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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신호의 유일한 번역가1화

외계 신호의 유일한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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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어머니의 사전

문하린은 장례를 치른 지 석 달 만에 어머니의 서랍을 열었다.

천문대 관측실의 야간 교대가 끝나도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전파 수신기의 잡음은 일정했고, 모니터는 아무도 거짓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책상 위에는 먼지 쌓인 방언 사전이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고향에서 쓰던 말과 가족끼리만 쓰던 표현을 노트마다 적어 두었다. 하린은 어릴 때 그 말들을 부끄러워했고, 어머니가 사투리를 쓰면 서울말로 고쳐 말했다. 마지막 병문안에서도 사전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이제 와서 읽는구나.” 문경자 이모가 전화 너머로 말했다.

“엄마가 왜 이걸 모았는지 궁금해서요.”

“말이 사라질까 봐 그랬겠지. 그런데 사전에 없는 말도 있어.”

경자는 어머니의 방언을 함께 쓰며 자란 동생이었다. 그는 사전의 단어가 모두 공개용은 아니라고 했다. 가족만 알아듣는 장난과 누군가를 부르는 별명도 섞여 있었다. 하린은 그 말을 듣고 노트를 덮었다. 천문대에 돌아오자마자, 모니터의 신호 분석 결과를 확인했다.

전파 망원경이 포착한 신호는 11분 42초마다 반복됐다. 외계 지성체의 인공 신호 후보로 국제 관측망에 공유된 자료였다. 일정한 펄스 사이에는 소음처럼 들리는 음절의 묶음이 있었다. 분석팀은 그것을 변조 오류로 분류했다. 하린은 반복 구간을 이어 붙여 스펙트럼을 재생했다. 소리는 사람의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세 번째 음절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그녀는 방언 사전의 녹음 파일을 수신 데이터와 나란히 띄웠다. 어머니는 단어의 발음을 직접 녹음해 두었다. 신호의 음절은 고향말의 ‘물 건너 집’과 비슷했다. 하린은 그 해석을 믿지 않았다. 소리의 유사성은 듣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맞출 수 있었다. 그녀는 신호를 거꾸로 재생하고, 주파수대를 바꾸고, 다른 연구자에게도 들려줬다. 모두 다른 음절을 들었다.

류태오는 데이터 무결성 확인을 맡은 엔지니어였다. 그는 하린이 분석 파일을 여러 번 복사하는 모습을 보고 중단을 요청했다. “원본이 하나뿐이에요. 분석본을 만들더라도 체크섬이 맞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원본은 손상되지 않았어요.”

“손상 여부와 해석은 달라요. 파일을 바꾸지 않았다는 증거가 먼저죠.”

태오는 원본 수신 패킷을 읽기 전용 저장 장치에 복사했다. 하린은 사전 음성과 신호를 비교했다고 털어놓았다. 태오는 표정이 굳었다. “연구 결과로 내놓으려면 맹검 검증이 필요합니다. 당신이 어머니 목소리를 알고 있으면 음절을 듣는 방식부터 편향될 수 있어요.”

그는 하린을 탓하지 않았다. 그 점이 오히려 그녀를 아프게 했다. 하린은 신호를 듣고 엄마를 떠올렸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대신 음절을 잘라 여러 연구자에게 무작위 배열로 들려주자고 했다. 태오는 동의했다. 그들은 데이터가 먼저인지 기억이 먼저인지 구분하기 위해 서로 다른 세션을 만들었다.

분석 보조 연구원 이안은 신호가 반복되는 간격을 계산했다. 11분 42초는 지구의 자전 주기와 겹치지 않았다. 신호의 편광은 관측소의 장비 방향에 따라 달라졌고, 한 지점에서만 수신되는 인공 간섭일 수도 있었다. 이안은 외계 신호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하린은 그 말을 받아들였다. 신호가 어머니의 말과 닮았다는 사실은 과학적 증거가 아니었다.

그날 밤, 하린은 사전의 오래된 녹음기에서 파일 하나를 찾았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병원에서 듣던 것보다 건강했다. “하린아, 이 말은 집으로 돌아오라는 뜻이 아니야. 누군가 물 건너에서 부르는 소리야.” 그 설명은 사전 표제어 옆에 쓰인 것과 달랐다. 하린은 녹음 시각을 확인했다. 신호가 처음 포착되기 18년 전이었다.

그녀는 천문대의 원본 데이터에서 같은 음절을 찾았다. 무작위 검증을 마친 연구자 세 명 중 한 명만 같은 단어를 들었다. 나머지는 각기 다른 소리를 골랐다. 통계적으로는 우연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태오는 하린에게 결과를 논문에 넣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녀는 그 조언을 거절하지 않았다. 다만 사전의 다른 녹음 파일을 더 듣고 싶었다.

경자가 천문대에 도착한 것은 새벽 한 시였다. 그는 낡은 보온병을 들고 왔다. “언니는 외지에서 온 소리를 흉내 내는 걸 좋아했어. 네가 지금 듣는 게 정말 그 말인지부터 확인하자.”

경자는 신호를 여러 번 듣고도 말을 붙이지 않았다. 마지막에 한 음절을 따라 했다. “이건 ‘불을 꺼’에 가까워. 우리가 어릴 때 숨바꼭질할 때 쓰던 말이야.”

하린은 당황했다. 같은 파형에서 다른 뜻이 나왔다. 엄마의 사전은 번역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기억을 연결하는 기록이었다. 그녀는 사전의 여백을 살폈다. 어머니는 신호와 같은 세 개의 점을 그려 놓았고, 옆에 ‘밖에서 세 번, 안에서 한 번’이라고 적었다.

태오는 신호 패킷의 시작 부분을 재생했다. 점 세 번과 간격 하나. 하린은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 소리는 천문대의 보안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같았다. 화면에 새 수신이 떴다. 이번에는 관측망이 아니라, 천문대의 자체 수신기에서 들어온 신호였다.

누군가 관측소 바깥에서 전파를 보내고 있었다.

경자는 사전의 제본을 살폈다. 표지 안쪽에는 바랜 사진이 끼어 있었다. 어린 하린이 어머니 무릎에 앉아 있고, 경자는 뒤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사진 속 하린은 귀를 막고 있었다. 천문대 수신기에서 들은 세 점 신호와 비슷한 소리가 사진이 찍힌 날에도 났던 것 같다고 경자는 말했다. 당시 마을에는 외국 배가 들어오는 소리라고 어른들이 겁을 줬다. 하지만 신호는 바다 건너에서 온 게 아니었다. 마을 라디오 송신기에서 고장 난 경보음이 반복된 것이었다.

“그럼 엄마는 그 소리를 기억해서 사전에 적은 거예요?” 하린이 물었다.

“그럴 수도 있지. 언니는 소리를 말로 옮기는 걸 좋아했어. 그렇다고 저 하늘에서 온 신호를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경자는 사진을 돌려 하린에게 보여 줬다. 뒷면에는 날짜 대신 ‘비가 오기 전, 불을 끄고 기다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가족만 아는 문장이었다. 어머니는 어린 하린이 잠들지 못하면 전파 라디오를 켜고 먼 지역의 기상 통신을 들려줬다. 그녀는 지구 반대편에서 오는 말을 들으며 집이 어디인지 상상했다.

하린은 사진 속 자신의 손에 작은 라디오가 들려 있는 걸 보았다. 어머니의 녹음에서 나온 좌표와 연결된 장치와 같은 모델이었다. 장례 이후 정리한 유품 상자에 그 라디오가 있었고, 하린은 배터리를 빼서 따로 보관했다. 그녀는 다음 휴식 시간에 집에 가서 라디오를 가져오겠다고 했다.

태오는 사전 분석에 가족 기억을 섞지 말자고 거듭 당부했다. 하린은 동의했다. 그들은 사전 음성의 파형과 신호를 비교하되, 일치 여부를 숨기지 않고 세 번째 분석자에게 맡기기로 했다. 이안은 데이터 파일에 번호만 붙여 블라인드 검증을 준비했다.

검증을 기다리는 동안 신호는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 하린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보온병에 남은 차를 마셨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동안에도 그녀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 목소리가 과학의 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과, 자신이 그 답을 원한다는 사실을 동시에 받아들이려 했다.

밤이 깊어질 때 안테나의 방향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태오는 모터를 멈췄지만, 회전은 전원 차단 뒤에도 한 번 더 이어졌다. 천문대 외벽에서 세 번의 진동이 왔다. 건물의 구조음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간격은 사전 여백의 점과 같았다.

하린은 어머니의 녹음을 다시 확인하려고 했지만, 경자가 재생기를 닫았다. “그 목소리로 답을 찾으려 하지 마. 언니는 네가 듣고 싶은 말을 알았어.”

“그럼 왜 좌표를 남겼을까요?”

“고장 난 라디오가 어디서 신호를 받는지 궁금했겠지. 언니는 늘 귀를 기울였어. 들리는 소리를 믿어서가 아니라, 왜 그렇게 들리는지 알아보려고.”

하린은 그 말을 듣고 분석 절차를 다시 짰다. 신호를 들은 사람에게 번역을 먼저 보여 주지 않고, 음절의 간격과 길이만 기록하게 했다. 태오는 분석용 이어폰을 다른 방에 설치했고, 이안은 각 연구자에게 파형을 임의 순서로 나눠 줬다. 그중 한 연구자는 단어 대신 물결의 리듬이라고 답했다. 다른 연구자는 사람의 숨이라고 했다.

결과가 모두 다르자 하린은 실망보다 안도했다. 엄마의 언어가 전파에 적혀 있다고 믿기 시작하면, 자신은 확인을 멈출 것이다. 그녀는 사전 표제어에 붙은 단어를 덮고 파형의 반복만을 관찰했다.

새벽 교대가 끝나갈 무렵 외부 관측망에서 자동 알림이 왔다. 동일한 신호가 남극과 칠레 관측소에서 잡혔다. 수신 시각은 각각 4.2초 차이였다. 하린은 그 시차로 발신 방향을 계산했다. 신호는 외계 행성이 아니라, 태양계 바깥의 좁은 원뿔에서 들어왔다. 이안이 계산을 독립 재현했고, 결과는 같았다.

“적어도 안테나 고장은 아니네요.” 태오가 말했다.

“그렇다고 외계인이라고 말할 수도 없죠.” 하린은 답했다.

그들은 보도자료를 쓰기 시작했다. 하린은 언론이 신호의 출처보다 번역을 먼저 묻는다는 것을 예상했다. 그녀는 아직 어떤 말을 전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원본을 여러 곳에 복제해 어느 기관도 혼자 소유하지 못하게 했다.

하린은 관측 기록의 원본 해시를 출력해 경자에게도 한 장 건넸다. “이건 엄마 노트랑 다르게 누구나 다시 확인할 수 있어요.” 경자는 종이를 접지 않고 가방 속에 넣었다. 그녀는 신호의 뜻을 알지 못해도, 하린이 그 차이를 지키려 한다는 건 알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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