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수선하는 야간 공방

1화: 금이 간 별의 소리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열일곱 번째 칸에서 한 번 삐걱거렸다.
한서린은 그 소리를 싫어하지 않았다. 건물의 나이가 드러나는 소리였고, 고장 난 부분을 알아차리게 해 주는 신호였다. 그녀는 공구 상자를 든 채 열일곱 번째 계단을 밟았다. 나무가 낮게 울었다. 그 위쪽에서 아직 움직이지 않은 공기가 기다렸다.
자정까지 십 분.
서린은 옥상 창고의 문을 밀었다. 한쪽 벽은 합판으로 막았고, 천장이 낮은 구석에는 중고 작업대와 탁상용 확대경이 놓여 있었다. 쌓아 둔 시계 부품은 종류별로 라벨을 붙였다. 공간은 좁았지만, 이곳만큼은 고장 난 물건을 성급히 버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작업대 위의 검은 천을 걷었다. 아버지가 남긴 은색 회중시계가 나타났다. 뚜껑 안쪽에는 이니셜도 날짜도 없었다. 초침은 열한 시 오십구 분에서 멈춘 채, 태엽을 감아도 움직이지 않았다.
서린은 작은 나사를 풀었다. 톱니바퀴는 깨끗했다. 축도 휘지 않았다. 기름이 말랐을 가능성은 있었지만, 시계 안에서는 기름 냄새가 나지 않았다. 대신 바닷바람 같은 서늘한 냄새가 났다.
옥상 문이 세 번 두드려졌다.
“열려 있어요.”
문이 바로 열리지 않았다. 서린은 손을 멈췄다. 늦은 시각이라도 건물주 최명자는 노크를 오래 하지 않았다. 배달 기사라면 문을 열면서 먼저 이름을 불렀다.
“한서린 씨?”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서린은 회중시계를 천으로 덮고 문을 반쯤 열었다. 젖은 우비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손에는 은색 배달 가방이 들려 있었고, 가방 한쪽에서 파란 빛이 새어 나왔다.
“수리 맡기러 왔습니다.”
“여긴 시계 수리점이에요.”
“그래서 왔습니다. 시계가 멈췄거든요.”
남자는 말끝을 흐리며 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손바닥보다 작은 태엽시계가 있었다. 유리 덮개에 머리카락처럼 가는 금이 뻗어 있었다. 다이얼에는 숫자 대신 별자리 모양의 점들이 찍혀 있었다. 점 가운데 하나가 어둡게 꺼져 있었다.
서린의 손끝이 저릿했다.
그녀는 시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틱, 틱, 틱. 작은 진동이 아니라, 멀리서 철골이 비틀리는 소리였다. 숨을 멈추자 옥상 바닥 아래까지 전해졌다.
“이게 어디서 났어요?”
“제 가방에 들어 있었습니다.”
“누가 넣었죠?”
“그걸 알아내러 온 겁니다.” 남자가 잠깐 시선을 피했다. “강태인입니다. 야간 배달 일을 해요.”
“의뢰인이 따로 있겠네요.”
“의뢰인은 물건을 맡기고 사라졌습니다. 배달 주소도 여기였고요.”
서린은 시계를 받지 않았다. 물건이 이상할수록 출처부터 확인하는 게 원칙이었다. 태인은 가방의 젖은 바닥을 보여 주었다. 시계 아래에는 낡은 영수증 한 장이 깔려 있었다. 주소는 이 건물, 메모는 ‘첫 종이 울리기 전’이었다.
“종은 어디서 울려요?”
“제가 알면 먼저 가 봤겠죠.”
“그런데 여기에 가져왔네요.”
“길을 잃고 도착한 게 아니라서요.” 태인은 웃으려다 그만뒀다. “받아 주십시오. 꼭 오늘 밤 고쳐야 합니다.”
“고쳐야 한다는 근거는요?”
그 순간 시계의 유리 금이 한 줄 더 늘었다.
작업대의 확대경 아래에 놓인 회중시계가 혼자서 딱, 하고 울렸다. 서린은 소리를 알아들었다. 금속이 부딪힌 음이 아니었다. 누군가 아주 멀리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였다.
태인이 가방을 움켜쥐었다. “방금 전에도 이랬습니다.”
“언제부터요?”
“밤 열한 시부터요. 그 뒤로 제 휴대폰 시계가 계속 같은 분을 가리킵니다.”
태인이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시각은 11:59. 화면을 한 번 끄고 켜도 바뀌지 않았다. 서린의 벽시계는 11:50이었다. 건물의 전자 시계는 11:53. 옥상 밖으로 보이는 편의점 간판의 시각은 11:47을 깜빡였다.
서린은 확대경을 시계 위로 옮겼다. 다이얼의 점들이 별자리가 아니었다. 마치 사람의 약속을 잇는 지도처럼 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꺼진 점에서 뻗은 선이 시계의 금과 맞닿아 있었다.
“시계가 멈춘 게 아니라 시간이 갈라진 거예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지금부터 자정까지 십 분 남았어요. 당신 화면은 이미 그 시간을 놓쳤고.”
태인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다물었다. 서린은 장갑을 꺼냈다. 물건을 받아 들고 싶지 않았지만, 시계가 더 금 가는 소리가 작업대에서 계속 났다.
“일단 올려요. 다만 수리가 끝난다고 약속할 수는 없어요.”
“수리비는 얼마든지—”
“돈 얘기부터 하지 마세요.”
그녀는 시계를 작업대 중앙에 놓았다. 확대경의 조명을 켜자 금이 파란 실처럼 떠올랐다. 실은 다이얼 바깥을 넘어 옥상 난간을 향했다. 밤하늘에 닿은 끝은 도시의 빛 사이에서 흔들렸다.
서린은 아버지의 회중시계를 열어 뒷판을 벗겼다. 정밀 핀셋으로 태엽을 살짝 건드리자 멈춘 초침이 한 칸 움직였다.
딱.
그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별 하나가 꺼졌다.
태인은 숨을 들이켰다. 서린은 난간으로 달려갔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한가운데, 작은 별이 금이 간 유리처럼 번져 있었다. 금의 한가운데서 푸른 빛 조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저게 시계와 연결된 겁니까?”
“아직 몰라요.”
“저 조각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바닥에 닿기 전에 확인해야죠.”
서린은 야명철 핀셋과 수리용 광섬유를 챙겼다. 태인이 따라 나서려 했다.
“당신은 여기 있어요.”
“제 물건입니다.”
“누가 맡긴지도 모르는 물건이고요.”
“그래도 제가 가져왔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귀에 남았다. 서린은 대꾸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난간 가까이 붙어 별빛이 떨어지는 방향을 확인했다. 푸른 조각은 옥상 건너편의 낡은 시계탑을 향했다.
탑은 몇 해 전에 멈췄다. 건물주가 철거 비용을 마련하지 못해 그대로 남겨 둔 곳이었다. 오래된 탑의 시계는 열두 시 십칠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멈춘 뒤로 누구도 수리하지 않았다.
“그 탑이 오늘 밤의 목적지예요.” 서린이 말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저 별가루가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서린은 별가루가 떨어진 방향에서 시계의 위치를 다시 잡았다. 금이 난 유리와 멈춘 톱니 사이에는 아주 가는 푸른 선이 걸려 있었다. 그녀는 확대경 배율을 낮추고 작업대의 작은 자석을 치웠다. 보이지 않는 힘에 금속이 끌려가는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자석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가루 한 점이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어 옥상 문 쪽으로 떠갔다.
“이건 물건이 아니라 신호 같아요.”
태인이 말했다. “누군가 우리를 부르는 신호요?”
“아니면 고장 난 곳이 내는 경고.” 서린은 가루를 유리병에 담았다. 병뚜껑을 닫자 안쪽에서 작은 불빛이 세 번 뛰었다. “둘 중 뭐든 확인해야 해요.”
그녀는 태인의 손목을 살폈다. 가방 손잡이를 세게 쥔 자리에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시계가 울릴 때마다 그 자국이 빛과 같은 박자로 떨렸다. 태인은 자기도 모르게 소매를 내렸다.
“당신도 반응하고 있어요.”
“전 멀쩡합니다.”
“아직은요.”
서린은 즉시 수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리가 더 깨지기 전에 진동을 잡아야 하지만, 회중시계의 태엽을 이용하려면 누가 이 물건을 만든 이유부터 알아야 했다. 태인은 의뢰인을 찾지 못했고, 명자는 오래전 일이라고만 했다. 남은 방법은 시계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작업대의 공구를 정리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벽시계는 11시 54분이었다. 휴대폰은 11시 59분을 고집했다. 두 시계의 차이는 단순한 배터리 문제가 아니었다. 초침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흔들릴 때마다 옥상 바닥의 물웅덩이가 둥글게 퍼졌다.
“탑까지 가는 데 얼마나 걸려요?”
태인은 창밖을 내다봤다. “골목을 가로지르면 오 분, 계단으로 내려가면 십 분입니다.”
“그럼 걸어서 가요. 뛰면 흔들림이 더 커질 거예요.”
그는 이유를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린은 시계를 완충재에 감싸 작업 가방에 넣었다. 가방 안쪽에는 아버지의 회중시계가 따로 놓여 있었다. 두 시계가 가까워지자 서로를 알아보듯 짧게 울렸다.
그녀는 그 박자를 손가락으로 세었다. 한 번, 둘, 셋. 네 번째 박자가 오기 전에 소리가 끊겼다.
“수리비는 나중에 정해요.” 서린이 말했다. “먼저 누가 이 시계를 맡겼는지, 왜 오늘 밤인지 확인하죠.”
태인은 대답 대신 가방을 받아 들었다. 시계의 푸른 빛은 이제 그의 손목이 아니라 서린의 주머니를 향해 흔들렸다.
그때 옥상 입구에서 열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명자가 문을 열고 나타났다. 평소보다 빠른 걸음이었다. 그녀는 서린 손에 든 시계를 보자마자 얼굴에서 혈색이 빠졌다.
“그걸 어디서 가져왔니?”
“택배 의뢰예요. 할머니가 알아요?”
명자는 대답 대신 시계 덮개를 닫으려 했다. 서린이 손목을 잡았다.
“지금 별이 깨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더 건드리면 안 돼.”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명자는 옥상 난간 너머의 시계탑을 바라봤다. 그곳의 시침이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12시 17분에서 12시 18분을 향해, 멈춘 지 십 년 만에 처음으로.
서린은 야명철 핀셋을 들었다. 회중시계의 초침이 다시 한 칸 움직였다. 이번에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어린 시절 누군가가 불러 주던 노래의 첫 음이었다.
그 음을 붙잡기도 전에, 옥상 스피커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한 번.
서린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아직 자정까지 2분이 남아 있었다.
“첫 종이 울리기 전.” 태인이 중얼거렸다.
시계탑 아래에서 누군가가 대답했다.
“서린아.”
그 목소리는 열 해 전에 사라진 아버지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