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약사의 처방전

2화: 바르는 약의 금기
약국 시계가 멈춘 건 17초였다.
미래는 초침이 다시 움직이는 걸 확인한 뒤에야 숨을 내쉬었다. 권지후는 나크의 팔을 잡으려다 그녀에게 제지당했다. 금빛 선은 피부 아래에서 맥박처럼 빛났고, 나크가 움찔할 때마다 조금씩 길어졌다. 미래는 장갑을 새것으로 갈아 끼고 선에 손대지 않은 채 사진을 찍었다. 나크는 약품 상자 뒤에 몸을 웅크렸다.
“그걸 만지면 안 돼.”
“아픈가요?”
“던전이 찾는다.”
지후가 낮게 웃었다. “문양은 마력 반응입니다. 이 생물의 회수 절차를 밟으면 협회 연구소에서 검사할 수 있어요.”
“연구소에서 동의도 받나요?”
“몬스터에게 동의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나크가 카운터 아래서 고개를 들었다. “나크 말 알아듣는다. 싫다.”
지후의 입술이 굳었다. 그는 규정상 몬스터를 환자로 분류할 수 없다고 했지만, 미래는 응급처치 기록에 나크의 동의가 있었다고 적었다. 지후는 처방 약품을 회수하려면 사용량과 환자 상태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둘은 약국 안에서 검사하되 나크가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는 조건을 정했다.
미래는 나크에게 마스크 조각을 보여 줬다. 안쪽의 회색 가루는 금속성 냄새가 났고, 손전등에 비추자 작은 결정이 반짝였다. 흡입 약이 직접 호흡을 낫게 한 건지, 마스크 안의 가루와 반응한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남은 약을 쓰지 않고 포장과 용량을 기록했다.
“던전에서 무슨 일을 했어요?”
“짐 옮겼다. 동료들… 더 안쪽.”
“왜 혼자 나왔죠?”
나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팔의 문양이 다시 번쩍이자 그는 마스크 파편을 움켜쥐었다. 미래는 그가 숨을 참는 것을 보고 손바닥을 펴 보였다. 호흡을 천천히 하라는 뜻이었다. 나크는 그녀의 호흡을 따라 하다가 이내 기침을 했다. 문양은 조금 흐려졌다.
지후는 검사 키트를 펼쳤지만, 인간용 혈액 반응 시약뿐이었다. 종족이 다른 혈액에 쓰면 결과를 해석할 수 없었다. 그는 소변 검체와 체온만 확인하고, 나크의 몸에 더 손대지 않겠다고 했다. 그 대신 자신의 휴대형 마력계를 팔 가까이 가져갔다. 바늘은 문양을 향해 떨다가 계기판 끝까지 치솟았다.
“이건 약 반응이 아닐 수 있어요.” 지후가 말했다. “기생성 신호라면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격리실에 데려가면 증상이 악화할 수 있어요.”
“감염 여부도 모르면서 환자를 밖에 둘 수는 없습니다.”
미래는 나크에게 약국 뒤편의 작은 상담실을 보여 줬다. 창문은 열리고, 문은 안에서 잠글 수 있었다. 나크는 그곳에 머물기로 했지만, 문을 잠그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을 가둘 생각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지후는 문 앞에 서서 기록을 시작했다.
그때 이다정이 손등을 긁으며 들어왔다. 상처가 난 건 아니었지만, 붉은 병변이 손목까지 번져 있었다. 미래는 일단 상담실 바깥으로 다정을 안내했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환자를 동시에 다루면 교차 오염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약사님, 오늘은 더 가려워요. 어제 바른 연고가 따가웠어.”
미래는 약력 노트를 펼쳤다. 다정은 처방 연고를 사흘간 썼고, 통증이 시작된 뒤에도 중단하지 않았다. 그녀는 통증이 나아지는 줄 알고 양을 늘렸다고 했다. 미래는 약을 더 바르지 않도록 안내하고, 사용 부위를 미지근한 물로 씻었다. 진물이 없고 열도 없었지만, 병변 경계가 전날보다 불규칙했다.
나크가 상담실 문틈으로 다정을 바라봤다. “그 사람, 숨 냄새가 아프다.”
“냄새로 병을 아나요?”
“약초 냄새. 그 반대.”
그는 팔의 문양이 빛날 때마다 다정의 피부가 더 붉어진다고 했다. 미래는 그 말을 무시하지 않았지만 곧장 믿지도 않았다. 약국 조명 아래에서 두 병변을 사진으로 비교했다. 나크의 문양은 손목에서 팔꿈치 쪽으로 가고, 다정의 발진은 반대로 손등에서 팔 안쪽으로 번지는 듯했다.
미래는 아버지의 약초 장부를 꺼냈다. 던전 부산물을 적은 낡은 노트였지만, 종족별 부작용 기록이 일부 남아 있었다. ‘월광 이끼 분말, 인간 피부 염증 완화 가능. 단, 포자 흡입 금지.’ 오늘 나크의 마스크에서 나온 가루가 이끼와 비슷했다. 다만 성분 확인 없이 다정에게 바르는 건 위험했다.
“시험할 수 있는 작은 표본이 있어요.” 지후가 말했다. “협회가 보관 중입니다. 대신 나크를 인계해야 합니다.”
나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정은 두 사람의 말다툼을 끊었다. “내 피부에 먼저 조금만 써 봐요. 싫으면 내가 중단할게.”
미래는 환자 동의가 있어도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대신 장부에 적힌 약초 표본을 확인하기 위해 약국 뒷방으로 갔다. 표본 병은 아버지의 낡은 냉장고 가장 안쪽에 있었다. 봉인지는 온전했고, 라벨에는 채취 날짜와 무게가 적혀 있었다. 미래는 뚜껑을 열지 않고 병을 흔들어 분말 상태만 확인했다.
지후는 휴대형 분석기로 표본을 확인했다. 알려진 독성 수치는 검출되지 않았지만, 인간 세포 반응은 검사할 수 없는 장비였다. 미래는 먼저 팔 안쪽이 아니라 병변 가장자리의 작은 부위에 희석한 연고를 도포하자고 제안했다. 다정은 동의서를 읽고 직접 서명했다. 사용 전 사진을 찍고, 따가움이나 호흡 곤란이 생기면 바로 씻어 내기로 했다.
첫 5분 동안 반응은 없었다. 7분째, 다정의 손등에서 붉은 기가 옅어졌다. 그녀는 가려움이 줄었다고 말했다. 미래는 기뻐하기 전에 피부 온도와 맥박을 확인했다. 갑자기 나크의 팔 문양이 한 줄 더 늘어났다.
“연고를 닦아야 해!” 나크가 소리쳤다.
금빛 선이 바닥을 따라 이어지는 동안 미래는 실험을 멈췄다. 그녀는 다정에게 연고를 씻어 낼지, 먼저 몇 분 더 관찰할지 선택지를 설명했다. 다정은 문양이 번지는 속도를 직접 보겠다며 관찰을 택했다. 미래는 그 결정에 동의하되, 손 저림이나 숨 가쁨이 생기면 즉시 중단하기로 했다.
지후는 약국 문을 잠그고 밖에 대기 중인 협회 직원에게 접근을 막으라고 지시했다. “환자 관찰이 끝나면 나크를 이송합니다.”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요.” 미래가 말했다.
“상태가 나빠지면 강제 조치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나크는 카운터 아래에서 대답했다. “나는 안 간다.”
“그럼 여기서 치료를 계속할 근거를 보여 줘야 합니다.”
지후가 내민 것은 협박만은 아니었다. 그는 계측기의 수치를 보여 주며 문양이 일정한 간격으로 뛰고 있다고 설명했다. 던전 신호가 나크를 추적한다면 약국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주변 사람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 미래는 그의 판단을 듣고 상담실 창문을 열었다. 외부 공기가 들어오자 나크의 호흡은 조금 편해졌고, 문양의 빛도 약해졌다.
다정의 손등은 여전히 붉었지만 열감은 낮아졌다. 미래는 손가락 끝의 감각을 하나씩 확인했다. “엄지와 검지를 맞대 보세요. 제 손가락을 몇 개 들었는지 말해 주세요.” 다정은 두 개, 세 개를 정확히 말했다. 감각 이상은 가벼웠지만, 연고를 계속 바르면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가려움은 거의 없어졌어.”
“증상이 줄었다고 원인이 해결됐다는 뜻은 아니에요.”
“알아. 그래도 참을 만해.”
미래는 병변 주변을 표시하고 사진을 다시 찍었다. 바르는 약을 씻어 내면 반응을 비교하기 어려워질 수 있었지만, 환자의 안전을 위해 더 이상 노출을 이어갈 수 없었다. 다정은 스스로 물수건을 들어 손등을 닦았다. 닦는 동안 금빛 선이 손목 쪽으로 천천히 물러났다. 나크의 문양도 조금 흐려졌다.
“연결이 약 성분 때문인지, 몸의 열인지 구분해야겠네요.” 지후가 말했다.
미래는 아버지 장부에서 약초 표본의 채취 기록을 다시 찾았다. 같은 약초라도 던전 깊이와 보관 시간에 따라 성분이 달라졌다. 아버지는 어린잎과 포자 부분을 별도로 보관하라고 적어 두었다. 오늘 쓴 것은 포자가 섞인 분말일 가능성이 있었다. 미래는 남은 연고와 새 표본을 분리해 봉인했다. 이전에 쓰던 일반 연고도 섞이지 않도록 선반을 비웠다.
나크는 약국 바닥의 빛을 바라보다 손바닥을 펼쳤다. “문양이 번지면 안쪽 문도 깨어난다.”
“문이 열리면 무슨 일이 생기죠?”
“길을 잃은 것들이 나온다. 우리만 아니다.”
미래는 그가 말한 ‘것들’이 무엇인지 더 묻고 싶었지만, 호흡이 불안한 환자를 심문하듯 붙잡을 수 없었다. 대신 던전에서 언제부터 증상이 시작됐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한 질문씩 확인했다. 나크는 동료와 분말을 나눠 담았고, 마스크가 깨진 뒤부터 숨이 막혔다고 했다. 사람 피부에 닿으면 문양이 생긴다는 건 몰랐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지후는 잠깐 눈을 피했다. 그는 예전 보고서에서 던전 식물 분말을 취급한 노동자들의 발진 사례가 있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개인 알레르기로 분류돼 추가 조사가 중단됐다. “그걸 왜 지금 말하죠?” 미래가 물었다.
“당시 제가 보고서 담당이었습니다. 표본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재조사를 요청하지 않았어요.”
지후는 그 선택이 피해를 키웠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옛 보고서를 찾아 열었지만, 열람 권한이 회수돼 있었다. 협회가 그 문서를 다시 숨기려는 건지 단순한 시스템 오류인지 알 수 없었다. 미래는 문서의 파일명과 접근 실패 시각을 적었다.
다정은 손등을 내려다보고 낮게 말했다. “내 병도 그때부터였을지 모르겠네.”
미래는 아직 연결을 단정할 수 없다고 답했다. 다정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녀가 오래 앓은 증상과 던전 약초가 관련이 있다면, 오늘의 치료는 우연한 발견이 아니라 늦은 경고일 수 있었다.
지후는 협회 차량으로 환자들을 옮기자고 다시 제안했다. 이번에는 다정도 나크와 함께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두 사람을 분리하면 반응을 관찰할 기준이 사라지고, 한쪽만 이송하면 약국에 남은 환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었다. 미래는 당장 이송 대신 가까운 응급 진료소에 전화해 상황을 알리고, 현장 관찰 장비를 가져오게 하자고 제안했다.
“거기서도 몬스터를 받지 않을 수 있어요.”
“그렇다면 그 거부도 기록으로 남기고 다른 방법을 찾겠습니다.”
지후는 협회 차고에 있는 이동 진단 장비를 요청했다. 응답은 승인 보류였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자신의 직원 카드를 사용해 장비 반출을 신청했다. 승인되지 않은 반출은 그의 인사 기록에 남게 된다. 그가 카드를 대자 단말기는 붉은 경고를 띄웠다. 지후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때 나크의 팔 문양이 갑자기 밝아졌다. 다정의 손등도 같은 박자로 빛났다. 두 사람이 각자 숨을 들이쉴 때마다 선이 서로를 향해 움직였다. 미래는 약국 바닥에 놓인 약초 봉투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봤다. 봉투 안쪽에서 작은 뿌리 하나가 꿈틀거렸다.
다정의 병변 한가운데에 금빛 선이 찍혔다. 두 문양은 약국 바닥을 가로질러 서로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