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길 표국의 신입 호위

3화: 사막에 남겨진 표국 깃발
아린이 앞장선 길에는 소금이 없었다. 모래는 발목까지 부드럽게 빠졌고, 바위 사이로 밤바람이 낮게 불었다. 유경찬은 숨이 차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뒤에서 따라오는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설화가 깃발을 눕혔다. 푸른 천이 바람을 받아 펄럭이면 추격대가 길을 찾기 쉬웠다.
“깃발을 버려요.” 아린이 말했다.
“표국의 표식이야.” 설화가 대답했다.
“저 사람들이 찾는 건 깃발이에요. 당신들이 아니라.”
경찬은 뒤를 돌아봤다. 추격대의 횃불은 모래언덕 아래서 갈라지고 있었다. 한 무리는 관문길을 따라오고, 다른 무리는 이쪽으로 향했다. 경찬은 전날 자루에서 느꼈던 흔들림을 떠올렸다. 짐을 실은 말은 모래에 깊은 발자국을 남긴다. 이쪽으로 오는 무리는 짐이 없었다. 발굽 자국이 가벼웠다.
“깃발을 미끼로 쓰려는 거죠.”
“그럼 누가 들고 갈 건데?” 설화가 물었다.
경찬은 푸른 천을 받아 들었다. “제가요. 두 사람은 동쪽 낮은 골짜기로 가세요. 제가 말을 끌고 반대편 능선으로 돌아 추격을 끌겠습니다.”
“너 혼자?”
“말 한 필은 있어야 합니다.”
“말은 한 필뿐이야. 네가 가져가면 우물로 돌아갈 길이 없어.”
아린은 바닥의 모래를 걷어내며 말했다. “저 뒤에 염전 수레길이 있어요. 밤에 물이 차서 발자국이 지워져요. 말은 못 지나가고 사람은 갈 수 있어요.”
“그 길을 왜 아까 말하지 않았지?”
“아까는 당신이 아직 제 편인지 몰랐으니까요.”
설화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럼 네가 경찬을 데려가. 나는 깃발을 들고 능선으로 간다.”
“안 돼요.” 경찬이 말했다. “선임이 추격을 끌면 표국이 다시 계약을 어겼다고 할 겁니다.”
“이미 깃발을 들고 도망치는 순간 계약은 깨졌어.”
“그래도 기록은 남습니다.”
“기록 남기자고 사람을 잡히게 하진 않아.”
경찬은 대답하지 않았다. 설화는 자기가 말한 것을 듣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녀는 경찬의 손에서 깃발을 가져갔다. 오래된 천을 펴자 아래쪽 끝이 찢겨 있었다. 예전 호송의 흔적처럼 검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이 깃발은 내가 들게. 너희는 아이를 데리고 우물로 가. 대신 저 깃발이 떨어지면 뒤돌아보지 마.”
“왜 그 말을 하는 겁니까?” 경찬이 물었다.
설화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세 해 전 이 길에서 표물 하나를 두고 왔어. 동행인으로 올리지 못한 아이였지. 내가 깃발을 들고 추격을 끌었는데, 돌아왔을 때 그 애는 없었어.”
“살아남았는지 모릅니까?”
“모른다는 게 내가 견딜 수 있는 대답이었어.”
아린이 설화를 올려다봤다. “그 아이도 우물 마을 사람이었어요?”
설화의 입술이 굳었다. “그건 아직 말할 수 없어.”
경찬은 이번에는 설화의 결정을 대신하지 않았다. “그럼 깃발을 내리기 전에 저한테 알려 주세요. 혼자 남지 않도록.”
설화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끌어 능선 쪽으로 움직였다. 푸른 천이 바람을 받아 크게 펼쳐졌다. 멀리서 추격대의 함성이 들렸다.
“표국 깃발이다! 능선으로 간다!”
말발굽이 방향을 바꿨다. 경찬과 아린은 물길을 따라 낮은 골짜기로 내려갔다. 바닥은 젖어 있었고, 얇은 물이 발목을 스쳤다. 아린은 등 뒤로 저울추를 묶고 통행패 조각을 손에 쥐었다.
“우물이 정말 열려 있으면 뭐가 달라지지?” 경찬이 물었다.
“마을 사람들이 물을 길을 수 있어요.”
“상단이 다시 막으면?”
“그럼 다시 열 거예요.”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일이야?”
아린은 물길에 비친 달을 바라봤다. “제가 못 하면, 누가 해요?”
그 말은 경찬이 들고 온 깃발보다 무거웠다. 그는 아이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자신을 구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아린은 마을로 돌아가 자기 손으로 우물을 열려 했다. 경찬의 역할은 대신 싸우는 것보다 그 결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길을 지키는 것이었다.
골짜기 끝에 오래된 석벽이 나타났다. 돌문에는 녹슨 고리가 달려 있었고, 문틈에는 마른 소금이 하얗게 끼었다. 아린은 통행패 조각을 틈에 대 보았다. 모양은 맞았지만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가 한쪽을 안에서 잠갔어요.” 아린은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손바닥에 녹이 묻었다. “제가 왔다는 걸 알면 열어 줄 줄 알았는데.”
경찬은 고리를 밀고 당겨 보았다. 바깥쪽은 움직이지 않았고, 돌문 아래에는 손가락 한 마디만 한 틈이 있었다. 그 틈에서 찬 물이 얇게 흘러나왔다. 문이 완전히 닫혔다면 물은 새지 않았을 것이다.
“안쪽에서 물을 조금 빼고 있어.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야.”
아린은 문에 귀를 댔다. “아버지, 저예요.”
안쪽에서 두 번, 느리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아린은 입술을 깨물고 자기 가슴을 손바닥으로 눌렀다. 경찬은 함부로 문을 치지 않았다. 바깥의 추격대가 소리를 듣고 길을 찾으면 안쪽 사람까지 위험해졌다.
“아버지는 제가 오지 말라고 할 거예요.”
“그러면 네가 왜 왔는지 말하면 돼.”
“우물 사람들을 살리려고요.”
“그 말은 네가 직접 해.”
아린은 문에 손을 대고 다시 말했다. “아버지, 저는 돌아갈 거예요. 혼자라도요. 문을 열어 주세요.”
이번에는 응답이 없었다. 잠시 뒤, 문 안에서 금속이 바닥을 끄는 소리가 났다. 걸쇠가 풀리며 돌문이 손바닥만큼 열렸다. 아린은 밀어붙이지 않고 기다렸다. 틈 사이로 아버지의 한쪽 눈이 보였다.
“혼자 오지 말랬잖아.”
“그래서 사람을 데려왔어요.”
“다른 조각이 하나 더 있어요.”
“어디에?”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어요.”
아린의 시선이 어두운 입구로 향했다. 안쪽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경찬은 칼을 빼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물방울은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누군가 안에서 돌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버지일 수 있어?”
“그랬으면 좋겠어요.”
“확실한 게 아니면 혼자 들어가지 마.”
“그러면 당신이 먼저 들어가요?”
경찬은 웃지 않았다. “내가 먼저 가면 네가 멈추지 않을 테니까 같이 들어가자.”
둘은 돌문을 밀었다. 안쪽의 공기는 축축했고, 바닥에는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 있었다. 벽에는 낡은 저울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한가운데에 사람 하나가 앉아 있었다. 흰 수염이 턱 밑에 엉겨 붙고, 오른쪽 팔은 천으로 감겨 있었다.
“아버지!”
아린이 물을 헤치고 뛰었다. 남자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경찬이 다가가 팔을 잡자 그는 낡은 칼을 뽑아 경찬의 목 앞에 세웠다.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경찬이 말했다. “상단 추격대가 밖에 있어요.”
남자의 칼끝이 조금 떨렸다. 아린이 그 앞에 섰다. “아버지, 제가 통행패를 가져왔어요. 우물 사람들한테 가야 해요.”
“넌 오지 말았어야 해.”
“그러면 저 사람들은 계속 물을 막아요.”
“너까지 잡히면 마을에 남은 애들은 누가 지켜?”
아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칼을 내리지 않았다. 경찬은 그 칼이 자신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보다, 아린이 기다려 온 사람이 아이를 밀어내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아저씨, 저는 표사입니다. 이 아이를 강제로 끌고 온 게 아닙니다. 돌아갈지 말지는 아린이 결정합니다.”
“표국은 계약을 지키는 곳이지.”
“그래서 계약에 사람 이름을 추가했습니다.”
남자는 경찬의 허리에서 보이는 문서를 보았다. “누가 책임지지?”
“제가 선금을 담보로 걸었습니다. 표국은 아직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네가 다 잃겠군.”
“그건 제가 결정했습니다.”
아린의 아버지는 칼을 내렸다. “네가 책임을 진다고 아이가 안전해지는 건 아니다.”
“압니다.”
“그런데도 데려왔어?”
“아이가 원해서요. 아버지가 오지 못하면 혼자라도 우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남자는 딸의 얼굴을 살폈다. 그제야 아린은 아버지의 팔에 감긴 천을 보았다. 천 아래로 피가 번져 있었다. “언제 다쳤어요?”
“상단 사람들에게서 통행패를 빼앗으려다.”
“저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잖아요.”
“네가 돌아올까 봐.”
아린은 물속에 주저앉았다. “저는 돌아왔어요.”
아버지는 딸의 머리에 손을 얹으려다 멈췄다. 그 손은 피와 소금으로 굳어 있었다. 경찬은 그 둘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밖에서 뿔피리 소리가 울렸다. 설화가 추격을 끌고 간 방향과 달랐다. 골짜기 입구로 말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아린의 아버지는 벽을 짚고 일어났다.
“나가는 문은 위쪽 수로야. 하지만 문을 열면 안에 저장한 물이 빠져나가.”
“그러면 물을 못 쓰잖아요.”
“그 물을 막아 둔 돌문이야. 통행패 하나로 열면 전부 쏟아진다.”
경찬은 벽의 표식을 살폈다. 저울의 한쪽에 작은 홈이 두 개 있었고, 다른 쪽에는 낡은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두 조각이 있어야 문을 나눠 열 수 있습니까?”
아린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만으로는 물을 빼는 문이 열려. 다른 조각은 저울 안에 있어.”
그때 바깥에서 설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찬! 깃발을 놓쳤다. 저 사람들은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알아!”
경찬은 아린의 손에 통행패 조각을 쥐여 주었다. “문을 열 수 있어?”
“두 조각을 맞추면요.”
“두 번째 조각은 어디 있지?”
아버지가 답하려는 순간, 뒤쪽 수로에서 칼날이 물을 갈랐다. 진묵의 부하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그의 손에는 청운표국 깃발이 들려 있었다. 푸른 천의 끝에는 설화의 피가 묻어 있었다.
“깃발은 돌려주지.” 그가 말했다. “이제 아이를 넘겨라.”
경찬은 칼집을 열었다. 아린은 통행패를 움켜쥐었다. 물은 발목에서 무릎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돌문을 열면 저장한 물이 쏟아질 것이고, 열지 않으면 모두 수로에 갇힐 터였다.
“설화는 어디 있습니까?” 경찬이 물었다.
진묵은 웃으며 깃발을 바닥에 던졌다. “네가 구하러 갈 곳은 하나뿐이야. 아이냐, 네 표국이냐?”
경찬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수로 안쪽을 향해 외쳤다.
“설화! 깃발을 잡고 물길로 내려와요!”
진묵의 웃음이 멎었다. 경찬은 아이와 설화 둘 다 포기하지 않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물속에서 아린의 아버지가 무릎을 꿇었다. 그 손에는 돌문 안쪽에서 떼어 낸 두 번째 통행패 조각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