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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 도서관의 심야 사서2화

대마법 도서관의 심야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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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인장이 찍힌 밤의 업무

발소리가 바로 등 뒤에서 멈췄다.

한이든은 검은 책을 품 안에 밀어 넣고 몸을 돌렸다. 공중에 매달린 유리등이 별자리처럼 흔들리며 한 사람을 비추고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소녀였다. 회색 망토의 어깨에는 종이 새 몇 마리가 앉아 있었다. 소녀는 이든의 얼굴보다 손등의 붉은 인장을 먼저 보았다.

“손 보여 줘.”

“누구십니까?”

“질문 순서가 반대야. 네가 여기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부터 말해.”

이든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발꿈치가 바닥에 놓인 책 한 권을 건드렸다. 책은 비명을 지르듯 얇은 금속음을 내고 저절로 몇 장을 넘겼다.

소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 책 밟지 마.”

“죄송합니다.”

이든은 급히 발을 치웠다. 책은 바닥을 미끄러져 서가 아래로 달아났다.

“사과할 대상이 사라졌는데?”

“그래도 해야 할 말이라서요.”

소녀는 잠깐 이든을 바라보다가 망토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종이는 손가락 사이에서 접히더니 작은 새가 되었다. 새가 날아오르자 주변 통로의 푸른 불빛이 하나씩 켜졌다.

“나는 미라 벨. 야간 보조 사서야. 여긴 아르카나 무한 도서관.”

“도서관이라고요?”

“네가 지금 서 있는 곳을 다른 말로 부를 수 있으면 해 봐.”

이든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책장들은 보이지 않는 중심을 따라 둥글게 솟아 있었다. 공중에 뜬 복도 사이로 종이 새가 날았고 작은 책 한 권이 그 뒤를 쫓았다.

“……도서관 말고는 어렵겠네요.”

“그럼 손.”

“먼저 집에 돌아가야 합니다. 가족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돌아갈 문은 없어.”

“문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다시 나가면 됩니다.”

“그 문은 네가 들어오는 동안 닫혔어.”

이든은 휴대전화를 켰다. 화면은 켜졌지만 시간도 통신 표시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메시지가 그대로 떠 있었다.

오빠?

“이쪽 시간은 얼마나 지났습니까?”

“어디 기준?”

“제가 살던 곳이요.”

“그건 아직 몰라. 통로마다 흐름이 다르니까.”

이든의 손가락이 휴대전화 가장자리를 세게 눌렀다. 미라는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서야 손을 내밀었다.

“정말 돌아가고 싶으면 손등부터 확인해야 해. 인장이 있는 사람은 업무 중에 통로를 열 수 있어.”

“제가 사서라는 뜻입니까?”

“인장에 그렇게 적혀 있잖아.”

이든은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선은 도장처럼 둥글게 닫혀 있었다. 안쪽의 글자는 눈을 돌릴 때마다 달라졌다.

“제가 찍은 적은 없습니다.”

“사서 인장은 본인이 찍는 게 아니야. 도서관이 네 손에 찍어.”

“왜 저한테요?”

“그건 나도 확인 중이야. 그러니까 손을 보여 줘.”

이든이 손을 내밀자 인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검은 책의 표지가 품 안에서 떨었다.

미라는 곧장 손을 놓았다.

“검은 책도 가져왔네.”

“이 책을 아십니까?”

“제목이 없지. 분류 기호도 없고.”

“반납함에서 발견했습니다. 등록되지 않은 책이라 확인하려고—”

“여기서도 반납할 생각이야?”

“책은 반납해야 합니다.”

미라는 처음으로 아주 짧게 웃었다.

“좋아. 안내 데스크로 와. 귀환만 찾으면 책장들이 너를 길 잃은 손님으로 분류할 거야.”

“손님으로 분류되면 어떻게 됩니까?”

“사서보다 귀찮아져.”

미라가 앞장섰다. 이든은 검은 책을 놓지 않고 뒤를 따랐다.

원형 서고의 바닥에는 표식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두 걸음마다 가느다란 은빛 선이 나타났다. 한 번 길을 놓치자 바로 옆 서가의 책등이 동시에 돌아갔다.

“멈춰.”

미라가 손을 들었다.

책등의 글자들이 이든 쪽을 향했다. 수십 권의 책이 입을 벌린 것처럼 펼쳐졌다.

“방문 목적을 말해.”

이든은 숨을 삼켰다.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속삭임이 잠잠해졌다.

“좋아. 거짓말은 아니네.”

“그걸 어떻게 압니까?”

“책장이 네 대답을 삼키지 않았으니까.”

안내 데스크는 두 서가가 겹쳐 만든 좁은 틈 안에 있었다. 책상 위에는 램프 하나와 빈 대출증 묶음 그리고 작은 종이 카트가 놓여 있었다.

미라는 대출증 한 장을 이든 앞에 밀었다.

“이름을 써.”

이든은 펜을 들었다. 대출증의 칸에는 이름이 아니라 ‘현재의 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름 칸이 없는데요.”

“진짜 이름은 필요 없어. 이름을 숨기는 손님도 있으니까.”

이든은 가장 짧은 문장을 적었다.

‘한서윤에게 돌아가고 싶다.’

글자가 번지더니 대출증의 빈 칸 안으로 스며들었다. 미라는 대출증을 확인하고 서랍을 열었다.

“이제 첫 업무.”

“이게 귀환과 관련 있습니까?”

“심야 사서가 되면 제한된 서가 이동 권한을 얻어. 권한은 업무 기록으로 늘어나. 반납을 처리해야 통로를 열 수 있어.”

미라는 카트에서 작은 파란 책을 꺼냈다. 표지에는 ‘분실물의 안전한 귀환’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서가 번호는 지워져 있었다.

“이 책부터 분류해.”

“유실물 서가로 보내면 되지 않습니까?”

“그렇게 단순했으면 네게 시키지도 않았어.”

책이 미라의 손에서 빠져나와 책상 위를 달렸다. 파란 표지가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펄럭였다. 이든이 잡으려 하자 책은 책상 아래로 숨었다.

“잡지 마!”

늦었다. 이든의 손가락이 책 모서리를 건드리자 손등의 인장이 번쩍였다. 시야 가장자리에 가느다란 글자와 빛의 선이 겹쳤다.

어두운 방. 아이의 손. 닫힌 창문. 누군가 책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장면은 곧 사라졌다. 이든은 책상 모서리를 짚었다.

“방금 그건……”

“서지안이 열린 거야.”

“서지안?”

“사서가 책의 진위와 분류를 읽는 감각. 네 경우에는 아직 초급이야. 표지에 쓰인 말과 실제 내용이 다르다는 정도만 보여 줬을걸.”

이든은 파란 책을 바라보았다. 표지에는 분실물이라고 쓰였지만 방금 본 것은 책을 잃어버린 아이의 기억이었다.

“책이 분실된 게 아니라 책을 가진 사람이 길을 잃은 겁니까?”

“정확히는 둘 다야. 이 책은 대출자가 책을 반납할 수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돌아왔어.”

“그럼 반납 처리하면 되겠네요.”

“반납은 본문을 닫는 일이 아니야. 책이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 확인하는 일이야.”

미라가 책상 위를 세 번 두드렸다. 파란 책이 멈췄고 표지에 글자가 떠올랐다.

반납할 장소를 말해.

이든은 책을 펼치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젖은 가장자리와 한쪽만 닳은 모서리 그리고 표지 안쪽의 희미한 잉크 자국. 마지막 대출 흔적은 있지만 반납처가 비어 있었다.

“대출자는 책을 품에 안고 있었고 창문이 닫힌 방에 있었습니다. 책이 필요한데도 반납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추측.”

“그럼 확인하겠습니다.”

이든은 책에 손을 대지 않고 물었다.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입니까?”

파란 책이 떨렸다. 표지의 글자가 바뀌었다.

‘비가 멎지 않는 서가.’

미라의 표정이 굳었다.

“그 분류는 없어.”

“그러면 새로 만들면 안 됩니까?”

“사서는 마음대로 분류를 만들지 않아.”

“하지만 책이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이든은 낡은 분류표를 펼쳤다. 자연과 재해. 개인 기록. 귀환과 이별. 세 항목 사이에 파란 책의 흔적이 겹쳐 있었다.

“이 책은 ‘귀환과 이별’에 가깝습니다. 다만 목적지가 아니라 반납할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미라는 빈 라벨을 꺼내 건넸다.

“주석을 써. 본문은 바꾸지 말고 여백에만 조건을 남겨.”

“어떤 조건입니까?”

“네가 판단해.”

이든은 라벨을 책 안쪽 여백에 붙였다. 그리고 적었다.

‘길을 잃은 독자가 다시 찾을 때까지 귀환 서가에서 대기한다.’

인장이 따끔하게 타올랐다. 글자가 여백 속으로 스며들었다. 파란 책은 달아나지 않았다. 책등에 은빛 선이 생기며 반납 카트 안쪽으로 돌아갔다.

“초급 주석. 조건이 간단하고 본문을 건드리지 않았어. 통과.”

“그럼 이 책은 안전합니까?”

“지금은. 하지만 반납 기한을 넘긴 금서라면 이야기가 달라져.”

미라는 카트 아래의 검은 봉투를 가리켰다. 봉투에는 붉은 실이 감겨 있었고 실 끝마다 작은 눈 모양이 매달려 있었다.

“금서는 두 명의 증인과 심야 사서 인장이 있어야 열람할 수 있어. 함부로 읽으면 책이 독자의 결핍을 먹고 현실을 바꿔.”

“그런 책도 반납을 받습니까?”

“그래서 사서가 있는 거야. 책을 없애는 게 아니라 기한과 대가를 확인하는 사람.”

천장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울렸다.

“임시 근무 승인. 신입 사서 한이든은 제3조에 따라 반납 업무를 수행하라.”

“누구입니까?”

“규율관 오르도 세븐.” 미라가 대답했다. “너를 감시할 사람.”

“새벽 네 시까지 임시 등록을 완료하지 못하면 출입 권한을 회수한다.”

“귀환은요?”

“지구 좌표만으로는 귀환할 수 없다. 관장급 권한 또는 공동 귀환권이 필요하다.”

목소리가 사라졌다. 이든은 굳은 얼굴로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지구를 아는군요.”

“네가 대출증에 적었으니까.”

“그 전에는요?”

“도서관은 필요한 것만 알면 돼.”

미라는 새 봉투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렸다.

“마지막 업무야. 출처가 비어 있는 반납물 확인.”

이든은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찢어진 책갈피와 얇은 회색 끈이 들어 있었다. 검은 종이 위에는 은색 선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이든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서윤의 책상 서랍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선의 끝에는 아주 작은 글자가 있었다.

한서윤.

“이 물건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출처가 비어 있다고 했잖아.”

“확인할 수 없습니까?”

“반납 통로에 가면 흔적은 남아 있을 거야. 대신 통로 안쪽은 네 권한으로 한 칸만 열 수 있어.”

“열겠습니다.”

“가능성만으로 움직이면 분류를 틀릴 수 있어.”

“그래서 확인하려는 겁니다.”

미라는 이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반납 통로에서는 네가 가장 듣고 싶은 소리를 낼 수도 있어. 따라가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뭘 안다는 건데?”

“모릅니다. 하지만 기다리게 둘 수는 없습니다.”

이든은 휴대전화의 마지막 메시지를 다시 켰다. 오빠? 라는 글자가 어두운 화면에 남아 있었다. 통화도 답장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약속은 사라지지 않았다.

곧 갈게.

그는 책갈피를 봉투에 넣고 인장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붉은 인장이 반납 도장처럼 빛났다. 안내 데스크 뒤의 벽이 갈라지며 좁은 문이 나타났다. 문 너머에서는 해온시의 비와 닮은 빗소리가 들렸다.

“한 칸만 열어. 보이는 것만 기록해. 손대지 말고 가져오지 마.”

“사서 업무군요.”

“이제야 알아들었네.”

이든은 문턱을 넘었다. 통로 벽에는 수없이 많은 반납표가 붙어 있었다. 왕국의 인장도 있었고 알아볼 수 없는 별자리도 있었다. 그 사이에서 은색 선 하나가 바닥을 타고 안쪽으로 이어졌다.

선 끝에서 누군가 낮게 속삭였다.

“반납할 책을 잃어버리지 마세요.”

검은 책에서 들었던 목소리였다. 미라가 그의 뒤에서 숨을 삼켰다.

통로 가장 깊은 곳에서 종이 한 장이 천천히 뒤집혔다. 빈 여백 위에 검은 잉크가 번졌다.

‘다음 반납자: 한서윤.’

이든은 인장에 손을 얹은 채 통로 안쪽을 바라보았다.

새벽 네 시까지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는 한 걸음 더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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