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유기견 식당

1화: 밥그릇에 남은 비
비가 새는 보호소 주방 바닥에 사료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한새롬은 봉투를 들어 올렸다가 곧 내려놓았다. 밑면이 젖어 사료 몇 알이 물을 먹은 채 부풀어 있었다. 오기환이 봉투의 겉면을 확인했다. 후원품이 도착한 뒤 임시 보관실 문을 닫지 않았고, 빗물이 선반 아래로 흘러든 모양이었다.
“아직 냄새는 괜찮은데요.” 새롬이 말했다.
“곰팡이 냄새가 없어도 젖은 사료는 급여하면 안 됩니다. 봉투 전체를 격리하고 수의사 확인을 받을게요.”
기환은 젖은 봉투에 사용 금지 표시를 붙였다. 새롬은 아깝다고 생각했지만 더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람 음식점에서 대량 재료를 다룬 경험이 있었다. 식재료가 멀쩡해 보이면 냄새와 포장 상태를 먼저 확인하곤 했다. 하지만 동물 사료는 보호소에서 정한 기준이 따로 있었다. 새롬은 봉투를 폐기 대상으로 표시하고, 공급처와 수량을 급여 기록에 남겼다.
“오늘 아침 사료가 모자라지 않나요?”
“개별 급여표를 보고 남은 재고를 확인해야 해요. 다른 사료를 섞는 건 허락 없이 하면 안 됩니다.”
기환은 벽의 급여표를 펼쳤다. 개마다 사료 종류, 양, 급여 시간, 승인된 간식 여부가 적혀 있었다. 보호소에는 소형견과 대형견뿐 아니라 회복 중이거나 식이 조절이 필요한 개도 있었다. 새롬은 한 끼를 함께 끓이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맡은 일은 정해진 급여표를 따라 사료를 나누고, 급식 도구를 씻고, 식사 여부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자원봉사자 문이슬이 우비를 벗으며 주방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노란 우비는 팔꿈치가 젖어 있었다. 이슬은 사료 봉투를 보자 왜 버리느냐고 물었다. 새롬은 젖은 사료를 다른 봉투와 섞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슬은 봉투를 들여다보려 했지만 기환이 손을 들었다.
“격리 표시가 붙었으면 열지 말아요.”
“제가 그냥 확인만 하려고 했어요.”
“확인도 담당자한테 맡겨요.”
이슬은 얼굴이 굳었다. 새롬은 자기 식당에서도 재료 확인이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동물 한 마리마다 다른 지침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슬은 사료가 부족해지면 강아지들이 굶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 기환은 재고를 세고 수의사에게 대체 사료 승인을 요청할 것이라고 답했다. 봉사자는 사료를 바꾸는 권한이 없었다.
새롬은 식기 세척대에서 그릇을 종류별로 나눴다. 격리 급식용 그릇에는 빨간 손잡이가 달려 있었고, 공용 그릇과 섞이지 않도록 별도 바구니에 넣어야 했다. 이슬이 수세미 하나로 그릇을 닦으려 하자, 새롬은 사용 구역별로 수세미를 나누는 이유를 설명했다. 기환은 급여표와 세척표가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어느 개가 무엇을 먹었는지 뿐 아니라, 어떤 그릇이 어디에서 사용됐는지도 남겨야 했다.
두부는 급식실 가장 안쪽 칸에 있었다. 갈색 털에 흰 발을 가진 중형견이었다. 새롬이 문 앞에 다가가자 두부는 몸을 낮추고 뒤쪽 벽에 붙었다. 이슬은 반가운 듯 이름을 불렀다.
“두부야, 나 왔어. 오늘은 쓰다듬어도 돼?”
그녀가 손을 내밀자 기환이 막았다. 두부는 꼬리를 흔들지 않았고, 귀를 뒤로 접은 채 숨을 빠르게 쉬고 있었다. 기환은 두부가 낯선 사람과 소리에 민감하니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다. 이슬은 지난주에도 봤다며 금방 친해졌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주에 당신이 왔을 때는 자고 있었어요. 가까이 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에요.”
기환은 두부의 행동을 노트에 적었다. 새롬은 급여표에 적힌 사료량을 계량컵으로 덜어 그릇에 담았다. 이슬이 문을 열어 주려 했지만, 기환은 식사를 놓는 담당자가 혼자 들어가도록 했다. 새롬은 그릇을 바닥에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 두부는 냄새를 맡았지만 바로 먹지 않았다.
“혹시 제가 해 주던 닭고기 수프를 조금 섞으면 어떨까요? 냄새가 익숙해지게요.”
“그건 안 됩니다. 승인된 식단이 아니에요.” 기환이 말했다.
새롬은 더 묻지 않았다. 식당에서는 손님 입맛에 맞게 재료를 바꿀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맛을 좋게 만드는 일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었다. 기환은 수의사에게 두부의 식사량과 최근 변화를 전달할 예정이었다. 새롬은 그릇을 놓은 시각과 남은 양을 기록하는 일만 맡았다.
이슬은 철창 앞에 앉아 두부를 오래 바라보았다. 두부는 그녀를 보지 않았다. 이슬은 자기가 개를 많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집에도 강아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부모님이 아직 허락하지 않았다. 보호소 개를 자주 만나면 부모님이 입양을 생각해 볼 거라고 기대했다.
“두부랑 친해지면 데려갈 수 있을 줄 알았어.”
“입양은 강아지가 너를 좋아하는지만 보는 게 아니야. 가족 전체가 돌봄을 맡을 수 있는지도 봐야 해.” 기환이 말했다.
이슬은 대답하지 않았다. 새롬은 그 말이 차갑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지만 이슬이 원하는 가족과 두부가 필요한 집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달래려고 동물을 데려가는 건, 동물에게도 무거운 선택이었다.
점심시간에 후원 재고를 확인한 기환은 사료 봉투 한 개가 부족하다고 했다. 젖은 봉투를 제외하면 급여표대로 하루치가 되지 않았다. 새롬은 주방 창고의 일반 사료를 옮겨 쓰자고 제안하려다가, 그 제품이 어떤 개에게 승인되어 있는지 몰라 입을 다물었다. 기환은 수의사에게 전화해 대체 사료의 종류와 급여량을 확인했다. 답을 기다리는 동안 개별 급여가 늦어질 수 있었다.
이슬은 보호소 소셜 계정에 후원 요청을 올리면 바로 사료를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진에 동물 이름과 현재 위치가 나오면 안 됐고, 필요한 품목과 규격도 확인해야 했다. 기환은 담당자에게 게시 문안을 맡기기로 했다. 새롬은 창고 재고를 종류별로 세고, 유효기간이 짧은 봉투를 앞쪽에 놓았다. 밥그릇을 채우는 일은 조리보다 먼저 재고를 맞추는 일이었다.
빌려 오기로 한 봉투가 도착했을 때 새롬은 먼저 겉면의 제품명과 유통기한을 확인했다. 이슬이 비에 젖지 않게 우산을 들고 문 앞에서 기다렸지만, 봉투를 바로 주방으로 들이지는 않았다. 기환은 납품 명세와 수량을 대조하고 밀봉이 훼손되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가져온 직원은 급하게 차에 실어 온 터라 한 봉투 모서리가 눌렸다고 설명했다. 사료는 새 봉투였지만, 눌린 자리에 구멍이 있는지 살폈다.
새롬은 이 과정이 음식점 재료 검수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여기서는 한 봉투가 어느 개에게 갈지 정해져 있었다. 승인된 대체 사료는 세 마리에게만 사용할 수 있었고, 두부 몫은 별도로 표시했다. 새롬은 봉투를 열기 전에 담당자 서명을 받고, 보관 위치와 개봉 날짜를 라벨에 적었다. 급식표가 바뀌지 않으면 누구도 임의로 그 사료를 다른 개에게 주지 않기로 했다.
오후 두 시가 지나서야 수의사에게서 승인 연락이 왔다. 대체 사료는 일부 개에게만 사용할 수 있었고, 두부는 기존 사료를 유지해야 했다. 젖은 사료는 폐기하고, 부족분은 다른 센터에서 소량 빌려 오기로 했다. 기환은 이동할 때 봉투의 밀봉 상태와 급여 가능 여부를 다시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새롬은 필요한 양만 받아올 수 있도록 재고표에 수량을 적었다.
비가 잠깐 잦아들자 이슬은 두부의 급식 기록을 보러 왔다. 두부가 정량의 3분의 1을 먹고 남겼다는 표시가 있었다. 이슬은 자신이 좋아하는 간식이 있다며 가져온 작은 비스킷을 꺼냈다. 기환은 성분표를 확인하기 전에는 주면 안 된다고 했다. 이슬은 자기 집 개가 먹는 제품이라 괜찮다고 주장했다. 기환은 개마다 알레르기와 식이 지침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럼 이 간식은 어떻게 하죠?”
“후원품 담당자에게 성분과 유통기한을 전달하고, 수의사 확인을 받아요. 확인 전에는 보관만 합니다.”
이슬은 비스킷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새롬은 자기가 음식을 좋아한다고 동물도 같은 걸 좋아할 거라 생각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슬은 두부가 밥을 먹지 않으면 자신이 도와주고 싶었다고 했다. 새롬은 두부가 먹지 않는 이유를 아직 모른다고 답했다. 사람의 마음으로 그 이유를 대신 정하지 말자고 했다.
두부는 저녁 급식 때 그릇에 다가왔다. 새롬이 놓아 둔 사료를 냄새 맡고 몇 알 먹었다. 이슬은 철창 가까이 가려다 한 발 물러섰다. 기환은 그 행동을 기록하고, 다음 급식까지 두부의 식사량과 물 섭취를 확인할 예정이라고 했다. 새롬은 두부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는 말보다, 정량 중 몇 그램을 먹었는지 적었다.
봉사 시간이 끝났을 때 비는 다시 굵어졌다. 바닥은 여전히 축축했지만 급식실에는 젖은 봉투가 따로 격리되어 있었다. 새롬은 사료 재고표와 세척 기록을 정리하고, 다음 날 필요한 품목을 기환에게 확인했다. 그녀는 오래전에 자기 반려견 보리가 밥을 거르던 날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맛있는 것을 섞어 주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수의사의 지침을 더 일찍 물었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퇴근하려는 순간 이슬이 돌아와 물었다.
“내일은 두부한테 가도 돼요?”
기환은 두부 상태를 먼저 확인하고, 가능하면 정해 둔 자리에서 멀리 앉아 관찰만 하라고 했다. 만지거나 부르지 말고, 물을 마시는지와 식사 후 행동을 기록해도 된다고 했다. 이슬은 노트를 펼쳐 적었다. 새롬은 주방 온도계를 앞치마에서 빼서 세척하고 제자리에 걸었다. 보호소가 오늘 버린 사료는 아까웠지만, 그 선택이 두부를 포함한 개들의 건강을 지키는 쪽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
두부가 먹은 건 정량의 일부였다. 그릇은 비워지지 않았고, 오늘로 모든 게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급여량과 남은 양, 식사 시각, 주변의 소음이 기록에 남았다. 새롬은 그 기록을 다음 담당자에게 넘겼다. 비에 젖은 후원 창고를 다시 확인하려면 아침에 보호소 문을 열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