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산신령 민원 콜센터는 새벽에만 연결된다3화

산신령 민원 콜센터는 새벽에만 연결된다

산신령 민원 콜센터는 새벽에만 연결된다

AD
스폰서 광고

3화: 전화선을 끊지 않은 밤

책상 위 지도에 드리운 그늘은 형광등을 켜도 사라지지 않았다.

배성훈이 천장 스위치를 눌렀다. 절전 상태였던 조명이 모두 밝아졌다. 유리는 지도에 비친 검은 경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손등도 어두워졌다. 종이에 묻은 얼룩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오는 그늘이었다. 사무실에는 그만한 크기의 물건이 없었다.

“창문에 뭐가 보여요?”

그녀가 묻자 관리자는 주차장이라고 답했다. 유리는 작은 지붕과 붉은 천을 봤다고 말했다. 보이는 것을 숨기지 않았지만 같은 것을 본 증인도 없었다. 배성훈은 휴대전화로 창문을 촬영했다. 사진에도 가로등 세 개와 주차된 차량 두 대뿐이었다.

유리는 창문을 등지고 앉았다. 업무 휴대전화에서는 구조대가 기범의 발목을 지지하고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파란 탱크 아래로 접근 가능한 구간이 있습니다.”

정우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료가 먼저 확인한 뒤 기범을 보조해 올라가겠다고 했다. 왼쪽 경사면은 낮고 넓었지만 기범은 그쪽에 물이 흐른다고 주장했다. 실제 조명에는 젖은 바닥만 보였고 흐르는 물은 없었다.

유리는 기범에게 노란 천을 계속 찾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가 그렇다고 하자, 현재 길에 있는 구조대원의 말과 실제 보이는 표식을 같이 확인해 보자고 했다. 등산객은 노인이 오른쪽으로 가라고 한다며 목소리를 낮췄다.

“그분이 지금도 옆에 계십니까?”

“뒤에요. 제가 가져갈 게 있다고 해요.”

“무엇을 가져가라고 합니까?”

“그늘이요. 나무가 아니라 제 걸……”

유리는 메모를 멈췄다. 사람이 그늘을 어떻게 가지고 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노인의 요청을 동의란에 넣는 순간, 이해한 것으로 처리될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말뜻을 대신 정하지 않고 기범에게 자기가 이해했는지 물었다. 그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럼 모르는 약속은 하지 마세요. 지금 다친 발을 보고 있는 분들과 같이 움직여 주세요.”

구형 단말에서 노인의 낮은 목소리가 났다.

“그대가 대신 내놓으면 쉬워질 일이오.”

유리는 수화기를 귀에 더 붙이지 않았다.

“제가 내줄 수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대의 그늘도 길지 않소.”

지도 위 어둠이 손목까지 올라왔다. 유리는 놀라 팔을 당겼다. 그늘은 팔을 따라오지 않고 지도 위에 머물렀다. 그녀는 손목의 색이 돌아오는 것을 확인했다. 노인의 말이 곧 신체의 변화를 뜻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사무실의 현상과 요구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배성훈이 책상 옆으로 의자를 가져왔다. 그는 전기 설비 담당자에게 당장은 선을 분리하지 말라고 말한 뒤 접속표를 펼쳤다.

“이 전화는 현재 네트워크에 등록돼 있지 않답니다. 벽 안의 오래된 선이 남아 있을 수는 있지만 연결되는지는 모른대요.”

유리는 표의 삼 번 표시를 보았다. 서낭 교환 옆에 연필로 이름이 적혀 있었다. 오금례. 주민의 전화번호를 전달했을 때 관리자가 잠깐 머뭇거렸던 이유가 보였다.

“아까 이 이름을 봐서 연락하신 거죠?”

배성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주민 명부에도 있어서요. 옛 회선 민원 같은 게 남아 있긴 했습니다. 실제 전화가 되는 건 처음 봅니다.”

“남아 있는 민원이 어디 있습니까?”

그는 뒤쪽 철제 캐비닛을 가리켰다. 아직 현재 시스템으로 옮기지 않은 접수 대장들이 있었다. 유리는 지금 그걸 보러 갈 수 없었다. 관리자에게 대장을 찾아 달라고 하고 오금례와의 통화를 이어 받았다.

“기범 씨가 왼쪽으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목소리가 그늘을 내달라고 계속 요구합니다.”

오금례는 답을 바로 하지 않았다.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자기 집에 옛 마을 지도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늘은 서낭재에 쉬던 자리를 말하기도 했어. 길손이 놓고 가는 물건을 부르는 말로 쓰기도 했고. 뭘 달라는지는 그 목소리에 물어야 해. 나는 사람들 말만 들었어.”

유리는 노인에게 그늘이 무엇인지 다시 물었다. 노인은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누워 쉬던 사람이 나가면 빈자리가 남지 않소.”

“그 빈자리를 채울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그런 말은 그대가 했소.”

유리는 질문을 지웠다. 사람을 요구한다는 추측을 상대의 입에 넣어 주고 있었다. 노인이 웃는 소리가 나자 오금례가 급하게 말했다.

“대신 무엇을 주겠다고 먼저 말하지 마. 저쪽에서 말한 것도 아닌데 네가 제안했다고 적힐 수 있어.”

유리는 화면에서 요청 사항을 확인했다. 그늘을 되돌려 달라는 말 아래, 아직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요청자를 특정할 수 없음, 처리 보류. 시스템이 허용하는 짧은 문장이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범위였다.

현장에서 기범이 숨을 들이켰다. 한 발을 떼려다가 돌담이 다시 나타났다고 했다. 우석은 그가 기대려는 방향에 손을 내밀었지만 손에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고 전했다. 유리는 이동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기범에게 질문을 바꿨다.

“처음 산에 오를 때 파란 탱크를 보셨습니까?”

“봤어요. 밑에서 차가 돌아갔어요.”

“그 차 뒤에 뭐가 있었는지 기억나세요?”

기범은 한참 생각하다가 하얀 개라고 답했다. 오금례가 짧게 말했다.

“우리 집 개야. 차 오면 탱크 밑 울타리로 넣어.”

현재의 기억 하나가 옛길 위에 걸렸다. 유리는 기범이 본 물건을 더 물었다. 탱크 밑에 묶인 노란 천, 울타리 문에 그려진 빨간 화살표, 떨어진 개 밥그릇. 해수가 현장 위치에서 확인해 줄 수 있는 것은 노란 천과 빨간 화살표였다. 밥그릇은 오금례가 밤에 가져갔다고 했다.

유리는 그 사실까지 전달했다.

“밥그릇이 지금 없어도 잘못된 길은 아닙니다. 아까 집으로 가져갔다고 합니다. 천과 화살표는 그대로 있는지 현장에서 보고 계세요.”

기범이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숨을 내쉬었다.

“그럼 나무가 없어도…….”

“사라진 것을 전부 찾아야 내려오는 건 아닙니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을 같이 봐 주세요.”

우석이 기범의 몸을 지지했다. 동료가 먼저 올라간 곳에서 탱크 조명을 비췄다. 기범은 천을 본다고 두 번 말했다. 수화기에는 짚신 끄는 소리가 가까워졌고, 유리의 책상 밑에서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발을 의자 안쪽으로 당겼다. 시선을 내리면 더 오래 그쪽을 봐야 할 것 같았다. 대신 우석이 보고하는 이동 거리를 받아 적었다. 세 걸음, 잠시 멈춤, 다시 두 걸음. 이동은 구조대가 결정했고, 유리는 기범이 자꾸 들려오는 다른 방향의 말에 답하지 않도록 현재 표식을 물었다.

노인이 처음으로 큰 목소리를 냈다.

“그늘을 누구에게 맡기고 가려 하오!”

기범이 멈췄다. 유리도 몸이 굳었지만 통화를 끊지는 않았다. 그녀는 부상자의 이름을 불렀다.

“윤기범 씨, 지금 뭘 보고 계십니까?”

“노란 천이…… 찢어졌어요.”

해수가 답했다.

“맞습니다. 아래 끝을 길게 찢어서 묶었습니다. 제 표식이에요.”

기범이 다시 움직였다. 책상 밑의 짚신 소리가 멎었다. 그늘의 경계가 지도에서 조금 뒤로 물러났다. 유리는 그것을 회수되는 그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사람이 이동하는 동안 생긴 변화를 그대로 적었다.

잠시 뒤 우석이 임도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동료가 기범을 차량 쪽으로 옮기는 동안, 해수가 직접 등산객 얼굴과 배낭을 확인했다. 기범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별도의 전화기나 통신 장비는 없었다.

유리는 휴대전화에서 들리는 소리가 사무실 수화기에도 남아 있는지 확인했다. 지금까지는 같은 현장의 질문과 대답이 두 기기에서 겹쳤지만, 기범이 차량 문 앞에 닿자 구형 수화기는 다시 바람 소리만 냈다.

“노란 배낭도 가지고 나왔습니까?”

해수가 그렇다고 답했다. 지퍼 옆 고리가 녹슬고 천이 오래된 것 같지만 기범의 이름표는 붙어 있었다. 기범은 지난주 새로 산 가방이라고 했다. 유리는 그 차이를 뒤로 남겼다. 현재 부상자에게 더 묻는 일보다 치료가 먼저였다.

우석은 인계 장소와 현재 상태를 알려 준 뒤 현장 통화를 마쳤다. 해수는 도로에서 접근할 수 있는 범위에 머물며 나무 제거 자료를 더 찾아 보겠다고 했다. 혼자 다시 옛길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유리는 구형 수화기에 말했다.

“윤기범 씨가 현재 길로 나왔다는 확인을 받았습니다. 구조 요청은 전달됐습니다. 그늘에 관한 요청은 확인이 더 필요합니다.”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바람 사이로 종소리만 났다. 복도의 종은 움직이지 않았다. 유리는 남길 연락 방법을 물었다. 답이 없어서 지금까지 확인한 상황을 한 번 더 읽었다.

다섯 시 십이 분. 첫 번째 새가 주차장 위를 지나가는 순간 구형 단말에서 짧은 잡음이 났다. 통화가 끊겼다. 유리의 손가락에는 수화기 줄을 감았던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책상 위 그늘도 사라졌다.

배성훈이 대장 한 권을 올려 놓았다.

“찾았어요. 현재 시스템에서는 제목만 나오는데, 여기에는 원문이 있어요.”

서낭재 그늘 반환 요청. 같은 제목이 오래된 종이에 적혀 있었다. 접수 날짜는 당산나무를 베기 한 달 전이었다. 유리는 해수가 전해 준 제거 날짜와 나란히 적었다. 요청이 나무가 잘리기 전에 들어온 셈이었다.

처리 결과란에는 완료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처리자 이름은 없었다. 결재자 칸에는 지금 센터의 관리자와 같은 이름이 있었다. 배성훈은 대장의 모서리를 쥐었다.

“이거 제가 도장 찍은 건 맞습니다. 그때는 마을의 시설 민원으로 받았어요. 바깥에 넘겼다는 뜻으로 완료 처리했고요.”

“누구에게 넘기셨습니까?”

그는 종이를 한 장 더 넘겼다. 담당 부서 수신란이 비어 있었다. 유리는 관리자 얼굴을 보았다. 전화가 울리던 처음, 나무 관련 건만 끝내라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대장의 요청 내용은 두 줄이었다.

나무가 없을 때 그늘을 맡을 이를 정해 둘 것.
삼 번 회선에서 약속을 받았음.

배성훈이 자기 서명을 손톱으로 긁었다. 잉크가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승인했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유리는 그 말도 적었다. 모른다는 말이 승인 사실을 없애 주지는 않았고, 종이에 적힌 문장이 실제 계약인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오금례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이미 집 앞에 나와 탱크 쪽을 보고 있다고 했다. 사람이 돌아온 것을 확인했다고 말하자, 그녀가 긴 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돌아왔네.”

“전에 못 돌아온 사람이 있었습니까?”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전화를 받던 사람이 있었어. 마지막에는 저 목소리가 아니라 자기 목소리로 대답했지. 이제 그늘을 맡겠다고.”

유리는 대장의 빈 이름칸을 보았다. 오금례는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어쩌면 잊었고, 어쩌면 말할 수 없었다. 유리는 지금 당장 캐묻지 않고 다시 확인할 시간을 정했다.

아침 담당자가 출근하기 전, 유리는 현재 인계 메모를 별도로 작성했다. 부상자 구조 확인, 구형 회선 경로 미확인, 그늘 요청 처리 보류. 마지막 줄에 과거 승인 원문 발견이라고 썼다. 배성훈에게도 자기 확인란을 채우게 했다.

종이가 프린터에서 나오는 동안 전화가 한 번 더 울렸다.

이번에는 삼 번이 아니었다. 정상 작동하는 첫 번째 단말이었다. 화면에는 다른 산 아래 마을의 번호가 표시됐다. 유리는 붉은 자국이 남은 손으로 헤드셋을 고쳐 썼다.

“서림군 야간 민원센터입니다.”

전화 속 여자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산의 그늘은 왜 옆 산으로 보내셨습니까?”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