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교무실 끝자리 상담일지2화

교무실 끝자리 상담일지

교무실 끝자리 상담일지

AD
스폰서 광고

2화: 웃음 표시 하나

서예진은 상담실 문 앞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넣기를 세 번 반복했다. 이나경은 그때마다 문을 열지 않았다. 유림이 먼저 들어오라고 한 건 아니었다. 예진은 결국 가방끈을 쥔 채 말했다.

“저도 얘기하고 싶어요. 그런데 유림이가 저랑 말하기 싫다고 하면 그냥 갈게요.”

나경은 유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예진이가 상담실 앞에 왔어. 만날지, 따로 말할지, 오늘은 안 볼지 네가 정해.’ 답장은 금방 오지 않았다. 예진은 서서 기다리다가 창문 밖 운동장을 봤다.

“그 사진이 올라왔을 때 네가 웃음 표시를 눌렀니?” 나경이 물었다.

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에 제가 있었어요. 사진을 만든 건 아니고,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어요. 다들 웃으니까 저도 눌렀어요.”

“왜 지금 말하고 싶어?”

“유림이가 저한테 직접 물어봤어요. 제가 왜 웃었는지.”

그때 유림의 답이 왔다. ‘따로 말해. 나랑은 오늘 안 만날래.’ 예진은 메시지를 읽고 어깨를 내렸다. “제가 사과하면 괜찮아질까요?”

“그건 유림이가 정할 일이야. 사과를 받아 달라고 요구하면 안 돼.”

예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예요?”

“네가 누른 반응과, 그 뒤에 한 행동을 사실대로 말하는 것. 다시 퍼지지 않게 할 수 있는 행동이 있다면 그것도.”

예진은 단체방에서 사진이 다시 올라왔을 때 반응을 누르지 않고 메시지를 읽기만 했다고 했다. 친구에게 개인 메시지로 “그만하자”고 했지만, 게시물을 삭제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유림에게 연락하지도 않았다. “제가 가만히 있으면 더 이상 커지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때 유림이는 어떻게 느꼈을까?”

“제가 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겠죠.”

나경은 그 대답을 기록하지 않았다. 상담은 예진에게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게 하는 자리였지, 유림의 마음을 대신 말하게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예진은 상담실에서 나가기 전에 유림에게 편지를 써도 되는지 물었다. 나경은 유림이 원하지 않으면 건네지 말라고 했다. 예진은 편지를 가방에 넣고 돌아갔다.

그날 오후 유림의 아버지 장동석이 학교에 공식 신고 접수를 요구했다. 담임 황정민은 교무실에서 “조금만 더 확인해 보자”고 말했다. 동석은 손바닥으로 책상을 한 번 쳤다. “아이한테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하고, 학교는 확인이 더 필요하다고 합니다. 누가 기다리는 동안 계속 사진을 받습니까?”

정민은 학생들 사이의 일을 학교폭력으로 볼 수 있는지 담당 부장과 상의하겠다고 했다. 동석은 “그럼 제가 먼저 접수할게요”라고 답했다. 유림은 아버지 옆에서 손을 움켜쥐었다. “아빠, 내 말도 들어.”

동석은 말을 멈췄다. “전학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

“그건 아빠 생각이야.”

“너를 보호하려는 거야.”

“보호하려면 내가 학교에 남고 싶다는 말도 들어야 해.”

동석은 얼굴을 숙였다. 그는 딸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대신 “어떤 방식으로 접수하고 싶어?”라고 물었다. 유림은 공식 신고서를 내되, 가해 학생들과 공개 대면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체육 시간과 점심 이동 때 가까이 마주치지 않도록 임시 조정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나경은 그 선택을 학교폭력 책임자에게 전달했다. 조사와 보호 조치가 시작되기 전까지 정민이 좌석과 모둠을 임시로 바꾸기로 했다. 유림은 신고서에 이름을 적었다. 게시물을 만든 학생, 다시 올린 학생, 웃음 반응을 누른 학생을 구분해 적었다. 예진의 이름 옆에는 ‘웃음 표시를 누름, 개인 메시지로 중단을 요청했으나 공개적으로는 말하지 않음’이라고 썼다.

“이게 맞아요?” 유림이 물었다.

“네가 직접 본 내용과 들은 내용을 구분했어. 네가 모르는 건 쓰지 않았고.”

“예진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네가 상처받지 않은 건 아니야.”

유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제가 결정할게요. 사과 받아 줄지는 아직 몰라요.”

정민은 신고 접수서를 받은 뒤 유림과 아버지 앞에서 “학교가 처음 사진이 돌았을 때 바로 멈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동석은 그 말이 사과인지 면책인지 따졌다. 정민은 “그때 장난이라고 생각해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 판단이 늦었습니다”라고 다시 말했다. 그는 유림에게 공개 사과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럼 사진을 처음 봤을 때 왜 저한테 말 안 했어요?” 유림이 물었다.

정민은 답을 찾지 못했다. “네가 혼자 조용히 지나가고 싶어 할 거라 생각했어. 사실은 내가 귀찮은 일을 미룬 거야.”

유림은 교무실 바닥을 봤다. “제가 괜찮다고 했어도 선생님은 다시 물어봤어야 했어요.”

“맞아.”

정민은 그 말을 듣고 상담실에서 나갔다. 교사라는 이유로 학생이 한 말을 이해했다고 착각한 대가가 있었다. 그는 학교 책임자에게 신고 접수와 초기 대응 시각을 보고하고, 관리자에게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을 감수해야 했다.

저녁에 유림은 예진이 쓴 편지를 읽을지 고민했다. 아버지는 편지를 대신 열지 않았다. “읽고 싶지 않으면 버려도 돼.”

유림은 봉투를 뜯었다. 예진의 글은 짧았다. ‘처음 사진을 봤을 때 웃음 표시를 눌렀어. 장난이라고 생각했고, 네가 상처받을지 생각하지 않았어. 미안해. 지금 용서해 달라는 뜻은 아니야.’

유림은 한 번 읽고 편지를 다시 접었다. “사과는 받았다고 해 줘. 그런데 친하게 지내는 건 나중에 생각할래.”

다음 날 학교에서 예진은 교실 뒤에 서 있었다. 유림이 지나가자 그녀는 “편지 읽었어?”라고 물었다.

“응.”

“미안해.”

“사과는 받았어. 아직 괜찮아진 건 아니야.”

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 대화를 들은 남학생 하나가 “둘이 화해했네”라고 말했다. 유림은 즉시 돌아섰다. “화해한 거 아니야. 지금은 그냥 내 말 들은 거야.”

담임은 그 말을 들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장난이었다고 정리하지 않았다. 대신 교실에서 사진이나 별명을 다시 언급하지 말라고 말하고, 학교 책임자가 조사 중이라고 알렸다. 유림은 그 말을 듣고도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수업 종이 울렸고, 아이들은 자리로 돌아갔다. 다음 시간은 체육이었다.

유림은 체육관 입구에서 멈췄다. 예진은 반대편 줄에 섰다. 사진을 처음 올린 학생은 공을 들고 다른 친구와 웃고 있었다. 유림의 손바닥에 땀이 났다. 그녀는 수업에 들어갈지 보건실로 갈지 선택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학교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나경은 상담실 문을 열어 둔 채 기다렸다.

유림은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담임은 조를 다시 나눴다. 예진과는 다른 팀이었다. 유림은 공을 받자마자 패스했고, 옆 친구는 공을 놓쳤다. 뒤쪽에서 누군가 “또 못 받네”라고 웃었다. 유림은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멈춰 서서 말했다.

“내 얘기면 그만해.”

웃음이 끊겼다. 정민은 공을 줍다가 고개를 들었다. 유림은 더 말하지 않았다. 수업은 계속됐지만, 그날 교실의 침묵은 전날과 달랐다.

체육관에서 나오자 사진을 처음 올린 학생 강민재가 계단을 막았다. 그는 휴대전화 화면을 흔들었다. “네가 신고한 거야? 그 사진은 네가 졸업식 때 찍은 거잖아.”

“내가 찍은 사진이라고 네가 그렇게 써도 되는 건 아니야.”

“장난으로 한 거야. 너도 예전에 내 사진 편집했잖아.”

유림은 기억을 더듬었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끼리 스티커를 붙인 사진을 만든 적은 있었지만, 민재를 단체방에 올리지는 않았다. “그건 네가 나한테 괜찮다고 했어. 이번엔 안 물어봤잖아.”

민재는 “뭐가 그렇게 대단해”라며 화면을 잠갔다. 유림은 그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앗지 않았다. “지금 삭제해. 그리고 다시 올리지 마.”

민재는 웃음을 거두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선생님한테는 그렇게 말하지 마. 내가 고등학교 추천서 받아야 해.”

“그건 내가 정할 일이 아니야.” 유림은 담임을 불렀다. 정민은 민재에게 휴대전화를 보여 달라고 하지 않고, 학교 책임자에게 인계하겠다고 말했다. 민재는 “그럼 저도 할 말 있어요”라며 자리를 떴다.
복도에서 교실로 돌아오자 두 친구가 유림을 붙잡았다. “민재가 너한테 사과했어?” 한 아이가 물었다. 다른 아이는 “그냥 장난이었는데 신고까지 할 필요 있나”라고 했다. 유림은 책가방을 내려놓고 그들을 바라봤다.

“제가 신고할지는 제가 정해요. 사진을 다시 올린 것도 제가 겪은 일이에요.”

“근데 민재가 처음 만든 건 아니라며.”

“그건 조사에서 확인할 거야. 네가 모르면 말하지 마.”

두 친구는 서로를 봤다. 그중 한 명은 사과하려다 말고, “나도 그 방에 있었어. 아무 말 안 했어”라고 했다. 유림은 그 말을 듣고 놀랐지만 바로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얘기는 학교에 가서 직접 말해. 나한테 대신 정리해 달라고 하지 마.”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림은 휴대전화를 꺼내 학교 책임자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교실 안에서 자기 얘기를 설명할수록 더 많은 사람이 바라볼 것 같았지만, 이번에는 누군가의 대신 말이 아니라 자기 문장으로 접수하고 싶었다.
유림은 그가 사라진 뒤에야 손가락이 떨리는 걸 알았다.
수업 뒤 유림은 학교 책임자에게 신고 내용을 확인하고, 보호 조치를 요청했다. 공개 대면은 원하지 않으며, 사진을 올린 학생이 같은 체육 조에 들어오지 않게 해 달라고 했다. 학교는 임시로 좌석과 조 편성을 바꾸고, 조사 면담 일정을 잡았다. 유림은 그 학생과 만나 사과를 듣지 않기로 했다.

나경은 상담실 기록의 마지막 줄에 유림의 선택을 적었다. ‘공식 접수 동의, 공개 대면 거부, 수업 참여 희망.’ 상담 교사는 그 선택을 대신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유림은 아직 이름을 숨긴 한 명이 있었다. 사진을 처음 올린 학생의 동생이 예진의 남동생이라는 사실. 그 연결이 알려지면 예진의 가족까지 교실의 소문에 끌려들어올 수 있었다.

그날 하교 직전, 유림은 예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네 동생이랑 관련된 이름을 학교에 말해야 할 수도 있어. 내일 얘기할게.’ 예진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학교 복도 끝에서 휴대전화 화면이 켜졌다가 꺼졌다. 유림은 그 불빛을 보며 예진이 답을 쓰는지, 지우는지 알 수 없었다. 먼저 보낸 메시지를 취소하지 않기로 했다. 집에 가서도 지우지 않았다. 그 메시지를, 끝까지 오늘.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