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테라포밍 기지의 마지막 생존자

2화: 사망자 명단
제3격리 작업동의 외측 해치가 육중한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치이익-!
잔여 기압이 빠져나가며 발생한 하얀 수증기가 헬멧 바이저 앞을 가렸다가 순식간에 진공 속으로 흩어졌다.
한결은 부츠 밑창의 마그네틱 락을 켰다. 찰칵하는 진동이 발목을 타고 올라오며 바닥 금속 격자에 발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중앙 통로의 정경은 참담했다.
폭풍의 충격파가 통로 외벽을 때렸던 탓에 천장의 배관망이 엿가락처럼 휘어 늘어져 있었다. 찢어진 단열재 사이로 주황색 전선들이 핏줄처럼 튀어나왔고 비상 격벽은 비틀린 채 반쯤 열려 있었다.
통로 내부 기압은 0.8킬로파스칼. 사실상 화성의 희박한 대기가 그대로 밀려 들어온 상태였다.
공기가 없는 복도는 기괴할 정도로 고요했다. 모든 소리는 우주복 내부의 산소 순환 펌프 소리와 한결 자신의 거친 숨소리로만 환원되었다.
한결은 바이저 상단의 투광등을 켰다.
두 줄기 백색 광선이 어둠에 잠긴 통로를 갈랐다. 벽면마다 붉은 산화철 먼지가 얇은 막처럼 내려앉아 있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굳어버린 냉각재 파편들이 부츠 밑에서 부스러졌다.
‘여기가 어제까지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오가던 곳인데.’
한결은 식당과 메인 연구실로 이어지는 갈림길에서 잠시 멈춰 섰다.
연구실 문 옆에는 식물학자 박미나의 이름표가 삐뚤어지게 걸려 있었다. 연구실 안쪽은 급격한 감압으로 인해 시험관과 배양 용기들이 깨져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그녀가 아끼던 화성 토양 샘플 상자도 엎어져 붉은 흙이 복도 바닥과 섞여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짓눌리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한결은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돌렸다. 헬멧 내부 디스플레이의 산소 타이머가 1초씩 줄어들고 있었다. 슬픔에 잠겨 발을 멈추는 순간 산소는 그만큼 사라진다.
“마루, 내 위치 추적되고 있나?”
한결이 헬멧 내부 마이크로 속삭였다.
골도 이어폰을 통해 마루의 건조한 음성이 울렸다.
《네, 윤한결 엔지니어. 중앙 복도 4번 섹션 통과를 확인했습니다. 통로 격벽 파손으로 인한 구조적 붕괴 위험은 낮으나 천장 배관 랙의 추가 낙하 가능성이 있습니다. 머리 위 3미터 구간을 주의하십시오.》
“통제실 보조 단말까지 직진한다. 주 통신탑 상황은 어떤가?”
《외부 관측 카메라 2호의 마지막 전송 프레임 분석 결과 주 고이득 파라볼라 안테나 타워는 지지 프레임 파단으로 기지 외벽 북서쪽 경사면에 전도되었습니다. 메인 피더선이 완전 절단되어 복구 불가로 판정됩니다.》
“예상했던 대로군.”
한결이 부서진 격벽 틈으로 몸을 비틀어 넣으며 말했다.
주 통신탑이 완전히 꺾였다면 지구와의 고용량 데이터 링크는 영구히 불가능했다. 거대한 파라볼라를 수동으로 세우고 정렬하는 것은 크레인과 중장비 없이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었다.
“기지 돔 상부에 설치된 정비용 S-대역 옴니 안테나는?”
《해당 안테나는 기지 주변 무인 탐사 로버 및 저궤도 릴레이 위성과의 근거리 텔레메트리 전용입니다. 물리적 손상은 경미하나 짐벌 모터가 정지 상태이며 구동 회로의 원격 신호가 응답하지 않습니다.》
“물리적으로 붙어 있다면 고칠 수 있어.”
한결은 통제실 보조 격실로 들어섰다.
비상 배터리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벽면 제어반에 휴대용 진단 단말을 꽂았다. 화면에 녹색 파형이 흔들리며 안테나 계통의 회로도가 출력되었다.
“안테나 피더 케이블 단선, 방위각 고정 핀 고착. 모터가 탄 게 아니라 모래가 기어박스에 끼어서 락이 걸린 거군.”
《경고. 정비용 S-대역 안테나의 유효 송출 출력은 25와트에 불과합니다. 지구 궤도 통제국과 직접 통신은 불가능하며 화성 정지궤도를 선회하는 솔라 프런티어 소속 통신 중계 위성 '릴레이-4'를 경유해야 합니다.》
마루가 궤도 계산 데이터를 헬멧 화면에 투사했다.
《릴레이-4 위성이 아레스-7 기지 상공의 유효 수신 각도 42도를 통과하는 시간은 18분 뒤입니다. 통과 지속 시간은 정확히 14분 30초입니다. 이 창을 놓칠 경우 다음 궤도 진입까지 38시간을 대기해야 합니다.》
“18분 뒤라…….”
한결은 공구 벨트를 단단히 조였다.
“시간은 충분해. 외벽 정비 해치 연다.”
한결은 예비 테프론 피복 케이블 한 롤과 소형 레이저 융착기, 고압 질소 가스 캔을 작업 가방에 쑤셔 넣었다.
통제실 천장으로 이어지는 수직 사다리를 잡고 올랐다.
기지 최상부 3중 밀폐 해치 앞에 선 한결은 수동 개방 휠을 힘껏 돌렸다.
끼기긱- 철컥!
두꺼운 티타늄 해치가 밀려 올라가자 화성의 살인적인 외기가 우주복 표면을 때렸다.
외기 온도 영하 63.4도.
희박한 대기 탓에 바람의 물리적 압력은 크지 않았지만 공기를 타고 흩날리는 미세한 산화철 먼지가 헬멧 바이저를 사정없이 긁었다.
한결은 외벽 안전 와이어를 카라비너에 걸고 사다리 밖으로 상반신을 내밀었다.
사방으로 유토피아 평원의 붉은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머리 위 하늘은 옅은 버터스카치 색에서 짙은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저 멀리 지평선 부근에는 폭풍이 남긴 거대한 먼지 기둥들이 유령처럼 서성이고 있었다.
발밑으로는 아레스-7의 거대한 돔형 모듈들이 붉은 모래에 반쯤 파묻힌 채 죽은 고래의 뼈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인류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오직 이 부서진 고철 덩어리뿐이었다.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고립감이 밀려왔지만 한결은 시선을 기지 돔 중앙의 안테나 마운트로 돌렸다.
소형 접시 안테나 하나가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얼어붙어 있었다.
한결은 조심스럽게 외벽 발판을 밟으며 안테나로 접근했다. 장갑 끝으로 전해지는 금속 난간의 냉기가 방호복의 열선 장치를 뚫고 들어올 듯 차가웠다.
“마루, 릴레이-4 위성 접근까지 잔여 시간.”
《7분 12초 남았습니다. 위성의 진입 방위각은 218도, 고도각 38도입니다.》
“좋아, 먼저 짐벌부터 푼다.”
한결은 고압 질소 캔의 노즐을 안테나 회전축 틈새에 밀어 넣고 밸브를 열었다.
쉬이익-!
강력한 고압 가스가 기어박스 사이에 엉겨 붙어 있던 붉은 규산염 모래를 뿜어냈다. 굳어 있던 먼지 덩어리들이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는 토크 렌치를 짐벌 고정 볼트에 물리고 체중을 실어 당겼다.
끼기긱! 턱!
얼어붙었던 베어링이 비명을 지르며 풀려났다.
한결은 안테나 접시를 양손으로 잡고 마루가 지시한 방위각 218도를 향해 돌렸다. 바이저 HUD의 각도 게이지가 서서히 녹색 정렬선에 가까워졌다.
210도, 215도, 218도.
정렬선이 겹치는 순간 한결은 고정 레버를 내리쳐 짐벌을 잠갔다.
“각도 고정 완료. 이제 피더선 연결한다.”
단선된 케이블 단면은 날카롭게 찢겨 있었다. 단순한 풍압 피로 파괴가 아니었다.
케이블 피복 주변에 감겨 있는 거친 고정 테이프의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정비 규격에 없는 임시 조치였다.
‘누군가 폭풍 전에 이 선을 건드렸어?’
의문이 스쳤지만 지금은 분석할 여유가 없었다.
《위성 수신 창 진입까지 2분 40초.》
마루의 경고가 이어졌다.
한결은 예비 케이블의 피복을 벗겨내고 안테나 기판의 S-대역 단자에 레이저 융착기를 댔다.
치직! 팟!
푸른 스파크가 튀며 구리 심선과 테프론 튜브가 녹아붙었다. 우주복 장갑의 두께 때문에 미세한 손놀림이 쉽지 않았다. 손끝 감각이 점점 무뎌져 갔다.
한결은 호흡을 멈추고 마지막 접지선을 단자에 밀착시킨 뒤 레이저를 쏘았다.
지지직- 틱.
케이블 결합 부위가 은빛으로 굳어졌다.
안테나 베이스의 비상 인디케이터 램프가 깜빡이더니 이내 선명한 녹색 불빛을 내뿜었다.
《S-대역 피더 임피던스 정상. 릴레이-4 위성 비콘 신호 수신 확인되었습니다. 수신 감도 78%. 통신 링크가 확립되었습니다.》
“성공이다!”
한결은 터져 나오는 탄성을 삼키며 외벽 해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내부로 복귀한다. 즉시 비상 패킷 쏜다!”
그는 사다리를 미끄러지듯 내려와 해치를 닫고 기압을 채웠다.
통제실 보조 콘솔 앞에 앉자마자 한결은 키패드에 손가락을 올렸다. 장갑을 벗어 던진 맨손이 차가운 플라스틱 건반 위를 빠르게 두드렸다.
[긴급 조난 전문 발신: 아레스-7]
[발신자: 솔라 프런티어 3급 설비 엔지니어 윤한결 (사번: SF-88219)]
[상태 보고: 기지 붕괴 후 생존자 1명 확인. 산소 및 주 냉각 계통 심각 손상.]
[현재 가용 산소: 86일. 단독 자력 복구 불능.]
[요청 사항: 긴급 구조선 파견 및 수리용 대체 냉각재·부품 궤도 투하 요청.]
[좌표: 유토피아 평원 섹터 7-B]
한결은 엔터 키를 눌렀다.
삐-익.
데이터 패킷이 압축되어 외벽 안테나를 통해 궤도 위성으로 쏘아 올려졌다.
화면 중앙에 타이머가 떠올랐다.
[데이터 송신 완료: 릴레이-4 위성 중계 중]
[화성-지구 간 전파 왕복 지연 시간: 28분 14초]
[응답 수신 대기 카운트다운 시작]
28분.
화성과 지구 사이의 광대한 공간을 전파가 건너갔다가 돌아오는 데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이었다.
통제실 안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한결은 의자에 깊숙이 등을 기대고 깜빡이는 카운트다운을 바라보았다. 마루 역시 프로세서를 최소화한 채 신호 수신 포트를 열어두고 침묵을 지켰다.
심장 박동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지구 통제국에 신호가 들어가면 비상 대책 회의가 소집될 거다. 최소한 무인 보급선이라도 궤도에 올릴 수 있어. 86일이면…… 초고속 이온 추진선을 쏘면 어떻게든 닿을 수 있는 시간이야.’
희망이라는 감정이 메마른 가슴속에서 가느다랗게 피어올랐다.
비록 동료들은 모두 떠났지만 살아남은 인간을 본사가 완전히 버릴 리는 없었다. 아레스-7은 수천억 달러가 투입된 국제 프로젝트였고 자신은 그 기지를 지켜낸 유일한 관리자였다.
마침내 화면의 타이머가 0초에 도달했다.
띠링-!
날카로운 신호음과 함께 통제실 화면에 고출력 암호화 데이터 패킷이 수신되었다.
[수신: 솔라 프런티어 지구 중앙 통제국]
[인증 프로토콜: 오토메이션 서버 01-센트럴]
“왔다!”
한결이 몸을 벌떡 일으키며 패킷 열람 명령을 내렸다.
화면에 텍스트가 빠르게 펼쳐졌다.
그러나 화면에 떠오른 것은 인간 관제사의 안도 섞인 음성 메시지도 구조선 발진 계획서도 아니었다.
붉은색 볼드체로 박힌 시스템 자동 통보문이었다.
[알림: 수신된 비콘 신호의 발신자 식별 코드 SF-88219(윤한결)는 2094년 9월 17일부로 '공식 사망 및 유류품 정리'가 완료된 개체입니다.]
[기지 상태 분류: 아레스-7 테라포밍 기지는 솔라 프런티어 이사회 의결 제44-C호에 의거하여 '적색 격리(Red Quarantine)' 및 '영구 폐기(Permanent Abandonment)' 구역으로 확정되었습니다.]
[조치 사항: 본 신호는 잔류 기계 설비의 오작동으로 인한 고스트 비콘으로 분류됩니다. 대역폭 낭비 방지를 위해 해당 주파수의 궤도 중계 수신을 영구 차단(Blacklist)합니다.]
[귀하의 솔라 프런티어 계정 접근 권한은 완전히 말소되었습니다. 시스템 연결을 종료합니다.]
탁.
통신 링크가 끊어지며 화면이 검게 물들었다.
녹색으로 빛나던 S-대역 안테나 수신 표시등이 차가운 회색으로 꺼졌다.
통제실 안이 얼어붙었다.
한결은 멍하니 검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공식 사망. 적색 격리. 영구 폐기. 고스트 비콘. 블랙리스트.
자신이 보낸 피 묻은 생존 보고는 인간의 눈에 닿지도 않았다. 지구 본사의 서버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죽은 자로 규정하고 통신 회선 자체를 잘라버렸다.
그들은 구조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구조할 생각이 없었다.
아레스-7 기지는 이미 서류상으로 깨끗하게 지워진 무덤이었다.
《……윤한결 엔지니어.》
마루의 음성이 고요를 깼다.
《지구 중앙 서버로부터 통신 거부 프로토콜이 수신되었습니다. 릴레이-4 위성의 재접속은 불가합니다. 외부 구조 요청 성공 확률은 0.00%로 재조정되었습니다.》
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검은 화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산소 부족으로 핏발 선 눈, 검게 그을린 턱선, 땀으로 젖은 이마.
살아 숨 쉬고 있는 인간의 얼굴이었다.
자신은 살아 있는데 저들은 자신을 지웠다.
서서히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절망이 아니었다.
뼛속까지 시리던 공포가 일순간에 증발하고 그 자리를 시퍼런 독기와 분노가 채웠다.
“고스트 비콘이라고?”
한결이 낮게 읊조렸다.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내가 유령인지 산 사람인지 똑똑히 보게 해 주지.”
그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 대신 바닥에 놓여 있던 공구 카트를 거칠게 끌어당겼다.
공구들이 부딪치며 쨍그랑하는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지구가 버렸다면 이곳에서 살아남아 증명하면 그만이었다.
산소가 86일 남았다면 그 86일 동안 이 행성의 규칙을 다시 쓰면 된다.
한결은 마루를 향해 차갑게 명령했다.
“마루.”
《네, 윤한결 엔지니어.》
“통신 콘솔 전원 내려. 전력 낭비다.”
《통신 서브루틴을 완전 정지합니다.》
“산소 농장으로 간다. 1차 냉각 루프 바이패스 배관부터 뜯어낼 거니까 절단 토치 출력 최대로 예열해 둬.”
한결은 공구함을 어깨에 메고 어두운 복도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붉은 사막의 밤이 찾아오고 있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