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길 표국의 신입 호위

2화: 의뢰서에 없는 동행인
“염 회계! 도망친 아이를 넘기고 자루를 열어라!”
관문 앞에 선 기수가 다시 외쳤다. 경찬은 푸른 표국 깃발을 내리지 않았다. 말 위의 사내는 상단 호위대의 붉은 띠를 팔뚝에 감고 있었다. 허리에는 긴 칼 대신 납작한 철봉이 매달렸다. 사람을 베기보다 수레의 차축을 부러뜨리는 자들이었다.
염소하가 한 발 나섰다. “저 아이는 도망친 게 아닙니다. 제 호송에 합류했어요.”
“합류 신청은 어디 있지?”
“관문에서 하려고 했습니다.”
“관문은 상단의 사람만 통과시킨다. 저 애는 마른 우물 마을의 도둑이야.”
아린의 손가락이 경찬의 소매를 움켜쥐었다. “제가 훔친 게 아니라고 했어요.”
“네가 말한 건 우물의 물을 잠갔다는 거잖아.” 경찬이 속삭였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야 너를 지킬 수 있어.”
“잠근 건 제가 아니에요. 통행패를 끊어 온 거예요. 그 사람들이 우물을 막으려고 해서.”
“누가?”
아린은 기수들 쪽을 눈으로 가리켰다. 그중 가장 앞선 사내가 말에서 내렸다. 왼쪽 귀가 잘려 있었고, 장갑에는 굳은 소금이 박혀 있었다.
“아이를 넘기면 표국의 위반은 묻지 않겠다.” 그가 말했다. “계약 외 인원을 숨겼으니 네 깃발과 일당은 압수 대상이다. 애 하나 때문에 열한 명 밥줄을 끊을 셈이냐, 신입?”
“이름이 뭡니까?”
“상단 호위대장 진묵.”
“그럼 진 대장님, 계약 위반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대신 아이를 데려가면 관문 기록에 인수자 이름을 남기세요.”
진묵은 웃었다. “애를 데려가는 데 왜 이름이 필요하지?”
“누가 데려가는지 남기지 않으면 그건 인수가 아니라 납치니까요.”
관문 병사가 창을 돌려 두 사람 사이에 세웠다. “이 통행패는 관문 소유다. 아이를 넘기지 않으면 호송대도 통과시키지 않겠다.”
소하가 패를 가리켰다. “그 통행패는 폐쇄된 우물의 옛 표식이에요. 관문에 등록된 적이 없습니다.”
병사의 표정이 굳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지?”
“제가 염상단의 회계 책임자니까요.”
“옛 표식을 지닌 사람은 반역죄로 심문받는다.”
그 순간 아린이 경찬의 뒤에서 나왔다. “그럼 저를 심문하세요. 대신 저 자루는 열지 마세요.”
진묵이 손을 들었다. 호위대원 둘이 수레로 갔다. 경찬은 칼집을 막으려 했지만 설화가 앞을 가로막았다.
“먼저 말로 풀어.” 그녀가 낮게 말했다. “한 명을 붙잡으면 나머지가 모두 움직인다.”
“자루를 열면 안에 더 있다는 겁니까?”
아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소하가 그녀를 바라봤다. “누가 있어?”
“없어요. 지금은.”
“그런데 왜 열지 말라고 했어?”
“저 안에 숨은 게 있었던 건 맞으니까요. 제가 나오면서 깨진 통행패를 하나 떨어뜨렸어요. 저 사람들이 찾는 건 저만이 아니에요.”
경찬은 수레 적재함을 보았다. 자루마다 겉무게는 같았지만, 한쪽 줄만 간격이 조금 넓었다. 안쪽에 소금이 덜 차 있는 자루였다. 그는 아린을 돌아봤다.
“패 조각이 어디 있지?”
아린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말하면 그 사람들이 찾아요.”
“그럼 네가 직접 찾을래? 우리한테 숨길래?”
“찾아서 태우면요?”
“관문 기록에 남기겠습니다.”
“상단이 빼앗아 갈 거잖아요.”
소하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숨긴 걸 인정하면 상단이 곤란해져. 그래도 네가 패 조각을 내게 주면 내가 관문 장부에 적을게.”
“그 말을 믿으라고요?”
“믿지 않아도 돼. 내가 거짓말하면 내 저울추를 가져가. 값이 얼마나 나가는지 알잖아.”
아린은 여전히 망설였다. 그때 짐꾼 하나가 수레 밑을 걷어차며 자루를 끌어내렸다. 자루가 땅에 떨어져 입구가 터졌다. 소금 사이에서 작은 금속 조각이 굴러나왔다. 진묵의 호위가 그것을 주우려 달려들었다.
경찬은 먼저 발로 조각을 밟았다. “계약에 없는 짐을 수색하려면 표국 책임자 앞에서 해야 합니다.”
“그게 네 계약이냐?”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제 선택입니다.”
경찬은 칼을 뽑지 않았다. 대신 수레의 고정 밧줄을 끊었다. 무거운 짐칸이 한쪽으로 기울며 자루들이 굴러떨어졌다. 소금이 관문 바닥을 덮었고, 달려오던 호위대원들이 미끄러져 서로 부딪쳤다. 경찬은 떨어진 조각을 주워 설화에게 던졌다. 설화는 한 손으로 받아 품에 넣었다.
“바람이 불기 전에 움직여!”
설화의 외침에 표국 짐꾼들이 수레를 세웠다. 경찬은 소하와 아린을 돌담 쪽 그늘로 데려갔다. 진묵이 몸을 일으키며 칼을 뽑았다. 그러나 관문 병사가 그의 앞에 창을 세웠다.
“관문 안에서 무기를 들면 호송대와 상단 모두 통행을 취소한다.”
진묵이 이를 갈았다. “저 애가 마을 통행패를 빼돌렸어. 묻어 버리면 또 우물이 열릴 거다.”
그 말은 위협이라기보다 실수에 가까웠다. 소하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우물이 아직 살아 있군요.”
“그만해.” 진묵이 호위대원들을 물렸다. 그는 경찬을 가리켰다. “저 아이를 끌고 가면 네 표국은 배상할 돈도 없이 끝난다. 오늘 해 질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북문 통행패를 회수하겠다.”
호위대가 관문 안쪽으로 물러났다. 병사는 경찬 일행의 통과를 허가하지 않았다. 대신 폐쇄된 우물 쪽 오솔길을 알려 주었다. 북문을 지나려면 통행패의 원래 소유자와 폐쇄 사유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그 길로 가면 상단의 호위가 따라올 겁니다.” 설화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 수레는 여기 남겨야 해.”
짐꾼 중 하나가 화를 냈다. “자루는 어떻게 합니까? 우린 이틀치 품삯도 못 받았습니다.”
경찬은 자기 선금 주머니를 꺼냈다. “지금 나누면 각자 하루 일당은 됩니다. 나머지는 돌아와서 갚겠습니다.”
“또 네 이름 걸겠다고?”
“네.”
설화가 그의 손을 눌렀다. “네 이름으로 덮지 마. 우리가 동의하는지 먼저 물어.”
경찬은 짐꾼들을 보았다.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뒤 가장 나이 많은 짐꾼이 자기 몫의 물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하루치면 집에 보낼 돈은 못 보내겠네. 그래도 애를 다시 자루에 넣고 싶진 않아.”
다른 짐꾼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물통을 들었다. “나는 아직 동의 안 했어. 대신 수레를 여기 버리는 건 싫다. 돌아올 거면 진짜 돌아와.”
“돌아오겠습니다.” 경찬이 말했다.
소하는 수레에 남을 짐꾼들과 통행소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그녀는 자기 저울추를 아린의 손에 건넸다. “이건 담보야. 패 조각이 증거라면 내가 가져가야 했지만, 네가 직접 들고 가.”
아린은 저울추를 받아들었다. “제가 도망가면요?”
“저울추 값을 물어야지.”
“사람을 넘기는 값보다 싸네요.”
“그래서 내가 들고 다녀.” 소하의 얼굴에 짧은 미소가 번졌다가 사라졌다.
설화와 경찬, 아린은 수레를 두고 폐쇄 우물로 향했다. 모래바람이 길 위의 발자국을 지웠다. 아린은 걸음마다 신발 밑창을 확인했다. 경찬이 왜 그러냐고 묻자 그녀는 말했다.
“발뒤꿈치에 흰 소금이 붙으면 길이 틀렸다는 뜻이에요.”
“소금길을 따라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상단이 뿌린 길이에요. 진짜 옛길은 소금이 없어요.”
설화가 앞에서 손을 들어 모두 멈추게 했다. 모래언덕 아래에 관문 표식이 박혀 있었다. 그 앞에 작은 깃발 하나가 반쯤 묻혀 있었다. 청운표국의 푸른 깃발이 아니라, 염상단의 흰 저울 깃발이었다. 깃대에 묶인 천은 오래된 피에 굳어 있었다.
“여기서 쉬었다 가요.” 아린이 말했다. “밤바람이 바뀌면 표식이 반쯤 묻혀요.”
“쫓기는 중에 쉬자고?” 경찬은 뒤편을 살폈다. 말발굽 소리는 아직 멀었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방향이 흔들렸다.
“쉬는 게 아니라 바람을 기다리는 거예요.” 아린은 모래를 한 줌 떠 손가락 사이로 흘렸다. 알갱이가 서쪽으로 날아가다 바위 뒤에서 잠깐 멈췄다. “저기 움푹한 곳은 함정이에요. 낮에 뜨거워진 모래가 밤에 아래로 꺼져요.”
설화는 아린의 손에서 모래를 받아 냄새를 맡았다. “소금기가 있어. 상단이 길을 막으려고 쌓아 둔 모래야.”
“아버지가 저한테 가르쳐 줬어요. 길을 찾는 법이 아니라, 길처럼 보이는 걸 의심하는 법.”
경찬은 아이가 숨겨 온 통행패를 봤다. 그 패가 우물을 열 수 있다면 아린의 말이 거짓이어도 확인은 필요했다. “우물까지 가면 아버지를 만날 수 있어?”
아린은 고개를 저었다. “못 만날 수도 있어요. 그래도 물을 길어야 해요. 마을 사람들한테 가져가야 하니까.”
“그럼 넌 돌아가지 않을 거야?”
“제가 돌아가면 저 사람들은 우물을 다시 잠글 거예요.”
설화가 아린의 어깨에 망토를 덮어 줬다. “그럼 우리가 먼저 도착해야겠네.”
경찬은 처음으로 추격대를 기다리는 대신, 길의 방향을 바꿔 잡았다. 아이가 아는 바람과 설화가 읽는 모래결, 자신이 아는 짐의 무게를 함께 믿어야 했다.
아린은 통행패의 조각을 그 옆에 갖다 대 보았다. 둘의 홈이 맞물렸다. “여기서 아버지가 기다렸어요.”
“아버지는 어디 있어?” 경찬이 물었다.
아린은 깃발의 매듭을 풀었다. 그 안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이 나왔다. 지도라기엔 한 줄뿐이었다. ‘우물은 닫히지 않았다. 밤이 되면 물을 길어라.’
설화가 종이를 빼앗지 않고 아린에게 읽게 했다. “누가 쓴 거야?”
“아버지요. 하지만 아버지는 글을 못 써요.”
그때 뒤쪽 모래언덕에서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진묵의 호위대가 다른 길로 돌아오고 있었다. 설화가 칼집에서 칼을 반쯤 빼냈다.
“아린, 옛 우물로 가는 길을 알아?”
“네.”
“그럼 앞장서.” 경찬이 말했다. “이번에는 계약서에 없는 길도 네가 골라.”
아린은 통행패와 저울추를 양손에 쥐었다. 그녀는 소금 없는 모래언덕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경찬이 뒤따르려는 순간, 설화가 그의 깃발을 낚아챘다.
“깃발은 내가 든다. 네 이름으로 한 선택이지, 네가 혼자 감당할 일은 아니야.”
세 사람은 모래바람 속으로 뛰어들었다. 뒤에서 호위대의 말발굽이 가까워졌다. 앞에는 지도가 가리킨 적 없는 우물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