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신호의 유일한 번역가

3화: 응답하지 않는 법
하린은 녹음 파일을 다시 재생했다. 날짜와 좌표는 어머니의 필체로 적혀 있었고, 음성 파일에는 편집 흔적이 없었다. 태오는 원본 파일을 읽기 전용 장치에 복제했다. 이안은 녹음기 자체의 시계가 틀렸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사망 2년 전이라는 표시는 맞지만, 좌표가 언제 입력됐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엄마가 관측을 했을 리 없어요.” 하린이 말했다.
“관측을 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들었을 수 있죠.” 경자가 답했다. “언니는 사람들이 숨기는 말을 잘 들었으니까.”
국제 관측망은 신호를 외계 구조 요청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기자들이 천문대 앞에 모이고, 하린의 이름과 어머니의 사전 사진이 인터넷에 퍼졌다. 사전의 개인적인 단어 몇 개가 문맥 없이 번역되어 조롱거리로 돌았다. 하린은 보도자료를 정정하려 했지만, 발표 주최 측은 이미 신호의 번역을 ‘인류 최초의 응답 기회’라고 불렀다.
태오는 안테나를 끄자고 했다. 신호가 증폭될수록 과학적 논쟁보다 정치적 경쟁이 앞설 수 있었다. 이안은 장비를 끄면 원본 관측 기록이 사라질 가능성을 걱정했다. 하린은 신호를 계속 받되 자동 송신 회선을 물리적으로 분리하자고 했다. 응답하지 않고 관찰만 하는 선택이었다.
그들은 안테나실로 갔다. 신호 수신부는 외부 관측망과 한 회선을 공유했다. 태오는 회로를 분리하기 위해 전원을 낮췄고, 하린은 물리적으로 송신선을 뽑았다. 그 순간 안테나가 스스로 방향을 바꾸었다. 서보 모터가 윙 하고 돌아가며 관측점이 지구에서 달 궤도 쪽으로 이동했다. 하린은 수동 브레이크를 당겼지만 모터는 멈추지 않았다.
태오는 손으로 회전축을 붙잡았다. 장갑이 금속에 쓸려 찢어졌다. 하린은 비상 차단 버튼을 눌렀다. 전력은 끊겼지만 안테나는 관성으로 더 돌았다. 모터가 정지하면서 파열음이 났다. 관측 장비 한 대가 망가졌고, 다음 수신 창까지는 6시간이 남았다.
“누가 원격 제어를 건 거죠?” 이안이 물었다.
태오는 접속 기록을 확인했다. 발신자는 관측망 공동 계정이었다. 하린은 자기 계정이 쓰인 로그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접근 권한이 도용된 게 맞았다. 그 사실을 공개하면 분석 결과 전체가 의심받을 수 있지만, 숨기면 더 큰 조작을 허용하게 된다.
경자는 기자들 앞에서 어머니의 사전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신호 번역이 확정되지 않았고, 가족 기록은 연구 허가를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린도 기자회견에서 ‘외계 생명’이나 ‘구조 요청’을 단정하지 않았다. 신호의 원본과 분석 절차는 공개하되, 사전에서 나온 해석은 보류하겠다고 했다. 그 발표는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투자사는 지원을 철회했고, 관측망은 하린의 계정을 일시 정지했다.
태오는 수신 장비가 고장 났어도 백업 안테나가 작동할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안테나를 수동으로 고정하고, 송신 회선에 물리 잠금장치를 달았다. 이안은 이번 수신을 여러 연구자가 동시에 기록하도록 공개 중계 채널을 열었다. 개인 정보는 제외하고 파형과 시각만 공유했다. 다음 신호 창이 열리자, 관측실 모니터에 네 개의 점이 찍혔다.
‘살려 줘?’ 하린의 번역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에는 간격이 달랐다. 점 세 개 뒤의 네 번째 점은 외부에서 도착한 것이 아니라, 안테나의 반사로 생긴 것처럼 보였다. 누군가 응답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자기 신호를 되돌려 듣고 있었다. 신호의 발신 방향을 재계산하자 달 궤도 기지가 아니라, 지구의 남극 관측 기지와 연결됐다.
“외계인이 아니라 지구에서 온 거예요.” 이안이 말했다.
“200년 뒤의 지구?” 태오가 물었다.
“혹은 현재 지구의 누군가가 미래 설계와 같은 장비를 쓰는 거죠.”
하린은 신호를 번역해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공개 채널에 질문을 남겼다. ‘발신 시점과 출처를 확인할 때까지 응답을 보류합니다.’ 그녀는 그 말이 신호에 닿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안테나가 한 번 짧게 울렸다. 외부로 전송된 건 없었다. 원본 신호의 마지막 펄스가 바뀌어 있었다.
어머니 사전에서만 쓰는 가족 은어가 잡음 사이에 섞였다. ‘집은 불빛이 남은 쪽.’ 경자는 그 말이 어머니가 하린을 데리러 올 때 쓰던 표현이라고 했다. 하린은 자신이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신호는 바깥에서 답을 받았다는 듯 잠잠해졌다. 태오는 송신선을 분리한 봉인 장치를 보여 줬다. 어느 회선도 열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신기 안에 새 기록이 들어 있었다.
‘달 기지에서 기다린다.’
하린은 문장의 발신 방향을 다시 확인했다. 신호는 달에서 오지 않았다. 메시지 끝에는 어머니의 사전 표제어 번호가 붙어 있었다. 하린이 직접 적은 번호였다. 누군가 사전을 읽고 있었다.
기자회견 뒤 하린은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의 라디오를 가져왔다. 오래된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지만, 배터리 수납부 안에 접힌 종이 조각이 있었다. 거기에는 위성 주파수와 날짜가 적혀 있었다. 날짜는 지금부터 200년 뒤의 달 기지 통신 창과 겹쳤다. 어머니는 라디오가 고장 나기 전에도 그 시각에 맞춰 다이얼을 돌려 놓은 것이다.
경자는 종이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 라디오를 고치러 갔던 일을 기억했다. 어머니는 “하린이가 언젠가 듣게 될 거야”라고 말했지만, 무엇을 듣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경자는 그 말을 예언처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래된 장비의 습관이나, 사적인 약속일 수 있었다.
하린은 라디오의 안테나 코일을 천문대의 보조 수신기에 연결했다. 신호는 들어오지 않았다. 대신 저장 장치에서 마지막으로 수신한 방송 조각이 재생됐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니라, 낯선 여성의 짧은 안내였다. “달 거주지 4구역, 생명 유지 순환 정지. 구조 신호 반복.” 녹음의 노이즈는 오래된 전파가 아니라 미래의 압축 방식과 일치했다.
“그게 진짜라면 200년 뒤의 사람들은 위험해요.” 태오가 말했다.
“그걸 공개하면 지금 누군가 그 위험을 만들 수도 있어요.” 하린은 답했다.
이안은 미래 신호만으로 현재 기술을 막을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하린은 메시지를 외계 문명으로 포장하면 자원 경쟁이 생기고, 미래의 달 기지에 대한 투자가 급증할 것을 우려했다. 그녀는 공개 자료에 녹음의 주파수와 불확실성을 모두 포함하고, 사전의 해석과 개인 좌표는 제외하기로 했다.
수신기에서 짧은 펄스가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달 기지의 주파수가 아니라, 천문대 밖의 이동 중계기가 신호를 반사했다. 누군가 기자회견을 듣고 임시 장비를 설치한 듯했다. 태오는 송신 회선을 끊었지만 반사는 한 번 더 이어졌다. 세 점과 한 점. 경자는 어머니가 하린을 데리러 올 때 쓰던 암호라고 말했다.
“집은 불빛이 남은 쪽.” 경자는 그 말이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하린은 어머니가 미래 신호를 예견했는지 묻지 않았다. 대신 라디오의 날짜를 연구 노트에 적고, 그 자료가 사적인 가족 물건에서 나왔음을 명시했다. 미래를 증명하는 증거가 아니라 검증해야 할 단서라고 표시했다.
태오는 안테나를 다시 고정했다. 이안은 여러 관측소에 동일한 원본 기록을 나눠 보냈다. 각 팀이 별도로 해석하고, 어느 쪽도 먼저 답을 송신하지 않도록 합의했다. 하린은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을 썼다. ‘기원은 미확정이며, 현재로서는 응답하지 않는다.’
그 문장을 저장한 직후, 수신기에서 아주 짧은 응답이 찍혔다. ‘달에서 기다린다.’ 이번에는 발신 좌표가 달 기지를 가리키지 않았다. 좌표는 어머니의 고향 마을, 오래된 라디오 송신탑을 향했다.
하린은 고향 마을의 송신탑에 전화했다. 탑은 몇 해 전에 폐쇄됐고, 현재는 통신사 중계기만 남아 있었다. 관리인은 최근 누군가가 야간에 탑에 올라간 적이 있다고 했다. 출입 기록은 없었지만, 철문 안쪽에 새 자물쇠가 달려 있었다. 하린은 그 사실을 관측망 보안팀에 전달했다. 신호가 미래에서 왔든 현재의 누군가가 조작했든, 실제 장비를 만진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태오는 추가 조사를 위해 이동할 준비를 했다. 경자는 따라가겠다고 했지만, 하린은 사전 원본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경자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엄마의 말을 공개할지 말지 결정해. 대신 그 말이 네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마.”
하린은 안테나 방향을 마을 쪽으로 맞췄다. 장비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신호 세기는 조금 높아졌다. 이안은 각 관측소의 시차를 계산했고, 발신 지점이 지구 표면 가까이일 가능성을 지웠다. 그럼에도 수신 방향은 달 기지의 중계 경로와 정확히 겹쳤다.
하린은 ‘달에서 기다린다’는 문장을 새 분석 보고서에 넣지 않았다. 대신 그 문장이 어디서 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음 수신 창을 열어 두었다. 대답을 보내지 않는 선택도 수신을 계속하는 선택도 모두 책임이 따랐다.
새벽 교대가 끝나자 하린은 녹음기의 배터리를 뺐다. 어머니 목소리를 더 들으면 분석보다 기억을 따라갈 것 같았다. 그녀는 노트를 덮고, 다음에 누구와 함께 열어 볼지 경자에게 맡겼다.
태오는 그 선택을 공동 검토 항목에 적었다. 송신 금지는 임시 조치였고, 다음 관측 창 전에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하린은 보고서 맨 앞에 “번역의 불확실성은 메시지의 중요성을 줄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