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급 스킬이 다 내 꺼

1화: 붕괴한 1층
탑문 앞 대기열은 늘 사람 냄새와 쇳가루 냄새가 섞여 있었다.
강태윤은 짐수레의 끈을 다시 묶었다. 포션 상자 셋. 보급 식량 두 자루. 예비 창 다섯. 접이식 방패 네 장. 무게는 공용 1층 짐꾼 규정의 두 배에 가까웠다.
“F급이면 이 정도는 들어야지. 전투 안 하잖아.”
공략대장 오기철이 계약서 끝을 손가락으로 툭툭 쳤다.
태윤은 반박하지 않았다. 반박하면 일당이 깎인다. 일당이 깎이면 구조대 대출 이자를 못 낸다. 이자를 못 내면 누나가 남긴 방 한 칸까지 담보로 넘어간다.
그는 계약서 아래쪽의 작은 글씨를 짚었다.
“붕괴 경보 발생 시 짐꾼은 보급품보다 생존자 후송을 우선한다. 이 조항 살아 있습니까?”
오기철이 피식 웃었다.
“말 많네. 1층에서 무슨 붕괴야.”
“최근 한 달 사이 세 번 있었습니다.”
“뉴스 많이 봤나 봐?”
“사고 보고서요.”
오기철의 눈썹이 꿈틀했다. 뒤쪽에서 초보 헌터 몇 명이 웃음을 삼켰다. F급 짐꾼이 보고서를 읽든 말든 결과는 같다는 얼굴이었다.
“싫으면 빠져.”
태윤은 낡은 장갑을 당겨 꼈다.
누나 강서린이 남긴 물건 중 아직 팔지 않은 유일한 것이었다. 손등의 가죽은 헤져 있었지만 손목을 감싸는 감각만은 그대로였다. 서린은 3년 전 42층에서 실종 처리됐다. 관리국 서류에는 사망 추정이라는 네 글자가 찍혀 있었다.
태윤은 그 네 글자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
“갑니다.”
탑문이 열렸다.
푸른 막 너머는 넓은 석실이었다. 1층 초입답게 천장은 낮고 길은 단순했다. 벽에는 발광 이끼가 띠처럼 번져 있었다. 공략 자료에서 수십 번 본 구조였다.
초보 헌터들이 웃으며 들어갔다.
태윤은 웃지 않았다.
벽면의 균열이 자료보다 길었다. 이끼의 빛도 고르지 않았다. 공기가 새는 틈이 있으면 이끼는 밝아지고 막힌 곳에서는 빛이 죽는다. 짐꾼으로 오래 구른 사람은 그런 걸 봐야 했다. 못 보면 먼저 깔리고 먼저 물린다.
첫 몬스터인 이끼 늑대가 나타난 건 삼 분 뒤였다.
검사 둘이 앞서 나가 손쉽게 베었다. 창잡이가 웃으며 늑대의 귀를 잘라 전리품 주머니에 넣었다. 오기철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봤지? 오늘은 빨리 돌고 나간다.”
그때 바닥이 울었다.
낮은 진동이 발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태윤은 짐수레 손잡이를 놓았다.
“멈춰야 합니다.”
“또 시작이냐?”
“오른쪽 벽 안쪽이 비어 있습니다. 소리 울림이 달라요.”
대답 대신 천장에서 돌가루가 쏟아졌다.
경보음이 뒤늦게 터졌다.
태윤은 몸을 숙였다. 수레 위 포션 상자가 미끄러졌다. 뒤쪽 초보 헌터가 비명을 질렀다. 석실 바닥이 갈라지며 검은 연기가 새어 나왔다.
이끼 늑대가 아니었다.
연기 속에서 나온 것은 뿔 달린 개미 떼였다. 길쭉한 앞다리가 돌바닥을 찍을 때마다 불꽃 같은 마력 가루가 튀었다. 1층 자료에는 없던 몬스터였다.
“대열 유지해!”
오기철이 외쳤지만 몸은 입구 쪽으로 먼저 물러났다.
태윤은 가장 가까운 초보 헌터의 허리끈을 잡아당겼다. 뿔이 그 헌터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방패 든 사람 뒤로!”
“네가 지휘해?”
“살고 싶으면요.”
둔탁한 충격음이 대답처럼 터졌다.
앞쪽 통로에서 커다란 방패가 펼쳐졌다. 흉터 있는 여자가 방패를 바닥에 박고 뿔개미 세 마리를 밀어냈다. 방패 표면에 회색 마력막이 퍼졌다가 깨진 유리처럼 흔들렸다.
“짐꾼 말 들어. 오른쪽 막혀.”
윤서아였다.
이름은 공략대 명단에서 봤다. C급 방패 헌터. 임시 안전 관리자로 적혀 있었지만 오기철은 그녀를 후열에 세워 두었다. 보상 배분에서 방패는 늘 뒤로 밀렸다. 죽을 때는 가장 앞에 섰다.
“왼쪽 보조 통로로 열 명씩 빠져요.”
태윤은 벽의 균열을 짚었다. 손끝에 차가운 바람이 닿았다.
서아가 그를 흘끗 봤다.
“확실해?”
“바람이 나옵니다. 막힌 길은 아니에요.”
“좋아. 네가 앞장서.”
태윤은 삼 초 동안 망설였다.
앞장서는 짐꾼은 가장 먼저 죽는다. 하지만 뒤에 남으면 전부 깔린다. 그는 수레에서 예비 창 하나를 뽑았다.
“포션 상자는 버립니다. 사람 먼저.”
“미쳤어? 그거 내 돈이야!”
오기철이 소리쳤다.
태윤은 포션 상자의 고정끈을 칼로 끊었다. 상자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붉은 액체가 돌 틈으로 번졌다. 뿔개미 몇 마리가 냄새에 끌려 방향을 틀었다.
“지금은 미끼가 됩니다.”
서아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건방진데 쓸모는 있네.”
“칭찬은 나가서 듣겠습니다.”
좁은 보조 통로로 사람들이 밀려 들어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기도 힘든 길이었다. 태윤은 발광 이끼의 밝기를 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이끼가 꺼지는 곳은 공기가 멈춘 곳이다. 공기가 흐르는 곳만 따라가면 살아 있는 길이 나온다.
뒤에서 비명이 끊겼다.
서아의 방패가 다시 울렸다.
“뒤쪽 무너진다!”
천장 일부가 떨어졌다. 태윤은 앞사람의 어깨를 밀어 낮은 틈 아래로 밀어 넣었다. 자신은 창대를 세워 낙석을 비껴 냈다. 손바닥이 찢어지는 느낌이 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셋씩 지나가요. 뛰지 말고 숙여요.”
“넌?”
어린 궁수가 울먹이며 물었다.
“마지막에 갑니다.”
거짓말이었다.
마지막에 가는 사람은 대개 못 간다.
태윤은 사람 수를 셌다. 스물넷 중 열일곱. 서아와 자신을 빼면 다섯이 중앙 석실에 남았다. 그중 둘은 이미 움직이지 않았다. 오기철은 입구 쪽을 향해 혼자 뛰고 있었다.
태윤은 이를 악물었다.
“대장님! 그쪽 바닥 꺼집니다!”
오기철은 듣지 않았다. 다음 순간 그의 발밑이 비어졌다. 비명은 짧았다. 검은 연기가 그를 삼키고 아무 소리도 돌아오지 않았다.
“쳐다보지 마.”
서아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단했지만 방패를 든 팔은 떨리고 있었다.
태윤은 통로 끝에 박힌 돌문을 보았다. 손잡이는 없었다. 문 가운데 검은 문양이 살아 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1층 구조도에는 없는 문이었다.
그 순간 석실 반대편에서 빛이 폭발했다.
붉은 선 하나가 어둠을 갈랐다.
태윤은 숨을 멈췄다.
검이었다. 아니 검이 만든 폭발이었다. 불꽃은 늦게 따라왔다. 먼저 움직인 것은 압축된 충격이었다. 검끝이 공기를 접었다 펴는 순간 뿔개미 여덟 마리가 한꺼번에 갈라졌다.
S급 검술가 민재혁.
오늘 공략대의 외부 호위로 이름만 올라와 있던 남자였다. 그는 중앙 석실 한복판에 서 있었다. 왼쪽 어깨 갑옷은 뜯겨 나갔고 가슴의 마력핵 보호구는 깨져 있었다. 그 균열 사이로 붉은 빛이 불규칙하게 새었다.
그런데도 검은 다시 타올랐다.
태윤의 눈이 움직임을 쫓았다.
발뒤꿈치가 먼저 틀어졌다. 허리가 늦게 따라왔다. 손목은 마지막까지 힘을 숨겼다.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몸 전체로 폭발의 방향을 접고 있었다. 그래서 좁은 통로까지 충격이 번지지 않았다. 민재혁은 죽어 가면서도 후열을 피해서 베고 있었다.
“저게...”
누군가 넋을 놓았다.
태윤은 말하지 못했다.
너무 선명했다.
그는 검을 배운 적이 없었다. F급 판정 뒤 훈련장에서도 쫓겨났다. 그런데 저 검격만은 이상하게 이해됐다. 어디서 힘이 생기고 어디서 낭비되는지 눈으로 만져지는 듯했다.
민재혁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태윤에게 꽂혔다.
“거기 짐꾼.”
피가 입술 사이로 흘렀다.
“눈 좋네.”
태윤은 대답하지 못했다.
민재혁은 웃는 듯했다. 하지만 눈동자는 이미 흐려지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힘으로 검을 세웠다.
균열 속에서 더 큰 그림자가 몸을 밀어 올렸다. 뿔개미의 여왕처럼 보였지만 형태가 맞지 않았다. 배에는 검은 문양이 박혀 있었고 입 대신 갈라진 돌문 같은 틈이 열렸다. 1층에 나올 크기가 아니었다.
서아가 이를 악물었다.
“전원 엎드려!”
민재혁의 검이 폭발했다.
석실이 하얗게 지워졌다. 열기가 태윤의 뺨을 때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눈을 감지 않았다. 감으면 죽을 것 같았다. 검끝의 궤적이 눈동자 안쪽에 박혔다.
폭발은 한 번이 아니었다.
첫 번째 충격은 갑각을 깨고 두 번째 충격은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세 번째 충격은 뒤늦게 터져 여왕의 몸을 비틀었다. 민재혁은 한 호흡 안에 세 번을 접었다. 그것이 폭렬검이었다.
태윤의 머리가 뜨거워졌다.
시야 한가운데 글자가 떠올랐다.
[스킬 발동 목격]
[S급 폭렬검]
[기록 가능]
태윤은 숨을 삼켰다.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흔들렸다. 환각이라기엔 너무 차갑고 선명했다.
“뭐야.”
그의 목소리는 자기 것 같지 않았다.
민재혁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검은 이미 꺼지고 있었다. 대신 균열 속 여왕은 아직 살아 있었다. 깨진 갑각 사이에서 검은 연기가 새고 다리 여섯 개가 다시 바닥을 찍었다.
“사람들 빼내.”
민재혁이 말했다.
태윤은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은요?”
“나는 늦었다.”
“구조 포션이 있습니다.”
“마력핵이 깨졌다. 포션으로 붙일 게 아니야.”
민재혁은 짧게 웃었다. 고통이 웃음보다 먼저 새어 나왔다.
“봤으면 써먹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왕이 돌진했다.
서아의 방패가 정면을 막았다. 회색 마력막이 크게 펼쳐졌다. 뿔이 방패를 밀고 들어오자 서아의 부츠가 돌바닥을 긁으며 뒤로 밀려났다.
“오래 못 버텨!”
보조 통로에 남은 헌터들이 얼어붙었다. 태윤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낡은 장갑이 떨리고 있었다. 능력 따위 없다고 판정받은 손. 짐수레 끈이나 묶던 손. 누나를 찾으러 탑에 오르겠다는 말조차 우스워서 삼켰던 손.
하지만 눈앞의 글자는 그 손을 기다리고 있었다.
[10분 안에 기록하지 않으면 소실됩니다.]
태윤은 민재혁을 보았다.
죽어 가는 S급은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허락인지 착각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눈에는 하나만 남아 있었다.
살려라.
태윤은 더 묻지 않았다.
“서아 씨! 삼 초만 버텨요!”
“처음 본 사람 이름 부르면서 명령하지 마!”
“명령 아닙니다. 부탁입니다.”
서아가 욕설을 삼키며 방패를 다시 세웠다.
태윤은 허공의 글자에 손을 뻗었다.
차가운 무언가가 손목을 물었다. 장갑 안쪽으로 불씨가 기어 들어왔다. 민재혁의 검끝이 그렸던 궤적이 머릿속에서 다시 열렸다. 너무 뜨거워 눈물이 났다. 동시에 알았다. 이 힘은 공짜가 아니다. 몸이 버틸 수 있는 크기가 아니었다.
[기록을 시작합니다.]
여왕의 뿔이 방패를 넘어왔다.
서아의 어깨가 꺾였다. 뒤쪽 헌터가 비명을 질렀다. 태윤은 아직 검을 들고 있지 않았다. 손에는 짐수레에서 뽑은 싸구려 예비 창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발뒤꿈치를 먼저 틀었다.
민재혁이 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