로 물러났고, 주리는 이주 장부를 가슴에 눌렀다. 상철은 굴착기 앞에 서서 손을 들었다. 운전자는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기계는 이미 건물에 닿아 있었다.

“멈춰! 안에 구조 확인이 안 끝났어!” 상철이 외쳤다.

작업자는 계약이 끊기면 임금도 못 받는다며 계속 진행하라고 무전을 받았다고 했다. 상철은 자기 안전 확인 서명을 철회했다. 그는 현장 책임을 인정하고 작업을 중단시켰다. 굴착기는 뒤로 물러났지만 외벽 일부가 무너졌다. 상철은 파편에 팔을 베였고, 민석은 그의 상처를 압박했다. 주민들이 달려들어 두 사람을 안전 구역으로 옮겼다.

민석은 손에 든 사진을 펼쳤다. 그 사진에는 붕괴된 벽 너머에 아이가 서 있었다. 현실에서는 벽 뒤 공간이 비어 있었다. 다만 바닥에는 작은 운동화 한 짝이 남아 있었다. 윤아의 어머니는 운동화 끈을 알아보고 울음을 참지 못했다. 그것은 딸이 마지막으로 신은 신발이었다.

주리는 어머니에게 딸의 사진과 주민 기록을 함께 보존하자고 제안했다. 이름이 서류에서 사라져도, 가족이 기억한 흔적은 공개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어머니는 동의했지만 얼굴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했다. 민석은 사진을 주민의 선택에 따라 익명 처리했다.

상철은 철거 업체에 안전 위반과 중지 명령 무시를 신고했다. 그는 자신이 이전에 보고서를 닫은 책임도 진술했다. 작업자들은 현장을 떠나지 않고, 주민과 함께 추가 점검을 기다렸다. 주민 중 한 명이 민석에게 그 집에서 위층 발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자기 아이에게서 난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그날 다른 도시에 있었다.

민석은 혼자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가려 했다. 주리가 카메라 끈을 잡았다. “아직 위험해요.”

“이번엔 사진 없이 확인할게.”

“혼자면 더 위험해.”

민석은 결국 카메라를 내려놓고 주리와 함께 문턱에 섰다. 둘이 함께 있을 때는 아무 발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는 빈 방의 공기를 맡았다. 먼지와 오래된 목재 냄새 사이에 어머니가 쓰던 비누 향이 났다. 위층이 있었는지, 사진이 기억을 투영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누군가 살았고, 이름이 지워졌다는 사실은 남아 있었다.

현상소에서 마지막 사진을 뽑았을 때, 위층 방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사진 속 민석이 현관 바깥에 서 있었다. 그는 아직 셔터를 누르지 않은 순간을 찍고 있었다. 사진 한쪽에는 노상철이 다친 팔을 붕대로 감고 주민들과 얘기하는 모습이 담겼다. 현실에서 벌어진 장면이 사진에 먼저 찍힌 것이었다.

사진 뒷면에는 어머니의 필체로 보이는 문장이 있었다. ‘집을 비워도 이름을 비우지는 말 것.’ 민석은 사진을 주리에게 건넸다. 이주 장부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윤아 이름 뒤로 새로운 줄이 하나 더 나타났다. ‘장민석, 위층을 확인할 사람.’

그날 밤 민석의 집 천장에서 발소리가 세 번 들렸다. 이번에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는 불을 켜고, 문을 열어 두었다.

주리는 주민 대표와 함께 철거 중단 요청을 제출했다. 법적 효력이 바로 생기지는 않았지만, 추가 안전 점검이 시작될 때까지 장비는 멈춰야 했다. 상철은 현장 작업자들에게 자신의 판단을 공유했고, 민석은 사진 원본을 복사해 주민 기록 보관소에 맡겼다.

그날 저녁, 윤아의 어머니는 장부에서 딸 이름을 찾아 손끝으로 따라 읽었다. 민석은 그 모습을 사진에 담지 않았다. 그녀가 원할 때까지 기록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민석은 주민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 확인했다. 이번에는 사진에 찍히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울면서도 자기가 기억하는 딸의 옷 색깔을 말했다. 주리는 이름과 날짜를 기록했고, 상철은 그 기록을 철거 업체의 사고 보고서에 첨부했다. 노동자들은 장비를 옮기기 전에 건물 안의 전기와 가스를 차단했다.

민석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들으며 남은 집을 지키는 모습은 사진으로 소유할 장면이 아니었다. 그는 대신 필름통에 날짜와 장소를 적어 보관했다. 훗날 누군가 사진을 요구하면, 찍지 않기로 했던 이유도 함께 설명할 생각이었다.

상철은 다친 팔을 치료받고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가 고개를 숙여 주민에게 사과하자 누구도 바로 용서하지 않았다. 그들은 안전 점검 결과를 기다리며, 집 앞에서 밤을 지키기로 했다. 민석은 위층의 발소리가 다시 들릴까 두려웠다. 그러나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붕괴가 멈춘 뒤 민석은 지붕의 잔해에서 낡은 필름통을 발견했다. 안에는 노출되지 않은 필름이 남아 있었다. 상철은 현장 보존을 위해 손대지 말라고 했고, 민석은 위치만 기록했다. 주리는 주민 대표에게 그 위치를 알려 주어, 조사기관이 함께 회수하도록 했다. 그 필름이 누구의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민석은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안전띠 바깥으로 물러났다. 뒤에서 발소리는 나지 않았다. 대신 주민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빈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소리는 녹음기에 또렷하게 남았다.

주리는 이주 장부의 표지를 덮고, 마지막 페이지를 주민 기록함에 넣었다. 민석은 그 자리를 기억했다. 사진이 아니라 사람들이 함께 지킨 위치로.

그 기록함에는 다음 조사 날짜와 주민 대표의 연락처가 함께 적혔다. 빈집의 소리는 끝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들으러 올 사람이 있었다.

민석은 그 날짜를 수첩에 옮겨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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