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지붕 참새 검객

3화: 동생 약값을 댄 의뢰인
나채령은 기와의 울림을 세며 동생을 찾아갔다. 궁궐 외곽 지붕은 오래된 집들보다 단단했지만, 새 참새 표식 때문에 발 디딜 곳이 적었다. 세 번째 기와를 밟지 않고 처마를 타고 건너자, 소운이 알려 준 대로 매달린 끈이 느슨해졌다. 길 끝에 백상필의 옥반지가 달빛을 받아 번쩍였다.
“정우를 어디에 뒀어요?”
상필은 금속 문서함을 들고 있었다. 봉인은 이미 끊겼고, 빈 종이는 바람에 들려 펄럭였다. “네가 먼저 문서를 가져갔으면 그 아이는 약방에 있었겠지.”
“그 아이를 미끼로 쓴 거잖아요.”
“약값을 대신 냈다. 그게 미끼라면 세상에 선의는 없겠군.”
“돈을 왜 냈는지 물었어요. 정우에게 약을 먹이고 싶어서였나요, 제가 문서를 훔치게 하려고였나요?”
상필은 손가락으로 옥반지를 돌렸다. “둘 다였다고 하면 네가 날 믿을까?”
“아니요.”
“그럼 답할 필요도 없겠네.”
채령은 빈 문서를 바라봤다. 달빛이 닿지 않는 지금은 아무 글자도 없었다. “문서가 비어 있었던 건 왜죠?”
“그 종이는 원래 빈 장부였어. 은분 잉크를 입히면 사라진 수탈 기록이 나타난다. 감찰 기록에서 지워진 이름을 보여 주는 장치지.”
“그럼 제 이름은 누가 썼어요?”
“나도 몰라.”
“거짓말.”
“내가 아는 건 네 동생 약값을 낸 사람의 이름뿐이야.”
“그게 당신이잖아요.”
상필은 웃지 않았다. “문서를 만든 건 소운의 아버지야. 네 이름을 넣은 건 감찰관 쪽이지. 나는 그 문서를 회수하라는 부탁을 받았고, 너를 고용했어. 넌 문서를 훔칠 줄 알았으니까.”
“저를 왜 미리 알고 있었죠?”
“네 아버지가 내게 빚을 졌다.”
채령의 손이 칼자루에 갔다. “아버지는 죽었어요.”
“그 전에 네 이름을 적은 채무증서가 있었다. 정우의 약값은 그걸 갚은 셈이지.”
“약값을 냈다고 우리 가족을 산 건 아니에요.”
“알고 있네. 그래서 정우는 네게 약봉지를 맡겨 달라고 했어. 내가 돈을 냈지만, 그 아이는 자기 누나가 결정해야 한다고 하더군.”
채령은 상필의 발소리를 들었다. 그는 지붕 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도망칠 마음이 없는지, 문서함을 쥐고 있어 무게 중심을 잡지 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사람의 속을 발소리로 읽을 수 없었다.
“정우는 어디 있어요?”
“궁궐 빗장문 안쪽에 있다. 소운이 데려갔어.”
“그럼 당신은 왜 여기 있어요?”
“내가 문서를 회수하면 정우를 약방으로 돌려보내기로 했거든.”
“지금은 문서를 가져도 정우를 보내지 않을 거잖아요.”
“맞아.”
상필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 솔직함이 채령을 더 화나게 했다. 그는 손에 든 빈 종이를 접었다. “문서에 적힌 이름이 공개되면 귀족가의 사람들은 모두 잡힐 거야. 그중엔 수탈 기록을 만든 자도, 명령을 거부한 자도 함께 있어. 누구를 보호할지는 네가 정할 수 없지.”
“피해자 이름을 공개하면 더 많은 사람이 다칠 수도 있어요.”
“그러니 돌려줘. 기록을 모른 척하면 정우는 약을 먹고, 너는 지붕으로 돌아가.”
“그 제안을 왜 제가 믿어야 하죠?”
“네가 내 말을 믿을 필요는 없어. 돈을 믿으면 돼.”
채령은 주머니 안쪽에서 약봉지를 꺼냈다. 하루치뿐이었다. 동생이 말한 대로 약방 주인은 상필의 돈으로 한 달치를 받았고, 나머지는 감찰관이 보관하고 있을 터였다. 그녀는 봉지를 상필에게 보여 주었다.
“이 약이 제 값이라면, 지금부터 제가 내는 값은 당신이 정하면 안 돼요.”
“그럼 뭘 내겠다는 거지?”
“문서 안의 이름을 피해자에게 돌려줄 거예요.”
상필이 한 걸음 다가왔다. “그 이름을 읽는 순간 넌 네 가족이 누구에게 빚졌는지 알게 될 거다.”
“이미 알아요. 빚이 있다고 해서 이름까지 빼앗기진 않아요.”
상필은 빈 문서를 채령에게 던졌다. 종이가 지붕 위로 날아가며 달빛을 받았다. 글자들이 은빛으로 떠올랐다. 오래된 집의 세금 기록, 부당하게 몰수된 우물, 돈을 받은 관리의 이름. 그 끝에는 ‘나채령’과 ‘나정우’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정우의 이름 옆에는 ‘약재 대납’이라고 쓰여 있었다. 채령의 이름 옆에는 ‘봉인문서 회수 가능자’라고 적혀 있었다.
“우릴 도구로 썼군요.”
“나는 그 문서를 만든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제 동생의 약값을 내고 제가 훔칠 줄 알았죠.”
“네가 문서를 공개하면 내 가문도 무너진다.”
“당신 가문은 이름을 지운 쪽이에요.”
“모든 사람이 같은 죄를 지은 건 아니다.”
“그래서 이름을 숨기면 안 돼요. 누가 무엇을 했는지 각자 밝혀야죠.”
상필은 문서함을 품에 넣었다. “그럼 내게 칼을 겨눠.”
“그럴 생각은 없어요.”
“그럼 어떻게 나를 막을 건데?”
“문서를 내놓으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 돌려받을 사람에게 가서 읽어 줄 겁니다.”
채령은 지붕 아래 골목으로 내려갔다. 상필은 뒤따라오지 않았다. 궁궐 빗장문 쪽에서 쇠고리가 울리고, 새 표식이 하나씩 붉은 불빛을 띠었다. 누군가 궁궐 내부의 순찰망을 작동시킨 것이다.
채령은 빗장문 지붕에 손을 대고 울림을 들었다. 경보의 진동은 기와 세 장을 지나 북쪽으로 퍼졌다. 그녀는 첫째를 밟지 않고, 둘째의 옆 장식을 잡아 몸을 넘겼다. 문 안쪽에서 정우의 기침이 들렸다.
“누나!”
채령이 빗장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정우는 양손이 묶인 채 기둥에 기대 있었다. 소운이 그를 지키고 있었다.
“왜 잡아 둔 거예요?” 채령이 물었다.
“백상필이 데려갈 것 같아서.”
“그럼 풀어 주세요.”
“문서를 먼저 공개해야 해. 장부의 이름이 드러나면 정우는 증인이 될 수 있어.”
정우가 고개를 들었다. “저는 증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
“네 이름도 문서에 있어.”
“알아요. 그래서 누나가 정해 줬으면 해요.”
채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네가 정해야 해. 나는 네 이름을 대신 적을 수 없어.”
정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럼 공개해요. 대신 제가 약값을 받은 이유까지 말할게요. 백상필은 누나가 문서를 훔치도록 하려고 돈을 냈어요. 약사는 그 얘기를 들었고, 제가 따라나오는 걸 막지 않았어요.”
소운이 그의 손목의 매듭을 풀었다. “네가 직접 말하면 내일 감찰청에서 증언해야 해.”
“내일은 약을 먹고 갈래요.”
채령은 약봉지를 정우에게 건넸다. 그는 반 알만 꺼내 삼키려 했지만, 누나가 손을 잡았다. “정해진 대로 먹어.”
“네가 정우 약을 챙기겠다고 했잖아.” 소운이 말했다.
“오늘은 내가 챙기고, 내일부터는 정우가 직접 정할 거예요.”
정우는 나머지 약을 물과 함께 삼켰다. “그럼 내가 증언할게요. 누나는 문서를 읽어 주세요.”
세 사람은 지붕 위로 올라갔다. 달빛 아래 은분 글씨가 더 선명해졌다. 채령은 먼저 피해자 이름을 읽었다. 한 명씩 이름을 부를 때마다 정우는 그 이름을 들었다는 표시로 기와를 두드렸다. 소운은 감찰패를 내려놓고, 기록을 적었다.
마지막 이름은 채령의 것이었다. 그녀는 잠시 멈춘 뒤 자기 이름도 읽었다.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이 따라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름을 숨기지 않기로 한 선택은 자기 몫이었다.
읽어 내려간 이름들 가운데 몇몇은 아래 골목의 집주인들이었다. 창이 하나씩 열리고,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처마 밑으로 나왔다. 늙은 재단사가 수탈 장부의 날짜를 듣자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날 그의 아들이 세금 대신 군역에 끌려갔기 때문이었다. 그는 감찰관에게 이름을 적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가 가진 영수증을 지붕 위로 던졌다.
종이는 바람을 타고 채령의 발 앞에 떨어졌다. 오래된 부과금에 찍힌 도장은 백상필 집안의 옥반지 문양과 같았다. 소운은 그 영수증을 주워 문서 옆에 펼쳤다.
“장부만으로는 부족했어.” 그녀가 말했다. “이제 피해자가 자기 기록을 내놓았어.”
“그럼 이 사람도 감찰청에 불려가겠죠.”
“원하면 그럴 거야. 원하지 않으면 이름을 가릴 수 있어.”
정우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름을 읽은 사람을 다 잡아가면, 내일 증언할 사람이 없어져요.”
채령은 동생이 떨고 있는 손을 보았다. 약이 들기 전의 떨림인지, 사람들 앞에서 말을 꺼내려는 긴장인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문서를 정우 가까이에 밀어 놓았다. “네가 필요한 부분만 읽어. 나머지는 내가 말할게.”
“아니요. 제 이름은 제가 말할 거예요.”
그 말에 아래 골목의 재단사가 다시 등불을 들었다. “나도 내 이름을 말할 테다.”
하나둘 다른 창이 열렸다. 누군가는 영수증을 들고, 누군가는 세금이 적힌 나무패를 꺼냈다. 소운은 그들의 이름을 묻지 않고 증거만 받아 적었다.
골목 아래에서 백상필이 문서함을 들고 나타났다. “네가 그 이름을 읽으면 네 동생도 감찰청으로 끌려갈 거다.”
정우가 지붕 난간으로 나섰다. “제가 가겠습니다. 하지만 제 이름은 누나가 아니라 제가 말할 겁니다.”
상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운이 감찰패를 들어 올리자 순찰대가 골목 양쪽을 막았다. 채령은 동생을 업지 않았다. 그의 발이 자기 발로 지붕을 딛는 것을 기다렸다.
그때 궁궐 안쪽에서 참새 표식이 일제히 꺼졌다. 지붕을 감시하던 장치가 멎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높은 처마를 가로질렀다. 발소리는 하나였지만, 기와가 울릴 때마다 다른 사람의 무게가 겹쳐 들렸다.
정우가 누나의 손을 잡았다. “누나, 저 발소리 알아요.”
“누구야?”
“아버지예요.”
채령은 문서를 가슴에 눌렀다. 죽은 줄 알았던 아버지의 발소리가 궁궐 지붕 위에서 남매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