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열차 막차의 차장입니다

2화: 세 번 반복된 종착역
열차는 세 번 같은 종착역에 멈췄다.
첫 번째 정차 때 승객은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역 이름은 ‘비 오는 날의 도서관’. 건우는 방송을 하려다 멈췄다. 도서관은 이미 철거됐고, 노선도에 등록된 적도 없었다.
“이 역을 아세요?” 민하가 물었다.
“모릅니다.”
건우는 역의 창문을 들여다봤다. 유리 너머에는 오래된 공공도서관이 있었다. 비 맞은 우산들이 입구에 세워져 있고, 어린아이가 책을 안은 채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승객은 한 명도 없는데, 누군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났다.
열차는 문을 닫고 출발했다.
두 번째 정차는 같은 역이었다. 이번에는 역명이 ‘동쪽 병원 후문’으로 바뀌었다. 승객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하는 그를 막지 않았다. 남자는 문 앞까지 갔다가 돌아섰다.
“저는 병원에 간 적이 없어요.”
“그럼 이 역은 당신 목적지가 아닐 수 있습니다.” 건우가 말했다.
“다른 승객은요?”
“각자 다른 역을 볼 수 있어요.”
남자는 창밖의 병원 후문을 바라봤다. “아버지가 거기 계셨어요. 제가 찾아가지 않은 날.”
그가 승차권을 들어 올렸다. 목적지는 병원 후문이었다. 표를 펀치하면 기억을 잃는다는 안내를 들었지만, 그는 펀치기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잠깐.” 민하가 말했다. “병원에 가지 않은 날을 기억하고 싶으세요, 아니면 그날 일어난 일을 확인하고 싶으세요?”
“둘이 다른가요?”
“네. 장면을 봐도 당신이 왜 가지 않았는지는 설명해 주지 않을 수 있어요.”
남자는 펀치기를 내려놓았다. “그럼 오늘은 내리지 않겠습니다.”
열차가 떠나자 건우는 창문에 비친 정차 표시를 확인했다. 같은 선로, 같은 플랫폼, 같은 시각. 하지만 유리 너머에 나타난 장소는 달랐다.
“열차가 같은 역으로 가는 게 아니에요.” 준수가 말했다. “승객마다 달라지는 걸 한 역으로 보이게 하는 거죠.”
“그러면 종착역은 어디입니까?” 건우가 물었다.
준수는 노선도에서 선로 끝을 가리켰다. “기록상 여기는 막차 차량기지입니다. 하지만 열차는 아직 돌아가지 않았어요.”
두 번째 역을 떠나자 다른 승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붉은 악보 파일을 든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의 표에는 ‘마지막 합주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제가 이 역에서 내려도 되나요?”
“열차는 실제 합주실로 가지 않습니다.” 건우가 말했다.
“그럼 거기서 연주를 들려주나요?”
“당신이 이미 지나온 선택을 비춰 줍니다.” 민하가 덧붙였다.
여성은 악보 파일을 열었다. 표지에는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제가 가르치던 아이들이 마지막 공연을 준비했어요. 저는 계약이 끝나기 전에 지휘를 맡았는데, 그날 공연장에 가지 않았어요. 어머니가 쓰러졌거든요.”
“그 공연을 보고 싶으세요?” 민하가 물었다.
“보고 싶죠. 제가 갔다면 아이들이 어떻게 연주했을지 알고 싶어요.”
“표를 찍으면 그날 공연을 더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대신 실제 기억의 역 하나를 잃을 수 있어요.”
“그 공연의 기억을 잃게 될까요?”
“어떤 역이 사라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성은 악보를 덮었다. “그럼 안 볼게요. 어머니는 그날 밤 제 손을 잡았어요. 그걸 잊고 싶지 않아요.”
그녀는 표를 찍지 않았다. 열차 창문에는 공연장 대신 병원 침대가 잠깐 비쳤다. 어머니는 딸의 손을 잡고 있었고, 악보 파일은 의자 아래 놓여 있었다. 여성은 그 장면을 확인하듯 창에 손을 대었다.
“그날 제가 연주하지 못해 아이들이 실망했을 거예요.”
“그걸 확인하지 않아도 그날을 기억할 수 있어요.” 민하가 말했다.
“네. 그리고 지금도 아이들에게 연락할 수 있죠.”
그녀는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다음 공연은 꼭 보러 갈게. 연주 영상 보내 줘.’ 열차가 움직이는 동안 답장이 왔다. 아이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 각자 연주를 계속하고 있었다. 여성은 악보 파일에서 오래된 사진을 꺼냈다. 무대 뒤에서 아이들과 찍은 사진이었다.
건우는 그 장면을 보며 자기 승차권을 다시 확인했다. 세 번째 정차가 다가왔다.
세 번째 정차가 다가왔다. 건우는 역명을 확인하기 위해 승차권의 반사면을 닦았다. 표면에는 희미한 글씨가 번졌다.
‘동료가 마지막으로 기다린 승강장.’
그의 손이 굳었다.
열차가 멈췄을 때, 창밖은 텅 빈 승강장이었다. 플랫폼 벤치에는 제복을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건우는 그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가슴 주머니에 꽂힌 이름표는 읽을 수 있었다.
서지후.
“그 사람을 알아요?” 민하가 물었다.
“모릅니다.”
“차장님, 표에 이름이 적혔어요.”
“그 이름을 읽었을 뿐입니다.”
준수는 열차 도착 기록을 열었다. “서지후라는 차장은 2년 전 폐선 구간에서 마지막 방송을 했습니다. 그 뒤로 행방불명 처리됐어요.”
“왜 기록을 숨겼습니까?”
준수는 화면을 덮었다. “제가 지운 기록입니다.”
건우는 그의 앞을 막았다. “설명하세요.”
“지후 씨가 마지막으로 내린 역이 폐쇄 구간이었어요. 그 기록이 공개되면 역무원들이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열차가 사라진 승객을 데려갔다고 생각해도, 저는 일단 운행 기록에서 지웠어요.”
“그게 사람을 찾는 데 도움이 됐나요?”
“아니요.”
“그럼 왜 지금까지 숨겼죠?”
“저도 그 역을 기억에서 지웠으니까요.”
민하가 한숨을 내쉬었다. “기록을 숨기면 기억이 덜 아플 거라 생각했겠죠.”
준수는 고개를 숙였다. “제 잘못입니다.”
건우는 열차 문을 열지 않았다. 창문 속 지후는 여전히 벤치에 앉아 있었다. 승객들은 각자 자기 장면을 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빈 교실에서 시험지를 찢었고, 다른 사람은 밤길에서 전화를 걸었다. 세 번째 정차 역은 모두에게 다른 곳이었다.
“이제 내려도 됩니까?” 아버지의 병원 후문을 본 남자가 물었다.
건우는 그에게 승차권을 돌려줬다. “원하시면 문을 열 수 있습니다.”
“문 밖에 아버지가 있습니까?”
“모릅니다.”
남자는 표를 접었다. “그럼 내리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그 역을 확인하는 것보다, 살아 있는 동생에게 전화하는 게 먼저예요.”
민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선택을 기록해 둘까요?”
“제가 기억할 겁니다.”
그는 열차 안에서 휴대전화를 켰다. 화면이 낡은 기종이라 통화 버튼이 작았다. 두 번 실패한 뒤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병원에 같이 가자고 말 못 했던 거 미안하다. 오늘 저녁에 네가 괜찮다면 만나고 싶어.”
상대의 대답은 작았지만 남자는 끝까지 들었다. 통화가 끝나자 창밖의 병원 역명이 사라졌다. 대신 실제 노선의 ‘시청 앞’이 나타났다.
건우는 지후가 앉은 플랫폼을 다시 봤다. “저 역은 어디였습니까?”
준수가 기록을 꺼냈다. “구도심 4번 승강장입니다. 노선 폐쇄 뒤에 철거됐어요.”
“기록에는 왜 폐역으로 남아 있죠?”
“사람이 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서요.”
“누가 내렸습니까?”
준수는 답하지 못했다. 그의 화면에는 그날의 승객 수가 0명으로 표시돼 있었다. 건우는 창문에 손을 댔다. 유리 너머 지후가 고개를 들었다.
지후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건우는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읽을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열지 마.’ 그 말이 누구에게 향했는지 알 수 없었다. 준수가 옆에서 숨을 삼켰다.
“제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도 그거였습니다.”
“문을 열지 말라고요?”
“아니요. 역에 남은 승객을 두고 출발하지 말라고요. 그날 전원 하차 확인을 제가 건너뛰었습니다. 지후 씨가 혼자 돌아가 확인하겠다고 했고, 저는 다음 열차가 밀린다며 먼저 출발시켰어요.”
“그 사실도 기록에서 지웠습니까?”
“네.”
민하가 창가에서 물러섰다. “지금 문을 열면 그날 일을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준수는 대답 대신 제복 깃을 움켜쥐었다. 건우는 문 개방 레버에 손을 올렸다. 손바닥 아래 금속이 뜨거웠다. 문 너머는 폐쇄된 승강장, 발을 내딛는 순간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자리였다.
“차장님.” 민하가 낮게 불렀다. “그 사람 말을 들으세요. 적어도 이번에는.”
건우는 레버를 당기지 않았다. 대신 비상 통화기를 켜고 객실 전체에 말했다.
“서지후 차장. 들린다면 대답해 주십시오. 이번엔 출발 여부를 당신 혼자 결정하게 두지 않겠습니다.”
대답은 없었다. 플랫폼의 지후가 고개를 들었다. 그가 입 모양으로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기억해’였다. 준수의 눈가가 붉어졌다.
열차 문은 닫힌 채였다. 건우가 통화기를 내려놓자 문 옆의 오래된 스피커에서 숨소리 같은 잡음이 한 번 새어 나왔다. 민하는 그 짧은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건우는 처음으로 승차권을 주머니에 감추지 않았다.
“방송을 듣고 싶으세요?” 민하가 물었다.
건우는 자기 승차권을 확인했다. “아직은 아닙니다.”
“그럼 왜 표를 숨기죠?”
“숨긴 게 아닙니다.”
“그 표를 지갑에 넣고, 제복 안쪽 주머니에 두고, 매 정차 때마다 확인하잖아요. 차장님은 이미 목적지를 알고 있을 수도 있어요.”
건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열차가 움직였다. 세 번 반복된 종착역은 뒤로 멀어졌지만, 승차권에는 같은 역명이 남아 있었다.
준수의 손목 단말기가 울렸다. 그가 조용히 화면을 돌렸다. ‘폐선 구간 비인가 출입 감지. 차장 서지후의 운행표 사용.’
“그 표는 누가 썼습니까?” 건우가 물었다.
“제 기록에선 지후 씨가 마지막으로 갖고 있었어요.”
“그럼 아직 열차 어딘가에 있다는 뜻입니까?”
준수는 답하지 않았다. 열차 안 방송이 자동으로 켜졌다.
“다음 정차역은 유리 종착역입니다.”
건우는 그런 역명을 말한 적이 없었다. 안내 음성은 그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