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법원 앞 분식집

3화: 증언할 사람
만수는 법원에서 전화가 온 날 아침, 떡볶이 국물을 태웠다. 불을 줄이고 냄비를 저으려는 순간 전화가 울렸다. 정림지검 새 담당 검사였다. 김철호의 참고인 조사에 만수도 나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옛 교통사고 기록을 확인하려면 그가 진술을 바꾼 이유와 당시 본 것을 들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저는 지금 사건을 맡은 검사도 아니고, 증인으로 출석하라는 법원 통지도 못 받았습니다.”
“참고인 면담 요청입니다. 응할지 여부는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공식 조사 전에 변호인을 선임하셔도 됩니다.”
만수는 통화가 끝난 뒤 한동안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그는 딸에게 연락하려다 멈췄다. 윤아는 이미 사건에서 빠졌다. 이제 그녀에게 물을 수 있는 건 아버지로서의 질문뿐이었다. 만수는 문자를 썼다. ‘검찰에서 참고인 면담을 요청했다.’ 보내고 나서도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김철호는 오전 장사를 마치고 가게에 왔다. 그는 사건의 참고인으로 출석하겠다고 이미 답한 상태였다. 만수는 종이컵에 보리차를 따라 주며 말했다. “정정서 원본이 없다는 게 사실이야?”
“원본은 기록실에 없습니다. 제가 보관한 건 업무 메모와 초안뿐이에요.”
“그 메모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증명할 수 있어?”
“제가 받아 적은 문장이 있다는 건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당시 경찰이 지시한 이유나, 만수 씨가 어떤 압박을 느꼈는지는 제가 증명할 수 없어요.”
만수는 컵을 밀었다. “그럼 네가 기억하는 걸 말해. 네가 나를 대신해서 미안해하지 말고.”
철호는 목을 축였다. “제가 기록에서 지운 문장은 ‘번호판 첫 글자를 봤다’였습니다. 만수 씨는 ‘ㅅ’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뒤에 본인이 ‘확실하지 않다’고 덧붙였고요.”
“그럼 내가 거짓말했다고 할 수 있겠네.”
“제가 그렇게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철호는 그 말을 하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만수는 그가 남긴 동전 두 개를 장부에 넣었다. 그날 점심부터 손님들이 줄을 섰다. 법정에 들어갈 사람들, 재판 결과를 기다리는 가족들, 법원 뒤편에서 일하는 배달원. 만수는 주문을 받으며 자기 이름이 재판 기록에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윤아는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오후 늦게 그녀는 검사실 회피가 접수된 문서를 만수에게 보여 주지 않고, 일반적인 안내만 전달했다. “아버지가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으면 질문에 답할 의무는 없습니다. 변호인 도움을 받으세요. 제가 어떤 질문을 받을지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말 말고, 네가 듣고 싶은 게 뭔지 말해.”
“그건 검사로서도 딸로서도 지금 대답할 수 없어.”
만수는 화가 나 가게 문을 닫으려다 손을 멈췄다. “그럼 내가 말할 건 내가 정할게.”
“그래. 다만 네가 확신하지 않는 일을 확실한 것처럼 말하지 마.”
“그건 나도 안다.”
“아버지는 예전에 그렇게 하지 않았어.”
전화가 끊겼다. 만수는 윤아의 마지막 말을 곱씹었다. 사실이었다. 그는 불확실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겁이 나서 번호판을 지웠다. 그 차이를 지금 말하지 않으면 딸과의 대화는 다시 한 번 다른 문장으로 바뀔 터였다.
그날 저녁 철호가 검찰청에 제출한 업무 메모가 새 담당 검사에게 전달됐다. 메모에는 초안을 받아 적은 날짜와 진술자 이름, 삭제된 문장 일부가 남아 있었다. 윤아는 사건과 이해관계가 있어 자료 검토에서 제외됐다. 새 담당 검사는 현재 차량 사고의 정비 기록과 16년 전 사고 기록이 연결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교통사고 조사관에게 추가 분석을 요청했다. 오래된 차 번호가 일치한다 해도 같은 차량이라고 단정할 수 없었다.
만수는 정문 앞 가게에서 기다리다 윤아가 퇴근하는 모습을 봤다. 그는 밖으로 나갔다. 윤아는 멈췄지만 돌아오지는 않았다.
“네가 검사로 못 듣는다면 딸로서 들을 수 있을 때 말하겠다.”
“오늘은 딸로서도 들을 수 없어.”
“알아. 그래도 나는 말할 준비를 해야 해.”
윤아는 잠깐 만수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 말은 고마워. 하지만 사과를 먼저 받고 싶어. 진술이 뭐였는지 듣고 나서.”
“그럴게.”
“약속하지 마. 먼저 네가 한 일을 말해.”
그녀는 돌아섰다. 만수는 따라가지 않았다. 딸이 먼저 필요한 것을 말해 준 건 오랜만이었다. 그는 그 말을 받아 적지 않고 기억하려 했다.
다음 날 참고인 면담에 앞서 변호사가 만수와 함께 검찰청에 갔다. 조사실에는 새 담당 검사와 수사관, 기록을 받아 적는 직원이 있었다. 윤아는 없었다. 만수는 의자에 앉자마자 손바닥을 무릎에 눌렀다. 검사는 먼저 그가 당시 사고 현장에 있었는지 물었다.
“예. 법원 뒤편 골목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차량을 보셨습니까?”
“회색 승합차를 봤습니다. 차 뒤쪽이 지나갈 때 번호판 첫 글자를 본 것 같습니다.”
“어떤 글자입니까?”
만수는 입을 다물었다. 자기 안에서 오래 굳은 글자가 올라왔다. “ㅅ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당시에는 확신했습니까?”
“그때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며칠 뒤 진술을 바꾸면서 확실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누가 바꾸라고 했습니까?”
만수는 경찰 연락관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다.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니 괜한 일에 엮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직접 협박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그 말을 핑계로 삼았습니다.”
변호사가 질문을 멈춰 달라고 요청했다. 만수는 물을 마시고 계속할지 스스로 결정했다. “그 사람은 제게 문장을 어떻게 쓰라고 지시하지 않았다고 기억합니다. 제가 겁이 나서 서명했습니다.”
검사는 확인 질문을 했다. “그러면 진술을 바꾼 건 본인의 선택이라는 말입니까?”
“네. 압박이 있었지만, 마지막 서명은 제가 했습니다.”
검사는 그가 사고 현장에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물었다. 만수는 아내가 병원으로 옮겨진 뒤에도 경찰이 올 때까지 길가에 서 있었다고 했다. “사고 순간에는 혼자였습니까?”
“딸은 집에 있었습니다. 그날은 열네 살이었고, 제가 사고를 봤다는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따님과 사건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까?”
“차가 어두워서 못 봤다고 했습니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조사실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만수는 손바닥을 무릎에서 떼었다.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제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제 선택이었어요.”
검사는 그 진술을 그대로 기록했다. 변호사는 질문이 끝난 뒤 만수에게 물을 한 잔을 건넸다. 그는 고맙다고 말하고, 진술서를 한 줄씩 읽었다. 경찰 연락관의 압박을 확실한 협박으로 적지 않았고, 자기 서명의 책임을 빼지 않았다.
조사는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만수는 그날 본 것과 기억나지 않는 것을 분리해 말했다. 차량의 깨진 뒷창문, 젖은 도로, 번호판 첫 글자. 그가 놓친 나머지 숫자와 운전자의 얼굴. 그는 어느 것도 더 선명하게 만들지 않았다.
조사가 끝나고 나오는 길, 철호가 복도 끝에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진술을 마치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만수는 그에게 다가갔다. “네가 그 문장을 지웠다고 말해.”
“제가 적은 초안에서 삭제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공식 기록에 넣으라고 지시받았다는 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게 네가 아는 전부야.”
“네.”
만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서로를 용서하지 않았고, 지금 용서할 필요도 없었다.
윤아는 밤에 전화를 걸었다. “새 담당 검사에게 아버지 조사 내용이 보고됐어. 나는 열람하지 않았어. 다만 아버지가 번호판을 확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건 들었어.”
“맞아. 내가 기억하는 건 그 글자고, 확신은 아니야.”
“그 말이 법원에 남을 수 있어.”
“남겨야지.”
윤아는 잠시 침묵했다. “엄마 사고 기록을 다시 볼 수 있는지 알아보겠지만, 내가 맡을 수는 없어.”
“알아.”
“그리고 난 아직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았어.”
만수는 숨을 들이켰다. “그것도 알아.”
전화를 끊기 전 윤아는 말했다. “다음 주 일요일, 가게 문 닫고 밥 먹을래? 사건 얘기는 하지 말자.”
만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 네가 먹고 싶은 걸 해 둘게.”
“그 말도 하지 마. 그냥 시간만 비워 둬.”
통화가 끝났다. 만수는 메뉴판 뒤에 다음 주 일요일 날짜를 적었다. 약속은 식사 한 끼뿐이었다. 오래된 사고의 차량도, 철호가 지운 문장도, 딸이 기억한 침묵도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먼저 결론을 정하지 않았다.
다음 날 검찰에서 현재 사건 차량의 정비 기록 원본이 도착했다. 사고 전날 차는 공업사에 입고됐지만, 출고 시각이 수기로 수정돼 있었다. 만수의 옛 메모에 적힌 번호판 첫 글자와 현재 피고 차량의 번호는 같았지만, 당시 차량 등록 기록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새 담당 검사는 철호에게 원본 기록의 보존 경위를 다시 묻기로 했다.
만수는 가게 문을 열며 철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증언하겠습니다. 기억과 확신을 나눠서 말하겠습니다.’ 철호는 답 대신 짧은 이모티콘 하나를 보냈다. 만수는 윤아에게도 가게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을 쓰다가 지웠다. 딸이 부탁한 것은 변명이 아니라 비워 둔 시간이었다. 그는 메뉴판 아래에 다음 일요일은 쉰다는 종이를 붙였다. 단골이 무슨 일이냐고 묻자 만수는 딸과 밥을 먹는다고 답했다.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다. 국솥의 불을 낮추고 나니, 늘 장사 뒤로 미뤄 두었던 하루가 처음으로 눈앞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