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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법원 앞 분식집1화

아빠는 법원 앞 분식집

아빠는 법원 앞 분식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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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정문 앞의 이름

법원 정문이 열리기 전에 최만수는 떡볶이 국물부터 다시 끓였다. 새벽 손님은 대개 말을 하지 않았다. 법정에 늦을까 봐 김밥을 한 손에 들고 뛰거나, 밤새 구치소에 있다가 빈속으로 나온 가족이었다. 만수는 손님의 얼굴보다 신발을 먼저 봤다. 오래 서 있었는지, 비를 맞았는지, 다시 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은 국물 말고 물 주세요.” 김철호가 종이컵을 내밀었다.

철호는 63세, 법원 기록과에서 퇴직한 지 두 해가 지났다. 그의 낡은 서류가방은 법원 골목을 떠나지 않았다. 만수는 따뜻한 물을 따라 주며 물었다. “또 재판 구경하러 왔어?”

“구경은 안 합니다. 찾을 기록이 있어요.”

철호가 떡볶이 접시를 밀어 두자, 만수는 장부에 3천 원을 적었다. 철호는 늘 먹고 나서 갚았다. 오래전에는 그가 법원 기록을 정리하고 만수는 야간 분식차를 끌었다. 둘은 법원 뒤편 골목에서 자주 마주쳤지만, 16년 전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은 뒤 만수는 철호와도 거리를 뒀다.

법원 정문으로 출근하던 검사 최윤아가 걸음을 멈췄다. 검은 재킷에 서류 가방을 든 그녀는 만수를 보지 않으려는 듯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와 딸이 한 공간에 서 있는 건 석 달 만이었다. 마지막 대화는 “그날 왜 말하지 않았어?”와 “네가 듣고 싶은 말은 이미 정해졌잖아”로 끝났다.

“윤아야.” 만수가 불렀다.

윤아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철호를 본 뒤 눈을 좁혔다. “김 선생님, 여기 계셨네요.”

“검사님. 점심 전에 검찰청에 들를 일이 있습니다.”

“제 사건과 관련된 일인가요?”

철호는 대답을 늦췄다. “오늘 배당된 사건에 증언할 수도 있습니다.”

윤아는 만수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버지 가게에서 그 얘기를 하시려고요?”

“그냥 국물 마시는 중이야.” 만수가 말했다.

“정문 앞에 서서요?”

그 말에 만수는 국자 손잡이를 놓았다. 윤아는 더 묻지 않고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철호는 식지 않은 떡볶이를 한입 먹었다. 만수는 그릇을 치우지 않았다.

점심 무렵, 철호가 가방에서 낡은 봉투를 꺼냈다. 겉면에는 오래된 사건번호와 ‘진술정정’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만수는 봉투를 알아봤다. 16년 전, 아내가 숨진 교통사고의 번호였다.

“이걸 왜 갖고 있어?”

“제가 받아 적은 문장입니다.”

“누가 시켰어?”

철호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때 담당 경찰 연락관이 초안을 정리해 달라고 했습니다. 만수 씨가 말한 걸 받아 적었고, 차량 번호를 봤다는 문장을 빼라고 했어요.”

“내가 그런 말 한 적 없어.”

“하셨습니다. 정확히는 ‘번호판 첫 글자가 기억난다’고 했습니다.”

만수의 목이 잠겼다. 그는 아내가 사고를 당한 날 밤, 법원 근처에서 귀가하던 중 회색 승합차가 급히 골목을 빠져나가는 걸 봤다. 그때 차 뒤쪽에 붙은 번호판의 첫 글자가 보였다. 경찰에게 그 사실을 말했지만,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할 사람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그 말을 핑계로 침묵했다.

“그 기록은 없어진 줄 알았어.”

“원본은 기록실에 없어요. 제가 개인 메모를 보관했습니다. 정정서가 완성됐는지 확인하지 않고 서명만 받았어요.”

만수는 봉투를 밀어내려다 손을 멈췄다. “그걸 지금 왜 꺼내?”

“제가 증언할 일이 생겼습니다. 현재 사건의 피고인이 예전 사고와 연결돼 있어요. 지금 말하지 않으면 또 문장 하나를 숨기게 됩니다.”

철호는 봉투를 만수 쪽으로 밀지 않았다. “윤아 검사에게 직접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 사건이어서요. 담당 회피를 요청했을 겁니다.”

만수는 딸이 일하는 검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얘기하면 되잖아.”

“만수 씨가 할 수 있는 건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그 뒤 절차는 윤아 씨가 정해야 해요.”

그때 법원 앞에 택배 기사 한 사람이 뛰어왔다. 그는 김밥을 주문했지만, 잔돈이 모자랐다. 만수는 외상 장부를 꺼냈다. “다음에 줄 때 천 원 더 얹어.”

“사장님, 매번 이러시면 안 돼요.”

“그럼 배고픈 사람이 재판에서 더 떨잖아.”

택배 기사는 웃지 못하고 종이봉투를 받아갔다. 철호는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사람들한테는 늘 먹을 걸 주면서, 윤아한테는 왜 그날 말을 안 했습니까?”

만수의 얼굴이 굳었다. “내가 겁났어. 그때 딸 하나 키우던 사람이었어.”

“그건 이유일 수 있어도, 윤아가 알아야 하는 사실을 지우지는 못합니다.”

만수는 철호가 자신에게 죄를 묻는다고 느꼈다. 그 말은 정확했다. 오래전부터 그가 가장 피하던 질문이었다. “네가 그 문장을 뺐다며.”

“제가 적었고, 제가 침묵했습니다.” 철호가 말했다. “저도 책임이 있습니다.”

바로 그때 윤아가 가게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오전 재판을 마치고 나온 듯 서류 봉투를 손에 들고 있었다. “김 선생님이 증언할 사건은 제 부서에 배당됐어요. 아버지와 관련된 과거 사건을 아신다면 저는 회피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네가 내 딸이라는 이유로 사건에서 빠지는 게 싫니?” 만수가 물었다.

“싫고 좋고의 문제가 아니야. 내가 그 사건을 맡으면 증거보다 아버지를 먼저 보게 돼.”

윤아는 철호를 향해 말했다. “오늘 제출하신 자료가 현재 사건의 증거라면 정식으로 검찰에 내세요. 개인적으로 전달받을 수는 없습니다.”

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저한테 사적으로 설명하지 마세요. 지금은 들을 수 없어요.”

만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윤아는 법원 안으로 들어갔다. 철호는 봉투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만수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저녁 장사를 마친 뒤 만수는 분식집 셔터를 반쯤 내렸다. 그는 오래된 상자에서 아내의 교통사고 사건 접수증을 찾았다. 접수증 뒤에는 자신이 적은 숫자 하나가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승합차 번호판의 첫 글자. 그는 그 글자가 ‘ㅅ’이라고 기억했지만, 지금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날 밤 만수는 가게 문을 닫고도 불을 끄지 못했다. 철판을 닦던 수세미가 손가락 사이에서 구겨졌다. 아내가 사고를 당한 날, 윤아는 열네 살이었다. 병원 복도 의자에서 잠든 딸의 어깨에 자기 점퍼를 덮어 주고, 만수는 경찰서로 불려갔다. 그날 밤 윤아는 엄마를 찾으며 울다가 “아빠가 봤어?”라고 물었다. 만수는 보았다고 답하지 않았다. “차가 너무 빨라서 모르겠어.” 딸은 더 묻지 않고 아버지 손가락을 꼭 잡았다. 그 손의 힘을 느끼며 만수는 거짓말을 보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 경찰관이 따뜻한 종이컵을 건네며 말했다. “차 번호를 모른다고 하면 괜찮습니다. 아이 앞에서 길게 조사하지 않아도 돼요.”

만수는 그 말을 배려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다음 날 집에 돌아온 그는 딸에게 “차가 어두워서 못 봤다”고 했다. 그 뒤 윤아는 법학을 공부했고, 검사가 된 뒤 어머니 사건 기록을 다시 열었다. 만수는 딸이 진실을 찾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자기가 숨긴 글자를 찾고 있었다.

그는 오래된 전화기 서랍에서 교통사고 당시의 메모장을 꺼냈다. ‘회색 승합차, 뒷문 쪽 깨짐, 번호 ㅅ?’라고 적혀 있었다. 글씨는 본인이 쓴 것 같았지만, 물에 젖어 번진 부분이 많았다. 그 글자가 실제로 번호판 첫 글자였는지, 사고 뒤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것인지 그는 확신하지 못했다.

새벽 한 시가 지나 법원 야간 경비원이 문을 두드렸다. “사장님, 오늘부터 외상 끊으려고요. 아들이 수술해서 돈 아껴야 해요.”

만수는 장부를 덮었다. “그럼 오늘 김밥은 그냥 가져가.”

“그렇게 장사하면 안 된다니까요.”

“알아. 그런데 오늘은 내가 먹이기로 했어.”

경비원은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고 봉투를 받아 갔다. 만수는 장부에 금액 대신 날짜만 적었다. 누군가가 부담을 지는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건 쉬웠다. 윤아에게도 그랬다. 하지만 딸은 자신이 대신 숨겨 주길 바라지 않았다.

새벽 네 시, 만수는 메모장에 본인이 기억하는 순서를 썼다. 경찰에게 말한 문장, 철호가 받아 적은 문장, 법정에서 서명한 문장. 그는 같은 기억을 세 번 다른 말로 남겨 두었다. 아직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종이였지만, 찢어 버리지 않기로 했다.
다음 날 검찰에 출석한 철호는 참고인 조사에서 자신이 진술 정정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윤아는 이해관계 신고를 하고 사건 담당에서 빠졌다. 그는 법원 앞 가게에 오지 않았다. 만수는 딸이 만든 선택을 들었지만, 전화하지 않았다.

그날 오후 윤아가 가게로 왔다. 재판 배당표를 손에 든 채였다. “아버지가 본 번호판 글자를 기억해?”

만수는 처음으로 대답을 미루지 않았다. “기억은 나. 확신은 없어.”

윤아는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 그게 네가 지금 말할 수 있는 전부야.”

“그래.”

그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돌아섰다. 만수는 딸이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철호의 봉투에는 그가 서명한 정정서의 사본이 들어 있었고, 법원에는 원본이 없었다. 이제 만수는 기억이 아니라 자신이 바꾼 문장을 증언해야 했다. 그는 가게 유리창에 붙은 오래된 메뉴판을 떼지 않았다. 윤아가 어릴 때 가격표를 손으로 고쳐 쓴 메뉴였다. 언젠가 딸이 돌아오면 보여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 약속조차 요구할 수 없었다. 만수는 메뉴판을 닦고 셔터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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