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법정의 변론은 새벽에 끝난다

3화: 새벽의 변론
공개 심리는 새벽 한 시에 시작됐다. 거울벽에는 칼룸 사건의 사본과 새로 발견된 기록실 거울막이 나란히 놓였다. 두 장면은 같은 방을 비췄지만 시각 표시가 달랐다. 법정에는 검찰, 변론인, 감찰관, 기록실 직원들이 모였다.
“피고는 화재가 시작된 시각에 기록실에 있었습니다.” 검찰 대리인이 말했다. “그가 사건 문서를 가져갔다는 사실도 인정했습니다.”
“기록실에 있었던 건 인정했습니다. 방화는 인정하지 않았고요.” 엘시안이 답했다.
“문서를 가져간 이유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이 화재를 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판사는 검찰 사본을 재생했다. 칼룸은 문을 열고, 서고 오른편으로 향했다. 불길이 번지는 시간에 그가 방 안에 있었다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영상의 앞뒤는 잘려 있었고, 저장자 이름은 없었다.
엘시안은 반대 심문 창에서 재생을 멈췄다. “이 장면의 원본 저장 시각은 언제입니까?”
“11시 42분입니다.”
“기록실 거울은 몇 시부터 꺼져 있었죠?”
검찰 대리인은 자료를 뒤졌다. “11시 20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입니다.”
“그럼 이 자료는 해당 거울에서 저장될 수 없습니다.”
“외부 기록을 옮겼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장자와 원본 거울을 확인해야 합니다. 제출자는 그 정보가 없다고 인정했어요.”
판사는 사본을 유죄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검찰은 새로 발견된 거울막 장면을 제출했다. 거기에는 칼룸이 화재 직전 기록실 문 앞을 지나갔고, 다른 사람이 배수로로 들어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다른 얼굴의 정체는 여전히 알 수 없습니다.” 검찰 대리인이 말했다. “하지만 피고도 이 사람을 숨기고 있습니다.”
칼룸은 증인석에 앉았다. “저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
“당신이 옮긴 문서는 무엇입니까?”
“답하지 않겠습니다.”
검찰 대리인은 그 거절을 숨길 이유가 있는 것으로 주장했다. 엘시안은 칼룸의 동생 기록이 법정에서 공개될 위험을 지적하며 문서의 제출을 막았다. 판사는 그 요청을 받아들여, 문서의 내용은 공개 심리 전에 독립 판사가 검토하기로 했다. 칼룸은 사생활을 지키는 조건으로 문서가 화재와 무관하다는 사실만 확인했다.
“그 문서로 불을 냈습니까?” 엘시안이 물었다.
“아니요.”
“그 문서가 방화 도구였습니까?”
“아니요.”
“왜 가져갔죠?”
칼룸은 잠시 망설였다. “누군가 제 동생 이름을 기록에서 지우려 했습니다. 그걸 확인하려고 했어요.”
그는 이름을 더 말하지 않았다. 엘시안은 그를 캐묻지 않았다. 다몬은 문서의 실제 위치가 기록실 밖의 가족 보관함임을 확인했고, 독립 판사에게만 제출했다. 그 안에는 방화와 관련된 도구가 없었다.
검찰은 엘시안의 기억을 증거로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화재 당일 기록실 복도를 지나갔다. 거울 기록에는 그녀의 얼굴이 비치지 않았지만, 검찰은 그녀가 다른 얼굴을 봤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변론가 자신의 기억을 제출하면 직업적 중립성이 훼손됩니다.” 다몬이 말했다.
그는 검사석에 섰지만, 엘시안을 돕기 위해 개입한 게 아니었다. “그 기억이 증거라면 독립 변론인을 배정하고, 제출 범위와 보관 기간을 먼저 정해야 합니다.”
판사는 그 조건을 확인했다. 엘시안은 기억을 제출할지 선택해야 했다. 거절하면 자신이 현장을 봤다는 의심은 남고, 제출하면 개인 기억이 영구 보관될 수 있었다.
“제가 증언하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다만 그날 제가 본 복도와 시각만 제출합니다. 제 사무실, 의뢰인과 나눈 대화, 그 외 개인 기억은 저장하지 않습니다. 재생은 오늘 심리 안에서만 하고, 원본은 봉인 기간 30일 뒤 삭제해 주세요.”
“그 조건으로 기록할 수 있습니다.” 판사가 말했다.
엘시안은 거울 앞에 섰다. 그녀는 기억을 맡기기 전에 깊게 숨을 쉬었다. 거울 표면에는 복도가 나타났다. 11시 39분, 그녀가 서류가방을 들고 지나갔다. 기록실 문은 닫혀 있었다. 그녀는 오른쪽 끝에서 그림자를 보았지만, 얼굴을 확인하지 않았다. 장면은 11시 40분에 끝났다.
검찰이 물었다. “그 사람은 칼룸이었습니까?”
“모릅니다.”
“얼굴을 봤습니까?”
“아니요.”
“그럼 왜 증언했죠?”
“제가 아는 범위와 모르는 범위를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 제 기억은 칼룸의 무죄를 증명하지 않아요. 다만 그를 기록실 안에서 보지 않았다는 사실만 말합니다.”
다몬은 그녀의 증언을 거울에서 확인하고, 같은 시각의 복도 출입 기록과 대조했다. 출입문 센서는 정상 작동했고, 엘시안의 시간대와 일치했다. 기록실 문은 그녀가 지나간 뒤 6분 동안 열리지 않았다. 거울 사본에 표시된 시간은 재생 파일 제작 시각이었고, 범행 시각을 증명할 수 없었다.
“그러면 다른 얼굴은 언제 들어왔습니까?” 판사가 물었다.
다몬은 답했다. “현재 확보한 독립 증거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검찰은 피고가 방화를 했다는 걸 입증했습니까?”
“아니요.”
법정은 잠시 조용해졌다. 판사는 칼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기록실 문서를 가져간 행위는 별도의 행정 조사 대상으로 넘겼다. 그의 동생 이름과 가족 기록은 공개하지 않았다. 칼룸은 법정을 나가며 엘시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 모든 걸 말하지 않아도 변론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저는 당신을 믿은 게 아니라, 당신이 약속을 지키는지 봤어요.”
“그게 더 정확하겠네요.”
그는 처음으로 약간 웃었다. “제 동생 이름은 계속 비공개로 남겠죠?”
“그 약속은 법원 기록에도 들어갔어요.”
칼룸은 떠났다. 엘시안은 자신이 제출한 기억의 삭제 명령이 등록됐는지 확인했다. 거울 기록관은 삭제 예정일을 보여 줬다. 다몬은 그 옆에서 기억 원본을 잠그고, 접근 이력을 두 명의 서명으로 남겼다.
“거울을 왜 거부하시는지 묻고 싶어요.” 엘시안이 말했다.
“지금 답해야 합니까?”
“아니요. 준비됐을 때 물어봐도 될까요?”
다몬은 잠시 생각했다. “그렇게 하세요.”
그는 상처 난 관자놀이를 만지지 않았다. 대신 증거봉투를 봉인했다. 엘시안은 그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았다. 두 사람은 같이 법원을 나왔다. 새벽 창에 거울처럼 도시의 불빛이 비쳤지만, 누구의 기억도 그 표면에 남지 않았다.
법원 계단 아래에서 기록관청 직원이 달려왔다. “거울 사본의 원본 장치를 찾았습니다. 등록번호가 감찰관 베르틴의 사설 거울과 일치합니다.”
다몬은 보고서를 받았다. 베르틴의 거울은 사건 발생일에 파손 신고가 접수됐고, 이후 수리 기록이 없었다. 사본은 깨진 거울에서 복원한 것이었다. 엘시안은 원본 영상이 왜 칼룸과 다른 얼굴을 함께 담았는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다른 얼굴은 베르틴입니까?” 그녀가 물었다.
“모릅니다. 기억의 소유자와 얼굴은 다를 수 있습니다.”
다몬은 보고서를 접었다. “무죄 판결로 사건은 끝났지만, 증거 조작은 별도 조사해야 합니다.”
엘시안은 자신의 기억이 30일 뒤 삭제될 일정을 확인했다. 거울을 증거로 쓰는 일은 끝났지만, 기록을 편집하고 제출하는 권한은 여전히 감찰관에게 있었다. 거울 법정의 새벽은 밝아 왔고, 사건은 법원 바깥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직원이 내민 원본은 손바닥만 한 검은 거울 조각이었다. 봉인 상자 안에서도 표면이 희미하게 빛났다. 다몬이 상자에 손을 뻗자 엘시안이 그의 손목을 막았다.
“검사관님, 지금 그 상처로 만지면 안 돼요.”
“피가 닿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압니까?”
“모르니까 막는 거예요.”
조각 안쪽에서 희미한 숨소리가 났다. 기록관청 직원은 뒤로 물러섰다. 봉인 틈으로 검은 액체가 스며 나오더니 바닥에 떨어지기 전 실처럼 팽팽해졌다. 엘시안은 반사적으로 외투를 덮었다. 천 밑에서 누군가 문을 세 번 두드렸다.
다몬은 외투를 들어 올리지 않았다. “거울을 깨면 안 됩니다. 안에 저장된 기억이 있다면 파편이 퍼집니다.”
“대답하지도 말아요.” 엘시안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상자 둘레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의 기억이죠?”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멎었다. 잠시 후 천 밑에서 엘시안 자신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몬, 이번에는 문을 열지 마.”
그녀는 그 문장을 말한 적이 없었다. 다몬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그는 외투 끝을 움켜쥐었지만, 당기지 않았다.
“당신은 그 목소리를 알아요?” 엘시안이 물었다.
“아니요.” 대답은 너무 빨랐다.
상자 속 조각이 한 번 더 울렸다. 이번에는 손톱으로 유리를 긁는 소리였다. 엘시안은 법원 경비를 불러 봉인실을 비워 달라고 했다. 다몬은 보고서에 기록관청 직원의 이름을 빼고, 조각이 자기 손에 닿지 않았다는 사실부터 적었다. 그는 이미 수사를 넘겼지만, 다시 자기 상처를 감추려 했다.
엘시안이 그의 손에서 펜을 빼앗았다. “당신이 본 걸 쓰세요. 제가 들은 건 제가 쓰겠습니다.”
그는 반박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녀에게 종이를 내줬다. 둘은 각자 본 것만 적었다. 문을 열지 말라는 목소리의 출처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다만 조각은 엘시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었고, 다몬은 그 문장 앞에서 두려워했다.
해가 건물 유리창에 닿자 천 아래의 두드림이 멎었다. 상자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봉인 안쪽에 새로운 글자가 맺혔다. ‘다몬의 첫 증언’. 엘시안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이번에도 거울을 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