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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법원 앞 분식집2화

아빠는 법원 앞 분식집

아빠는 법원 앞 분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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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번호판의 첫 글자

윤아는 법원 복도에서 서류 봉투를 열지 않았다. 아버지의 진술 정정서가 현재 사건의 참고인인 김철호를 통해 제출될 가능성이 있었다. 현재 사건은 야간 배송 차량이 자전거를 치고 달아난 혐의였고, 피고는 낡은 회색 승합차를 소유한 서른여섯 살 박도식이었다. 사고 현장에는 번호판 일부가 찍힌 블랙박스 화면이 남았다. 경찰은 차량 번호 첫 글자를 ‘ㅅ’으로 읽었다.

그 글자가 만수의 옛 메모와 같았다.

윤아는 사건 담당에서 빠져야 했다. 검사장에게 이해관계를 보고하고, 배당을 다시 요청했다. 검사는 아버지의 과거 사고를 직접 수사하지 않았지만, 참고인 철호가 옛 정정서를 제출한다면 사건에 사적인 연결이 생길 수 있었다. 윤아는 서류에 서명하고도 한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스스로 빠지는 건 공정한 판단을 지키는 일이었지만, 어머니 사건을 다시 볼 기회를 넘기는 일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가게 앞에서 법원 민원인들에게 떡볶이를 팔고 있었다. 윤아는 점심시간에 거기 들렀다가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만수는 주문이 밀려 철판을 닦고 있었다. “김밥 하나 포장할까?”

“아니. 잠깐 얘기하러 왔어.”

“얘기 안 하기로 했잖아.”

“검사로서는 말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아직 모르겠어.”

만수는 손을 멈췄다. “철호 씨가 무슨 자료를 냈는지 알아?”

“개인적으로 들을 수 없어. 공식 기록에 들어오면 그때 볼 거야.”

“너는 나를 못 믿는구나.”

“아버지가 그날 무슨 말을 했는지 몰라. 그걸 모르는 채로 판단하는 게 더 위험해.”

만수는 기름 묻은 행주를 내려놓았다. “그럼 내가 말할게. 내가 본 건 회색 승합차와 번호판 첫 글자야. 내가 법정에서 그 말을 빼 달라고 한 게 아니야. 경찰이 애 혼자 키우는 사람한테 그 정도는 불확실하다고 하라고 했어. 나는 그 말을 받아들였어.”

윤아는 얼굴이 굳었다. “그럼 네가 바꾼 거네.”

“그래.”

그 대답은 설명보다 짧았다. 윤아는 가방에서 사건 서류를 꺼내지 않았다. “내가 지금 담당하는 사건 차량도 회색 승합차야. 번호판 첫 글자가 같아. 하지만 그걸로 같은 차라고 할 수 없어.”

“그 사람을 기소했니?”

“아직 공판 전이야. 나는 배당에서 빠질 거야.”

만수는 딸이 사건을 자기 손에 잡으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네가 빠지면 누가 맡는데?”

“다른 검사가 맡겠지. 사건은 내 것이 아니야.”

“그럼 엄마 사건은?”

윤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건 아직 말 못 해.”

철호가 가게로 들어온 건 그때였다. 그는 재판 기록실에서 옛 사건의 색인표를 찾아왔다고 했다. 정정서 원본은 없었지만, 접수대장에 “목격자 추가 진술—차량 번호 일부”라는 항목이 있었다. 문서에는 작성자 철호의 이니셜이 남았고, 그 다음 날 사건 담당자가 자료를 반려했다고 기록돼 있었다.

윤아는 봉투를 건드리지 않았다. “이 자료가 현재 사건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세요?”

“차량 번호 첫 글자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만 제가 가진 기록은 사건이 연결됐다는 증명이 아니에요.”

“그럼 왜 제출하려고 하십니까?”

철호는 만수를 보았다. “이번 사건에서 제가 증언하면, 예전 기록도 숨길 수 없습니다. 저는 제 몫을 말하려고 왔습니다.”

윤아는 검사실에 전화해 공식적인 자료 제출 절차를 안내했다. 자신은 이해관계 때문에 면담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알렸다. 철호는 검찰 민원창구에 봉투를 맡겼다. 접수 직원은 봉인 상태를 확인하고 접수증을 발급했다. 윤아는 뒤에서 기다렸다가, 서류가 봉투에 들어가는 순간을 보았다. 종이 한 장이 들어갔지만, 그 안의 문장은 가족의 기억을 끝내지는 못했다.

그날 오후 아버지는 철호에게 처음으로 물었다. “그때 왜 말 안 했어?”

철호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저는 법원 기록을 정리하는 직원이었습니다. 경찰이 준 문장을 그대로 쓰면 일이 끝나는 줄 알았어요. 만수 씨가 다시 와서 고치려 하지 않자, 그걸 동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명은 내가 했어.”

“압박을 받았다고 들었으면 제가 한 번 더 확인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질문을 안 했어요.”

“그걸 윤아한테도 말해.”

“그럴 겁니다.”

윤아는 둘의 대화를 듣고도 끼어들지 않았다. 검찰에서 배당 회피 신청이 접수됐다는 연락이 왔다. 그녀는 회신 메일을 읽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 사건에서 빠졌습니다. 지금부터는 민원인으로 말할 수 없어요.”

만수는 웃으려다 실패했다. “딸로는?”

“딸로는, 언젠가 다시 말할 수 있겠지. 오늘은 아니야.”

그녀는 가게 문을 나갔다. 만수는 뒤따라가지 않았다. 철호는 그릇을 씻겠다고 나섰지만, 만수는 손님처럼 돈을 받고 보내겠다고 했다. 철호는 동전을 내려놓았다. “외상 장부에 적어도 되잖아요.”

“오늘은 외상 안 돼.”

“그럼 제가 갚을게요.”

그날 저녁 윤아는 사건에서 공식적으로 빠졌다. 새 담당 검사가 배당받고 피고인 박도식의 차량 정비 기록을 요청했다. 그 차량은 사고 당일 공업사에 입고돼 있었다는 자료가 있었지만, 입고 시각과 출고 시각이 손으로 적혀 있어 진위 확인이 필요했다. 윤아는 사건을 넘기면서 그 자료를 검토하지 않았다. 대신 이해관계 신고서에 아버지의 과거 목격자 진술과 철호의 문서가 연결될 수 있다고 적었다.

만수는 가게 문을 닫은 뒤 딸에게 문자 메시지를 썼다. ‘번호판 글자는 ㅅ이라고 기억한다. 확실하진 않다.’ 그는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손가락은 화면 위에서 오래 멈췄다. 윤아가 검사로서 그 자료를 볼 수 없다고 했고, 딸로서는 아직 들을 준비가 안 됐다고 했다. 그는 자기 이야기를 언제 어떻게 건넬지 처음으로 묻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철호가 다시 가게를 찾았다. 그는 사건 접수대장에 있던 반려 사유를 확인했다고 했다. ‘목격자 진술 번복, 구체성 부족’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반려를 지시한 사람의 서명란은 비어 있었다. 철호가 남긴 이니셜만 아래에 있었다.

“내가 그 문장을 받아 적었습니다.” 철호가 말했다. “하지만 누가 반려했는지 모릅니다. 당시 담당자의 메모가 보존돼 있다면 확인할 수 있어요.”

만수는 접수대장 복사본을 보았다. 어머니 사건은 재수사 대상이 아니었고, 기록만으로 과거 결론을 뒤집을 수 없었다. 윤아가 검찰에서 나와야만 볼 수 있는 자료도 있었다. 만수는 서류를 접지 않았다.

그날 오후 새 담당 검사가 분식집으로 와서 윤아를 찾았다. 그는 현재 차량 사고 사건의 새로운 자료를 확인했고, 철호의 진술을 공식적으로 듣고 싶다고 했다. 만수는 그가 요청한 말이 무엇인지 캐묻지 않았다. 대신 “철호 씨가 원하면 직접 연락하세요. 제가 대신 대답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철호는 전화가 오자 받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증언이 현재 사건과 어머니의 오래된 사고를 한꺼번에 흔들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만수는 가게 카운터 안에서 그를 바라봤다. 철호는 한참 뒤 전화를 다시 걸어 “내일 출석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철호가 돌아간 뒤 만수는 법원 뒷골목을 지나 사고가 난 횡단보도까지 걸었다. 당시 가로등은 지금보다 어두웠고, 상가 간판은 바뀌어 있었다. 그는 길 건너에서 차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회색 승합차 한 대가 우회전해 사라졌다. 번호판을 볼 수 있는 각도는 짧았다. 첫 글자는 순간적으로 읽혔지만, 조금만 늦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납골당에 갈 때도 사고를 자세히 말하지 못했다. 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책임을 지기 싫었다. 침묵은 윤아의 선택을 빼앗았고, 이제 아버지의 기억을 사실처럼 믿게 만들 위험이 있었다.

만수는 법원 앞 가게로 돌아와 철호가 맡긴 접수증을 꺼냈다. 문서에는 그가 서명한 날짜가 있었다. 그 날짜를 확인하자 기억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경찰 조사 직후가 아니라, 며칠 뒤였다. 처음에는 번호판을 말했고, 나중에 스스로 말을 줄였다. 누군가의 압박이 있었지만, 마지막 서명은 그의 손으로 했다.
그날 밤 윤아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버지가 본 글자를 사실로 말할 수 있어? 아니면 오래 기억한 이야기야?’ 만수는 답장을 쓰다 지웠다. 그는 그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고 싶었다. 기억은 남아 있었지만, 숫자의 모양과 순간의 확신은 달라질 수 있었다.

“확실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아무것도 못 봤다고 하면 또 거짓말이야.” 만수는 혼잣말을 했다. 철호가 가게 맞은편에서 우산을 접었다. 둘은 서로를 봤지만, 철호는 건너오지 않았다. 만수는 문자에 답하지 않는 대신 내일 검찰에 출석하겠다고 철호에게 말했다. 철호는 “이번엔 기억과 추측을 나눠 말합시다”라고 답했다.

그는 메모장을 꺼내 사고 당일의 기록을 펼쳤다. 첫 글자 옆에 물음표가 두 번 그어져 있었다. 만수는 그 물음표를 지우지 않았다. 딸에게 보낼 답은 아직 한 문장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확신을 보태지 않고도 책임을 말할 수 있어야 했다. 만수는 서랍을 잠그고 셔터를 더 천천히 내렸다. 정문 쪽을 보며. 그는 메모를 봉투에 넣었다. 내일 법정에 가져가되, 윤아의 손에 직접 쥐여 주지는 않겠다고 정했다. 문을 여는 사람은 기록으로 말하기로 했다. 그는 불을 끄고 가게 앞에서 잠시 멈췄다. 법원 복도는 어두웠다. 그는 처음으로 그 어둠을 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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