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급 스킬이 다 내 꺼

2화: 불완전한 복사본
발뒤꿈치를 틀었다.
바닥을 디디는 순간 허벅지 안쪽 근육이 찢어지는 듯했다. 짐꾼으로 굳은 뼈마디 사이로 차가운 불꽃이 들이닥쳤다.
시야 한가운데 푸른 글자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스킬 아카이브 활성화]
[기록 완료: S급 폭렬검 (1/10)]
- 복사본 지속 시간: 24:00:00
- 경고: 사용자의 마력 그릇(F급)에 비해 기술 요구치가 과도합니다.
- 발동 시 신체 훼손 및 마력 역류 위험이 발생합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탔다.
민재혁이 그렸던 궤적이 신경망을 따라 붉은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어디서 힘을 모으고 어디서 숨을 참아야 하는지 몸이 멋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릇이었다.
F급 판정을 받으며 들었던 태윤의 마력 수치는 고작 12였다. 성인 남성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그런 그릇에 S급의 폭발력을 억지로 들이붓는 짓이었다.
“짐꾼! 물러서!”
서아의 비명이 석실을 찢었다.
여왕 개미의 거대한 뿔이 방패 표면을 갈아 마시며 짓눌렀다. 회색 마력막에 거미줄 같은 금이 가더니 쨍그랑하는 파열음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충격파에 밀려난 서아의 무릎이 꺾였다.
흙먼지 너머로 여왕의 흉측한 주둥이가 벌어졌다. 톱니 같은 이빨 사이에서 역한 산성 타액이 뚝뚝 흘렀다. 그대로 찍히면 방패째 반으로 접힐 판이었다.
피난 통로 안쪽에서 누군가 울부짖었다.
태윤은 생각을 멈췄다.
여기서 서아가 죽으면 통로에 밀어 넣은 열일곱 명도 끝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죽는다. 누나의 흔적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1층 돌바닥에서 개미 밥이 될 수는 없었다.
태윤은 손에 쥔 예비 창을 고쳐 잡았다.
오기철이 싸구려 도매상에서 헐값에 떼어 온 훈련용 물푸레나무 창이었다. 마력 전도율 따위는 애초에 없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뿐이었다.
태윤은 허리를 비틀었다.
반 박자 늦게 어깨가 따라왔다. 민재혁이 보여 준 바로 그 박자였다. 낡은 장갑 밑으로 핏줄이 지렁이처럼 부풀어 올랐다.
쩌저적!
혈관이 터져 나가며 가죽 장갑이 붉게 젖었다. 살이 타는 냄새가 진동했지만 태윤의 시선은 한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보였다.
여왕의 턱밑. 민재혁의 첫 일격에 갑각이 깨져 붉은 속살이 드러난 틈이었다.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는 그 유일한 급소가 똑똑히 보였다.
“폭렬.”
태윤의 입술 사이로 쉰 목소리가 새었다.
단 한 번의 폭발.
민재혁이 구사했던 삼단 압축 따위는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단 일단. 가장 단순한 형태의 충격만을 억지로 창끝에 밀어 넣었다.
콰아앙!
귀청을 찢는 굉음이 석실을 뒤흔들었다.
창끝에서 터져 나온 것은 붉은 섬광이었다. 불꽃이 아니라 극한으로 짓이겨진 공기의 파열이었다.
하지만 싸구려 나무 창대는 S급의 압력을 견디지 못했다.
퍼엉!
창대가 태윤의 손안에서 수천 개의 가시로 폭발했다.
나무 파편이 사방으로 튀며 태윤의 뺨과 가슴팍을 난도질했다. 오른팔 전체가 둔기로 맞은 것처럼 마비되었다. 어깨 관절이 어긋나는 둔탁한 감각이 뇌를 찔렀다.
그러나 일격은 빗나가지 않았다.
부러진 창날과 함께 압축된 충격파가 여왕의 쪼개진 턱밑으로 고스란히 파고들었다.
끼에에에엑!
고막을 뚫을 듯한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왕의 거대한 대가리가 허공으로 꺾였다. 턱 한쪽이 통째로 날아가며 검푸른 체액이 천장까지 치솟았다. 서아를 덮치려던 거구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바닥을 구르던 서아가 멍하니 눈을 치떴다.
“뭐야... 방금?”
그녀의 시선이 피투성이가 된 태윤의 오른팔에 닿았다.
짐꾼의 손에서 터져 나온 것은 방금 전 민재혁이 쓰던 그 파괴적인 검격의 파편이었다. 형태는 조잡하고 창대로 흉내 낸 엉터리였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의 결은 의심할 여지 없는 S급의 마력이었다.
“서아 씨!”
태윤이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여왕은 아직 죽지 않았다.
턱이 날아간 괴물은 통증에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갈고리 같은 앞다리 여섯 개가 무차별적으로 바닥과 벽을 찧었다. 천장에서 거대한 암석들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크아아아!
여왕의 배가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다.
검은 연기가 섞인 산성액이 보조 통로 입구를 겨누고 있었다. 그곳에는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초보 헌터 다섯 명이 웅크리고 있었다.
“빌어먹을!”
서아가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왼쪽 뺨에 새겨진 흉터가 붉게 달아올랐다. 금이 간 대형 방패를 가슴 앞으로 끌어당겼다.
“뒤로 물러나! 머리 숙여!”
서아가 방패를 비스듬히 세우며 전방으로 몸을 던졌다.
쾅!
여왕의 앞다리가 방패를 후려쳤다.
서아의 입술 사이로 핏물이 터졌다. 하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방패 모서리로 몬스터의 관절부를 찍어 누르며 다리 하나를 억지로 비틀었다.
괴물의 중심이 바닥으로 기운 것은 찰나였다.
태윤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오른팔은 이미 감각이 없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태윤은 망설임 없이 왼손을 뻗었다.
바닥에 나뒹굴던 쇳조각이 손에 잡혔다. 공략대원이 버리고 달아난 부러진 한손검이었다. 날의 절반이 떨어져 나간 고철에 불과했다.
태윤은 이를 악물었다.
바닥까지 긁어모은 마지막 마력이 혈관을 타고 역류했다. 눈앞이 깜빡거리며 코에서 뜨거운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두 번째.’
민재혁의 검격이 뇌리를 스쳤다.
한 번 깨뜨린 자리에 연이어 밀어 넣는 쐐기. 첫 번째 폭발이 껍질을 벗겼다면 두 번째 폭발은 안쪽을 부숴야 했다.
태윤은 바닥을 박찼다.
서아가 몸으로 꺾어 놓은 여왕의 가슴팍. 깨진 외골격 틈새로 검붉게 맥동하는 마력핵이 드러나 있었다.
괴물이 태윤을 감지하고 남은 다리를 휘둘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피할 곳은 없었다. 태윤은 피하는 대신 상체를 비틀어 어깨로 날카로운 갈고리를 받아냈다.
푸욱!
어깨 가죽이 찢겨 나가며 뼈가 드러났다.
비명이 치솟으려는 것을 태윤은 어금니가 바스러질 정도로 씹어 삼켰다. 물러서면 끝이었다. 그는 어깨에 박힌 다리를 발판 삼아 괴물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왼손에 쥔 부러진 칼날이 정확히 마력핵 한가운데 박혔다.
“터져라.”
콰드드득!
두 번째 폭렬이 괴물의 몸속에서 폭발했다.
외부로 번지는 화려한 불꽃은 없었다. 모든 충격이 여왕의 내장과 마력핵 속에 갇힌 채 요동쳤다.
괴물의 전신이 풍선처럼 부풀었다가 일시에 굳었다.
이윽고 껍질 틈새마다 하얀 수증기와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안쪽에서부터 장기가 전부 으깨진 거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쿵!
산더미 같은 육신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석실을 뒤흔들던 진동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자욱한 먼지 사이로 남은 잔챙이 개미들이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태윤은 부러진 검을 놓치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거친 숨을 몰아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시야가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온몸의 실핏줄이 터진 탓이었다.
“하아... 하...”
살았다.
보조 통로 쪽에서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안도의 탄성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태윤에게는 그 소리를 들을 여유조차 없었다.
몸 안의 마력이 완전히 바닥나 마른 우물처럼 허덕이고 있었다. 복사본 스킬을 어거지로 두 번 휘두른 대가는 가혹했다.
그때 저편에서 얕은 기침 소리가 들렸다.
피비린내 섞인 기침이었다.
태윤은 무거운 고개를 겨우 돌렸다.
무너진 석주 아래 민재혁이 기대앉아 있었다.
가슴의 마력핵 보호구는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그 틈에서 새어 나오는 것은 붉은 빛이 아니라 생명의 찌꺼기 같은 잿빛 연기였다.
태윤은 기어가듯 몸을 끌었다.
부러진 오른팔을 바닥에 질질 끌며 왼손으로 먼지투성이 바닥을 짚었다. 서아가 다가오려 했지만 태윤이 먼저 민재혁의 앞에 닿았다.
“민재혁 헌터님...”
민재혁의 초점 없는 눈동자가 서서히 태윤을 향했다.
그의 입술 끝이 가늘게 떨렸다. 피거품이 잇새로 솟구쳤다.
“...잘, 봤다.”
갈라진 목소리였다.
“창으로... 흉내 낼 줄은 몰랐는데.”
“포션을... 가져오겠습니다. 서아 씨 가방에 지혈제라도...”
“됐다.”
민재혁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핵이 깨졌어. 헌터가 핵이 날아갔는데... 포션 바른다고 살겠냐.”
그의 시선이 태윤의 낡은 장갑에 머물렀다. 피로 젖어 검붉게 물든 손목 안쪽을 바라보는 민재혁의 눈에 기이한 빛이 스쳤다.
“그 장갑... 어디서 났지?”
“누나가... 남긴 겁니다.”
“누나...”
민재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언가 거대한 기억을 떠올린 사람처럼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서린이냐.”
태윤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누나를... 아십니까?”
하지만 민재혁은 대답할 여력이 없었다. 그의 몸에서 마력이 급격히 흩어지고 있었다. 피부가 푸석하게 바래며 손끝부터 재처럼 바스러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태윤의 눈앞에 검붉은 시스템 창이 솟아올랐다.
지금까지 보았던 푸른빛의 안내문과는 전혀 다른 불길하고 짙은 암적색의 문자였다.
[사망 직전의 각성자 감지]
[고유 권능: 원본 회수 조건 충족]
- 대상: S급 검술가 민재혁
- 상대의 생명 신호가 소멸에 근접했습니다.
- 원본 회수: 대상의 영혼에 각인된 고유 스킬을 영구히 획득합니다.
- 경고: 인간의 스킬을 회수할 경우 탑의 추적 표식이 새겨집니다.
태윤의 숨이 턱 막혔다.
원본 회수.
단순히 24시간 동안 빌려 쓰는 복사가 아니었다. 죽어 가는 사람의 영혼에서 기술을 완전히 거두어 영구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었다.
‘안 돼.’
태윤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치려 했다.
남의 것을 훔치는 짓이었다. 그것도 목숨을 바쳐 사람들을 구한 은인의 유산을 빼앗는 짓이었다.
그러나 민재혁의 떨리는 손이 태윤의 멱살을 낚아챘다.
죽어 가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억센 악력이었다. 민재혁은 핏발 선 눈으로 태윤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가져가.”
“헌터님...”
“탑 놈들에게... 아르키브 놈들에게 내 기술을 넘겨줄 순 없다. 어차피 사라질 거라면... 네가 가져.”
민재혁의 입에서 굵은 핏물이 쏟아졌다.
“살아서... 42층으로 가라. 서린이가... 기다린다...”
그의 손에서 푸른 불꽃 같은 빛무리가 피어올랐다.
거부할 틈조차 없었다. 민재혁의 마력핵에 남아 있던 마지막 불씨가 태윤의 가슴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왔다.
[자발적 양도에 따른 예외 처리]
[S급 폭렬검 원본을 영구 회수했습니다.]
[경고: 대상의 가장 강렬한 기억 잔향이 각인됩니다.]
콰아아아!
태윤의 뇌리에 번개가 내리쳤다.
자신의 기억이 아니었다.
끝도 없이 솟아오른 붉은 탑. 42층의 피비린내 나는 허공. 쇠사슬에 묶인 거대한 심장 같은 핵. 그리고 그 앞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돌아보던 여자의 뒷모습.
은빛 팔찌를 찬 손.
- 태윤아... 오지 마.
누나의 목소리가 귓가를 강타했다.
“크아악!”
태윤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엎드렸다.
영혼이 두 개로 쪼개지는 것 같은 격통이었다. 민재혁이 품고 있던 마지막 절망과 분노 그리고 누나에 대한 희미한 기억이 태윤의 뇌세포 속으로 파고들었다.
쿵.
민재혁의 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의 눈은 감기지 않았지만 숨은 이미 완전히 멎어 있었다. 거인의 최후는 허망할 정도로 조용했다.
태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엎드려 떨었다.
가슴속에 무겁고 뜨거운 쇳덩이가 들어앉은 느낌이었다. 이것이 원본 회수였다. 타인의 삶과 기술을 고스란히 집어삼킨 대가였다.
저벅.
돌가루를 밟는 무거운 발소리가 멈춰 섰다.
태윤은 피눈물로 흐려진 시야를 들어 올렸다.
서아가 대형 방패를 바닥에 내려놓은 채 태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굳은 얼굴에는 경악과 의심 그리고 숨길 수 없는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방패를 쥔 손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너.”
서아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적막한 석실에 울렸다.
“대체 정체가 뭐야? F급 짐꾼이... 왜 민재혁 헌터의 S급 검격을 쓰고 있는 건데?”
차디찬 질문이 비수처럼 태윤의 심장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