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정원 관리인의 오후

1화: 비가 고이는 화단
강만식은 토마토 잎을 들어 올리다가 손에 묻은 흙을 털었다. 옥상 배수구 앞에 물이 고여 있었다. 전날 밤 비가 내린 뒤부터 그랬다. 빗물은 화단 가장자리까지 차올랐고, 물이 넘치면 아래층 사무실 천장으로 스며들 수 있었다.
“아저씨, 여기 물이 계속 안 빠져요.”
신예린이 양동이를 들고 뛰어왔다. 그녀는 빌딩 시설 기사로 일하며, 옥상정원의 배수와 전기를 점검했다. 만식은 정년퇴직 후 이 건물의 옥상정원을 관리하게 됐다. 정원은 입주민과 직원이 함께 쓰는 휴식 공간이었지만, 최근에는 관리 예산이 줄어 화분 몇 개만 남아 있었다.
“화단 흙이 배수구를 막았나 봐.”
“아니에요. 물이 고이는 위치가 배수구보다 아래쪽이에요.”
예린은 바닥을 재고 사진을 찍었다. 물은 배수구로 향하지 않고 옥상 중앙에 고였다. 방수층이 기울어진 것인지, 배관이 막힌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만식은 화분을 옮겨 배수구를 열고 싶었지만, 예린은 먼저 시설 기록을 확인하자고 했다.
“화분을 움직이면 뿌리가 상해.”
“침수가 계속되면 뿌리도 상해요. 먼저 물 높이를 낮추고, 배관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녀는 펌프를 가져와 고인 물을 양동이에 옮겼다. 만식은 화분을 들어 올리고 흙이 쏟아지지 않게 받쳤다. 두 사람은 물을 빼며 화단 아래쪽에서 낡은 콘크리트 덮개를 발견했다. 덮개에는 건물 관리 번호가 찍혀 있었다.
“이건 설계 도면에 없어요.” 예린이 말했다.
“예전 정원 만들 때부터 있었지. 덮개를 열면 옛 배수관이 나올 거야.”
“그럼 안전 점검을 요청할게요. 무거워서 혼자 들면 안 됩니다.”
만식은 덮개를 열어 본 기억이 있었다. 10년 전 옥상정원을 처음 만들 때, 배수관은 반대쪽 화단으로 이어진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쪽 화단은 지금 철거되어 있었다. 그는 당시 공사를 맡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정원 아래에 오래된 배관이 있다고 입주자들에게 알려야겠네.”
“확인 전에는 배관이 고장 났다고 말하면 안 돼요.”
예린은 점검 요청서를 작성했다. 관리실에 있던 도면에는 옥상 배수구 위치만 표시돼 있었다. 그녀는 시설팀 서버에서 옛 공사 자료를 찾으려 했지만, 10년 전 기록은 보존 기간이 끝났다고 떴다. 만식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수첩을 꺼냈다. 정원 조성 당시 적어 둔 식물 목록과 공사 날짜가 있었다.
그 수첩에는 ‘배수 변경, 지상 침수 예방 공사’라는 문장이 있었다. 날짜는 여섯 해 전. 만식은 그때 정원 관리가 중단됐던 일을 떠올렸다. 공사 뒤 아래층 상가가 침수됐고, 관리사무소는 폭우 탓이라고 설명했다. 정확한 원인은 알려 주지 않았다.
“그 공사 기록이 더 필요해요.” 예린이 말했다.
“지하 상가의 김 사장이 그때 물에 잠긴 가게를 치웠지. 그 사람에게 물어보자.”
둘은 옥상 화단을 임시로 막고, 물이 더 넘치지 않게 펌프를 설치했다. 만식은 정원에 남은 채소를 옮기지 않고 뿌리 주변의 흙을 정리했다. 예린은 안전 띠를 치고 출입을 제한했다. 점심시간에 옥상에 올라온 직원들이 왜 닫았느냐고 물었다.
“배수 상태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화단 주변에 들어오지 마세요.” 예린이 설명했다.
“정원은 계속 쓸 수 있나요?”
“점검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어요.”
그녀는 아직 모르는 것을 약속하지 않았다. 만식은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정원을 다시 살리고 싶었지만, 안전을 확인하기 전에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싶지는 않았다.
오후에 초등학생 김다온이 옥상에 올라왔다. 그는 입주민 가족으로, 학교 과학 과제를 위해 토마토를 키우고 있었다. 만식은 출입이 제한됐다고 말하고 아이를 돌려보냈다. 다온은 화분을 걱정하며 물었다.
“토마토도 병원에 가야 해요?”
“아직은 아니야. 안전 확인 뒤에 돌보면 돼.”
“제 숙제가 망가지면 어떡해요?”
“오늘 안에 어떻게 돌려놓을지 정해 보자.”
다온은 토마토의 사진과 물 준 날짜를 기록해 왔다. 만식은 그 기록을 예린에게 보여 줬다. 예린은 침수 구역에서 화분을 옮길 수 있는지 점검한 뒤, 아이가 안전 구역에서 관찰을 이어 가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다온은 화분을 옮기며 잎이 꺾이지 않게 조심했다.
그날 저녁, 지하 상가의 김 사장은 옛 침수 공사 당시 배수관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공사 뒤부터 빗물이 상가 천장으로 새기 시작했다. 그는 피해를 입었지만, 관리사무소와 합의서를 쓰고 더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 합의서가 남아 있나요?” 예린이 물었다.
“내 가게는 정리했지만, 사본은 있어요. 공개할 생각은 없어요. 이름이 그대로 있으니까.”
“가릴 수 있는 부분을 함께 확인하고, 필요한 사실만 점검팀에 전달할 수 있어요.”
김 사장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는 만식의 수첩을 보고 배수 변경 날짜를 확인했다. 두 날짜는 일치했다. 물이 고이는 원인이 옛 공사일 수도 있지만, 지금 도면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었다.
다음 날 건물 관리회사는 옥상정원을 폐쇄하고 화단을 철거하겠다고 통보했다. 안전 점검이 끝날 때까지 정원을 유지할 책임을 지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만식은 그 통보를 받자 수첩을 꼭 쥐었다. 예린은 문서를 읽고, 폐쇄 기간과 점검 결과를 요청했다.
“정원을 지킬 수 있을까요?” 다온이 물었다.
“모르겠다.” 만식이 답했다. “하지만 원인을 확인하기 전에 없애는 건 동의하지 않을 거야.”
예린은 관리회사에 공식 이의서를 제출했다. 옥상 안전 점검에는 협조하되, 배수 원인을 조사하기 전에 정원을 철거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날 밤, 예린의 업무 메일로 옛 배관 도면 하나가 도착했다. 도면에는 옥상 배수관이 지하 상가 쪽으로 연결된 선이 그려져 있었다.
도면 가장자리에는 빨간 펜으로 ‘침수 방지용 임시 변경’이라고 적혀 있었다. 작성자란은 비어 있었다.
관리실 직원은 옥상 출입을 제한한다는 공지를 엘리베이터 앞에 붙였다. 몇몇 입주자는 휴식 공간이 갑자기 닫혔다며 항의했다. 만식은 정원을 계속 열어 두고 싶었지만, 젖은 바닥과 숨겨진 덮개가 위험하다는 예린의 판단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공지문에 예상 점검 시간과 문의처를 추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막연한 폐쇄보다 언제 어떤 이유로 다시 확인할 수 있는지 알려 주는 편이 나았다.
점심 무렵 사무실 직원 한 명이 화분을 가지러 왔다. 그 화분은 그가 직접 키웠지만, 만식은 소유자 확인을 위해 이름표를 확인했다. 다른 직원이 물을 주고 있어 화분을 옮길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말을 듣고 화분을 공동 관리하는 대신, 주인을 정해 기록하기로 했다. 정원은 모두의 공간이었지만, 책임은 익명의 모두에게 떠넘길 수 없었다.
다온은 과학 과제의 발표 자료를 만들려고 옥상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예린은 안전띠 안쪽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이는 화분을 옮긴 뒤에도 같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만식은 안전 구역에서 토마토의 변화를 촬영하고, 침수 흔적은 예린이 허락한 거리에서만 기록하자고 했다. 다온은 사진 촬영 날짜와 장소를 노트에 적었다.
예린은 관리실 서버의 오래된 점검표를 찾아봤다. 6년 전 침수 당일에는 배수관 점검이 ‘정상’으로 기록돼 있었지만, 담당자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이 기록만으로 누가 점검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원본을 수정하지 않고, 사본을 별도 폴더에 저장했다. 만식은 당시 자신이 정원에서 일하지 않았다는 근무 기록을 찾아 제출하기로 했다.
“이름이 같은 사람이 더 있었을 수도 있어.” 만식이 말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지금은 문서에 적힌 이름만 확인해 둘게요.”
그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고 싶었지만, 정원 문제와 옛 침수 피해를 함께 다룰 때 다른 사람의 사정이 걸려 있었다. 김 사장은 공개를 원하지 않았고, 입주자들은 정원이 사라질까 불안해했다. 만식은 자기 억울함을 앞세우지 않고 자료를 모으기로 했다.
퇴근 시간이 지난 뒤, 만식은 정원 수첩에서 6년 전 공사 기록을 다시 찾았다. ‘배수 변경’이라는 단어 옆에는 담당자 이니셜만 남아 있었다. 만식은 그 이니셜이 자신의 것인지 살폈지만, 자신은 당시 옥상정원에 오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기억과 문서가 다르면 둘 중 하나를 바꿔야 하는 게 아니라, 출처를 확인해야 했다. 그는 수첩 페이지를 찍고 원본을 봉투에 넣었다.
예린은 관리실에 남아 근무 기록을 조회했다. 당시 만식은 다른 건물에서 조경 일을 했고, 해당 공사에 참여하지 않았다. 회사의 인사 자료는 확인됐지만, 누가 서명을 대신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예린은 근무 기록을 만식에게 보여 주고, 공개 범위를 관리회사 인사 담당자와 점검 책임자로 제한했다. 만식은 확인서에 서명했다.
“제 이름을 바로잡으면 정원 폐쇄가 풀리나요?”
“그건 별개예요. 배수 안전을 확인해야 합니다.”
“알아요. 그래도 잘못된 기록은 고쳐야죠.”
만식은 그 대답을 듣고 수첩을 가방에 넣었다. 그는 정원 화분을 지키는 것과 자신의 이름을 지키는 일을 혼동하지 않으려 했다. 하나는 식물과 사람의 안전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기록의 정확성 문제였다. 둘 다 중요했지만 해결 방법은 달랐다.
그는 서명 확인 요청서의 사본을 보관했다.
내일 다시 서류를 확인하기로 했다.
정원 수첩을 덮었다.
내일 기록에 덧붙일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