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신호의 유일한 번역가

2화: 이백 년 뒤의 목소리
하린은 보안문을 열지 않았다. 태오가 먼저 외부 카메라를 확인했다. 천문대 입구에는 아무도 없었고, 도로의 눈은 그대로였다. 자체 수신기는 외부 송신이 아니라 관측 장비의 내부 반사 신호를 잡고 있었다. 태오는 케이블을 끊지 않고 예비 안테나로 회선을 전환했다. 그 순간 같은 신호가 다시 들어왔다.
이안은 파형의 지연 시간을 분석했다. 신호의 주파수는 우주 팽창에 따른 적색편이가 아니라, 지구 저궤도 위성의 중계 흔적과 맞았다. “외계에서 온 게 아닐 수 있어요. 지구 바깥에서 되돌아온 반사일 수도 있습니다.”
하린은 신호가 지구에서 출발해 다시 돌아오는 데 필요한 시간을 계산했다. 데이터의 반복 간격은 현재 위성 궤도와 맞지 않았다. 오래된 항법 자료와 대조하자, 200년 뒤 발사될 것으로 예상되는 심우주 중계 위성의 경로와 겹쳤다. 신호는 미래에 발신되어 빛의 속도로 과거로 되돌아온 게 아니라, 지금 관측되는 신호가 미래의 지구 구조 통신망 설계와 같은 패턴을 보이는 것이었다. 하린은 가설을 고쳐 썼다. ‘200년 뒤 지구 기원이라는 추정. 외계 신호로 확정 불가.’
“그럼 구조 요청은 아직 아니네요.” 경자가 말했다.
“패턴이 맞으면 미래 신호일 수 있어요.”
“미래를 말하는데 현재가 먼저 위험해지겠네.”
태오는 신호를 공개하면 국제 관측망이 관측 방향을 독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대로 숨기면 재현 분석이 불가능해진다. 이안은 원본과 분석 코드를 공개 저장소에 올리자고 했다. 하린은 어머니의 사전과 신호 번역은 따로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전은 사적인 가족 기록이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고 해서 전부 연구 자료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경자는 사전을 내주지 않았다. “언니가 남긴 말은 네가 해석할 수 있어. 하지만 바깥에 공개할지는 네가 혼자 결정하면 안 돼.”
하린은 책을 덮었다. 어머니의 단어가 신호를 설명할지 모른다는 기대와, 그 기대를 연구 성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섞여 있었다. 경자는 그 마음을 알아본 듯 보온병을 탁자에 놓았다. “언니가 너한테 사전을 준 건 세상에 팔라는 뜻이 아니야.”
그날 오후, 관측망의 다른 두 지점에서 같은 신호가 포착됐다. 수신 시차를 계산하면 발신 방향은 지구가 아니라 달 궤도 바깥이었다. 이안은 신호의 마지막 부분에 작은 간격이 추가된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 원본을 덧붙였거나, 수신 장비가 다른 신호를 섞었을 수 있었다. 하린은 음절을 다시 듣고 어머니의 방언 사전과 비교했다. 이번에는 ‘집’ 대신 ‘불을 끄고 기다려’로 들렸다.
태오는 신호를 복사해 간 국제 연구팀이 이미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은 자료를 ‘외계 생명의 첫 메시지’로 발표할 계획이었다. 하린은 데이터에 접근한 사람이 누구인지 조사했다. 로그에는 자신의 계정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파일을 외부로 보낸 적이 없었다. 누군가 계정을 썼거나, 관측망 내부에서 자동으로 공유됐을 수 있었다.
이안은 하린에게 번역을 먼저 공개하자고 했다. 발표가 나가면 사전과 가족사는 기자들에게 노출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외계 구조 요청’이라는 과장된 주장이 먼저 퍼질 가능성이 컸다. 하린은 신호의 원본과 방법론만 공개하고, 개인 사전은 공개하지 않는 절충안을 제안했다. 태오는 그 절차를 검토하며 개인정보를 가릴 수 있는지 확인했다.
회의가 끝나기 전 천문대 전파망이 갑자기 차단됐다. 외부 연구팀이 주파수 대역을 독점 예약한 것이다. 보조 안테나에는 과부하 경고가 떴다. 태오는 스위치 패널을 열어 수신 장비를 수동으로 분리했다. 케이블에서 불꽃이 튀었고, 손등에 화상이 번졌다. 하린은 전원을 끄려다 그를 붙잡았다. 태오는 마지막으로 원본 패킷을 읽기 전용 저장장치에 복사한 뒤 회선을 분리했다.
“데이터는 살았어요.” 태오가 말했다. “하지만 다음 수신은 놓칠 수 있어요.”
하린은 그 말을 듣고 어머니의 사전을 펼쳤다. 여백에는 신호와 같은 점 세 개가 다시 그려져 있었다. 옆에 적힌 말은 이번에도 ‘물 건너 집’이었다. 경자는 그 글씨가 어머니의 것이 맞다고 확인했다. 하지만 그 표현이 어디서 왔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신호가 다시 잡힌 것은 정전이 복구된 뒤였다. 이번에는 세 개의 점 다음에 네 번째 점이 붙었다. 하린은 그 음절을 ‘살려 줘’로 읽었다. 태오는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듣고 싶은 말일 수 있어요.”
하린은 번역을 확정하지 않았다. 대신 문장 끝에 물음표를 붙였다. ‘살려 줘?’ 이안은 그 표기를 연구 노트에 그대로 남겼다. 세 사람은 다음 신호가 오기 전까지 발신 방향을 독립적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새벽, 어머니의 녹음기에서 자동 재생이 시작됐다. 하린이 재생하지 않은 파일이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말했다. “하린아, 그 말이 들리면 답하지 마. 아직 그쪽 사람이 누군지 몰라.”
녹음 날짜는 사망 2년 전이었다. 파일의 마지막에는 천문대의 현재 관측 좌표가 정확히 적혀 있었다.
하린은 발표 자료를 수정했다. ‘외계 구조 요청’이라는 제목은 지우고 ‘기원 미확정 반복 신호: 공동 검증 요청’으로 바꿨다. 학계의 기대와 언론의 압박은 더 거세졌다. 소속 기관은 발견을 먼저 발표하지 않으면 관측 시간을 빼앗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안은 자기 이름을 공동 저자에 넣지 말아 달라고 했다. 재현 검증이 끝나지 않았는데 결과를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하린은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태오는 계정 접속 로그를 다시 살폈다. 누군가 하린의 계정을 사용한 것은 맞지만, 로그인은 천문대 내부망에서 이뤄졌다. 외부 해킹이 아니라 직원용 단말기에서 접근했을 수 있었다. 그는 보안팀에 조사 요청을 넣고, 대기 중인 분석 파일을 봉인했다. 그때 하린은 자신이 파일을 마지막으로 열어 둔 시각이 어머니 장례를 치르던 밤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당시 그녀는 상복을 입은 채 천문대에 잠깐 들렀다. 파일을 가져간 사람은 자신일 수도 있었다.
“내가 보냈을 가능성도 있어요.” 하린이 말했다.
태오는 그녀에게 휴식을 권했다. 하린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공개할 데이터와 가족 기록을 분리하는 일을 마친 뒤 자리를 비우겠다고 했다. 그때 경자가 방언 사전을 덮어 가방에 넣었다. “네가 엄마를 기억하는 방식까지 연구소가 소유하게 두지 마.”
하린은 사전을 억지로 잡지 않았다.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 자신에게 남긴 말은 “이 사전은 네가 원할 때 열어 보라”였다. 공개 허락은 없었다. 그녀는 사전 원본을 경자에게 돌려주고, 연구용으로는 경자가 승인한 단어만 따로 기록하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의 손글씨로 ‘이 말은 절대로 신호에 쓰지 말 것’이라는 주석을 발견했다.
주석에는 가족 은어 하나가 적혀 있었다. 그것은 신호의 마지막 음절과 가까웠다. 하린은 해당 부분을 제외한 분석본을 만들었다. 그 순간 모니터에 새로운 신호가 나타났다. 기존 파형의 반복이 아니라, 세 개의 짧은 펄스와 긴 간격 하나였다. 어머니가 어린 시절 하린에게 숨바꼭질 신호로 쓰던 리듬이었다.
하린은 반사적으로 헤드폰을 벗었다. 경자는 그녀가 신호를 듣기도 전에 리듬을 알아차렸다는 사실을 짚었다. “이제부터 네 귀가 먼저 들은 걸 설명에 끼워 넣지 마.”
하린은 다시 헤드폰을 썼다. 단어를 붙이지 않고 간격만 기록했다. 태오는 독립 관측소의 동일 시각 원본을 불러왔다. 그곳에도 같은 펄스가 있었지만, 한 단계 낮은 세기로 기록돼 있었다. 누군가 천문대 내부에서 만든 신호라는 가설은 약해졌다.
이안은 신호의 반복 간격을 발신 시점으로 환산했다. 관측 자료의 오차를 감안해도 190년에서 220년 뒤 사이였다. 신호가 실제로 미래에서 왔다고 증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현 시점 지구의 중계 위성과는 출처가 맞지 않았다. 그들은 국제 연구팀에 원본 패킷을 제공하고, 번역 부분은 보류하기로 했다.
연구팀은 ‘미래 지구의 구조 요청 가능성’이라는 문구를 발표 초안에 넣었다. 하린은 제목에서 ‘구조 요청’을 삭제해 달라고 요구했다. 아직 요청인지, 경보인지, 반복 시험인지 알 수 없었다. 서로 다른 단어 하나가 각국의 기술 개발을 앞당길 수 있었다.
그날 저녁, 신호 분석을 맡은 연구팀장이 하린을 회의실로 불렀다. 그는 발표를 연기하면 예산과 관측 시간을 잃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네가 어머니의 노트를 보고 메시지를 읽었다면 그게 발견의 일부일 수도 있어.”
“그럼 사적인 사전까지 공개하자는 건가요?”
“연구를 위해서는 검증 가능해야 해.”
하린은 대답 대신 경자가 보낸 사전 스캔본을 닫았다. 어머니의 사전에는 병원 방문 날짜, 가족만 알 수 있는 별명, 경자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공개를 거부하면 연구는 늦어질 수 있지만, 사전을 올리면 어머니의 삶은 맥락 없이 검색되고 평가될 것이다. 하린은 이 문제를 혼자 결정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회의실은 조용해졌다.
이안은 대안으로 단어의 의미를 공개하지 않고, 신호 파형과 분석 기준만 공유하자고 했다. 다른 연구자들이 각자 번역을 내고, 사전은 당사자인 가족이 허락한 범위에서만 사용한다. 태오는 그 방식을 기술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했다. 팀장은 발표가 약해질 거라고 불평했지만, 결국 자료 접근 권한을 나누기로 했다.
경자는 어머니가 남긴 한 권의 노트를 하린에게 맡겼다. 공개해도 된다고 표시된 페이지였다. 그 페이지에는 ‘불을 꺼’와 ‘밖에서 세 번, 안에서 한 번’이라는 표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 하린은 신호의 일부가 이 리듬과 닮았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동시에 그 유사성은 증거가 아니라 질문이라고 문서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