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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열차 막차의 차장입니다1화

거울열차 막차의 차장입니다

거울열차 막차의 차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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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자기 이름의 승차권

승차권에는 임건우라고 적혀 있었다.

건우는 펀치기를 멈췄다. 거울열차 첫 운행 전, 승객은 아직 한 명도 타지 않았다. 표는 차장실 바닥에서 발견했다. 종이 모서리가 오래된 먼지로 누렇게 변했지만, 이름은 새 잉크처럼 선명했다.

“이 열차에 제 표가 있었습니까?”

역무원 견습 신준수는 표를 받아 보려다 손을 멈췄다. “차장님 이름이 적힌 승차권은 처음 봐요.”

“처음 본다고 왜 손을 뻗었어요?”

“기록해야 하니까요.”

“승차권 소유자 동의 없이 스캔하면 안 됩니다.”

준수는 손을 거뒀다. “그럼 차장님이 직접 보관하세요. 노선도에 없는 역명이 적혀 있네요.”

표의 목적지란은 거울에 비춰야 읽혔다. 유리 종착역. 건우는 그 이름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표 뒷면에는 익숙한 필체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막차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거 누가 썼는지 알아요?” 준수가 물었다.

“모릅니다.”

건우는 차장실 서랍을 열었다. 안에는 같은 표가 열두 장 더 있었다. 이름이 적힌 표는 하나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목적지 칸이 비어 있었다.

“정식 승객이 없는 열차에 왜 표가 있어요?”

“운행을 시작하면 생깁니다.”

“누가 표를 쓰죠?”

준수는 답하지 않았다. 플랫폼 벽의 시계가 1시 13분을 가리켰다. 선로 끝에 반사등이 하나씩 켜졌다. 거울열차는 역에 들어올 때 소리를 내지 않았다. 창문이 터널의 검은 벽을 비추자, 바깥이 아니라 다른 플랫폼이 보였다.

문이 열렸다.

첫 승객은 작업복 차림의 남자였다. 그는 손에 작은 금속 도시락을 들고 있었다. 민하가 열차 안으로 들어와 그의 옆에 섰다.

“오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민하가 물었다.

“집에 가고 싶어요.”

“이 노선은 집으로 가는 열차가 아닙니다. 지나온 역을 보여 줍니다.”

“그럼 집에 못 가겠네요.”

민하는 그에게 교통 안내지를 건넸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장면은 보지 않아도 돼요. 승차권에 펀치를 찍지 않으면 열차는 그냥 지나갑니다.”

남자는 표를 살폈다. 목적지란에 ‘현장 3번 출구’라고 적혀 있었다. “여기가 어디죠?”

“당신이 마지막으로 퇴근한 곳일 겁니다.” 건우가 말했다.

“퇴근한 기억이 없어요. 야간 근무가 끝나기 전에 사고가 났죠.”

“그럼 타지 않아도 됩니다.”

남자는 창밖을 바라봤다. 터널 유리에 안전모를 쓴 다른 사람이 비쳤다. 남자는 도시락을 내려놓았다. “저 사람은 내 동료예요.”

열차가 출발했다.

첫 역의 창문에 공장 조립 라인이 나타났다. 남자는 부품을 옮기다 안전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 순간, 그의 동료가 손을 뻗어 붙잡았다. 장면은 실제로 있었던 사고와 달랐다. 동료는 다치지 않았고, 둘은 함께 안전문을 닫았다.

남자는 숨을 멈췄다. “그날 내가 문을 닫았으면, 그 사람도 살았을까요?”
그는 출근 카드를 손바닥에서 굴렸다. “안전문이 고장 났다고 보고했어요. 반장님은 한 조만 더 돌리자고 했고요. 그때 동료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옆에서 멈추라고 외쳤는데, 목소리가 작았어요.”

“그 사람은 당신에게 뭐라고 했나요?” 민하가 물었다.

“별말 안 했어요.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을 때 전화가 왔는데, 저는 안 받았어요. 사고 책임을 누구한테 돌릴지 결정하지 못했거든요.”

“그 장면을 더 보면 답이 나올까요?”

“아니요. 그래도 그 사람 얼굴은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민하는 표를 보고 말했다. “열차는 그 선택을 보여 줄 뿐이에요. 지금의 일을 바꾸진 못합니다.”

“그럼 볼 이유가 없잖아요.”

“무슨 일이었는지 확인할 수는 있어요.”

“내가 후회하는 걸 확인하려고 기억을 내놓으라는 건가요?”

건우는 펀치기를 내리지 않았다. “표를 찍으면 실제 기억 속 역 하나를 잃습니다. 그 장면을 더 보고 싶다면 본인 선택으로 찍으셔야 합니다.”

남자는 표를 내려다봤다. “그 역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요?”

“무슨 기억을 잃게 될지는 열차가 알려 주지 않습니다.”

남자의 손이 떨렸다. 그는 출근 카드를 꺼냈다. 이름은 조명철. 근무부서와 입사일이 적혀 있었다. 뒷면에는 동료의 전화번호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사고 뒤에 전화한 적 없어요.” 남자가 말했다. “그 사람이 날 원망할까 봐.”

민하는 재촉하지 않았다. 열차는 다음 역으로 넘어갈 준비를 했다. 창문 속 장면에서 동료는 혼자 안전문을 닫고, 작업복을 벗어 바닥에 놓았다. 사고의 실제 원인은 보이지 않았다.

“표를 안 찍으면 이 장면은 지나갑니다.” 건우가 말했다.

“그러면 기억을 잃지 않겠죠?”

“그건 알 수 없습니다. 표를 찍지 않으면 열차가 강제로 기억을 가져가지는 않습니다.”

조명철은 펀치기를 바라봤다. “그럼 나는 여기서 내릴 수 있어요?”

“원하는 역이 있다면 문을 열 수 있습니다.”

“동료가 지금도 그 공장에 있어요?”

준수는 노선 기록을 확인했다. “공장은 폐쇄됐습니다. 하지만 조명철 씨가 적어 둔 번호는 유효할 수 있어요.”

“그 사람을 만나면 뭐라고 해야 하죠?”

“그건 차장 업무가 아닙니다.” 건우가 답했다.

조명철은 잠시 웃었다. “맞네요. 내가 해야 할 말이겠죠.”

그는 표에 펀치를 찍지 않았다. 대신 출근 카드를 주머니에 넣고 민하가 건넨 반환표를 받았다. 열차는 장면을 닫았다. 창밖에 조명철의 기억 속 역명이 하나 떠올랐다.

‘현장 3번 출구.’

그는 역명이 자기 것이 아닌 듯 바라봤다. “이게 내가 잊지 않은 역이군요.”

“오늘은요.” 민하가 말했다.

열차가 멈추자 조명철은 내렸다. 승강장엔 실제 공장으로 가는 출구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출근 카드 뒷면의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전화 연결음이 세 번 울렸다. 조명철은 끊으려다 손가락을 멈췄다. 민하는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네 번째 신호 뒤, 낮고 잠긴 목소리가 들렸다.

  • 누구세요?

“나야. 조명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번호 바뀐 줄 알았는데.”

“바뀌었어. 카드에 적힌 옛 번호로 연결되네.”

  • 그날 이후 전화한 적 없잖아.

“미안하다. 안전문을 닫으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반장이 시킨 대로 라인을 돌렸어. 네가 다친 뒤에는 겁나서 전화도 안 받았어.”

  • 지금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야? 괜찮다고 해 달라고?

조명철은 눈을 감았다. “아니. 내가 잘못한 걸 네가 기억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어. 그리고 네가 살아 있어 줘서 다행이라고.”

  • 나는 괜찮아. 하지만 괜찮다는 말로 그날을 끝내고 싶진 않아. 네가 증언할 수 있어?

조명철은 출근 카드를 내려다봤다. “할 수 있어. 네가 원하면 같이 기록을 남기자.”

  • 내일 낮에 만나. 공장 앞이 아니라 병원 후문에서.

“알겠어.”

통화는 먼저 끊겼다. 조명철은 울지 않았다. 그는 카드를 가슴주머니에 넣고, 민하가 건넨 반환표를 접었다.
“이 반환표는 뭘 하는 거죠?”

“당신이 과거 장면을 더 보지 않겠다고 선택했다는 표시예요. 기억을 돌려주진 않지만, 다른 역을 잃지 않도록 열차에 남기는 의사입니다.” 민하가 답했다.

“그럼 이 표를 가져가도 돼요?”

“네. 실제 역에서 내리는 데는 필요 없습니다.”

조명철은 종이를 반듯하게 접어 출근 카드 뒤에 끼웠다. “나는 지금 집으로 가고 싶어요. 내일은 병원 후문으로 갈 거고요. 동료가 만나지 않겠다고 하면 그대로 돌아올게요.”

“그 선택도 당신 몫입니다.”

열차가 폐역 플랫폼에 멈췄다. 건우가 정차 방송을 했다. 조명철은 문 앞에서 한 번 돌아봤다. “오늘은 표를 찍지 않아도 길을 고를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그가 내린 뒤 민하는 빈 자리에 앉지 않았다. “열차가 보여 준 장면을 진실이라고 믿으면 안 돼요. 다른 가능성은 위로가 될 수도, 상처가 될 수도 있어요.”

건우는 펀치기를 허리춤에 다시 걸었다. “그래서 선택을 승객에게 맡기는 겁니다.”

“말로만 맡기는 건 쉽죠. 표를 찍지 않아도 승객이 내릴 수 있게 문을 열어야 해요.”

열차 문이 닫혔다.

준수가 물었다. “표를 펀치하지 않았는데도 기억이 사라질 수 있어요?”

“열차가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건우가 말했다. “그 역명을 잊는 건 다른 이유일 수도 있어.”

“차장님도 자기 역 하나를 잊었죠?”

건우는 그를 바라봤다. “내 기록을 봤습니까?”

“아니요. 차장님이 방금 유리창을 보면서 출구 번호를 찾으셨어요. 거울 속에 아무것도 없는데.”

민하가 건우의 손에서 자기 이름의 승차권을 봤다. “그 표는 펀치하지 마세요. 목적지부터 확인해야 해요.”

“저는 기억을 잃은 적이 없습니다.”

“그럼 왜 표 안의 역을 모르는 척하죠?”

그는 승차권을 주머니에 넣으려 했지만 손이 멈췄다. 표면에 찍힌 이름 아래로 희미한 역명이 한 글자씩 떠올랐다. 건우는 읽지 못한 척하지 않았다. 입술을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건우는 이 표를 누가 놓았는지 처음으로 궁금해했다. 승강장 끝에서 바람이 불었다. 유리창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반사는 흐려졌다가 곧 돌아왔다. 너무 짧아 무엇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건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열차가 다음 역을 향해 움직였다. 터널 유리에 다른 승객의 모습이 비쳤다. 제복을 입은 남자가 뒤돌아 걷고 있었다.

그 남자는 건우와 같은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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