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으로
마도구 배터리 교환소의 막내 기사2화

마도구 배터리 교환소의 막내 기사

마도구 배터리 교환소의 막내 기사

AD
스폰서 광고

2화: 호환표에 없는 길드 장비

다음 날 아침, 교환소 출입문 앞에 검은 밴이 세워졌다. 옆문이 열리고 장비 상자 네 개가 먼저 내려왔다. 상자마다 같은 길드 문장이 찍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린 오성민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하진을 찾았다.

“어제 맡긴 배터리, 오늘 오전 안에는 가져가야 합니다. 오후 레이드가 있어서요.”

“안전 점검 중입니다.” 하진은 접수표를 내밀었다. “온도 상승이 멈출 때까지 반환하지 않습니다.”

성민은 표를 받지 않았다. “고객이 개조한 물건입니다. 우리 장비와 상관없는 걸로 확인됐어요. 그런데 괜히 길드 이름이 기록에 들어가면 계약이 꼬입니다.”

재민은 격리함 쪽을 바라보았다. 안쪽 표시등은 꺼져 있었지만 온도는 어젯밤보다 겨우 두 도 낮아졌을 뿐이었다. 수아가 온 뒤로 열두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배터리를 반환해 달라고 전화한 사람은 수아가 아니라 길드였다.

“장비 확인 없이는 길드와 무관하다고 적을 수 없습니다.” 재민이 말했다.

성민의 시선이 막내 기사 명찰에 걸렸다. “신입이 판단할 일은 아니죠.”

하진이 접수표를 작업대에 놓았다. “맞아요. 그래서 제가 보고 있습니다. 다만 재민이 발견한 일련번호 불일치는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기철도 공급업체 배지를 달고 와 있었다. 그는 격리함을 열어 달라는 성민의 요구를 거절하고, 배터리 케이스의 바코드 사진만 확대했다. 스티커의 마지막 숫자는 3처럼 보였지만 제조 단말에는 8로 등록되어 있었다. 재민은 서로 다른 번호 두 개를 보여 주었다. “외부 케이스와 내부 셀 로그가 다릅니다. 이게 우연인지 확인하려면 길드 장비 쪽 접점도 봐야 합니다.”

성민은 한 박자 늦게 상자 하나를 열었다. 안에는 창과 배터리 어댑터가 들어 있었다. “이건 같은 규격입니다. 우리 쪽 품질팀이 확인했어요.”

재민은 장비를 만지기 전, 수아의 창에서 본 절연테이프 흔적을 떠올렸다. 어댑터 외형은 같았지만 가운데 홈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규격표의 도면에는 홈의 위치가 표시되지 않았다. 그는 측정 게이지를 가져와 폭을 재고, 정면과 뒷면을 각각 찍었다. 성민은 팔짱을 끼고 기다렸지만 손가락은 휴대전화 화면을 계속 두드렸다.

“길드에서 이 어댑터를 배터리와 같이 썼습니까?”

“여러 장비에 썼죠. 전부 문제없이 돌아갔습니다.”

“최근 반납된 장비도요?”

“지금 무슨 뜻이죠?”

기철이 어댑터를 들여다보았다. “이 단자는 표준형처럼 보여도 안쪽에 우회 접점이 있네. 같은 외형으로 두 규격을 오가게 만든 거야. 공급사 승인품은 아닙니다.”

성민의 표정이 굳었다. “출력 안정기입니다. 현장 정비팀이 오래전부터 쓰던 거예요.”

하진은 작업대를 비우고 절연판을 깔았다. “그러면 그 이력을 기록해야 합니다. 지금부터 전원을 넣지 않고 접점 저항만 측정하죠.”

재민은 멀티미터를 꺼내 두 접점을 분리해 측정했다. 첫 번째 어댑터는 정상 범위였지만, 두 번째 상자의 어댑터는 접점 사이에 미세한 잔류 출력이 남았다. 수치는 작았으나, 전원이 끊긴 뒤에도 배터리의 상태표시 회로를 깨울 만큼이었다. 재민은 표에 수치를 적고 옆에 “충전기 분리 후 잔류 출력”이라고 썼다. 표준표에 없는 항목이었다.

측정을 마치자 하진은 재민에게 어댑터를 절연 보관함에 넣으라고 했다. 성민은 그 모습을 보고 손을 뻗었다.

“그걸 왜 가져갑니까? 우리 장비입니다.”

“소유권은 길드에 있어도, 안전 확인 전에는 전원을 넣지 않기로 서명하셨어요.” 재민이 말했다.

“서명한 건 점검에 협조한다는 뜻이지, 압수에 동의한 게 아닙니다.”

재민은 보관함 뚜껑을 닫지 않고 하진을 바라봤다. 자신이 한 말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하진은 상자 봉인 번호를 성민에게 읽어 주고, 수령증에 반환 예정 시간을 쓰라고 했다. “내일 정오까지 비파괴 검사를 하고, 파손이 없으면 반환합니다. 그 전에 긴급 반환을 원하면 사용 중지 안내와 측정 기록을 함께 받으시면 됩니다.”

“내일 정오면 레이드 계획은 이미 끝난 뒤겠네요.”

“그러니 지금 대체 장비를 준비하시라는 겁니다.”

성민은 목소리를 낮췄다.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건 여기서 월급 받는 사람뿐이죠. 현장에선 장비 한 개가 빠지면 뒤에 있는 사람이 다칩니다.”

그 말은 협박만은 아니었다. 재민은 현장 공략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빈 장비 슬롯이 대열을 흔들 수 있다는 건 알았다. 그는 대체품 목록에 단순히 모델명만 쓰지 않고 각 장비의 출력과 냉각 방식까지 확인했다. 길드가 가져온 예비품은 같은 출력처럼 보여도 냉각판이 얇아 연속 사용에 적합하지 않았다. 다른 상자에서 나온 구형 장비는 무겁지만 냉각이 안정적이었다. 재민은 하진에게 그 장비를 테스트하자고 제안했다.

테스트는 무부하 상태에서 시작했다. 하진이 전류를 제한하고, 재민은 열화상 화면을 보며 접점 온도를 불렀다. 성민은 숫자를 받아 적다가 구형 장비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걸 보고 미간을 풀었다. 그가 챙긴 것은 레이드 출발 시간이 아니라 부하 시험 결과였다. 재민은 그 작은 변화를 기억해 두었다.

“이 장비면 한 명은 대체할 수 있습니다.” 재민이 말했다. “다만 연속 사용 시간은 절반으로 제한해야 해요.”

성민은 대답 대신 그 조건을 일정표에 적었다. 그는 무리하게 출발시키려는 사람일 수 있지만, 위험을 모르는 사람은 아닐지도 몰랐다.

성민이 책상에 몸을 기댔다. “그 정도로 배터리가 부풀었다고요? 수아 씨가 손잡이를 고쳤다면서요.”

“그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어댑터만으로도 표시등이 꺼지지 않는 현상은 설명됩니다.” 재민은 측정값을 가리켰다. “부풀음의 원인까지 확정하려면 셀 검사와 로그 대조가 필요합니다.”

“그럼 장비 네 상자를 다 잡아 두겠다는 겁니까?”

“위험 가능성이 확인될 때까지만요.”

성민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레이드를 취소하면 열두 명이 하루 수당을 잃어요. 당신 기록 한 줄 때문에요.”

말이 작업장 안에 가라앉았다. 재민은 수아가 어제 길드에 전화하고 난 뒤 창을 내려놓던 손을 기억했다. 한 줄로 적는 기록이 누군가의 하루를 망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위험을 덮으면, 그 하루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다.

“저희는 레이드를 취소하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어댑터를 분리하고, 표준 배터리로 대체할 수 있는지 점검하겠습니다. 길드가 위험을 감수하고 계속 사용하겠다고 해도, 교환소가 안전 판정을 내리지는 않을 겁니다.”

하진은 재민의 말이 끝난 뒤 한참 그를 보았다. 그 눈빛에는 허락도 칭찬도 없었다. 대신 기록지를 앞으로 밀었다. “대체품 목록 작성해. 그 전에 성민 씨, 사용 이력과 정비 담당자 이름을 적어 주세요.”

성민은 결국 이름 대신 근무조 번호를 적었다. 담당자는 지난달에 퇴사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기철은 자기 단말에서 로트 기록을 조회했다. 같은 모델의 반품 내역은 없었다. 대신 납품서에 적힌 숫자와 실제 셀 로그가 다른 건이 두 건 더 나왔다. 둘 다 길드로 납품된 물량이었다.

“이건 단순 어댑터 문제일 수도 있어.” 기철이 말했다. “셀 자체를 바꿔 끼웠다면 공급사 책임이고, 표지만 바꿨다면 유통 중 변조야. 어느 쪽이든 내가 확인해야 해.”

성민은 상자들을 닫으려 했다. 하진이 손을 들어 막았다. “확인 전에 가져가시면 안 됩니다.”

“그럼 내가 여기서 지켜보죠.”

그는 의자를 끌어다 출입문 옆에 앉았다. 레이드팀에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잠시 뒤 수아가 교환소에 돌아왔다. 그녀는 본인 장비의 무기 로그를 제출하러 왔다가 길드 사람을 보고 멈췄다. 성민도 그녀를 알아봤다.

“네 장비부터 확인하자. 길드가 수리비를 대면 네가 개조한 것도 같이 고치면 돼.”

“제가 원하는 건 배터리 반환이 아니에요. 왜 표시가 계속 켜졌는지 알고 싶어요.”

성민은 입술을 다물었다. 수아가 재민에게 로그를 보여 주는 동안, 재민은 두 데이터의 시간대를 맞췄다. 창이 꺼진 뒤 수아가 자가 수리한 날짜와 길드 어댑터의 납품 날짜는 하루 차이였다. 어댑터가 공급된 날, 길드 장비 두 대의 충전 로그에도 같은 짧은 출력 봉우리가 생겨 있었다.

하진은 즉시 해당 장비의 사용 중지를 권고했다. 성민은 레이드에 가져갈 장비를 바꾸겠다며 두 상자만 남기고 나머지를 봉인했다. 결정을 번복한 건 아니었다. 그는 기사들의 출발을 늦추지 않으려, 확인되지 않은 어댑터가 든 상자를 그대로 들고 가려 했다.

재민은 출입문 앞에 서서 상자의 봉인 스티커를 손에 들었다. “그 상자에는 측정값이 남아 있습니다. 가져가시면 확인 전 사용 금지 안내서를 같이 받아 가셔야 합니다.”

성민은 그의 손에서 안내서를 낚아채듯 받았다. “오늘 일을 네가 책임질 수 있어?”

“제가 쓴 수치와 사진은 책임지겠습니다. 원인을 확정한 사람처럼 쓰지는 않겠습니다.”

성민은 안내서에 서명했다. 그의 손은 떨리지 않았지만 글씨 끝이 종이를 깊게 눌렀다. 재민은 상자 두 개의 봉인 번호를 적고, 대체 배터리의 출력 규격을 확인했다. 적어도 한 팀은 예정한 시간에 나갈 수 있었다.

퇴근 무렵, 기철은 반품 창고에서 오래된 납품서를 찾아냈다. 세 건의 번호 끝자리가 모두 같은 방식으로 덧칠돼 있었다. 그는 원본을 재민에게 보여 주지 않고, 납품 날짜만 기록했다. “내부 자료라 지금은 사진을 못 줘. 그런데 네가 찾은 번호랑 이어진다.”

재민이 수아의 배터리 일련번호를 다시 확인하자 격리함의 자동 로그에는 처음 본 것과 다른 로트가 나타났다. 덮개에 적힌 숫자는 08-3, 셀 로그는 08-8이었다. 화면 오른쪽에는 작은 문구가 떴다. ‘마지막 점검: 교환소 서부지점.’

하진은 화면을 바라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기철이 “서부지점 기록은 이미 폐쇄됐어”라고 하자 그녀의 턱 근육이 굳었다. 재민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출력된 검사표를 봉투에 넣어 하진에게 건넸다. 봉투를 받는 그녀의 손은 평소보다 오래 종이 위에 머물렀다.

그 지점은 하진이 이곳으로 오기 전 근무하던 곳이었다.

AD
스폰서 광고
YOU MAY ALSO LIKE

이런 작품은 어때요?