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세트 소품실의 용 제작자

1화: 맥박 뛰는 용 소품
윤해주는 용의 왼쪽 콧구멍을 파다가 휴대폰 알림을 받았다. 공방 월세 이체 실패. 그녀는 화면을 뒤집어 놓고 다시 작은 칼을 들었다. 콧구멍을 둘 다 둥글게 뚫으면 멍청한 용이 됐다. 왼쪽은 조금 길고 오른쪽은 위로 꺾여야 배우가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 사납게 보였다.
“사람이 코를 이런 식으로 쓰진 않는데.”
서한이 옆에서 말했다. 해주는 용은 사람이 아니라고 답했다. 배우는 조각난 스티로폼을 발로 쓸어 모았다. 촬영이 세 번 밀려서 대사를 외울 만큼 외웠고 이제 소품을 만드는 일을 구경했다.
폐세트에는 사라진 성벽의 그림자가 남았다. 지난 작품의 돌기둥은 합판이었고, 높은 창은 반대쪽에서 보면 허공이었다. 새 영화는 이 낡은 판타지 성을 다시 썼다. 소품팀이 고쳐야 할 것은 왕관 둘과 칼 열여섯, 그리고 화면 한가운데에 놓일 용 한 마리였다.
용의 몸통은 옛 작품에서 가져왔다. 그 안의 심장도 소품 목록에 있었다. 해주는 심장을 가벼운 모터라고 생각했다. 표면은 도자기처럼 차갑고 안쪽은 단단한 고무처럼 눌렸다. 가운데의 노란 빛은 배터리로 켜지는 장식인 줄 알았다.
그녀는 왼쪽 콧구멍을 마저 깎고 용의 가슴 덮개를 열었다. 새로 만든 플라스틱 받침이 들어갈 자리였다. 심장이 받침을 밀어냈다. 해주는 자신이 제대로 끼우지 않았다고 생각해 나사를 풀고 다시 맞췄다.
두 번째에도 받침이 밖으로 튀었다.
서한이 바닥에서 받침을 주워 들었다.
“얘 성질이 있는데요?”
“몸통의 오래된 틀이 휘었어요.”
해주는 농담을 받지 않았다. 무게를 줄이면 소품이 더 오래 움직였다. 아버지는 부품이 맞지 않으면 부품보다 빈 공간을 먼저 보라고 했다. 그녀는 틀을 손끝으로 훑었다. 한쪽 면이 울퉁불퉁했지만 받침이 튀어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오태식 팀장이 세트에 들어와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오늘 감독이 테스트 영상을 보고 마지막 장면을 결정해야 했다. 해주는 받침을 아직 맞추는 중이라 했다. 팀장은 테이프로 고정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지금은 괜찮아도 움직이면 빠집니다.”
“움직이는 컷은 짧아. 한 번만 버티면 돼.”
한 번만 버티면 된다는 말은 소품실에서 자주 들었다. 그 한 번을 위해 수십 번을 시험했다. 해주는 그 말에 대꾸하지 않고 테이프를 접어 받침 밖에 붙였다. 접착면이 심장에 닿지 않게 했고 가슴 덮개도 완전히 닫지 않았다.
서한이 용 앞에 섰다. 대사는 죽은 용에게 마지막으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목을 풀고 낮게 첫 문장을 읽었다.
“집으로 돌아가자.”
심장에서 둥 하는 소리가 났다.
해주는 모터의 전원을 확인했다. 아직 켜지 않았다. 스위치는 꺼짐 쪽이었다. 팀장이 뒤에서 리모컨을 누른 줄 알았으나 리모컨은 해주의 주머니에 있었다. 서한도 용의 가슴을 봤다. 그는 두 번째 문장을 읽었다.
“이번에는 내가 문을 열어 둘게.”
둥, 둥.
목소리의 간격에 맞춰 가슴 안쪽이 움직였다. 해주는 테이프의 끝을 만졌다. 받침은 밀려나지 않았지만 안쪽의 노란 빛이 밝아졌다. 팀장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원하는 움직임이 이제 나온다며 카메라를 가져오라 했다.
해주는 전원을 켠 사람이 없다는 말을 했다. 팀장은 오래된 장치에 보조 배터리가 있을 거라고 답했다. 조명 기사 정유미가 연장선을 정리하다 가까이 왔다. 그녀는 전력계를 보더니 용 장치가 연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주는 주 전선을 손으로 들어 모두에게 보여 줬다.
전선 끝은 바닥에 있었다. 배터리 연결선도 없다. 모터를 따로 떼어 손바닥에 놓자 심장은 여전히 움직였다. 받침 안에 숨은 장치가 있는지 확인하려 했으나 도자기 껍질의 이음새는 붙인 자국이 아니었다. 내부가 그냥 하나의 몸처럼 이어졌다.
“이거 만든 사람이 누구예요?”
유미가 물었다. 해주는 재고 목록의 오래된 스티커를 읽었다. 윤건 공방.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글씨가 바래 윤 자의 윗부분이 거의 지워졌다. 그녀는 스티커 아래에 작은 꽃 모양 각인이 있는지 손을 뒤집어 봤다.
있었다. 아버지가 소품에 날짜 대신 남기던 표시였다. 꽃잎 네 장과 비어 있는 가운데. 아버지 공방의 물건이 여기 있다는 사실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해주가 알던 아버지는 모터나 배터리를 만들지 않았다. 흙과 종이, 천으로 가벼운 소품을 만들었다.
서한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노란 빛이 밝아졌다. 그가 말을 하지 않아도 빛이 반응했다. 해주는 대사의 뜻보다 호흡의 길이를 보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서한에게 같은 문장을 아주 짧게 말해 달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자.”
심장이 두 번 빠르게 뛰었다. 다음에는 소리를 내지 않고 길게 숨만 쉬게 했다. 심장도 길게 움직였다. 팀장은 이 반응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지만 유미가 조명을 잠시 끄자고 말했다. 조명의 열 때문인지 확인해야 했다.
불이 꺼졌다. 세트의 높은 창으로 들어오는 낮빛만 남았다. 가슴의 노란 빛은 여전히 밝았다. 해주는 맨손으로 도자기 받침의 바깥을 만졌다. 따뜻했다. 안에서 공기가 나오는 아주 가는 홈이 있었다. 자신이 새로 만든 플라스틱 받침이 그 홈을 막았던 것이다.
그녀는 테이프와 플라스틱을 모두 떼었다. 심장이 크게 한 번 움직이며 가슴의 먼지를 밀어냈다. 용의 왼쪽 콧구멍으로 작은 바람이 나왔다. 방금 해주가 뚫은 구멍이었다. 서한의 앞머리가 흔들렸다.
해주는 작은 거울을 콧구멍 앞에 댔다. 호흡이 닿는 자리만 둥글게 흐려졌다. 그녀가 손으로 닦고 다시 놓자 같은 자리가 젖었다. 유미는 촬영등을 더 멀리 옮겼다. 뜨거운 조명의 영향이라면 거울 전체가 데워졌을 텐데, 습기는 용의 숨이 닿는 부분에만 생겼다.
서한이 자신의 입 앞에도 거울을 대 보았다. 같은 자국이 더 빠르게 생겼다. 배우와 소품 사이에 같은 반응이 나란히 놓였다. 누구도 당장 살아 있는 용이라고 외치지는 않았다. 다만 장치를 고장이라고 부르던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숨 쉬었어요.”
그가 말했다. 팀장은 다른 쪽 창에서 바람이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해주는 창을 닫고 콧구멍 앞에 얇은 종이를 들었다. 종이는 들썩였다. 규칙적이지는 않았지만 심장의 움직임과 맞았다. 그 반응을 세 사람이 함께 봤다.
태식은 감독에게 먼저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해주는 가슴을 막지 않으면 촬영 테스트는 할 수 있겠지만 위험을 모른다고 답했다. 갑자기 뜨거워지거나 부품을 더 밀어내면 배우가 다칠 수 있었다. 팀장은 영화 한 컷을 위해 생긴 기회라고 생각했고 해주는 살아 있는 무언가를 처음으로 고장 내지 않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유미가 양쪽 사이에 새 작업등을 켰다. 강한 촬영등보다 열이 적은 작은 등이었다. 그녀는 오늘 테스트 영상은 장치의 작동을 확인하는 정도로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배우가 올라타는 장면도 불을 뿜는 장면도 빼고, 먼 곳에서 반응을 기록하자는 말이었다.
서한은 자신의 대사를 다시 읽겠다고 했다. 그는 용의 눈 앞이 아니라 옆에 앉았다. 상대 배우가 겁먹었을 때 정면에서 크게 말하면 더 굳어지는 것처럼, 용도 그렇게 대할 수 있겠다고 했다. 해주는 그 비유를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시험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새 받침을 만들지 않고 오래된 흙틀 아래에 접은 천을 놓았다. 몸통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가장자리만 받쳤다. 비워 둔 공간으로 공기가 흘렀다. 서한이 천천히 대사를 읽자 용의 턱이 아주 조금 열렸다.
그 안쪽에 혀 같은 것은 없었다. 어둡고 따뜻한 공간과 작은 흙빛 판들이 겹쳐 있었다. 해주는 판 하나가 외피의 인조 비늘과 다른 색임을 봤다. 만지려다가 손을 멈췄다. 살아 있는 곳일 수 있었다. 그녀는 작은 거울을 넣어 안쪽을 보기만 했다.
판은 숨에 따라 부풀었다가 내려갔다. 아버지가 만든 합성 부품으로는 그런 움직임이 나오지 않았다. 해주는 자신의 손재주를 처음으로 믿지 않는 쪽을 택했다. 아직 모르는 재료였다. 함부로 자르거나 덧붙이지 않아야 했다.
테스트 영상이 끝나자 팀장이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해주는 카메라 화면에서 용의 맥박을 반복 재생했다. 화면으로 보면 정교한 소품 같았다. 실제로 곁에 있으면 공기의 온도와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 알고 있는 사람은 세트 안의 네 명뿐이었다.
서한은 돌아가면서 용에게 내일 보자고 말했다. 심장이 작게 한 번 울렸다. 그가 농담인 척 웃었지만 뒤돌아보는 눈은 진지했다. 해주는 용의 몸통에 오늘 시각과 관찰을 적은 작은 종이를 붙였다. 반응을 모르면서 이름부터 짓고 싶지는 않았다.
팀장의 전화가 문틈으로 들렸다. 촬영은 취소하지 말아 달라는 말이었다. 태식이 계약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부정하지 않는 소리가 이어졌다. 해주는 작업실에 남아 칼과 접착제를 먼저 치웠다. 팀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말이 정말 마지막일 수 있었다.
용의 콧구멍 앞에 밤새 움직일 얇은 종이를 걸어 두었다. 숨이 멎으면 종이가 멈출 것이었다. 해주는 아버지 공방의 월세 알림을 다시 봤다. 돈이 부족하다고 이 심장을 촬영용 부품처럼 팔면 공방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는 동안 종이가 천천히 흔들렸다.
그녀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빈 천 조각을 가슴 받침에 더 넣었다. 이번에는 부품을 만들지 않고 공간을 남겼다. 심장은 밀어내지 않았다. 오래된 세트에서 처음 받아들여진 것은 해주가 만든 멋진 날개도 단단한 받침도 아니었다. 숨을 쉴 수 있도록 물러난 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