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에 남은 몬스터를 치료합니다

1화: 체육관 대피소의 발자국
“짐승이 애를 물었어요!”
체육관 정문에 들어선 수의사 이정안은 비명부터 들었다. 대피소 안쪽의 접이식 칸막이가 넘어져 있었고, 이불과 식수통이 바닥에 흩어졌다. 주민들은 벽 쪽으로 몰려 있었고 구조대원 최강우는 왼팔을 수건으로 감싼 채 사람들 사이에 섰다. 피가 수건에 번지고 있었다.
“누가 물렸습니까? 지금 어디 있죠?”
운영 책임자 한예린이 정안의 어깨를 붙잡았다. “체육관 창고 쪽이에요. 작은 뿔 달린 것. 사람들이 몰리니까 안으로 숨었어요.”
“문을 열지 마세요. 주변부터 비우고 아이들은 반대편으로 옮겨 주세요.”
주민 한 명이 “그냥 잡아서 내보내면 되잖아요”라고 소리쳤다. 강우는 그쪽을 돌아보며 수건을 더 세게 눌렀다. “가까이 가면 다칩니다. 나도 갑자기 튀어나온 걸 막다가 긁혔어요.”
정안은 손에 든 운반장을 내려놓았다. 안에는 기본 진료도구와 두꺼운 장갑, 눈가리개, 포획망이 있었다. 그가 먼저 한 일은 창고 문에 자물쇠를 채우는 게 아니었다. 바닥의 흔적을 확인했다. 작은 발자국이 창고에서 바깥으로 향한 게 아니라, 체육관 중앙에서 창고 쪽으로 급히 이어졌다. 뒤꿈치 모양은 한쪽으로 비뚤어져 있었다.
“애를 물었다고 하셨는데, 아이는 어디 있습니까?”
“저기요.” 예린이 담요를 덮은 여자아이를 가리켰다. 아이의 손등에는 붉은 자국이 있었지만 피는 나지 않았다. 아이는 울음을 참으며 오른손을 가슴에 붙였다. 정안은 낮은 자세로 다가가 이름을 물었다. 김보미, 열한 살. 상처를 보여 달라고 하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내가 손을 잡지 않을게. 네가 담요를 걷을래?”
보미는 한참 있다가 담요를 내렸다. 손등에는 얕은 자국 세 줄이 나 있었다. 손톱이나 작은 발톱에 긁힌 흔적에 가까웠다. 정안은 주민들이 말한 ‘물림’과 상처 모양이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상처만으로 동물의 의도를 판단할 수는 없었다.
“몹쓸 괴물인데 아이한테 달려들었어요.” 주민 중 한 남자가 말했다. “그런 걸 진료하겠다고요?”
정안은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강우의 팔을 살폈다. 소매 아래에 깊은 찰과상이 있었지만 이빨 자국은 없었다. 강우는 자신의 보호대를 벗으며 말했다. “내가 막아 세우려고 잡았는데 팔을 비틀고 빠져나갔어요. 공격하려던 건지 도망치려던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어느 방향에서 왔습니까?”
강우는 체육관 서쪽 출입문을 가리켰다. 그 문은 게이트 통제선과 가까운 쪽이었다. “대피 인원 나눌 때 잠깐 열려 있었어요. 사람들이 밀리면서 안쪽 문도 열렸죠.”
정안은 문 주변 바닥을 확인했다. 발자국 사이에 물기가 섞인 진흙이 묻어 있었다. 창고 앞에는 작은 통조림 캔이 굴러다녔다. 캔의 모서리가 찌그러져 있었고, 한쪽에는 파란 천 조각이 걸렸다. 보미는 그 천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저기, 그건 내 손수건이에요.”
“왜 창고에 있었니?”
“목마른 것 같아서 물을 놔두려고 했어요. 혼자 구석에 있었거든요.”
예린이 바로 끼어들었다. “아이를 혼자 보낸 건 아니에요. 잠깐 엄마를 찾으러 갔다가 돌아온 거예요.”
정안은 보미를 탓하지 않았다. 아이가 물을 놓은 자리에서 창고까지는 사람들의 대피 줄을 가로질러야 했다. 몬스터가 캔을 차거나 천을 물고 달아났을 수도, 사람을 피해 좁은 창고로 숨어들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구조대원들에게 방화문 앞 안전 반경을 만들고, 주민들을 체육관 동쪽 관람석으로 이동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포획망은 꺼내지 않았다. 좁은 창고에서 휘두르면 생물과 사람이 함께 다칠 수 있었다. 정안은 창고 문 아래로 작은 관찰 카메라를 밀어 넣었다. 화면에는 회색 털, 짧은 뿔 두 개, 뒷다리를 끌고 있는 생물이 보였다. 몸 옆구리가 빠르게 들썩였다.
“호흡이 너무 빠르네요. 다친 상태일 수 있어요.”
“그럼 더 위험한 거 아닙니까?” 주민이 물었다.
“아플 때는 가까이 오는 것 자체를 위협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거리를 두고 먼저 움직임을 봐야 합니다.”
예린은 대피소 방송기를 잡았다. “창고 주변을 비워 주세요. 가까이 가지 마세요. 아이들은 보호자와 함께 동쪽으로 이동합니다.” 반발하는 주민도 있었지만, 강우가 앞을 막고 나서자 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안은 창고 문을 조금 열고 차폐판을 세웠다. 문이 움직이자 안에서 낮은 울음이 났다. 짐승이 몸을 부딪친 소리도 이어졌다. 정안은 손을 뻗지 않았다. 물그릇을 바닥에 밀어 넣고 문을 다시 닫았다. 잠시 뒤 그릇이 끌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생물은 물을 마시지 않았다.
“보미가 준 물도 마시지 않았어요.” 예린이 말했다.
“사람 냄새와 소음이 가득한 데서 바로 먹기는 어렵죠.”
“여긴 대피소예요. 조용하게 만들 수가 없어요.”
예린의 말은 맞았다. 바닥에는 아픈 사람들의 매트가 놓여 있었고, 발전기는 쉬지 않고 웅웅거렸다. 정안은 생물을 진료할 공간과 주민의 안전을 동시에 확보해야 했다. 그는 체육관 샤워실을 임시 격리 구역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물이 흐르는 배수구가 있고, 출입문이 하나라 관찰하기 쉬웠다.
예린은 반대했다. 샤워실은 주민들이 씻는 곳이었다. 이미 줄이 길었고, 대체 공간도 없었다. “그 방을 쓰면 사람들한테 불편을 더 얹는 거예요.”
“창고에 계속 두면 호흡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제가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적어도 다친 곳이 있는지 확인해야 해요.”
강우가 끼어들었다. “내 팔은 내가 처리하겠습니다. 저 안에 있는 게 다치지 않았다면 굳이 옮길 필요도 없어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숨을 고르게 하고, 움직이는 상태를 지켜보려 합니다.”
정안은 예린에게 임시 관찰 구역으로 샤워실을 30분만 빌릴 수 있는지 물었다. 대신 정기 사용 시간은 지키고, 구조대가 임시 세면대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예린은 대피소 인원표를 훑어본 뒤, 몸이 불편한 주민들이 사용할 화장실을 먼저 확보하면 동의하겠다고 했다. 정안은 그 약속을 구조대와 확인했다.
보미는 격리 구역에 들어가기 전, 창고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정안은 아이가 가까이 가지 않도록 막았지만, 보미는 파란 손수건을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저 애가 이걸 물고 있었어요. 혼자 둔 게 미안해요.”
정안은 손수건을 받아 비닐 봉투에 넣었다. “미안한 건 나중에 이야기해도 돼. 지금은 네 손 상처부터 씻고, 강우 아저씨도 진료받아야 해.”
“그 애가 나쁜 애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아직 우리는 그걸 모른단다.”
창고로 접근할 때 정안은 문을 크게 열지 않았다. 차폐판으로 시야를 가리고 바닥에 미끄럼 방지 매트를 깔았다. 생물은 구석에서 몸을 웅크렸고, 한쪽 뒷다리는 바닥에 닿지 않았다. 정안은 먼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반응은 없었다. 그는 포획망 대신 이동 상자를 문 옆에 두고, 안에 담요와 물을 넣었다.
주민들이 뒤에서 웅성거리자 생물이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뿔이 문 쪽으로 향했다. 정안은 멈췄다. 강우도 앞으로 나서려다 손을 내렸다. 예린이 방송기를 꺼 소리를 낮췄다. 그 순간 생물의 호흡이 조금씩 느려졌다.
“밖에서 누가 문을 열었어요!” 누군가 소리쳤다.
체육관 서쪽의 비상문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틈으로 낯선 흙냄새가 들어왔다. 그 문 앞 바닥에는 사람 발자국이 아니라 큰 발굽 자국이 하나 더 찍혀 있었다. 정안은 창고 안의 작은 생물만 대피소에 들어온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구조대에 서쪽 문 봉쇄를 요청하고, 샤워실 격리 구역을 임시 진료실로 바꾸었다. 주민들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했다. 누구도 그 생물이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정안 역시 위험이 끝났다고 장담하지 않았다.
이동 상자 안으로 들어간 작은 뿔짐승은 마침내 물을 핥았다. 그때 옆구리 털 사이에서 선명한 붉은 줄이 보였다. 발톱 자국이 아니라, 끊어진 안전띠에 쓸린 상처였다. 대피소 밖에서 누군가 이 생물을 데리고 왔거나, 붙잡으려 했다는 흔적이었다.
샤워실로 옮기는 데에는 열 분이 걸렸다. 구조대원 둘이 차폐판을 들고 앞을 막고, 정안은 이동 상자 손잡이를 양쪽에서 잡았다. 짐승은 상자 안에서 몸을 웅크렸지만 뿔로 벽을 들이받지는 않았다. 강우가 복도를 비우고, 예린은 주민들이 씻을 수 있도록 체육관 뒤쪽 임시 세면대를 안내했다. 한 주민이 “우리 씻을 곳까지 몬스터한테 내줘야 하느냐”고 화를 냈다.
예린은 “삼십 분 뒤에 다시 개방하겠습니다. 그 전까지는 제가 직접 임시 세면대 위치를 안내할게요”라고 답했다. 그녀는 불평을 듣고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대신 시간을 종이에 써 샤워실 문에 붙였다.
격리 구역에서 정안은 문을 닫고 상자 덮개를 열었다. 생물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손을 넣지 않고, 집게 끝에 붙인 작은 거울로 다리와 옆구리를 살폈다. 왼쪽 뒷다리에 오래된 찰과상이 있었고 옆구리에는 새로 생긴 선형 상처가 있었다. 체온계는 정상 범위보다 조금 높았다. 물그릇을 가까이 놓자 짐승은 한 번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렸다.
“진정제는 쓰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반응을 보는 게 먼저예요.”
강우가 문턱에서 “저건 내 팔을 봐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까이 오던 사람을 밀쳤어요”라고 말했다. 정안은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공격이라는 단정도 보류했다. 그는 오늘 진료기록의 임시 이름 칸에 ‘뿔짐승 A, 미확인 종’이라고 적었다. 보미가 붙인 별명 대신 관찰 가능한 표식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